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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연, 정서희(영화 저널리스트), 황선업(대중음악 평론가), 김복숭(작가)
디자인MHTL
사진 출처모비딕 유튜브

‘이 노래 인기인 가요’ (모비딕 유튜브)
예시연: “태초부터, DNA부터 끌어오르던 진로는 아이돌이었던 것 같아요.”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을 중심으로 입시·교육 콘텐츠라는 패러다임을 개척한 크리에이터 미미미누가 K-팝을 향해 돌연 출사표를 던졌다. K-팝과 노래방 문화에 오랜 열정을 품어온 사람 중 하나인 그는 ‘방구석 노래방’ 콘텐츠를 통해 원곡자를 향한 존경심을 바탕으로 꿋꿋이 ‘원키’를 고수하며 독특한 창법을 선보이고 있다. 커버 곡 중 11개의 영상이 조회수 100만 뷰를 달성했을 정도다(4월 12일 기준).

모비딕과 손을 잡은 ‘이 노래 인기인 가요’는 바로 이런 그의 “부업 활성화”에서 출발했다. ‘이 노래 인기인 가요’의 핵심인 ‘노래 강습 시간’은 원곡자에게 교육받는 일종의 보컬 클리닉이자 미미미누만의 독창적인 곡 해석과 창법으로 ‘충격’을 선사한다. 프로미스나인 ‘DM’ 중 “달콤하게 속삭일래 / 간직했던 내 맘을”을 그는 “췌장 깊이 (마음을) 간직하는, 허파를 뒤집는 창법”이라며 해석한다.“문학과 노래의 원류가 똑같”다는 의견에서 시작한 ‘가사 해체 분석기’에서는 그의 전문 분야를 살려 더보이즈 편에서 ‘WHISPER’와 ‘ROAR’ 사이의 유기성을 단번에 파악하자 더보이즈 선우가 “한 단계를 뛰어넘어서 세계관을 볼 줄” 안다고 극찬할 정도였다. 구독자 20만 명 기념 Q&A 영상에서 미미미누는 구독자 100만 명이 되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혼코노(혼자 코인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의미)의 현실 버전”이라고 답한 바 있다. 그리고 128만 유튜버로 성장한 그는 ‘방구석 노래방’에서 나와 “인기가요 무대에 서는 꿈”을 위해 “행동으로 옮기”는 중이다. 많은 사람이 겪어봤을 수험 생활을 거쳐 음악으로 발을 넓힌 그의 행보는 음악이 왜 ‘수험 생활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지 증명하는 것과 같다. 미미미누는 지금, 음악이 가진 에너지를 업고 더 큰 즐거움의 세계로 나아가는 중이다.

‘정순’
정서희(영화 저널리스트): 정순(김금순)은 콧노래가 나왔다. 식품 공장에 다니는 그는 새로 들어온 영수(조현우)와 사귀고 나서부터 일상이 좀 즐거워졌다. 남편과는 일찍 사별했고, 폐차장에서 일하는 딸 유진(윤금선아) 또래의 젊은 관리자 도윤(김최용준)은 ‘엄마뻘’ 정순의 눈을 보며 소리 질렀다. “시키는 대로 하라고!” 모멸이 반복됐으나 정순은 밥벌이를 고되고 “보람된” 행위로 정리했다. 유진에게 “나긋나긋해져” 보라고 잔소리하는 그는 부드러움을 미덕으로 여기는 심성을 지닌 채 나이 들었지만, 자기가 자기를 책임진다는 것의 무게를 냉정히 알았다. 그래서 영수를, 영수 몫의 모멸을 헤아렸다. 둘의 연애에 대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은 정순이 ‘우리’의 일로써 상의했을 때, 영수는 “내가 쪽팔리”냐며 자신의 바닥을 내보였다. 성치 않은 무릎으로 입사해 여관 달방에서 지내는 영수를 탈락자 취급하는 도윤과 건재함을 증명한답시고 정순이 속옷 차림으로 노래 부르는 영상을 보여줘 버리는 영수는 순식간에 한배를 탄다. 연인이라 믿은 남자의 지친 하루를 응원했을 뿐인 정순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가 되어 집에서도 이불을 뒤집어쓴다. 지나치게 무장 해제했다는 자기혐오로 침잠하는 그를 대신해 신고하고, 부엌의 날붙이를 전부 숨기는 유진은 법적 절차를 밟고자 한다. 정순은 불리하다. 정순이 단 한 사람을 웃게 하기 위해 과장한 모습이 불특정 다수에 의해 재생되어 불리하다. 불리한데 출근한다. 위생모를 벗고 작업대 위에 올라간 정순은 영상 속 정순과 같은 노래를 하면서 같은 춤을 춘다. 정순을 몰래 돌려보던 이들은 더는 “가만히 있어야” 할 이유를 모르는 정순 앞에선 고개 숙인 청중이다. 정순은 죽고 싶어 했었고 정순을 연기한 김금순 배우는 “영수를 죽이고 싶”은 적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는 상처를 뜯다가 ‘나’까지 뜯기는 길이 아닌, 운전면허를 취득해 직접 운전대를 잡아 그의 길을 간다. 조수석에는 살아가기를 택한 정순에게 고마운 마음만 남긴 유진이 앉아 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끊임없이 호명한 이름이자 영화의 제목에 수식어는 필요치 않다. ‘내’가 ‘나’의 재판관이기를 거부한 사람이 끝까지 지켜낸 고유명사는 부풀림 없는 부피로 존엄하다. 정순은 전방을 주시한다.

