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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해인
디자인김민경
사진 출처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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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티모시 샬라메를 위한 순간이다.” ‘버라이어티’의 인용대로, 배우 티모시 샬라메(Timothée Chalamet)는 2024년 상반기 할리우드 흥행의 중심에 있다. 단적으로 그의 최근작 ‘듄 2’와 ‘웡카’는 “2024년 미국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영화 중 상위 5위 안에 들었고, 모두 미국에서 2억 달러의 대기록을 넘겼(‘비즈니스 인사이더’, 2024년 3월 19일 기사)”으며, “작년 8월 ‘바벤하이머’ 열풍이 불었던 ‘오펜하이머’ 이후 박스오피스 2억 달러를 돌파한 영화는 없었다.” ‘듄 2’가 북미에서 개봉 첫 주 거둔 8,150만 달러의 흥행 성적은 지난 10월 테일러 스위프트의 콘서트 영화 ‘테일러 스위프트: 디 에라스 투어’의 9,300만 달러 이후 “가장 높은 기록(‘버라이어티’)”이기도 하다.

숨막히게 푸르른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곱슬머리와 깊이를 더하는 녹안의 눈빛, 그 특유의 흔들리듯 가는 실루엣이 만들어낸 분위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티모시 샬라메가 연기한 17세 소년 엘리오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티모시 샬라메를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이미지다. 이것을 언어로 옮긴다면 영화 ‘듄’ 시리즈의 감독 드니 빌뇌브의 말과도 같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그가 지닌 미적인 연약함(beautiful vulnerability)에 감탄한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엘리오의 명민함과 내밀함은 티모시 샬라메가 가진 “미적인 연약함”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러나 동시에 엘리오는 살갗으로 솟구치는 사랑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에너지로 표현한다. 엘리오의 연약한 일면을 단지 과도한 불안이나 위태로움이 아닌, 생동감의 형태로 치환한 것은 캐릭터의 다층적인 결을 섬세하게 조율한 티모시 샬라메의 연기가 빚어낸 결과다. 연약하지만 솟구치는 사랑을 온몸을 다해 표현하는 소년. 누구나 엘리오와 티모시 샬라메에게 거리낌 없이 빠져들 수 있었고, 영화와 배우 모두에게 폭발적인 팬덤이 생긴 것은 당연한 수순이기도 했다. 스물두 살의 나이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게 만든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기점으로, 티모시 샬라메는 루카 구아다니노를 비롯해 그레타 거윅이나 웨스 앤더슨 같은 감독들과 유려한 필모그래피를 쌓아 나갔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로 대표되는 슈퍼히어로 영화에는 출연하지 않으면서 “예술 영화가 사랑하는 배우(art-house darling)”로 부상해, “할리우드가 가장 원하는 배우(Hollywood’s most wanted)”가 된 커리어다.

“그와 비슷한 위치에 오른 많은 남성 스타들은 퀴어 코드의 느낌을 벗어 던지고자, 최대한 빠르게 액션 영화의 이미지를 갖고자 한다.” ‘가디언’이 짚은 것처럼, “미적인 연약함”을 가진 티모시 샬라메는 스타가 된 뒤에도 전통적인 남성상과의 거리감을 그대로 유지하는 필모그래피를 만들어 왔다. ‘뷰티풀 보이’의 닉, ‘작은 아씨들’의 로리, ‘본즈 앤 올’의 리는 각기 다른 캐릭터지만 소년 같은 분위기의 예민함이나 섬세함 혹은 다정함을 지닌다. “남자는 무섭지만 로리잖아.” ‘작은 아씨들’의 베스(일라이자 스캔런)가 로리를 두고 자매들에게 하는 대사는 상징적이다. 극중 로리는 베스를 포함한 네 자매의 이웃으로 어울리며, 그들의 에너지에 푹 빠져드는 이웃집 소년이다. 로리는 무도회에 왔지만 유일한 드레스를 난롯불에 그을려 춤을 추지 못하는 베스의 언니 조(시얼샤 로넌)에게 다가가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같이 춤을 추자고 이끈다. 로리는 영화 내내 자신만의 세계를 분명히 지닌 조와 자매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때로 필요한 도움을 건네지만 과시하진 않으며,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지만 무례하지 않게 표현한다.

