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파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7일 국내 개봉한 ‘더 파더’는 오는 25일(현지 시간) 열릴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한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영화로, 프랑스 몰리에르 어워드 최우수상작인 동명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다. 안소니(안소니 홉킨스)는 런던의 한 아파트에서 노후를 보내는 80대 남성이다. 그는 딸 앤(올리비아 콜먼)이 고용한 간병인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혼자서도 잘살 수 있다고 큰소리치지만, 정작 딸이 파리로 떠난다고 선언하자 버려지는 듯한 절망감을 느낀다. 자고 일어나면 낯선 얼굴을 한 사람이 딸이라며 나타나고 다음날에는 웬 남자가 아파트는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한다. 안소니는 스스로는 물론 주변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되며 혼란에 빠진다. 

‘더 파더’는 노화에 따른 치매(Dementia)를 소재로 한다. 공간 배경이 안소니의 방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을 만큼 정적인 이 영화는 “미스터리와 사이코드라마를 결합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장엄한 묘사”라는 ‘뉴욕타임스’의 비평처럼, 배우의 연기가 만들어내는 스펙터클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외신들은 누구나 겪을 수 있지만 겪기 전까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노년의 상황이 그 어떤 장르 영화보다 큰 공포를 느끼도록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타임’은 “인간, 특히 노년의 정신 안에서 벌어진 농락들이 야기하는 모든 재앙들을 담은 공포 영화”라고 평했으며, ‘가디언’은 “작중의 배우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켜보는 일은 숨이 막히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괴롭다.”라고 전했다. 원작 속 ‘앙드레’의 이름이 배우와 동일하게 ‘안소니’로 변경된 이유다. 올해 83세가 된 안소니 홉킨스는 언젠가는 죽게 될 자신을 깨닫는 장면을 촬영하면서 순간적으로 압도당했다고 고백했을 정도로, 자신과 삶과 맞닿은 연기를 선보인다. 그를 중심으로 기억을 잃은 노인에 대한 시선은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타인’에서 ‘불가항력에 의해 한없이 쇠약해지는 누구나’로,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범위로 옮겨간다.

안소니 홉킨스의 존재는 영화 안에서 약자로서의 노인이 겪는 현실적인 두려움을, 영화 밖에서 나이와 무관하게 문화를 향유하는 주체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에 대해 “만약 당신이 안소니 홉킨스 경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한다면, 장난기 많고 짓궂은 어린 소년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영화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원로 배우인 동시에 약 130만 명의 팔로워를 지닌 틱톡 크리에이터다. 반려묘와 함께 피아노를 연주하거나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는 영상을 소셜 미디어에 게시하며 팬들과 소통한다. 지난해에는 드레이크의 ‘Toosie Slide’에 맞춰 춤추는 ‘투시 슬라이드 챌린지’에 참여해 틱톡과 인스타그램 각각 조회 수 530만 회, 130만 회를 기록하기도 했다. “나는 지금 위험한 나이에 있다.” 안소니 홉킨스의 처럼, 그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나이’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면서 그의 아버지 세대는 경험하지 못했던 시간들을 보내는 중이다. “20년은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TRIVIA

고령화사회(Ageing society)

‘고령화사회(Ageing society 또는 Aging society)’는 국제연합(UN)이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증가하는 사회를 이같이 설명하면서 널리 쓰이게 된 용어다. 일찍이 고령화사회에 들어선 일본 학계에서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14% 이상이면 고령사회(aged society),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Super-aged society)로 구분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해 9월 발표한 ‘2020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2020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15.7%인 고령사회이며, 2025년 20.3%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예정이다.
글. 임현경
디자인. 전유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