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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일권(리드머, 음악평론가)
사진 출처. 유니버셜 뮤직

이른바 선한 영향력은 힙합 아티스트와도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들은 종종 문화 수호자의 위치에 서고, 커뮤니티 대변가로서의 역할을 하며, 정치적 올바름에 따른 행동을 통해 많은 이에게 영향을 끼친다. 근본적으로 좋은 현상이다. 하지만 때론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특정 이미지를 덧씌우거나 행동을 강요하는 일이 벌어진다. 특히 대중과 사회의 요구가 지속되고 과해질수록 아티스트의 부담감은 커지고, 대중의 바람은 결국 비난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슈퍼스타라면 더더욱 이 같은 상황에 놓이기 십상이다. 이를테면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같은 래퍼 얘기다. 

 

새 앨범 ‘Mr. Morale & the Big Steppers’ 속의 그에게선 삶의 일부처럼 되어버린 선한 영향력에 대한 부담감이 전해진다. “유명인이란 게 진실성을 의미하진 않아, 이 등신아(And celebrity do not mean integrity, you fool)”, ‘Rich Spirit’에서의 이 라인은 앨범을 관통하는 일침이자 그가 관철하려는 스탠스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하게 부담감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진 않는다. 켄드릭은 여전히 문화와 블랙 커뮤니티 그리고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고, 혜안을 과시하며, 동시대 랩스타 중 가장 의식 있는 랩을 선사한다. 다만, 확고한 신념과 가치관이 또렷하게 드러났던 전작들과 달리 개인과 신념 사이에서 고민하고, 어떤 문제에 대하여 확실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는 모습이 도드라진다. 딥페이크 연출이 기가 막힌 뮤직비디오가 화제를 모은 ‘The Heart Part 5’를 보자. 그는 기꺼이 “문화를 위해 해나간다(I do this for my culture)”라고 말하는 동시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더 많은 사람에게 상처주는 이 땅에서 그걸 문화라 부르는 건 집어치워(In the land where hurt people hurt more people, Fuck callin’ it culture)”라며 회의감을 드러낸다. 

이처럼 다소 모호하고 갈피를 잡기 어려운 태도와 주장이 앨범 내내 이어진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심도 있는 논쟁 거리가 생겨난다. 어떤 곡에선 켄드릭의 의도가 느껴지는 한편, 어떤 곡에선 의도와 진심을 혼동할 수밖에 없다. 가사를 몇 번이나 자세히 들여다봐도 헷갈림의 연속이다. ‘Mr. Morale & the Big Steppers’는 켄드릭의 커리어에서 가장 오묘한 감흥을 주는 작품이다. ‘Auntie Diaries’를 예로 들어볼까. 삼촌과 사촌의 일화를 통해 동성애 혐오에 무지했던 과거의 자신을 반성하고, 혐오에 반대하는 곡이다. 오랫동안 성적 지향을 감추며 고통 속에 살아온 가족의 이야기를 끌어왔다는 점에서 제이지(Jay-Z)의 ‘Smile’(2017)과 오버랩되기도 한다. 다만 켄드릭은 곡 전체를 할애하여 더 자세하고 직접적인 경험을 풀어놓았다. 결코 에두르는 법이 없다. 여자에서 남자가 된 삼촌 그리고 남자에서 여자가 된 사촌을 “이제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들었다(I think I’m old enough to understand now)”며 각각의 벌스를 시작한 그의 고백은 점점 날카로워진 끝에 비판의 칼날이 된다. 성소수자 혐오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무지한, 혹은 이중적인 이들은 물론, 동성애에 대한 기독교의 견해가 지닌 모순을 과감하게 베어버린다. 특히 부활절, 예배자가 모인 가운데 사촌을 콕 찍어 죄악을 범했다고 몰아가는 목사에게 교리의 맹점을 파고들어 반기를 든 켄드릭이 결국 “종교보다는 인간성을 택했다(The day I chose humanity over religion)”라고 말하는 순간은 대단히 감동적이다. 

