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이때로 하루만 돌아가고 싶다.”
세븐틴의 멤버 승관은 작년 5월 ‘노래 듣고픈 캐럿들 모여랍’이라는 이름으로 브이라이브를 진행하던 중, 그가 중학교 1학년이었던 2010년을 떠올렸다. 그해에 발표된 시크릿 ‘Magic’, 2NE1 ‘박수쳐’, 포미닛 ‘I My Me Mine’, 엠블랙 ‘Y’를 연이어 틀며 추억에 잠긴 뒤였다. “하루만 돌아가서 중학교 친구들에게 ‘야, 나 5년 뒤에 가수하고 있을 거야.’ 그러면 ‘뭔 소리야?’ 하고 있겠죠? 이상한 소리를 또 합니다, 제가.” 그 후 9월부터 승관은 ‘We Remember K-pop’이라는 이름의 브이라이브를 통해, 본격적으로 2000년대 K-팝을 추억하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위버스 매거진’에서 그를 만나 이에 대해 질문하자, 승관은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중학교 1학년 시절의 승관은 “누군가의 한 팬이었고, 가수가 되기 전에 아이돌들을 전부 알 정도로 좋아했던 대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2021년의 그는 인기 보이 그룹 세븐틴의 멤버인 동시에, 세븐틴의 팬덤 캐럿뿐만 아니라 다른 그룹의 팬덤들까지 찾아오는 ‘We Remember K-pop’의 ‘부 교수님’이 됐다. 그가 작년 9월 8일과 10월 28일 진행한 ‘We Remember K-pop’은 당시에 각각 실시간 조회 수 363만 회, 309만 회를 돌파했다. 중학교 1학년이었던 승관이 상상할 수 없었던 미래는 그렇게 현실이 됐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에게 그 시절의 K-팝을 알리는 ‘부 교수님’이 되어 같은 시절을 보낸 사람들의 추억을 하나로 모으는 구심점이 됐다.