브레이멘(BREIMEN) - ‘AVEANTIN’
황선업 (대중음악 평론가): 최근 일본 대중음악 씬에서 가장 번뜩이는 창작력을 보여주는 팀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브레이멘을 언급하고 싶다. 2015년에 결성된 이 4인조 밴드는, 사실 첫 대면엔 멤버들의 화려한 세션 이력에 더 눈길을 줄 수밖에 없는 팀이다. 템팔레이나 텐더, 키린지, 빗슈, 식스톤즈, 즛토마요나카데이이노니, 키타니 타츠야, 리틀 글리 몬스터, 키키 비비 릴리 등. 장르와 세대의 경계를 허물며 그 모습을 대중들의 무의식중에 흩뿌려 온 덕분. 그럼에도 거기에 그쳐서 안 되는 이유는, ‘브레이멘’이라는 이름으로 보여주는 자신들의 진면목이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니크함으로 자리하기 때문이다.

메이저 진출 후 첫 정규작인 이 작품은 ‘기상천외’라는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상치 못한 소리들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전개되는 수록 곡들은 고정관념을 비틀며 자신들의 방식대로 메인스트림에 진입한 밴드의 존재감을 더욱 드높인다. 고전적인 펑크(Funk)를 빌어와 자신들의 연주를 덧씌워 새로운 형태의 스타일로 빚어내는 첫 곡 ‘a veantin’부터 시작해, 와우 페달을 적극 활용함과 동시에 코러스와 색소폰으로 본 적 없는 디스코/로큰롤 세계를 선보이는 ‘브레이크스루(ブレイクスルー)’, 오리엔탈 무드와 하드록, 블루스, 소울을 한데 섞고 흔든 ‘LUCKY STRIKE’, 관악 세션의 하모니 아래 용수철 같은 리듬의 탄성이 흥미롭게 다가오는 ‘마호가토케루마데(魔法がとけるまで)’까지. 여러 아이디어를 탄탄한 연주력으로 완성도 있게 엮어내는 팀의 재치와 창의력이 아낌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몇 곡 지나지 않아 바로 ‘이거다!’라는 탄성을 내뱉게 한 앨범.

‘잘못된 장소 잘못된 시간’ - 질리언 매캘리스터
김복숭(작가): 스릴러, 살인 미스터리, 시간 여행... 그리고 극적인 가족 이야기? 작가 질리언 매캘리스터의 신작 ‘잘못된 장소 잘못된 시간’은 이 모든 것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냈다. 
변호사이자 워킹맘인 젠. 항상 완벽한 아들이라고 생각해온 토드가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목격한 젠의 마음은 산산조각이 난다. 경찰과의 대면과 감정의 소용돌이를 한참 겪은 후 겨우 잠에 든 젠은, 얼마 시간이 지나지도 않아 금세 깨어난다. 아니, 시간이 지난 게 아니고 시간을 거슬러 깨어났다고 해야 할까? 혼미한 정신으로 깨어난 주인공은 살인이 일어나기 하루 전 쯤에 와 있고, 이렇게 시간 여행(일명 타임루프)은 시작된다. 그렇지만 시간 여행을 다루는 다른 흔한 이야기들과는 달리, 우리의 주인공 젠은 점점 더 먼 과거로 던져질뿐더러,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캐릭터에서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경찰이나 그 비슷한 유형의 인물도 아니다. 
책의 시작은 (말 그대로) 신호탄과 같은 총소리와 함께 독자들을 빠르게 몰입시켜 불러들이지만, 그 이후의 전개는 극적일 정도로 느리다. 작가는 시간처럼 꼬인 문장과 끊임없이 전환되는 시점을 통해 가까운 과거 그리고 그를 맞닥뜨리는 젠의 혼란스러움을 오히려 충분한 시간을 들여 표현해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인내심 있게 읽어내는 독자들은 마치 선물처럼, 책 중반부의 반전과 함께 멈추지 못하고 정신없이 책을 읽어내리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리라. 젠은 자신의 더 먼 과거를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일중독적 삶이 아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다고 그 살인에 대한 잘못이 자신에게 있는 것은 아니란 것 역시 깨닫는다. 그리고 슬픔의 단계들을 헤쳐나가는 주인공을 지켜보며, 독자인 우리 역시 마찬가지로 가족과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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