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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오민지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방탄소년단 유튜브

“Smooth like butter, like a criminal undercover (버터처럼 부드럽게/비밀스러운 요원처럼).” 

 

2022년 4월 3일(현지 시간 기준)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제64회 그래미 어워드(이하 ‘그래미’)’에서 방탄소년단이 선보인 퍼포먼스는 그들의 곡 ‘Butter’의 첫 두 마디 가사로부터 시작됐다. 방탄소년단은 와이어를 탄 채 무대로 이동하는 정국, 관객석에서 올리비아 로드리고와 대화하며 신분을 속인 뷔 등이 ‘비밀스러운 요원처럼’ 무대에 침입한다. 그리고 무대 위에 설치된 레이저를 ‘버터처럼 부드럽게’ 움직여 피하기도 하며 ‘Butter’의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무대를 열기 위한 수단, 즉 보안 카드예요. 정식으로 초대받은 아티스트의 보안 카드를 훔쳐서 그 출입 권한으로 무대를 여는 거죠.” 하정재 콘서트제작스튜디오 LP는 뷔가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등 뒤에서 꺼낸 카드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그래미’의 ‘Butter’ 퍼포먼스는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괴도 뤼팽 또는 제임스 본드 같은 첩보원으로 무대에 침입하는 것을 콘셉트로 삼았다. 멤버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무대 안으로 들어오는 설정 역시 ‘괴도 뤼팽과 같은 콘셉트를 위해서는 당당하게 무대에 등장하기보다 객석이나 공중 등 무대가 아닌 곳에 등장해야 개연성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결과다. 하정재 LP에 따르면 퍼포먼스 도중 레이저가 한 번 켜지는 것도 그들이 침입한 장소가 “전통적이고 고고한 뮤지엄이고, 중요하기에 보안이 심한” 장소이기에 무대 도중 보안 시스템이 작동한 것이고, 레이저는 “이들이 헤쳐 나가는 역경을 의미”한다.

와이어를 타고, 레이저를 돌파해야 겨우 설 수 있을 만큼 험난한 무대. 방탄소년단이 ‘그래미’ 무대에 선 과정을 생각해보면, 이건 단지 무대 위의 설정만은 아니다. 제이홉이 ‘그래미’ 직후 가진 브이라이브에서 “사실 퍼포먼스도 진짜 열심히 준비하기도 했고 과정들도 약간 험난했잖아요.”라고 말한 것처럼, 방탄소년단은 ‘그래미’ 무대에 서기까지 드라마틱하다고 해도 좋을 온갖 일들이 있었다. 손가락 부상에서 회복 중이던 진은 안무 중 일부에는 참여하기 어려웠고, 제이홉과 정국은 코로나19로 인해 각각 한국과 미국에서 격리됐다. 나머지 멤버들에게도 쉽지 않은 상황들이 이어졌다. 제이홉의 부재는 같이 연습을 하는 나머지 멤버들 전체에게 영향을 미쳤다. 멤버들이 브이라이브에서 제이홉 없이 연습을 하는 것에 대해 “홉이가 없으니까 연습 분위기가 안 나(슈가).”, “연습실에서의 위계질서가 없어져(지민).”라고 했을 만큼, 안무 연습에서 제이홉의 역할은 컸다. 격리된 공간에서 따로 연습을 하던 제이홉과 정국이 다른 멤버들과 함께 현장에서 연습을 맞춰볼 수 있게 된 것이 겨우 ‘그래미’ 하루 전날이었다. 게다가 ‘그래미’ 현장 상황은 코로나19에 대한 방역 문제로 인해 과거보다 더욱 엄격할 수밖에 없었다. 댄서들은 1시간마다 마스크를 교체해야 했고, 스태프들은 마스크 착용은 물론 매 연습 때마다 PCR 검사를 받아 음성이 나와야만 현장에 참여할 수 있었다. 글로벌커뮤니케이션팀 엄미선 팀장은 ‘그래미’의 방역 지침에 대해 “시상식 측에서 그래미 주간 동안 연습실 및 시상식장 비표 출입 인원을 대상으로 주기적인 PCR 검사 진행 및 상시 마스크 착용을 요청했어요. 회사 차원에서도 아티스트와 스태프들이 시상식 당일까지 안전하게 무대 준비 및 참석을 진행할 수 있도록 내부 방역에 만전을 기했죠.”라고 설명했다.

