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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김다은, 정서희(영화 저널리스트), 김복숭(작가),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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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tvN

‘선재 업고 튀어’ (tvN)
안김다은: ‘선재 업고 튀어’는 임솔(김혜윤)의 팬카페 닉네임이다. 임솔은 밴드 이클립스를 10년 넘게 좋아하고 있는 열성 팬으로 가장 좋아하는 멤버, 이른바 ‘최애’는 보컬 류선재(변우석)다. 임솔에게 류선재는 매일을 살아가는 게 버겁던 시절, 내일을 기다리게 만들어준 존재다. 그렇기에 그의 사망 소식이 보도되었을 때, 과거로 돌아가 그를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임솔은 숨이 차도록 달렸다. 웹소설 ‘내일의 으뜸’을 원작으로 하는 ‘선재 업고 튀어’는 임솔이 류선재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15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간다. 임솔은 류선재가 단 한순간이라도 불행하지 않길 바란다. 그래서 그토록 응원했던 ‘이클립스의 보컬 류선재’가 세상에 존재하는 일이 없도록 그의 데뷔를 막는다. 향후 이클립스의 리더가 되는 고등학생 백인혁(이승협)을 찾아가 류선재를 오디션장에 데려가지 말라고 당부하는가 하면, 김대표(안상우)가 류선재에게 건네준 캐스팅 명함을 몰래 찢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임솔의 노력이 무색하게 류선재는 결국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다. 그것도 아주 반짝거리는 모습으로. 임솔은 이제껏 외면했지만 사실상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자신의 ‘최애’와 마주하며 눈물과 웃음을 동시에 보인다. 

류선재에게 “너가 다른 시간 속에 있다 해도 다 뛰어넘어서 널 보러 갈 거야. 내가 네 팬이라고 했잖아.”라고 말하는 임솔의 대사는 시답지 않은 위로도, 며칠이 지나면 까먹을 가벼운 약속도 아니다. 이는 최애에게 닿았으면 하는 진심이자, 한 번이라도 누군가의 팬이었다면 공감할 마음이다. 이클립스에게 받았던 위로를 다시 류선재에게 돌려주기 위해 있는 힘껏 달리는 임솔은 넘어져 무릎에 상처가 남아도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숨을 한번 고르고, 다시 직진할 뿐이다. 이클립스의 노래 가사, “언제나 네 곁에 있을게 / 모든 시간 모든 날 너와 함께”처럼. 

‘스턴트맨’
정서희(영화 저널리스트): 스턴트맨 출신 데이빗 레이치 감독의 신작 ‘스턴트맨’은 로맨스와 코미디의 코팅을 입혀 스턴트 연기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액션이다. 베테랑 스턴트맨 콜트(라이언 고슬링)는 심각한 추락 사고를 당하고, 문자 그대로 더는 날아다닐 수 없음에 좌절한다. 썸 타던 조디(에밀리 블런트)에게조차 말 한마디 없이 종적을 감춘 그는 발레파킹 일로 생활을 이어간다. 18개월 후, 둘은 조디의 할리우드 입봉작 ‘메탈 스톰’ 촬영장에서 감독과 스턴트맨으로 어색하게 재회한다. 조디는 그윽한 눈빛을 보내는 콜트를 향한 원망 섞인 미련을 숨기지 못하고 현장에서 그를 굴린다. 배우들의 간능스러운 연기는 콜트와 조디가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콜트가 외부의 음모에 걸려들고 곡절 끝에 직업과 사랑 모두 복구하는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얼기설기한 플롯을 보완한다. ‘스턴트맨’의 ‘볼거리’이자 ‘스턴트맨’이 진정 기리는 바는 스턴트맨이 ‘주인공’이기에 가능한 스펙터클이다. 카메라 앞에서 카 체이싱을 소화하고 화염을 버티는 콜트는 현실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도 특기를 발휘해 총격전과 육탄전을 능히 치른다. 매 순간 분전하는 사람의 모습이다. 스턴트 연기자를 연기한 배우 라이언 고슬링의 스턴트 드라이버 로건 홀라데이가 ‘스턴트맨’에서 캐논 롤(자동차를 연속 회전시키는 고난도 스턴트 기술) 여덟 바퀴 반에 성공하여 기네스 신기록을 달성하면서, ‘스턴트맨’은 가려진 존재들의 무게를 그 역할의 중량만큼 각인하고야 만다. 원제 ‘The Fall Guy’. 가장 위험할 때 얼굴 없이 나서는 ‘희생양’, ‘무명’이라 불리며 드러나지 않을수록 프로가 되는 세계의 아이러니를 바로 비추는, 영화에 대한 영화다. 