로리처럼, 영화 바깥의 티모시 샬라메 역시 “이상적인 옆집 소년”에 가깝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더한다. “그의 실제 삶의 모습은 ‘보편적’이라는 말로도 표현될 수 있다.” ‘리파이너리29’의 말은, 복잡하고 예민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날카로운 실루엣의 배우가 주는 아우라에서 기인된 편견과는 사뭇 다른, 그 나이에 지니는 소탈함이나 솔직함이 발견되면서 가능해진다. 그는 막 떠오르는 배우로서 ‘지미 키멜 라이브!(Jimmy Kimmel Live!)’에 나와 “독립 영화 두 편에 나왔을 뿐인데, 이렇게 큰 사랑을 받고 TV 쇼에 출연해 영화들을 알리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거나, 대기실에서 오프라 윈프리를 만나 상기된 감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는 골든 글로브에 가게 된 소감을 상기된 말투로 전하기도 한다. 그가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인터스텔라’에 출연한 후 “영화를 보고 울었던 게 기억나요. 60%는 영화에 너무 감동받아서, 40%는 제 분량이 그보다는 더 될 줄 알았어서요.”라 언급한 일화 또한 유명하다. 토크쇼마다 종종 소환되는 10대 시절의 영상에 대해서 부끄러워 하면서도 또 그저 그대로 무던하게 웃어 넘기는 여유도 있다. 영화 바깥의 티모시 샬라메 또한 스스로에게 꾸밈없는 감정을 얘기하되, 이를 무례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가디언’의 표현대로, “전형적인 마초 이미지를 거부하고, 더 친절하고 건전하며, 섬세한 취향으로 보여지”면서도, “전혀 새로운 종류의 할리우드 주연 배우”로 정의되는 이유다. ‘웡카’에서 그는 이전까지 외롭고 광기 어린 캐릭터로 묘사되었던 윌리 웡카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어린아이인 누들(케일라 레인)에게는 보호자이자 친구로, 주변 인물과 대안 가족을 형성하는 캐릭터의 변화에 대해서도 설득력을 부여할 수도 있다. 배우 본연의 모습과 그에 비례하는 필모그래피의 이미지들이 차곡차곡 쌓인 결과다.

“티모시 샬라메는 오스카 후보에 오른 배우지만, 록스타에 가까워 보인다.”는 ‘월 스트리트 저널’의 인용처럼, 티모시 샬라메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주연을 하는 스타지만 ‘록스타’처럼 열광적인 지지를 얻는다. 하지만 그는 할리우드 스타와 록스타의 그 어느 쪽에서도 보기 힘든 유형의 남성이기도 하다. 그는 레드 카펫에서 보편적인 남성 슈트의 어법을 따르기보다 셔츠나 이너 없이 블레이저를 단독으로 입고, 과감한 색상과 패턴을 시도하며, 때론 등이 파인 홀터넥을 활용한 젠더리스 의상을 소화하기도 했다. 티모시 샬라메는 “그에게 아주 잘 어울리고 아름답지만, 전통적인 젠더 규범을 따르지 않는, 근사한 패션을 선보인다.” ‘가디언’의 표현처럼 패션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그의 가치관을 드러내기도 하며,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감각적인 외양과 스타일을 꾸준히 유지한다. 연기를 통해 만들어 온 깊이에 스타일을 통해 드러나는 감각이 합쳐지면서 그는 정말 록스타처럼 열광적인 지지를 얻는 인물이 됐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슈퍼히어로 영화와 강한 마약은 하지 말아라.”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유명한 조언을 유지하듯, 선하지만 유쾌한 또래의 감각을 보여주는 퍼스널리티로 록스타의 전형이 지닌 그림자를 걷어내기까지 한다. 티모시 샬라메가 인터뷰에서 서구의 전통적 남성상에 대해 밝힌 견해는 그가 할리우드 액션 스타와 록스타 어느 쪽도 아닌 ‘티모시 샬라메’라는 유형의 남성상을 만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남성성을 보여주기 위해 어떤 관념이나, 특정한 청바지 사이즈와 머슬 셔츠, 으스대는 태도나 눈썹을 치켜올리는 표정, 파멸이나 마약 같은 게 필요한 건 아니다.” ‘데이즈드’에서 그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 것이 수긍이 가는 이유다. “그는 명료하게 말하고, 좀 실없어 보일 때도 있지만, 굉장히 재능 있고 옷도 잘 입는다.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 Warner Bros. Pictures

