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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 빅히트 뮤직

시카고가 음악 축제로 들썩인다. 현지 시각 7월 15일부터 17일까지 유니언 파크에서 열린 피치포크 뮤직 페스티벌(Pitchfork Music Festival)로 예열을 마친 도시는 28일부터 31일까지 4일간 그랜트 파크에서 펼쳐지는 롤라팔루자(Lollapalooza)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1991년 처음 열린 이후로 성공과 부침을 겪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 페스티벌 브랜드로 거듭난 롤라팔루자는 2020년 팬데믹 취소 후 지난해 숨 고르기를 거친 뒤 올해 화려한 부활을 선언하고자 한다.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아티스트들부터 록 팬들의 굳건한 지지를 받는 전설, 한국 팬들을 깜짝 놀라게 한 제이홉과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출연 소식까지 전하며 기대를 높이고 있는 2022 롤라팔루자에 대해 알아보자.

  • ©️ Lollapalooza

 롤라팔루자 페스티벌의 창시자는 록 밴드 제인스 어딕션(Jane's Addiction)의 보컬 페리 패럴(Perry Farrell)이다. 1986년부터 활동을 시작하며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 열풍을 예고한 제인스 어딕션은 1990년 두 번째 정규 앨범 ‘Ritual De Lo Habitual’을 내놓고 갑작스럽게 해체를 선언한다. 페리 패럴은 밴드의 고별 공연을 위해 거대한 음악 축제를 기획했는데, 제인스 어딕션을 위시한 록 밴드들은 물론 수지 앤 더 밴시스, 나인 인치 네일스, 아이스 티, 보디 카운트, 헨리 롤린스 등 다양한 장르 뮤지션들이 대거 모여 참여하는 열린 형태의 페스티벌을 고안했다. 또한 페리 패럴은 북미와 캐나다를 오가는 투어 형태의 축제를 제안했으며 최신 기술과 서커스 등 다양한 음악 외 즐길 거리를 추가했다. 19세기 말 미국에서 '독특하고 유별난 것'을 지칭하던 속어 롤라팔루자가 페스티벌 이름으로 낙점되었다.

 

1991년 너바나의 역사적인 작품 ‘Nevermind’와 함께 얼터너티브 록의 부흥을 알린 롤라팔루자는 첫 공연부터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린 록 밴드들부터 생소한 신인까지 아무런 경계와 제약 없이 즐길 수 있는 페스티벌이라는 점이 음악 팬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2020년 ‘스핀(Spin)’지는 롤라팔루자 페스티벌이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 씬을 주류 시장으로 끌어올린 계기이자 현대 미국 음악 축제의 효시가 되었음을 강조했다. 페리 패럴이 밴드 해체를 거름 삼아 젊음이 향유하는 새로운 음악 박람회, 도심 속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공연을 꽃피운 것이다.

 

오래된 페스티벌인 만큼 위기도 있었다. 1990년대 초 얼터너티브 록이 주류로 부상하며 여러 페스티벌이 우후죽순 등장하자 롤라팔루자 페스티벌은 금세 차별점을 잃었다.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가진 밴드들이 출연하던 원칙 역시 1996년 대중적인 인기를 구가하던 메탈리카(Metallica)의 출연으로 혼란스러워졌다. 1998년에는 적절한 헤드라이너를 찾지 못해 페스티벌이 취소되기도 했다. 롤라팔루자가 다시 안정을 찾은 것은 1996년 기획팀을 떠난 페리 패럴이 복귀한 2003년으로, 30여 개 도시를 돌며 축제를 개최하고 투자를 끌어낸 그의 노력 덕에 오늘날 시카고를 대표하는 음악 축제로 그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롤라팔루자 페스티벌 포맷은 전 세계 곳곳으로 수출됐다. 열릴 때마다 구름 관중을 불러 모으는 칠레,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에서의 롤라팔루자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독일, 스웨덴, 프랑스 등 유럽 국가에서도 롤라팔루자가 열린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들이 참여하여 활약할 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 축제와 결합하여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롤라팔루자가 최초 지향한 것은 주류 문화의 대안을 제시하는 젊음의 축제였다. 30년 이상 지난 지금도 그 정신은 유효하다. 올해 페스티벌 라인업만 살펴봐도 장르, 인종 구분 없이 다채로운 아티스트들의 이름이 올라 있다. 힙합, 메탈, 록, 재즈, 소울, 팝 등 하나로 묶을 수 없는 구성이다. 