‘가여운 것들’ - 앨러스데어 그레이
김복숭(작가): 제인 오스틴이나 그 시대 작가들의 소설을 읽다 한 번쯤 “여기에 보디스왑을 얹으면 참 좋겠는데?”라는 생각을 해본 독자들이 있다면, 앨러스데어 그레이의 유작 ‘가여운 것들’을 한 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빅토리아 시대의 프랑켄슈타인 테마를 바탕으로 포스트모던적이며 풍자적인, 또 한편으로는 페미니스트적인 시선에서 쓰인 이 이야기는, 소녀의 뇌가 성인 여성의 몸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일명 보디스왑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벨라를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무능력 그 자체인 남성 캐릭터들(그들은 자기 자신들의 고통을 파우스트의 그것에 이입하며 파우스트를 ‘전문직 중산층의 존경할 만한 일원’, ‘고통받는 주인공’이라고 해석할 정도다.) 사이에서, 벨라는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여성 창조물이다. 그리고 그 벨라라는 하나의 메타 텍스트를 관통하는 수많은 관점의 이야기들 속, 결국 최후에 웃는 자는 벨라이다. 부끄러움 없이, 아주 뻔뻔히,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즐기듯.

이 책은 분류 당하기를 거부하는 듯하다. 표면적으로는 코미디를 취한 듯하면서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각주들, 기괴한 삽화, 상반되는 수많은 관점 그리고 모호한 의료 행위들의 묘사를 층층이 쌓아 올린 것이 마치 데드팬 유머 같기도 하면서도, 식물의 그림들 대신 정치 풍자를 담은 ‘보이니치 필사본’처럼 읽히기도 한다.

1990년대에 첫 출판되었던 이 책은, 개봉하는 동명의 신작 영화와 함께 재출판되었다. 벨라의 관점을 딱히 우선하지 않은 듯한 영화화된 플롯과 달리, 원작 소설 안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서술이 가득하다. 읽어 내려갈수록 마치 독자들에게 당신의 해석이 맞는 해석이라고 말해주는 듯한 이 책. 그렇기에 이 책이 더더욱 세대를 초월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페퍼톤스 - ‘Twenty Plenty’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사춘기가 왔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외로움과 우울의 감정이 휘몰아쳤다. 마음속은 언제나 시커먼 먹구름이 껴 있어 우중충했다. 다행히 그때쯤 페퍼톤스의 음악이 나왔다. ‘우울증을 위한 뉴 테라피 밴드’라는 타이틀과 함께 등장한 2인조는 키린지, 심벌즈, 칸노 요코 등 일본의 시부야계 음악, 어쿠스틱 기반의 속도감 있는 록을 복잡한 화성과 다단한 리듬 구조 위 발랄한 멜로디로 화사하게 결합했다. 나른하고 지루한 10대의 나날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마다 나는 페퍼톤스의 음악을 꺼내 들었다. 그렇게 어느덧 20년이다. 신재평과 이장원은 전자음을 덜어내고 밴드 구성에 집중하기도, 거친 소리를 선보이기도, 일상과 공상을 넘나들며 거대한 세계와 보편의 일상을 오갔다. 페퍼톤스의 20주년 기념 앨범 ‘Twenty Plenty’는 언제나 푸르게 노래했던 그들에게 바치는 후배들의 헌정과 듀오의 미공개 곡을 담았다. 시간의 흐름을 탁월한 완급 조절로 담아낸 수민의 ‘계절의 끝에서’가 그들의 역사를 리듬에 실어 보낸 축하를 시작으로 잔나비, LUCY, 나상현씨밴드, 웨이브 투 어스, 유다빈밴드, 드래곤 포니 등 한국 밴드 씬의 오늘날을 이끄는 이들과 이진아와 스텔라장, 정동환, 권순관이 페퍼톤스의 경력을 재현한다. 두 번째 디스크에는 페퍼톤스의 초기 작법을 담은 수록 곡과 그중에서도 으뜸이라 할 수 있는 ‘Freshman’ 리믹스가 그룹의 정수를 담고 있다. 변하지 않고 늘 그 자리에 있어 고마운 음악이 있다. “영원한 것은 없다고 모두 말하지만, 하늘은 아직도 푸르네, 눈부신 바다를 꿈꾸네”라 노래하는 ‘라이더스’와 함께, 오늘도 흐린 뒤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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