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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여름 같다. 3분이 채 안 되는 곡을 한 바퀴 돌고 나면 기분은 더없이 화창하고 후련하다. 방탄소년단의 ‘Butter’는 2019년 이후 지구상에서 사라진 것만 같은, 팬데믹 이전 여름의 모습을 한 노래다. 제목과는 달리 기름기(?)는 거의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청량음료 같다. 달콤하고, 기분 좋고, 시원하며, 이르게 터진다. 전작 ‘Dynamite’에 이어 올드 팝, 특히 디스코의 인플루언스가 곳곳에서 보인다. 흥겨운 발걸음 속도 같은 BPM 110의 포 온 더 플로어(바닥을 쿵쿵 울리는 4박의 댄스 리듬) 비트부터 그렇다(‘Dynamimte’는 BPM 115였다). 그러나 ‘Dynamite’처럼 끝까지 디스코로 완주하지는 않는다. 익숙한 요소를 품은 채로 2021년에 걸맞게 변주한, 상쾌한 여름 파티 튠이다.

 

주요 작곡가인 제나 앤드루스(Jenna Andrews)와는 ‘Savage Love(Laxed-Siren Beat) BTS Remix’의 보컬 프로덕션에 이어 두 번째 만남이다. ‘Dynamite’에 비해 확실히 가창 실연이 촘촘해졌다. 같은 멜로디를 부를 때도 보컬 멤버마다 각자의 특징을 살려 베리에이션을 줬다. 예를 들어 지민은 끝 음을 살짝 날려 귀를 확 잡아끌고, 같은 파트에 정국은 끝 음에 보컬 프라이(이른바 ‘성대 갈기’)가 들리도록 힘을 줘 에너지 드라이브를 극적으로 끌어올린다. 다양한 접근이 곡 전체의 다이내믹을 재미있게 만들어주고 있다. 이밖에도 박자에 쫀득하게 들러붙는 발음이나 음역대마다 적당하게 어울리는 톤 선정 등이 돋보인다. 

 

보통 올드 팝이라면 프리코러스(Pre-chorus)에 여덟 마디를 채워 기대감을 천천히 빌드업한다. 그러나 진이 부르는 이 곡의 첫 프리코러스(‘Ooh when I look in the mirror…’)는 단 네 마디다. 부드러운 진의 목소리 뒤에 바로 ‘Do the boogie like’ 하는 RM의 외침이 낚아챈 에너지는 이내 시원한 페스티벌형 EDM으로 폭발한다. ‘Side step right left to my beat / High like the moon, rock with me’ 하고 터져 나오는 코러스(Chorus, 후렴)는 신스의 질감부터 시원하고 까끌하며 선명하다. 사운드를 겹겹이 쌓아 앞선 파트와 확실히 대조되도록 볼륨 있게 꾸몄다. 깊게 울리는 베이스드럼, 커졌다 작아졌다 하며 빈 공간 없이 이어지는 악기들, 그리고 그 위로 울려 퍼지는 따라 부르기 좋은 팝 멜로디가 ‘Butter’의 핵심이다. 가사는 아예 춤동작을 말로 풀어 불러주고 있다. 무대 위의 방탄소년단뿐만 아니라 노래를 듣는 청자도 몸속의 댄스 욕망이 확 하고 오를 만하다. 닿자마자 이르게 터져버리는 상쾌한 자극이 앞서 말했듯 꼭 청량음료를 닮았다.

곡의 맨 처음 버스(Verse)를 들으면, 정국의 목소리로 ‘Smooth like butter / like a criminal undercover…’ 하며 계이름 시 플랫(♭)부터 재기발랄하게 내려오는 음계가 들린다. 믹솔리디언 음계다. 흔한 메이저(장조) 음계가 밝고 단순한 느낌이라면, 메이저 음계에서 한 음을 반음 내린(♭) 믹솔리디언 음계는 메이저와 비슷하면서도 마냥 해맑지는 않은, 어딘가 쿨한 인상이다. 일반적으로는 20세기 후반 록 밴드 사이에서 인기 있던 모드(Mode)이나, ‘Butter’의 하행 멜로디는 디스코 명곡 쿨 앤 더 갱스(Kool and the Gangs)의 ‘Celebration’의 도입부 버스와 더 닮았다. 뷔가 들어오는 다음 네 마디 ‘Cool like stunner / Yeah I owe it to my mother’ 소절에는 또 다른 디스코 클래식인 시크(Chic)의 ‘Good Times’ 같은 베이스 리듬이 들린다. 입 박자로 세자면 원, 투, 쓰리, (쉬고) / 따단 딴, 딴 딴 하는, 단순한 쓰리카운트의 1마디와 당김 박자의 2마디가 한 세트를 이루는 리듬이다. 여기부터 디스코의 인력이 강하게 작용한다. 어깨를 흔들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Butter의 티저 영상이 공개된 날 이 부분이 퀸(Queen)의 Another One Bites the Dust를 떠올리게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Good Times 또한 꼭 언급해야할 것 같다. “Another One Bites the Dust”를 비롯한 그 당시의 많은 디스코 곡들로부터 Butter의 이 버스 부분까지, 수많은 노래들이 이 곡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

