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랫폼이 많아도 너무 많은 시대, 디즈니+는 조금 늦게 한국 시장에 상륙했다. 하지만 디즈니+가 가진 콘텐츠 파워는 후발 주자라는 핸디캡을 충분히 상쇄할 만큼 다채롭다. 지금 월 9900원, 연간 9만 9000원을 내고 디즈니+를 구독하면 만날 수 있는 콘텐츠들 중 흥미를 끌 수 있는 작품들을 ‘씨네21’의 임수연 기자가 추천한다.
‘스타워즈’ 초심자라도 괜찮아, ‘만달로리안’
‘스타워즈’ 시리즈 입문자들에게 가장 큰 장벽은 1970년대부터 구축된 세계관을 학습하기엔 너무 늦은 게 아닐까 하는 우려가 아닐까. 그러니 ‘스타워즈’ 세계관의 첫 시리즈 드라마, ‘만달로리안’이 주요 시상식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2020년 미국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틀어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해도 쉽게 도전할 마음이 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만달로리안’의 주인공 만달로어인은 변방의 현상금 사냥꾼으로, ‘스타워즈’ 세계관에 대해서는 어차피 그도 잘 모른다. 시즌 2까지 방영 내내 ‘스타워즈’ 기존 팬덤은 물론 새로운 팬들도 만족시키며 ‘스타워즈’ 유니버스의 미래를 책임지는 콘텐츠라는 호평을 받았고, 2022년 시즌 3가 공개될 예정이다. 특히 팬들이 ‘베이비 요다’라 부르는 아기를 만나는 순간, 이 드라마를 계속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참고로 아기는 CG가 아닌 정교한 퍼펫을 작동시켜 구현한 결과물이다.
마블에서 가장 슬픈 안티히어로의 각성기, ‘완다비전’
그동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서 완다 막시모프/스칼렛 위치(엘리자베스 올슨)와 비전(폴 베타니)의 러브 스토리는 할애된 분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등에서 쌍둥이 오빠와 연인이 죽는 등 완다 막시모프의 기구한 인생이 일부 묘사되긴 했다. 하지만 완다 막시모프의 기구한 인생과 그에 따른 심리 변화, 이로 인해 그가 마블 세계관에 끼치는 위험성 등은 ‘완다비전’을 봐야 비로소 깊이를 획득한다. ‘완다비전’은 능력만으로 보면 타노스도 죽일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완다 막시모프의 안티히어로 탄생기이자, 후반으로 갈수록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MCU 최고의 멜로드라마다. 단, 2회까지는 그간 MCU의 전개를 아는 사람이라면 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는 1950년대 미국 흑백 시트콤 스타일로 진행된다는 점은 알아둘 필요가 있다. 하지만 회차별로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유명 시트콤을 의도적으로 오마주하는 ‘완다비전’의 독특한 연출 방식은 작품의 반전과도 큰 연관성이 있다.
동물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면, ‘고래의 비밀’
디즈니+에는 마블과 디즈니와 픽사와 ‘스타워즈’만 있는 게 아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보석 같은 다큐멘터리들도 모두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고래의 비밀’은 최근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가장 화제가 됐다. 고래 연구자들은 범고래, 혹등고래, 흰고래, 일각고래, 향유고래 등 5종의 고래를 중심으로 그들이 다른 고래와 차별화되는 의사소통 기술과 식습관, 복잡한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알아냈다. 인간만이 언어를 공유하고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고래는 다른 포유류보다 인간에 훨씬 가까울지 모른다는 것을 절경의 영상미와 함께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음악과 영상의 조화가 주는 환상, ‘환타지아’와 ‘환타지아 2000’
1940년에 디즈니가 만든 ‘환타지아’는 클래식 8곡을 ‘마법사의 제자’라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단편과 함께 들려주고 보여준 ‘이미지 콘서트’였다.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의 지휘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연주, 미키마우스를 주인공으로 한 ‘마법사의 제자’를 시작으로 ‘토카타와 푸가 D단조’, ‘호두까기 인형’, ‘봄의 제전’ 등 새로운 음악이 상영될 때마다 곡을 시각화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화면에 등장한다. 당대 최고의 기술이 집약된 작품인 만큼 애니메이션의 수준이나 사운드 기술이 이후 영화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예술가들에게 상상력과 영감을 줬던 마스터피스.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추후 재평가된 작품이기도 하다. 디즈니+에는 ‘환타지아’뿐만 아니라 60년 후 나온 후속작 ‘환타지아 2000’도 만나볼 수 있으며, ‘마법사의 제자’는 ‘환타지아 2000’에도 수록됐다.
한편 ‘환타지아’는 본편이 시작되기 전 다음과 같은 고지가 노출된다. “본 프로그램에는 특정 인물이나 문화에 대한 부정적 묘사 또는 부적절한 대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그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옳지 않습니다. 해당 콘텐츠를 제외하기보다, 그러한 콘텐츠가 사회에 미친 해로운 영향을 인정하고, 그로부터 배우며 건설적 대화를 나눔으로써 보다 포용적인 미래를 함께 만들어 나가고자 합니다.” 1940년에 제작된 ‘환타지아’는 흑인 켄타우로스가 백인 켄타우로스의 발굽을 닦는 장면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고 1960년대 재개봉 당시 문제 장면을 삭제하는 등 인종차별 이슈가 있었고, 디즈니+에는 이런 문장을 통해 현재의 입장을 밝혔다.
한국에 ‘미드’의 새로운 시대를 연 바로 그 작품, ‘X 파일’
‘로스트’, ‘24시’, ‘위기의 주부들’, ‘크리미널 마인드’, ‘미스트리스’, ‘화이트 칼라’…. 다른 OTT에서는 볼 수 없지만 디즈니+에서 시청 가능한 드라마들이다. 특히 ‘X 파일’ 전 시즌 모든 에피소드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누군가에겐 디즈니+를 가입해야만 하는 결정적인 이유일 수 있다. KBS에서 심야에 방영하던 ‘X 파일’ 더빙판을 만난 시청자들은 드라마가 다루는 유령‧외계인‧괴물과 같은 초자연적 현상에 흥미를 갖고, 당시 한국 수사극과 달리 남성인 멀더와 여성인 스컬리가 서로에게 존댓말을 하며 동등하게 수사에 임한다는 사실에 내심 놀랐으며, 서로 일만 성실하게 하지만 목숨도 내어줄 수 있을 만큼 끈끈한 관계에 열광하기도 했다. 단, 기존 지상파 방송이나 DVD 출시 버전과는 달리 디즈니+ 한글 자막은 멀더가 스컬리에게 반말을 하고 스컬리는 멀더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으로 돼 있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또한 한국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KBS 더빙판은 없다.
픽사의 팬이라면, ‘몬스터 근무일지’
‘몬스터 주식회사’의 엔딩은 이 회사의 방향을 크게 바꾸며 모두가 더 행복해지는 마무리를 선사했다. 하지만 회사의 방향성이 바뀐 것을 미처 알지 못하고 입사한 신입 사원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몬스터 근무일지’는 ‘몬스터 주식회사’, ‘몬스터 대학교’의 세계관으로 만든 유쾌한 오피스 성장물이다. 마이크와 설리는 바로 사장으로 승진하고, 자신들의 우상과 함께 일하는 꿈에 부푼 타일러 터스크먼은 시설팀 정비공으로 발령받는다. ‘몬스터 주식회사’와 유머의 결도 다소 다르고 그만큼의 걸작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매회 20~30분 정도의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으로 레전드 캐릭터들의 쇼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스핀오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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