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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도헌 (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 비스츠앤네이티브스

2018년 래퍼 사바(Saba)의 내한 공연이 열리던 홍대 앞의 모 클럽에서 250을 처음 만났다.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못했다. 이태원을 기반으로 오래 활동했으며, 그날 공연을 함께한 힙합 듀오 XXX와 함께 비스츠앤네이티브스(BANA)에 소속되어 있고, f(x)의 ‘4 Walls’ 컴백 전시회 음악과 보아의 ‘Pit-A-Pat’ 리믹스, NCT 127의 ‘Chain’ 등 K-팝 작업도 활발하다는 정도가 전부였다. 백스테이지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최근 어떤 작업을 준비하고 있는지 물었다.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저는 뽕을 찾고 있습니다.”

 

‘뽕’은 한국 대중음악 어디에나 존재한다. 한국인의 밥상에 김치가 빠질 수 없는 것처럼 뽕을 빼고 한국인의 음악을 논할 수 없다. 1960년대 트로트의 ‘쿵짝’ 리듬에서 등장한 별칭 ‘뽕짝’은 한국 대중음악 곳곳에 깊숙이 침투하여 오늘날 ‘뽕끼’라는 하나의 공통 감각으로 자리 잡았다. 2009년 발간된 ‘대중문화사전’은 ‘뽕끼’를 ‘한국인의 정서에 부합하는 한국 대중음악의 특성을 통칭하여 이르는 말’이라 설명한다. 구성진 가락, 애절한 선율, 통속적인 노랫말과 흥겨운 몸짓. 한국인의 DNA에 각인된 뽕끼 앞에 세대와 장르 구분은 무의미해진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어렴풋이 듣는 것만으로도 뽕과 뽕이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는 ‘한국적인 정서’로 굳어진 뽕끼의 관습과 그에게서 벗어나고자 했던 이들의 대립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게 뽕에 반기를 든 이들조차 잠재의식 속 친근한 선율과 흥겨운 춤사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던 것 역시 사실이다. 팝 음악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 컴필레이션 앨범에서 우리는 국경을 뛰어넘는 ‘고속버스 바이브’를 발견하곤 한다.

동시에 뽕은 어디에도 없는 개념이다. 특정 형식으로 고정될 수 없어 정의 내리기 모호하다. 현재 뽕짝은 전자음악을 결합한 빠른 박자의 트로트를 통칭하는 장르로 통용되지만, 그 핵심에 존재하는 뽕에 대한 해석은 모두 제각각이다. 설상가상 뽕이라는 단어가 내포하는 부정적 의미가 더해지며 해석을 방해한다. 저질, 왜색, 마약, 문란의 이미지가 따라온다. 아홉 살 때쯤 우연히 접한 이박사의 ‘몽키매직’에 빠져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이박사 메들리를 듣고 있던 내게 아버지께서 “나이도 어린 게 벌써 이런 음악을 듣냐?”며 호통을 치신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 주변에 분명히 존재하나 실체화할 수 없는 음악 요소, 그것이 바로 뽕이다.

 

2014년 회사의 제안으로 뽕 탐구를 시작한 250이 처음 주목한 속성도 이런 뽕의 모호함이었다. 2018년 ‘믹스맥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뽕이란 게 도대체 뭔지 모르겠고, 하지만 뭔가 있기는 있는 것 같고, 모두가 알고 있는데 막상 뭐냐 물으면 각자 생각이 다르고. 하지만 음악이 틀어지면 모두가 동시에 이것이 뽕짝임을 알 수 있는. 분명히 있지만 하나로 합의되지 않는 그런 게 끌렸다.”

 

‘도대체 뭔지 모르는’ 것을 꺼내는 만큼 힘겨운 과정이었다. 2017년 BANA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한 미니 다큐멘터리 ‘뽕을 찾아서’에는 2014년부터 뽕을 연구한 250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250은 동묘 앞 시장에서 뽕짝 연주에 사용되는 구식 신시사이저를 확인하고, 언더그라운드의 대가들을 만나 조언을 구하며 성인 콜라텍과 고속도로 휴게소, 영등포 춤 연수원으로 분주히 오갔다. 그런데도 앨범은 좀체 나올 기미가 없었다. 2018년 10월 첫 싱글 ‘이창’을 내놓기까지 250은 회사에 두 번이나 뽕 작업 중단을 요청했다. 주목받지 못했을 뿐 깊고 넓은 씬(Scene)을 형성한 뽕짝을 탐구하는 일은 그만큼의 노고와 시간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그렇게 다시 4년의 세월을 더 들여 2022년 3월 18일, 모두가 뽕 작업을 잊어갈 때쯤, 250은 마침내 8년 동안 연구한 뽕의 논문을 세상에 내놓았다. 담배 연기 자욱한 지하 바에 앉아 위스키 한 잔을 건네는 단벌 신사로 분한 그의 첫 정규 앨범 제목은 이보다 명료할 수 없었다. ‘뽕’이다.

‘뽕’은 뽕짝 앨범이 아니다. 뽕짝의 요소를 얼마나 잘 담고 있는지, 복각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뮤직비디오에서 다재다능한 예술가 백현진의 열연이 빛나는 ‘뱅버스’처럼 노골적인 뽕짝 댄스도 있지만 그 곡이 250의 핵심이라 말하기는 곤란하다. ‘뽕’은 한국 대중음악의 감성을 지배하는 이 기묘한 요소를 정의하고 더 나아가 한국 대중음악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발견한 과거의 유산을 자신의 작업에 적용하여 역사성과 정당성을 부여한 작품이다. 앨범 발매 후 찾아간 작업실에서 250이 들려준 이야기를 옮겨본다.
 