 

가사는 ‘Dynamite’와 비교했을 때 ‘Butter’가 가창자인 방탄소년단 멤버들과 싱크로가 좀 더 높다. 이번 곡은 구석구석 멤버들의 캐릭터를 언뜻언뜻 드러내는 방식으로 유머러스함을 더했다. 진이 자신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쏟아지는 관심을 ‘Oh when I look in the mirror / I’ll melt your heart into two’로 재치있게 반영하거나, 뷔가 부르는 ‘Don’t need no Usher / To remind me you got it bad’의 어셔(Usher)를 소환하는 농담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랩 부분의 가사에서는 방탄소년단의 이전 한국 발매작 레퍼런스가 줄을 지어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는 멤버인 RM이 일부 참여하기도 했다. ‘I'm that nice guy // Got that right body and that right mind’ 라인에서는 ‘작은 것들을 위한 시(Boy with Luv)’에서 보여준 불량하지 않고 구김살 없는 ‘굿보이’ 이미지가 들린다. 짧게 지나가는 ‘Hate us (Love us)’에는 ‘Mic Drop’이나 ‘Idol’에서 여러 번 보여준,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을 향한 미움을 인지하는 동시에  받아치는 모습이 있다. ‘Got ARMY right behind us when we say so에서는 그동안 방탄소년단이 발표한 숱한 팬송들과 궤를 같이하며, 이들 디스코그래피에서는 아무래도 번외적일 영어 싱글을 기존의 세계에 포섭시킨다.

 

제이홉이 선창하며 모두의 참여를 유도하는 아우트로에는 더 슈가힐 갱(The Sugarhill Gang)의 ‘Rapper's Delight’에 나오는 유명한 플로우를 빌려왔다. ‘And you know we don't stop’ 이 라인은 미국 힙합에선 쿨리오(Coolio)의 ‘1, 2, 3, 4(Sumpin' New)’부터 J-팝으로는 엠플로(m-flo)의 ‘The Love Bug (feat. BoA)’까지 다양한 파티 랩송에서 오마주되었다. 뒤에 들리는 갱보컬(일명 ‘떼창’) 후창이 파티의 분위기를 정점까지 이끈다. 여기까지 ‘Smooth like butter’라는 가사로만 등장한 제목은 마지막 줄에 ‘Hotter, sweeter, cooler, butter’로 한 번 더 등장하며, 결국 서머(Summer, 여름)와 라임을 이룬다.

 

‘Dynamite’는 방탄소년단의 역대 발표곡 중에서도 예외적인 존재였다. 마이너의 파워풀한 곡이 훨씬 더 많은 이전 타이틀 곡들에 비해 밝고 가벼운 메이저 곡이었고, 처음 발매한 전곡 영어 싱글이기도 했다. 이번에 ‘Butter’가 등장함으로써 영어 싱글은 총 두 곡이 되었다. ‘Dynamite’라는 점 하나로 존재하던 시간 상에 점과 점을 이은 선이 생기며, 두 곡의 연관성이 맥락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들의 역대 일본 한정 발매곡들(‘FOR YOU’, ‘Crystal Snow’, ‘LIGHTS’, ‘Film Out’ 등)이 한국 타이틀 곡과는 또 다른 선과 맥락을 형성해온 것처럼 말이다.

 

신나지만 동시에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느낌은 단순히 올드 팝 요소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Butter’가 재현하는 서머 페스티벌 같은 여름이 아직은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데아적 여름을 그린 듯한 주제가 더욱 분명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관중이 모이거나 환호성을 지르는 공연을 확정하기엔 이르지만 그렇다고 그 기분 좋은 감각을 잊고 싶지는 않다. ‘Butter’가 노래하는 여름을, 그런 여름을 노래하는 방탄소년단을 현실에서 하루빨리 만나고 싶다.


글. 랜디 서(대중음악 해설가)
사진 출처. 빅히트 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