  • © BANGTANTV

“연습을 하면서도 ‘얘네는 무조건 7명이어야 되는구나, 얘네는 팀일 때 진짜 빛이 나는구나.’를 많이 느꼈어요. 연습 때 그렇게 안 되다가도 정국 씨랑 홉 씨가 와서 같이 맞추니까 조금씩 더 되더라고요. 사실 그 부분은 개인 역량이 아니라 멤버들 간의 합이 중요한 거라서 결국에는 멤버들이 다 모였을 때 그 시너지를 발휘하는구나라는 게 느껴져서 감동받으면서 봤거든요.” 손성득 SP가 방탄소년단이 이 모든 상황을 하루 만에 해결하며 돌파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 대해 설명했다. 우선 제이홉이 ‘그래미’ 현장 리허설에 참여할 수 있게 되자, 그는 멤버들이 연습에 대한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어 단체 연습 전에 맨바닥에 슬라이딩을 하며 어떻게 하면 레이저에 걸리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을지 연구하던 RM도, 서로 무대 위에 설치된 레이저에 몸이 걸리는지 봐주며 “(레이저에) 걸릴 수밖에 없어.”라고 하는 지민과 “걸리면 거기서 액팅을 해야 돼.”라며 레이저에 당하는 시늉을 하던 뷔도, 재킷 안무를 모니터링하며 조금만 대충 하면 될 것 같다는 말에 “나 열심히 했는데 열심히 한 게 독이었구나.”라며 웃던 슈가와 슈가의 말대로 댄스브레이크 때는 ‘영혼’으로 함께하는 진도, 연습 시간 내내 한 번도 쉬지 않고 스텝을 밟거나 옆돌기를 하던 정국도 제이홉의 한마디에 모여 단체 연습을 재개했다. “한 번만 더 해보자”. 

 

제이홉은 여러 차례 연습이 끝나고 모니터링을 한 뒤, “다시 해봅시다!”라며 박자를 세고, 멤버들은 연습을 계속했다. “멤버들이 제이홉 씨를 춤이나 연습 분위기를 만드는 점에서 존중하고, 또 존경하고 있기 때문에 연습 때도 제이홉 씨가 한번 더 하자.라고 하면 ‘진짜 연습이 필요하구나.’, ‘뭔가가 문제가 있구나.’로 받아들여요. 그래서 멤버들도 ‘홉이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연습 분위기 자체가 많이 다르다.’라고 해요. 그만큼 안무 연습을 할 때 중요한 존재죠.” 손성득 SP가 연습 과정에서 제이홉의 영향력을 설명했다. 멤버 각자의 역할을 알고 신뢰하는 것은 멤버들이 여러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각자 충분한 연습을 할 수 있던 이유이기도 했다. “따로 연습 중이던 두 사람에 대한 멤버들의 신뢰가 있으니까요.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은 부족해도 그들의 역량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이 없었죠.” 정국이 와이어를 타고 무대에 내려온 것 또한 멤버들이 서로의 역량을 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정재 LP에 따르면 정국은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즐길 수 있는 멤버이자 이미 투어에서 타본 경험이 많기 때문에” 1순위로 결정됐다.

  • © BANGTANTV

멤버들의 역량과 팀워크에 대한 확신은 방탄소년단이 ‘그래미’ 퍼포먼스에서 보여준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무 연습 때 댄서들에게도, 온라인 미팅 때 ‘그래미’ 관계자들에게도, 무대 때 관객들에게도 가장 큰 호응을 받았던 재킷을 벗고 소매를 잡아 서로 엮어 기타 모양으로 만드는 안무(이하 ‘재킷 안무’)를 연습하는 과정은 요컨대 멤버들 서로 간의 또는 멤버와 스태프들 간의 협의가 멈추지 않는 과정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멤버들은 의상을 담당한 빅히트뮤직의 VC 스태프들과 함께 ‘재킷 안무’를 위해 평소 입었던 의상의 핏보다 조금 더 커야 하지만, 무대에 섰을 때 예쁜 핏을 만들려면 어느 정도 크기의 재킷을 입어야 할지 논의했다. 또한 외투를 활용한 댄스 이후 옷을 바로 던질지, 들고 가다가 중간에 던지고 갈지, 어느 정도의 힘으로 당기고 어느 정도의 간격으로 서야 하는지 멤버들끼리 절충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슈가는 “큰 애들 사이에 있어가지고 조금만 떨어져도 엄청 떨어지는 것 같다며 자신의 위치를 계속해서 조정했고, RM은 재킷의 안감이 튿어지며 그의 말마따나 “옷이 박살이 나가지고” 수선을 맡기기도 했다. ‘재킷 안무’를 하기 전 카드를 던지는 안무 또한 손성득 SP에 따르면 “카드를 매개체로 조금 더 쿨한 모습을 보여주면 좋을 것 같다.”는 멤버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추가된 부분이었고, 레이저를 통과하는 안무(이하 ‘레이저 안무’)는 기존 연습 때의 높이와 최대한 맞추면서도 서로 레이저에 걸리는지 체크하며 변화에 따라 얼마만큼 더 숙이고 더 뛰어야 할지 확인했다.