올해는 K-팝이 추가됐다. 솔로 앨범 ‘Jack In The Box’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홀로서기를 시작한 제이홉(j-hope)이 7월 31일 페스티벌 4일 차 헤드라이너로 출격한다. 한국 아티스트가 북미 음악 페스티벌에 출연하는 게 흔치 않고, 헤드라이너로 오른 전례는 더더욱 없기에 모두에게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었다. 찰리 XCX, 더 키드 라로이에 이어 버드 라이트 셀처 스테이지의 마지막 차례를 장식할 제이홉은 덴젤 커리, 폴로 & 팬, 그린데이와 같은 시간에 롤라팔루자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제이홉이 전부가 아니다. 하루 전인 7월 30일에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롤라팔루자 무대에 오른다. K-팝 그룹 최초의 롤라팔루자 출연이다. 한국계 아티스트로는 예지(yaeji)에 이어 2, 3번째 출연이며, 한국 국적 기준으로는 최초의 출연 기록이다. 현재 미국 7개 도시를 돌며 ‘TOMORROW X TOGETHER WORLD TOUR’를 진행 중인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7월 7일 북미 투어를 시작한 시카고로 다시 돌아와 거대한 음악 축제의 순간을 장식한다. 캐스케이드(KASKADE)가 헤드라이너로 있는 솔라나 X 페리스 스테이지의 후반부에 등장한다. 첼시 커틀러, 턴스타일 등 아티스트와 같은 시간대이며, 이후에는 카이고, 윌로우, 제이콜의 무대가 기다리고 있다.

제이홉과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롤라팔루자 출연은 K-팝이 미국 음악 페스티벌에 단순히 참석하는 수준을 넘어 하이라이트를 장식할 정도의 인기를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다. 제이홉은 2010년대 말부터 지난해까지 빌보드 차트를 수놓은 방탄소년단의 멤버임과 동시에 2019년 싱글 ‘Chicken Noodle Soup’로 빌보드 HOT 100 81위, 최근 공개한 싱글 ‘MORE’로 HOT 100 82위 진입하는 등 북미 시장에서 솔로 아티스트로 확실한 성과를 내고 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역시 미국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5월 9일 발표한 ‘minisode 2: Thursday’s Child’가 빌보드 200 차트 4위에 오르며 자체 최고 순위를 기록했고, 10주 연속 차트인을 기록하며 꾸준한 인기를 증명하고 있다. 지난해 ‘굿모닝 아메리카’, ‘더 레이트 레이트 쇼 위드 제임스 코든’ 등 유명 토크쇼에 출연한 데 이어 올해는 NBC의 간판 프로그램 ‘켈리 클락슨 쇼’에서 ‘Good Boy Gone Bad’를 열창하기도 했다.

 

해외에서 K-팝은 주류 문화에 대한 대안으로 인기를 넓혀 나갔다. 화려한 퍼포먼스와 희망을 담은 메시지, 긍정적인 이미지로 무장한 K-팝은 차별받는 소수와 겉도는 마니아들의 구심점이 되어주었다. 방탄소년단이라는 기폭제를 만나 비로소 폭발한 K-팝은 주류 팝 문화와 다른 새로운 매력을 통해 새로운 유행으로 자리 잡았으며,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고 빠르게 조직적인 팬덤을 형성하는 장르로 위상을 높이고 있다. 롤라팔루자의 제이홉과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미국 시장에서 K-팝의 영향력을 증명하는 좋은 사례다. 게스트 출연, 특정 크루와 함께하는 깜짝 행사, 낮 시간대 이름을 알리는 신인의 무대가 아니다. 페스티벌의 막을 내리는 핵심 시간대에 K-팝 아티스트가 이름을 올렸다. 향후 더 많은 아티스트가 코첼라 밸리 뮤직 & 아츠 페스티벌 등 미국 주요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등장해도 낯설지 않을 것이다. 롤라팔루자의 ‘얼터너티브’ 모토에 정확히 부합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 깊다.

K-팝과 더불어 올해 롤라팔루자는 다양한 장르 아티스트들의 역동적인 무대를 준비했다. 첫날 헤드라이너는 ‘기묘한 이야기’ 네 번째 시즌으로 다시 대중에게 주목받고 있는 메탈리카다. 진솔한 여성의 이야기를 들려준 R&B 아티스트 재즈민 설리번과 주목받는 신예 릴 베이비가 무대를 꾸민다. 다음 날에는 Z세대 팝 펑크 열풍을 불러온 머신 건 켈리와 꾸준한 인기를 누리는 팝 스타 두아 리파, ‘Heat Waves’의 주인공 글래스 애니멀스의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셋째 날 7월 30일에는 캐스케이드, 카이고 등 DJ들의 활약이 기대되며 제이콜, 빅션과 같은 래퍼들과 더불어 아이들스, 턴스타일 등 펑크(Punk) 밴드들의 뜨거운 무대가 예고되어 있다. 대망의 마지막 날인 7월 31일에는 최근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높이며 여전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 밴드 그린데이, 미래 팝 스타로 주가를 높이는 더 키드 라로이,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가 낳은 이탈리아 록 밴드 모네스킨 등 다채로운 아티스트들이 롤라팔루자의 문을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