그리고 마침내, ‘듄 2’는 티모시 샬라메가 지금까지의 쌓아온 이미지를 응집한 동시에, 그 자신과 영화 모두에게 전환점을 부여한다. “나도 너와 동등해지고 싶어(I’d very much like to be equal to you.).” ‘듄 2’에서 티모시 샬라메가 맡은 폴 아트레이데스가 프레멘 민족의 여성이자 훌륭한 전사로 묘사되는 챠니(젠데이아)에게 연인으로서의 감정을 전하는 대사는 인상적이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챠니가 자신의 또 다른 이름인 ‘시하야’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자, 폴은 챠니의 의사를 그대로 동의해주는 태도를 보인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되 상대를 존중한다는 명제는 당연해 보이지만, 종종 미디어에서 간과되었던 장면이기도 하다. 티모시 샬라메가 그동안 쌓아왔던 이미지가 있기에 그 존중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한편으로 ‘듄’ 시리즈의 폴은 정치적인 문제로 공작인 아버지는 희생됐고, 도망치듯 어머니와 탈출해 행성에서 억압받는 프레멘에 합류한다. 공교롭게도 그는 프레멘을 결집시키는 종교적 예언 속 ‘구원자’와 일치하는데, 이는 결국 서구권에서 전승되어온 ‘메시아’ 서사를 연상시킨다. 이 메시아적 존재들은 여러 대중문화 작품에서 비범하지만 고독함을 동반하는 통속적 남성의 이미지로 함축되는 함정에 빠지곤 한다. 그러나 끝없는 사막을 배경으로 바람에 따라 휘날리는 검은 곱슬머리, 가느다란 체형이 그대로 드러나는 의상, 흔들림 없는 눈빛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아우라로 표현되는 ‘듄’의 메시아는 필연적으로 그 전형과 궤를 달리하게 된다. 그 정취를 유지한 채, 후반으로 치달을수록 그는 말 그대로 대우주의 ‘성전(聖戰)’을 이끄는 인물로서 필요한 연기력을 뿜어낸다. 예지자로서 각성하고 운명을 받아들인 이후의 폴(혹은 쿼사츠 해더락)은 자신을 거스를 수 없게 만드는 힘이 필요한 인물인데, 티모시 샬라메의 연기는 그 권위를 명료하게 만들어낸다. 그의 연기가 이 장면 전까지는 조금 더 내밀한 깊이를 보여준다 여겨졌다면, 반대로 외연으로 표출되는 카리스마가 폭발한 순간이다. 티모시 샬라메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누군가를 호령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경배하게 만들고, 전쟁의 선두를 이끄는 모습이 거침없이 펼쳐진다. 그의 외양과 그동안 쌓인 이미지가 영화 초반 프레멘에게 녹아드는 방식이나 챠니에 대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납득시킨다면, 후반부에서는 오히려 지금까지의 티모시 샬라메와 대비되는 연기를 통해 더 강렬한 충격과 압도감을 전한다. ‘듄 2’의 티모시 샬라메는 폴 아트레이데스를 통해 캐릭터의 전형을 뒤트는 동시에, 전형적인 부분에서 필요한 에너지까지 능히 소화해낸다. 티모시 샬라메가 연기로 설득할 수 있는 세계가 또 한 번 확장되는 순간이다.

© Sony Pictures Classics

“티모시 샬라메는 과연 동안의 얼굴에 심장을 뛰게 하는 배우로 데뷔해서 오랜 시간 명성을 유지하는, 디카프리오 같은 길을 걷는 또 다른 배우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벌처’를 비롯한 여러 매체들은 티모시 샬라메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지닌 필모그래피의 무게감을 이어받을 것인지 비견하고는 한다. “1980년대 ‘위험한 청춘’, ‘탑건’ 속 젊은 톰 크루즈를 연상시킨다.(‘비즈니스 인사이더’)”, “그의 전임자라 할 수 있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비교되는 좋은 재능을 지녔다.(‘워싱턴 포스트’)” 소위 ‘미소년’으로 받아들여지는 외모로 주목받는 동시에 대중의 선명한 반향과 연기자로서의 재능까지 인정받는 배우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티모시 샬라메는 자신의 입지와 출연하는 작품의 변화에 따라 점점 전통적인 남성상을 보여주곤 하던 많은 청춘 스타들과 달리 그의 소년적 이미지를 여전히 유지한 채, 연기의 스펙트럼만 넓혀 가며 그만의 영역을 확보해왔다. 때문에 티모시 샬라메의 순간은 이제부터 시작일지도 모른다. 여전한 청춘의 아우라로 할리우드에 본 적 없는 궤적을 그려나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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