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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리은
사진. 빅히트뮤직 제공

하나둘씩 켜진 불빛들이 콘서트장의 빈 자리를 조금씩 채우고, 어느새 반짝거리는 거대한 파도가 되어 관중석 위로 흘러가고 있었다. 방탄소년단의 응원봉인 아미밤들이 모여 만들어낸 파도였다. 지난 11월 28일, 29일, 12월 1일, 2일까지 총 네 차례 열린 방탄소년단의 ‘BTS PERMISSION TO DANCE ON STAGE - LA’ 콘서트가 시작되기 전, LED 화면에서 상영되는 뮤직비디오가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모습을 크게 비출 때마다 환호가 터져나왔다. 소리 측정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해보니, 공연 시작 전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122dB이었다. 사람의 귀는 120dB부터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소리가 남기는 것은 통증보다는 어떤 경이로움에 가까웠다. 팬데믹 속에서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한 장소에 공존할 수 있다는 경이로움. 환호성을 이루는 각각의 목소리들은 결코 쉽게 이 자리에 모일 수 없었다. 칠레에서 24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미국 LA로 온 솔리(Sole)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LA에 온 지 벌써 2주가 지났다. 내가 맞았던 백신으로는 미국 입국이 불가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다른 유효한 백신을 맞았고, 2주 동안 기다린 끝에 스타디움에 올 수 있었다. 방탄소년단을 보기 위해 이 모든 걸 했다.”

 

