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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 빅히트 뮤직

RM의 ‘Indigo’는 그가 믹스테이프가 아닌 정식 발매하는 첫 솔로 앨범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미리 공개된 뮤지션들의 면면으로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미국 음악계의 전설적인 뮤지션부터 한국의 인디 뮤지션에 이르기까지 참여한 뮤지션의 면면은 ‘Indigo’가 대체 어떤 결과물로 나올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게 만든다. 12월 2일 ‘Indigo’ 공개를 앞두고, 오늘과 내일 ‘Indigo’에 참여한 뮤지션들에 대해 음악평론가 김도헌과 강일권이 두 차례에 나눠 소개한다. (편집자 주)

김사월 (‘건망증’)

베테랑 힙합 그룹 에픽하이가 지난해 발표한 정규 10집 ‘Epik High Is Here 上’ 중 RM이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추천한 곡은 ‘Leica’였다. 그 노래에 참여한 아티스트가 김사월이다. RM이 동경하던 선배 그룹의 제안을 받은 김사월은 쓸쓸하고 지독한 인생의 한 장면을 찰칵, 찍어 노래했다. “그렇지 뭐, 이래도 지랄, 저래도 또 지랄, 바람 잘 날 없네”. 2012년 싱어송라이터로 노래를 시작한 김사월은 담담한 일상의 풍경을 문학의 언어로 풀어 소박한 목소리에 씁쓸한 비극을 새긴다. 2014년 인디 팬들과 평단의 극찬을 이끌어낸 김사월 X 김해원 프로젝트 이후 홀로서기를 알린 그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석 장의 정규 앨범과 두 장의 EP, 두 장의 라이브 앨범을 발표하며 기쁨과 고독을 오롯이 누렸다. ‘수잔이라는 캐릭터를 빌려 20대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조곤조곤 전했고, 긍정적이지만 마냥 행복하지는 않았던 ‘로맨스’를 풀어냈으며, 무기력하고 상처 입으면서도 끊임없이 원하게 되는 감정을 ‘헤븐’이라 명명했다. 이이언과 함께 그러지 마로 호흡을 맞춘 바 있는 RM이 김사월의 음악을 즐겨 듣지 않았을 리가 없다. 노래 제목은 ‘건망증’이다. 쉽게 잊지는 못할 것이다.  

Colde (‘Hectic’)

2015년 EOH와 함께 듀오 오프온오프(offonoff)를 결성하며 활동을 시작한 콜드는 2018년 ‘Your Dog Loves You (Feat. Crush)’를 통해 솔로 활동을 시작하며 지위를 굳힌 싱어송라이터다. 달콤한 사랑 노래와 야망 가득한 다짐, 쓸쓸한 새벽의 찬 공기를 모두 담은 목소리로 랩과 보컬을 자유로이 오가며 힙합, 로파이 팝, R&B, 재즈 등 다양한 장르를 혼합해 선보인다. 솔로 커리어는 물론 레이블 ‘웨이비’, ‘레이어드 아일랜드’, ‘파이렛’을 운영하며 혼자 아닌 함께를 꿈꾸는 야심가이기도 한 그는 RM과 절친한 사이다. RM은 콜드의 레이블 웨이비(WAVY) 오피스 오픈 때 여러 번 호의를 표한 김희수 작가의 그림을 선물한 바 있다. 정신없이 바쁜 ‘Hectic’을 제목으로 삼은 둘의 컬래버레이션은 어떨까. 콜드의 첫 솔로 EP 수록 곡 ‘자유’처럼 에너제틱한 자기 선언이 될지, 베테랑 가수 최백호의 기획 앨범에 함께한 ‘덧칠’처럼 부유하는 기타 연주 위 단어 하나하나를 눌러 부를지 지켜볼 일이다.  

조유진 (‘들꽃놀이’)

체리필터 보컬 조유진은 올해 처음으로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무대에 올랐다. 1997년 밴드 결성 후 25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지만, 파워풀한 록 보컬리스트 조유진의 진가는 8월 한여름의 찌는 더위에도 녹슬지 않고 눅눅한 공기를 초음 속으로 돌파했다. 수많은 관중이 목소리를 모아 모든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는 광경에서 체리필터의 영향력을 실감했다. 한국의 1990년대생들이라면 학창 시절을 수놓은 ‘낭만고양이’, ‘내 안의 폐허에 닿아’, ‘오리 날다’, ‘달빛소년’, ‘Happy Day’를 반드시 기억할 것이다. 꿈과 희망, 낭만과 열정, 회한과 한숨을 담은 체리필터의 청춘 송가는 과거의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고 현재 지루한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에게 각성을 촉구한다. RM에게는 그야말로 어린 시절의 우상과 함께하는 벅찬 기회다. 곡 제목은 화려한 불꽃놀이가 아니라 가을 공원 풍경을 닮은 ‘들꽃놀이’다. 

박지윤 (‘No.2’)

RM과 같은 나이인 나는 세 명의 박지윤을 기억한다. 먼저 ‘성인식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2000년의 박지윤이다. 수수한 외모로 밝은 노래를 부르던 신인 가수 박지윤은 프로듀서 박진영의 진두지휘 아래 옆트임 스커트에 부분 시스루 복장을 하고 “난 이제 더 이상 소녀가 아니에요”를 열창하며 이미지를 일신했다. 그러나 당시 박지윤의 나이는 열아홉이었다. K-팝에서 섹시 콘셉트의 정점의 위치를 감당하기에 박지윤은 너무 어렸고, 궁극적으로 그가 지향하는 음악 또한 ‘성인식이 아니었다. 두 번째 박지윤은 JYP엔터테인먼트를 떠난 후 2009년 ‘꽃, 다시 첫번째’로 본격적인 홀로서기를 시작한 박지윤이다. 단단한 목소리로 차분히 오래 마음에 담아온 이야기를 풀어놓은 박지윤의 새로운 음악 세계는 예민하고 외로운 세상의 모든 어린 자아들을 어루만졌다. 이 박지윤이 가장 최근의 정규 앨범 ‘parkjiyoon9’까지 이어진 박지윤이다. 마지막으로 2013년 미스틱과 함께 손잡고 ‘Beep’, ‘Mr.Lee’, ‘Yoo Hoo’ 등 진지함 한 스푼을 덜어낸 박지윤이 있다. 올해로 가수 데뷔 25주년을 맞은 박지윤. ‘No.2’의 박지윤은 어떤 박지윤일까. 분명한 사실은 RM도 그리고 나도 다사다난한 커리어 가운데 비로소 분명한 자신으로 우뚝 선 박지윤의 음악 세계를 오래도록 동경해왔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