 

그런데 훌륭한 스토리텔링 속에서 논쟁 거리가 튀어나왔다. 게이 혐오 단어를 사용한 부분이 문제였다. ‘Auntie Diaries’에서 켄드릭은 혐오 단어를 사용하는 행위가 잘못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했던 시절을 반추하며 해당 단어를 여러 차례 언급한다. 이것이 혐오를 위한 사용이 아니란 사실은 맥락 속에서 확연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해당 단어를 과도하게 사용한 것 자체를 두고 아쉬움을 표했다. 오늘날 ‘Auntie Diaries’를 통해 그 단어를 처음 알게 될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아무리 앞뒤 흐름을 고려한다 해도 단어 자체가 지닌 파급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혐오 단어가 노골적으로 내뱉어졌을 때 그 의도와 맥락은 지워지고 오직 의미를 담은 소리만이 남을 우려가 있다는 것.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비평 매체 ‘피치포크(Pitchfork)’에서 썼듯이 이 주제를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말하자면, ‘굳이 혐오 단어를 반복하여 사용하지 않고도 풀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을 충분히 할 만하다. 그런가 하면 ‘We Cry Together’는 또 다른 논쟁 거리를 던진다. 영화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Ma Rainey's Black Bottom)’(2020)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 테일러 페이지(Taylour Paige)가 놀라울 만큼 탄탄한 랩을 들려준 이 곡은 연인의 격한 다툼을 매개로 젠더 갈등과 페미니즘 이슈를 표면화하는 명곡이다. 초반부터 서로에 대한 욕설과 원색적 비난이 난무하는 연출로 당혹감을 안기지만, 세 번째 벌스에 이르러 진짜 주제가 드러난다. 

 

테일러 페이지는 힘 있는 여자들이 묵살당하는 남자들의 세상을 비판하는 동시에 알 켈리(R. Kelly), 하비 와인스타인(Harvey Weinstein) 등을 언급하며 남성에 의한 권력형 성범죄를 꼬집고, 켄드릭 라마는 무고한 척하는 여자들과 가짜 페미니스트를 비판한다. 이에 많은 매체와 리스너들은 ‘We Cry Together’가 젠더 문제에 관한 남녀 각자의 입장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제시했다고 평했다. 그런데 둘의 감정이 절정에 이른 지점의 가사를 곱씹어보면, 여성의 주장 쪽으로 무게중심이 더 쏠린 것처럼 다가온다. 현실과 문제를 구체적으로 파고들어 끄집어낸 페이지 파트보다 켄드릭 파트의 주장과 근거가 훨씬 빈약하게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We Cry Together’가 실은 미투 운동과 페미니즘에 강력한 연대를 표한 곡이란 해석도 있다. 

물론, 켄드릭이 진짜로 말하고자 한 바가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다. 이처럼 앨범엔 아티스트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지점이 여러 군데 존재한다. 그래서 주제, 표현, 의도 등 곡과 관련한 모든 것에 대한 논쟁이 활발하게 벌어지는 중이다. 아마도 가장 문제적 랩 스타일을 구사하는 코닥 블랙(Kodak Black)을 참여시킨 점만 해도 그렇다. 예술을 평할 때 아티스트의 윤리적 문제를 결부하는 행위가 점점 자연스러워지는 오늘날,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그의 참여를 두고 평단을 비롯한 많은 이가 실망감을 표하며 비판의 화살을 날렸다. 하지만 앨범을 관통하는 주제와 흐름을 고려하면, 코닥 블랙의 참여는 반성과 구원이란 키워드와 맞닿아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당연히 그럼에도 참여 자체가 옥에 티라는 주장 또한 설득력 있다. 

 

‘Mr. Morale & the Big Steppers’의 프로덕션과 퍼포먼스는 전작들만큼 강렬함을 주진 않는다(부디 오해 마시라. 어디까지나 전작들과의 비교니까). 그러나 가사적으론 어느 때보다 난해하며 높은 해석력을 요구한다. 켄드릭의 앨범은 언제나 리스너들의 접근을 호락호락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이번엔 벽을 더욱 강하게 세운 느낌이다. 이미 클래식의 반열에 오른 ‘Good Kid, M.A.A.D City’, ‘To Pimp a Butterfly’, ‘DAMN.’과 다른 선상에 있으면서 어깨를 나란히 할 작품이다. 켄드릭은 이렇게 또 한 번 문제적 걸작을 떨어뜨렸고, 듣는 이는 고통과 환희로 동시에 들끓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