입출국을 위한 PCR 검사, 공연장 입장을 위한 백신 접종 또는 PCR 검사 그리고 마스크 착용. 팬데믹은 공연장의 풍경과 사람들이 모이기 위한 요건을 바꿔놓았다. 공연 4회 차 동안 21만 4000명에 달하는 관객들은 모두 이 과정을 거쳐서 비로소 스타디움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에서 온 애슐리(Ashley)는 “아미(ARMY)들은 모두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하길 바라기 때문에 입장에 필요한 프로세스를 빈틈없이 따르고 있다. 그런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약 2년 만의 만남은 방역을 위한 아미들의 노력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2020년 2월 발매된 ‘MAP OF THE SOUL : 7’의 타이틀 곡 ‘ON’ 활동 이후, 방탄소년단은 팬들을 만날 수 없었다. 그래서 공연의 첫 곡인 ‘ON’에서 댄서들이 철창을 넘으며 등장하는 모습은 마치 현재의 상황에 대한 비유처럼 보이기도 했다. 모두가 팬데믹이라는 철창을 넘어 드디어 모인 순간. 제이홉은 ‘위버스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ON’을 마지막으로 팬데믹 상황이 생기면서 대면 공연들을 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꼭 보여주고 싶은 곡이었기 때문에 의미가 남달랐다.”라는 소회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도전적일 수도 있지만, 공연을 많이 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멤버 일곱 명 전원이 참여하는 무대로만 세트리스트를 구성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콘서트 연출을 맡은 하이브쓰리식스티 콘서트제작스튜디오 하정재 LP는 멤버들과 세트리스트에 대해 논의한 과정을 이렇게 밝혔다. 그의 말처럼,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오로지 일곱 명의 무대만으로 세트리스트 전체를 이끌어 나갔다. ‘ON’에서 대규모의 군무를 보여준 뒤 이어진 ‘불타오르네’에서는 댄서들에게 둘러싸인 채 제스처를 중심으로 한 공연을 보여주다가 무대 앞으로 나아가 하이라이트 구간의 군무를 선보이며 분위기를 흥겹게 달궜고, ‘쩔어’에서는 셀프 카메라를 이용해 멤버들의 모습을 비추며 무대 위를 뛰어다녔다. 움직이는 침대를 활용한 ‘Life Goes On’이나 토롯코를 활용해 공연장 전체를 돌며 관객들과 최대한 많은 교감을 한 ‘잠시’ 정도를 제외하면, 방탄소년단은 대부분 무대장치를 최소화한 연출 속에서 쉴 틈 없이 그들의 에너지로 무대를 오롯이 채웠다. 미국 텍사스에서 온 스팸바마(Spambama)는 “지금까지 온라인 콘텐츠로만 방탄소년단을 접해왔고 이전에 열린 콘서트에도 가보지 못했다. 이제 콘서트를 보면 방탄소년단이 정말 실존하는 그룹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방탄소년단을 실제로 보지 못했던 팬들에게, 일곱 명이 무대 위를 뛰어다니면서 발산하는 에너지는 곧 방탄소년단과 아미가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하는 수단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들이 원하는 걸 하는 종합 선물 세트 같은 공연을 만들려고 했다.” RM의 말은 이번 콘서트의 성격을 보여준다. ‘ON’으로 시작되는 첫 파트가 공연의 에너지를 최대치로 전달한다면, ‘Blue & Grey’로 시작되는 두 번째 파트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Black Swan’이나 ‘피 땀 눈물’, ‘FAKE LOVE’ 등의 곡들을 통해 어둡고 깊은 정서를 담은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Life Goes On’으로 시작되는 세 번째 파트는 ‘작은 것들을 위한 시 (feat. Halsey)’와 ‘Dynamite’, ‘Butter’를 통해 흥겨운 분위기로 고조되면서 공연의 하이라이트를 이룬다. 특히 ‘Airplane pt. 2’로 시작되며 ‘뱁새'와 ‘병', ‘잠시'처럼 에너지를 담은 곡들을 거쳐 ‘IDOL’로 마무리되는 네 번째 파트에서 멤버들은 공연의 대부분을 자유로운 제스처와 동선에 할애했다. 이에 대해 슈가는 “다 함께 놀자고 판을 깔아주는 파트인데, 제일 자신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틀이 없는 게 우리 팀 공연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하정재 LP는 이번 공연의 큰 줄기가 ‘Dynamite’, ‘Butter’, ‘Permission to Dance’로 이어지는 근래 방탄소년단의 메가 히트곡들에 있다고 밝혔다. 이번 공연에는 ‘Dynamite’의 컬러 톤앤매너와 ‘Butter’ 가사가 주는 시각적 이미지 그리고 ‘Permission to Dance’의 의미가 담겼다. 또한 그는 공연을 구성하는 각각의 네 파트가 ‘Butter’에 등장하는 가사인 ‘Hotter? Sweeter! Cooler? Butter!’에서 영감을 얻었다면서 첫 파트가 ‘Hotter’, 두 번째 파트는 새롭게 이름 붙인 ‘Deeper’, 세 번째 파트는 ‘Sweeter’, 네 번째 파트는 ‘Cooler’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번 공연은 서사에 얽매이기보다는 멤버들이 아미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곡을 위주로 구성하되, 그 속에 각각의 테마들을 담으려 했다.” 하정재 LP의 말처럼 방탄소년단은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곡들부터 팬데믹을 다룬 그들의 최근 앨범 ‘BE’의 수록 곡까지 넓은 스펙트럼의 곡들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동시에, 관객들이 정서적인 깊이와 공연의 흥겨움을 동시에 체감할 수 있도록 했다. 진의 표현을 빌리자면, “엑기스만 모은 공연을 해보자.”는 결심이 반영된 결과기도 했다.

 