“‘뽕’에는 250이라는 인간 그 자체의 면모와 뽕을 찾아다녔던 시기의 250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단순히 뽕짝의 요소를 모아 전시한 작품이 아니라 나의 취향과 제작 방식에 따라 선택하여 만든, 개인적인 앨범이다. 각자의 기억 속 작은 흔적으로라도 남아 있는 뽕의 정서를 일깨우는 작품이 되었으면 한다. 옛날 음악 같지만 요즘 음악처럼 들렸으면 좋겠고, 슬픈 음악이지만 너무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250은 뽕을 ‘슬퍼도 춤을 춰야 하는 감정’으로 결론 내렸다. ‘뽕’은 쓸쓸한 작품이다. 처음에는 찢어질 듯 격렬한 멜로디, 이박사의 흥겨운 추임새, 뽕짝에서 자주 쓰이는 자극적인 ‘꽈배기 톤’ 연주가 마냥 신나게 들린다. 그러나 그 아래 은은히 깔린 신시사이저 마이너 코드 연주가 귀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마냥 해맑게 춤출 수가 없다. ‘뽕’은 그래서 한국의 역사, 한국의 정서를 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250이 전국 방방곡곡 발품을 팔며 만난 뽕짝 연주자들과 주 소비층은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 세대다. 1960~70년대 중장년층 노동자 계층에게 뽕짝은 고된 삶을 견디게 해주었던 일상의 자극제이자 마음속 깊이 쌓인 울분을 해소하며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일상 예술이었다. 

 

‘뽕’의 주인공은 고독한 중년 혹은 노년의 남성이다. ‘모든 것이 꿈이었네’라는 회한으로 시작하는 앨범은 새빨간 조명 아래 욕망과 치부를 들켜 달아나고자 하는 ‘뱅버스’를 거쳐, 노골적인 ‘사랑이야기’로 불꽃을 피우다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라는 현실을 자각한다.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한 장면을 몰래 엿보는 소격 효과의 ‘이창’과 ‘바라보고’와 ‘나는 너를 사랑해’, ‘주세요’의 무아지경, 싸구려 양주 한 잔을 앞에 두고 허무를 삼키는 ‘로얄 블루’의 처량함이 오래된 필름 속 한 장면처럼 펼쳐진다. 애수에 잠긴 남자는 터벅터벅 어두운 기억의 터널로 쓸쓸히 발걸음을 옮긴다. 어린 시절 오래된 텔레비전 앞에 앉아 보았던 애니메이션 주제가 속 아련한 목소리의 ‘휘날레’를 등 뒤로한 채. 

 

앨범은 기억 속 깊이 잠들어 있던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여기에 250은 대한민국 음악의 산증인들과 그 결과물을 소환하여 뽕을 찾아 헤매었던 지난 8년을 증언한다. 대한민국 뽕짝 대표 이박사와 그의 영원한 파트너 김수일, 베테랑 색소포니스트 이정식, 뽕짝 전자 오르간의 대가 나운도가 ‘뽕’ 프로젝트에 힘을 보탰다. ‘나는 너를 사랑해’는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의 원곡을 샘플링하였으며, 미공개 곡 ‘춤을 추어요’는 장은숙의 ‘춤을 추어요’를 리메이크한 곡으로 나운도의 가창과 이중산의 기타 연주 그리고 넥스트의 ‘인형의 기사 Part.2’ 드럼 비트를 발견할 수 있다. 한국 가요를 빛낸 작사가, 양인자가 가사를 쓴 ‘휘날레’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 유명한 ‘아기공룡 둘리’의 주제가를 부른 오승원이다.

‘뽕’ 발매 이후 250에게 “그래서 뽕을 찾았나요?”라는 질문이 쏟아진다. 하지만 앨범을 듣고 나면 뽕의 발견 여부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함을 깨닫게 된다. 뽕은 주목받지 못했을 뿐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누구에게나 깊게 배어 있으나 누구도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뽕에 호기심을 갖고 부지런히 달려든 250이 자신의 탐구 과정 그 자체를 의미 있는 작업으로 펼쳐 보였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250에 뽕은 한국 대중음악의 순간을 기록하는 아카이빙이자 한국인의 정서를 탐구하는 인문 사회 연구이며, 자신이 지향하는 음악 세계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훌륭한 도구이자 조미료, 그릇이다. 

‘모든 것이 꿈이었네’에서 음악 활동 처음으로 마이크를 잡은 김수일은 멋쩍게 ‘내가 가수가 아니니까…’라며 노래를 마무리한다. 250과 ‘뽕’을 정의하는 중요한 문장이다. 250은 가수가 아니고 뽕짝 아티스트도 아니다. 뽕짝의 정수가 담긴 악기 연주, 대가들과의 협연이 근사하지만, 그것이 ‘뽕’을 흥미로운 작품으로 만든 으뜸 요소는 아니다. ‘뽕’ 기획의 진짜 의의는 뽕의 틀을 빌려 독특한 자신의 음악 세계와 감정,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점에 있다.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나 ‘역사 바로 세우기’ 같은 캠페인, 레트로 유행에 편승하는 일회성 기획과는 다르다. ‘뽕’은 형식과 실질의 일치를 이룬 작품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앨범을 위해 250은 기꺼이 8년의 세월을 투자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습니까?”라고 질문하자 그는 겸손한 대답을 내놓았다. “저는 이 정도 앨범을 내려면 이 정도 시간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이 정도의 앨범이라면, 이 정도의 시간은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250의 다음 프로젝트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