 

엄미선 팀장에 따르면 그래미 측은 “BTS만이 할 수 있는, 예술성과 창의성이 표현되는 무대를 요청”했다. 이에 대한 방탄소년단의 대답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었다. 손성득 SP가 말했다. “우리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건 우리가 잘 안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그래서 절충을 하면서도 ‘이거 진짜 멋있는 거고, 우리가 해왔던 게 이런 거야.’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했죠.” 하정재 LP 역시 "(그래미 관계자에게) 영화의 콘티처럼 설명을 그림으로 그려서 음악에 맞춰서 컷을 넣은 애니매틱스를 만들고, 안무 동선과 연출 영상을 찍어서 보냈어요. 그리고 ‘그래미’ 리허설 때도 촬영하는 카메라 뒤에 붙어서 정확하게 위치를 잡아주면서 카메라 워킹부터 앵글까지 함께 조율을 했어요.”라며 멤버들뿐만 아니라 스태프들이 가진 ‘방탄소년단의 무대’에 대한 확신을 말했다. 그 결과, 뷔가 카드 키를 날리고 정국이 그 카드 키를 잡는 장면은 카드를 부드럽게 따라가는 카메라 워킹으로 인해 ‘그래미’ 직후 브이라이브에서 정국이 해당 장면에 대해 “이거 연출이 아니라 태형이 형이 던진 거 제가 직접 받은 거긴 해요.”라고 말하자, 많은 아미들이 웃음을 참지 못한 지민을 보기 전까지 사실인지 의심했을 만큼 마술 같은 순간을 선사했다. 멤버들을 중심으로 모든 스태프들이 함께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한 확신이 만들어낸 결과다. 이 새로운 ‘Butter’의 퍼포먼스에는 퍼포머로서 방탄소년단 고유의 역량, 대형 시상식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놀라운 순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끌고 나가는 사람들의 강렬한 드라마가 모두 있었다. ’빌보드’와 ‘롤링스톤’은 방탄소년단의 퍼포먼스를 올해 그래미 최고의 무대 중 하나로 꼽았다.

  • © BIGHIT MUSIC

방탄소년단이 성공적으로 무대에 침투해 퍼포먼스를 진행하면서, ‘그래미’ 무대는 방탄소년단의 초상과 한국어 가사 그리고 그들을 상징하는 색으로 물들여진다. 하정재 LP는 이에 대해 “다른 아티스트의 배경이 되면 쓸 수 없는, 확고한 아이덴티티가 있는 영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무대에서는 방탄소년단 말고는 그런 배경을 쓸 수 없으니까요.”라고 말했다. 방탄소년단은 퍼포먼스를 통해 그들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장소를 자신들이 주인이 되는 곳으로 만들었다. 이 ‘미션 임파서블’을 가능케 하는 것은 멤버들의 팀워크고, 그 과정에서 무대 위아래 모두 감동적인 순간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손성득 SP에 따르면 진의 역할은 그를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배역이었다. “안무를 하는 게 건강상 부담이 되고 콘서트가 남아 있으니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이질감 없이 무대를 함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조력자가 떠올랐어요.” 진은 ‘그래미’ 무대에서 멤버들의 침입을 돕도록 시스템을 조작하고, 멤버들을 바라볼 수 있는 공간에서 그들을 지원한다. 그는 멤버들을 위해 보안을 뚫고, 역경에 부딪힌 멤버들을 옆에서 지켜보다 결국 자신들의 색으로 물들여진 무대 위에서 멤버들과 재회한다. 무대에 오르는 과정에는 예상치 못한 수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누군가는 거기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서로 힘을 합치고, 때로는 서로의 입장을 배려하는 팀워크로 모든 것을 돌파해낸다. 그것을 해낸 아티스트는 결국 그날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 2013년 데뷔 쇼케이스부터 2022년 그래미까지 방탄소년단이 늘 해왔던 일이다. 그것만은 변하지 않는다. 그들이 누구에게든, 무슨 평가를 받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