“전부(Everything).” 솔리와 함께 칠레에서 온 트레이시(Trac)는 이번 콘서트가 그에게 갖는 의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같은 일행인 바바라(Barbara)는 “팬데믹 때문에 개인적으로 정말 우울했고, 한때는 살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달려라 방탄'을 보면서 기분이 나아졌고 인생에 의미가 생긴 것 같았다. 이번 여행과 콘서트는 나에게 아주 의미 있다.”라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이들의 말은 방탄소년단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더 나아가 이 콘서트가 열리는 순간의 의미를 보여준다. VCR에서 RM, 뷔, 정국은 ‘CODE NAME : PTD’라는 암호 코드 아래 그들의 노래 ‘Dynamite’를 연상시키는 컬러 폭탄을 제작하고, 제이홉, 지민, 슈가, 진은 이 폭탄을 받아서 세상에 터트린다. 그리고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어느새 물감에 물든 채 춤추게 한다. VCR의 흐름은 방탄소년단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의 요약이기도 하다. 21만 4000명의 사람들이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모여서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 세상을 희망으로 물들이는 것. 공연의 앙코르 곡이었던 ‘Permission to Dance’는 공연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자, 관객과 방탄소년단이 상호 교감하면서 완성되는 축제의 장이었다. 지민은 “다 같이 공연장에서 (‘Permission to Dance’의 핵심 동작을 취하며) 이러고 있더라. 눈물이 나려 했다.”라고 말했고, 정국은 “그때 당시 이미 허벅지에 힘이 다 빠져 있었는데도 웃음이 났다.”라는 소감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진은 “팬데믹 전에는 관객들 입 모양을 보면서 그분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실지를 추측했는데, 지금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우는지, 웃는지 정도만 알 수 있었다. 그게 제일 안타까웠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팬데믹 이후의 공연이 아직 완전한 것은 아니다. 코로나19의 새로운 변이인 오미크론의 확산으로 인해 한국의 백신 접종자 자가격리 면제 지침이 바뀌면서, 하이브의 스태프들은 귀국 후 10일 동안 갑작스러운 자가격리 조치에 놓이게 되기도 했다. 하지만 김동준 하이브 쓰리식스티 사업대표는 “앞으로의 오프라인 공연 가능성을 늘 100% 확신하긴 어렵다.”라면서도 “아티스트와 관객들 그리고 회사가 만전을 기해 준비하고, 방역 수칙을 지키기 위해 서로 노력한다면 빠른 시일 내에 한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와 도시들에서도 오프라인으로 관객을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게 되는 공연이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아미들은 빠짐없이 백신 접종과 PCR 검사에 대한 지침을 따랐고, 백스테이지에 출입하는 스태프들 역시 백신 접종과 PCR 검사, 마스크 착용을 준수했다. 그런 노력들이 모여서 이 시대에 좀처럼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축제를 만들어냈다.

 

“코로나19로 인한 상황은 여전히 힘들다. 하지만 공연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콘서트를 하는 동안 너무 행복해서 다리 통증도 잊고 뛰어다녔다.” 다리 부상을 회복하며 콘서트에 참여했던 뷔는 공연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팀이 더 큰 성공에 이르게 된 지난 2년 사이, 정작 방탄소년단은 아미를 만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앨범 ‘BE’의 타이틀 곡 ‘Life Goes On’을 통해 삶은 어떻게든 흘러간다는 메시지를 전했고, ‘Dynamite’를 통해 코로나19 시대에 지친 이들을 위로했으며, ‘Butter’로 빌보드의 핫 100 차트 총 10주 1위에 오르는 열풍을 불러일으켰고, ‘Permission to Dance’에서는 ‘즐겁다’, ‘춤추다’, ‘평화’를 의미하는 세 가지의 국제 수화를 안무로 활용했다. 그리고, 점차 많은 이들을 포괄하게 된 이들의 음악에 맞추어 언젠가 모두가 춤출 수 있으리라는 바람은 ‘BTS PERMISSION TO DANCE ON STAGE - LA’에서 현실이 됐다. 

 

그래서 이것은 단순한 콘서트라기보다, 전 세계의 모든 아미들이 함께 써내려간 거대한 희망의 한 페이지에 가깝다. “방탄소년단이 살고 있는 한국은 언어도 문화도 완전히 다른 곳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들과 의사소통을 하거나 그들을 이해하는 일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의 음악은 그런 생각이 틀렸다는 걸 보여줬다.”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온 스페스피(Spespy)의 말처럼, 방탄소년단의 지난 8년은 수많은 장벽들을 무너뜨리는 시간들이었다. 어느새 방탄소년단은 2년 연속 그래미 어워드에 노미네이트되고, 2021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AMA)에서는 아시아 가수 최초로 ‘아티스트 오브 더 이어(Artist of the Year)’ 부문을 수상하며 총 3관왕에 오르는 아티스트가 됐다. 그 시간 동안 방탄소년단은 인종, 언어, 또는 K-팝 아이돌이라는 규정을 뛰어넘으면서 수많은 개개인을 모았다. 그리고 드디어, 2년 만에 세계 각국에서 그 작은 개인들이 모여 거대한 물결을 만들었다. 마지막 날 공연에서 RM은 지난 2년에 대해 “우리 모두가 깊은 터널, 깊은 구덩이에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런 어둠 속에서도 방탄소년단은 그들의 존재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음악으로 하나 될 수 있는지를 증명했고, 사람들은 어떻게든 다시 함께하는 방법을 찾았다. 그래서 이 물결이 만들어진 순간은 모두가 함께 지나온 터널의 종착점이자, 새롭게 마주할 빛의 한 조각과도 같다. 어떻게든 삶은 계속되며, 사람들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희망의 가능성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