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dit
글. 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 방탄소년단 유튜브

제64회 그래미 어워드가 끝났다. 그래미나 오스카 같은 예술 분야의 아카데미 시상식이 단지 수상자를 발표하고, 트로피를 건네주는 자리는 아니다. 해당 업계에 기여하는 모든 사람이 지난 한 해의 성과를 나누고 축복하는 잔치다. 그래서 시상식의 어떤 순간들은 후보 지명이나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의미를 가진다. 세상은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고, 시상식은 가장 앞서 봄을 맞을 때, 그래미 어워드는 무엇을 남겼나? 가장 빛나던 다섯 순간으로 정리한다.

 

1. 방탄소년단의 ‘Butter’ 퍼포먼스

 

라이브 퍼포먼스는 시상식의 꽃이다. 하지만 팬데믹 기간 동안, 많은 아티스트는 다소 실험적인 도전을 해야 했다. 단순한 사전 녹화의 개념을 넘어 신작 뮤직비디오 수준의 물량 투입을 감행하고, 그것이 시상식 퍼포먼스의 미래라고 여긴 적도 있다. 하지만 올해 그래미 어워드는 관객과 무대를 전제하는 공연의 가치가 여전함을 증명했다.

 

그중에서도 방탄소년단의 ‘Butter’ 무대는 다수의 멤버로 구성된 보이 밴드가 시상식의 특별 무대에서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답과도 같다.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로 스파이 혹은 제임스 본드의 영화를 놓고, 무대를 구성하는 개별 퍼포먼스는 모두 주제를 따른다. 각 멤버가 관객석에서 등장하는 아이디어는 오직 시상식 현장에서만 가능한 것이고, 특히 뷔와 올리비아 로드리고가 대화하는 장면은 오랫동안 회자될 것이다. ‘빌보드’는 그날의 모든 퍼포먼스 순위를 매기며 ‘Butter’를 1위로 올렸다. 그들의 창의력이 음악적 재능만큼이나 인상적이라는 코멘트다. ‘롤링스톤’은 역대 그래미 어워드 퍼포먼스 25개를 선정하며, ‘Butter’를 13위에 올렸다. 2022년 퍼포먼스 중 가장 높은 순위다.

 

2. 재즈민 설리번의 베스트 R&B 앨범 수상

 

재즈민 설리번은 작년까지 그래미 어워드 후보에 12회 올랐고, 단 한 번도 수상하지 못했다. 올해 그녀는 베스트 R&B 노래, 퍼포먼스, 앨범 3개 부문 후보에 오르고, 베스트 R&B 퍼포먼스와 앨범을 수상했다. R&B 퍼포먼스는 실크 소닉과 동률로 공동 수상이다. 그래미 어워드가 다시 한 번 그녀를 외면했다 할지라도, ‘Heaux Tales’는 2021년에 나온 가장 중요한 앨범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의 수상을 발표하던 빌리 포터가, 옆 테이블에 있던 허(Her)가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할 때, 그 의미는 명백하다. 상이 주인을 찾아갔다는 확신과 만족. 그리고 그녀의 수상 소감은 앨범의 주제와 그대로 연결되어,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아름다운 흑인 여성들에게 바치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이제는 상을 타도, 타지 않아도 좋다던, 그녀는 이렇게 정점에 오르고 이야기는 완성된다.

 

3. 도자 캣과 시저, 대혼돈의 수상 소감 끝에서

 

도자 캣과 시저는 ‘Kiss Me More’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를 수상했다. 시저는 다리 부상으로 목발을 짚고 무대에 오르고, 그사이 레이디 가가는 그녀의 드레스를 잡아주었다. 수상 순간 카메라에 잡히지 않은 도자 캣은 실은 화장실에 갔었고, 뒤늦게 무대에 뛰어오르며 “평생 이렇게 빨리 오줌을 눈 적이 없다.”고 숨을 몰아쉬었다. 도자 캣은 시저를 찬양하기 바빴지만, 마지막에는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눈물을 보였다. 그 자리의 다른 아티스트들이 이 솔직한 말에 공감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나의 음악, 나의 성과를 과소평가하지 않고, 스스로 확신하는 것이, 창작자에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기 때문이다.

 

4. 빌리 아일리시와 브랜디 칼라일, 무관의 제왕

 

올해 빌리 아일리시는 7개 부문, 브랜디 칼라일은 3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나 트로피는 하나도 받지 못했다. 대신 둘은 올해 인상적인 무대를 남기는 것으로 그래미 어워드 역사에 남을 것이다. 빌리 아일리시는 시상식 얼마 전 사망한 푸 파이터스의 드러머 테일러 호킨스를 기리는 티셔츠를 입고 무대에 올랐다. 그녀는 역대 어느 순간보다 행복하게 ‘Happier Than Ever’를 불렀고, 아무 후회도 없을 것이다. 브랜디 칼라일은 어떤가. 피아노로 시작하여 기타를 메고 밴드에 합류한 그녀는 압도적인 보컬 퍼포먼스로 현장을 흔들어 놓았다. 그녀의 ‘In These Silent Days’를 두고 ‘팝매터스’가 썼던 평을 그대로 무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팝 앨범은 겸손과 온유함에 바탕을 두는 경우가 별로 없다. 만약 그렇다 해도 그 가치를 열정과 기백으로 담아 표현하는 것은 드물다. 하지만 브랜디 칼라일은 해냈다(Pop albums don’t tend to be built on humility and gentleness. Even if they are, they don’t tend to deliver those characteristics with fire and verve. On In These Silent Days, Brandi Carlile does just that.).”

 

5. 스태프에게 조명을

 

최근 음악 산업에서 퍼포밍 아티스트 외에도 음악과 공연을 만들어내는 무대 뒤편을 조명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다. 그래미 어워드는 이 분야에서 송라이터, 프로듀서, 연주자들 이외에 좀 더 관심이 필요한 분야를 찾아내곤 한다. 작년 그래미 어워드의 수상자 발표 중 일부는 중소 규모 공연장의 운영자 또는 직원이 맡았다. 음악 산업에서 코로나19 봉쇄로 가장 급격한 타격을 입은 곳이다. 2022년 그래미 어워드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보통 퍼포먼스 직전 무대에 오를 아티스트를 발표하는 시간이 있다. 여기서 투어 매니저, 의상 담당자 등 바로 그 아티스트 주변에서 일하는 스태프가 자신의 ‘보스’를 소개했다. 일부는 마이크의 떨림이 눈에 보일 정도로 긴장했지만, 늘 그렇듯이 자신의 역할을 멋지게 소화하고, 쇼는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