“솔직히 제가 아이돌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제주도에서는 엔터테인먼트 오디션이 거의 열리지 않아서 연결점이 없었거든요.” 제주도에 살던 10대 소년 승관이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저 노래를 들으려 음악 방송 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갔고, 제주도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행사나 공연이 있으면 보러 갔다. 그렇게 노래를 좋아하던 소년은 빅마마의 ‘연'을 부르는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가면서 캐스팅 기회를 얻었고, 오랜 연습을 거쳐 스타가 됐다. ‘We Remember K-pop’은 승관의 그 오랜 사랑의 역사를 고백하는 시간과도 같다. 그는 B1A4 ‘걸어본다’의 퍼포먼스를 표현하기 위해 의자 위에 올라갔고, 비스트(현 하이라이트) ‘Fiction’의 인트로 시선 처리를 짚거나 ‘Shock’의 카메라 워킹을 표현하기 위해 직접 카메라를 흔들 만큼 그 시절 자신이 사랑에 빠졌던 곡들의 작은 디테일까지 세세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연습생이 된 뒤에는 K-팝에 대해 제대로 알기 위해 어떤 곡을 누가 작곡했는지도 상세하게 짚을 수 있을 만큼 K-팝을 파고들었다. “그 시절에도 지금처럼 편하게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면 저도 이렇게까지 기억을 잘하지는 못했을 거예요. 음악을 너무 좋아하는데, 학생이다 보니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노력하지 않으면 음악을 접하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그때의 장면들이 새록새록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그렇게 K-팝을 사랑하고, 공부하고, 부르던 소년은 어느덧 ‘부 교수님’이 되어 그 사랑을 전파한다. 그는 ‘We Remember K-pop’에서 시청자들에게 “앞으로 고인물이라는 말보다는 아까 지금 여기 했던 교수라고 얘기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고인물’은 한 분야에 대해 통달한 사람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지만, 맥락에 따라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이지 않고 기득권이 되려는 사람들을 표현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승관은 10여 년 전 K-팝에 대한 애정과 지식을 전문성으로 인정하는 ‘교수’라는 호칭을 수용하면서, 그 시절 음악을 현재로 소환하는 것이 변화에 대한 역행이나 희화화가 아닌, 공동의 추억에 대한 존중임을 보여준다. “무언가를 재조명하겠다는 의도를 가진 건 아니에요. 제가 다른 분들의 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마치 평론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잖아요. 그래서 항상 조심스러운 마음이 있었어요.” 승관의 말처럼, ‘부 교수님’은 스윗튠이나 모노트리, 이기용배 같은 작곡진을 상세하게 짚으면서도 전문적인 음악 지식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슈퍼주니어의 ‘너라고’에서 예성의 파트에 대해 설명하면서 10대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노래방에서의 추억을 환기하거나, 캐럿들이 궁금해할 만한 연습생 시절의 추억을 곡과 엮어서 설명한다. “제가 할 수 있는 표현으로 재치 있게 하자고 생각했어요. 만약에 노래에 대해서 ‘코드가 G 마이너로 진행이 되고 변주가 되면서 전조가 돼요.’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보다 ‘학동사거리에서 뮤직비디오를 촬영할 것 같고, 몽환적일 것 같고’ 이런 표현들이 더 재밌다고 생각하거든요.”
자신의 10대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지나가버린 모든 것들에 대한 사랑. 처음으로 K-팝 추억 여행이 시작됐던 작년 5월의 브이라이브에서 승관은 “이때 생각해보면 내가 노래를 다 좋아했던 것 같아. 안 좋아했던 노래들이 없네.”라고 말했다. 그는 원더걸스의 팬덤 ‘원더풀’이었지만 브이라이브에서 “플레디스는 물론 울림, 큐브, 스타쉽, 3사는 YG, JYP, SM 그리고 유키스 형님들 NH 미디어까지” 다 챙기는 10대를 보냈다고 말했다. 원더걸스와 라이벌 구도를 이뤘던 소녀시대의 ‘힘 내!(Way To Go)’ 후렴구 가사가 3절에서 바뀌는 것까지 알고 있었고, 작년 6월에 출연한 ‘문명특급’에서는 소녀시대의 ‘Kissing You’가 나오자 써니의 파트에 애정을 표하며 ‘과니’를 자처했다. “지금도 그때의 노래를 보려면 시대별 차트로 봐야 하고 순위로 봐야 하잖아요. 노래들이 경쟁이나 성적으로만 남는 게 싫었어요.” 음악 산업은 인기와 판매량으로 순위를 매기는 규칙 속에서 운영된다. 그러나 승관은 이 산업의 한가운데에서 살아가면서도 모든 아티스트들과 모든 음악을 존중하고 사랑한다. ‘We Remember K-pop’에서 그는 피기돌스나 AJ처럼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인지도가 덜한 아티스트들의 노래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런 노래도 있다고 알려드리면 알아봐주시는 팬분들도 많고, 또 모르던 분들이 새롭게 듣고 ‘어, 좋다.’ 이러실 수도 있으니까요. 딱 그거면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들어주시면 너무 감사한 일이지만, 그 순간 그때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한 시대의 모든 이들이 기억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승관처럼 누군가에게는 그 모든 잊혀진 것들에 관한 기억이 소중한 계절로 남기도 한다.

승관은 올해 4월 ‘We Remember K-pop’에서 음원 차트 역주행과 함께 화제가 된 브레이브걸스의 ‘롤린(Rollin’)’을 첫 곡으로 틀었다. 당시 그는 “정말 축하해드리고 싶었어요. 같은 업계 종사자로서 굉장히 기분이 너무 좋고, 저마저도 뭐랄까 찡해요.”라면서 “열심히 지금 활동하고 계실 텐데 힘내라는 말씀도 드리고 싶습니다.”라는 축하와 응원을 함께 전했다. 그의 말 뒤에는 화려한 무대 뒤에 숨겨진 아티스트의 땀과 눈물에 대한 깊은 공감과 이해가 있었다. “정말 데뷔 전에는 이 직업이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어요. 제가 대중의 한 명으로 계속 남았다면 이렇게까지 모든 노래에 애정을 갖지는 못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동시대에 활동을 하다 보니 모든 가수분들이 애틋하고 ‘수고했어요.’라고 위로나 응원을 전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요컨대 ‘We Remember K-pop’은 승관이 만들어낸 K-팝의 ‘라라랜드’와도 같다. 어릴 때부터 무대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꿈을 키우며 모든 노래를 사랑해온 한 청년으로서, 그리고 그 스포트라이트 뒤에 숨겨진 어두운 시간의 무게를 아는 한 아티스트로서, 시대 속에서 흘러간 모든 콘텐츠와 무대를 꿈꿨으나 잊혀진 모든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헌사를 담아 그 시절의 노래들을 부른다.

그래서, ‘부 교수님’의 등장은 한 사람이 지나간 계절들을 기억하면서, 그 계절들이 있기에 성립할 수 있는 현재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방식이다. 좋아하는 노래들을 들으면서 “진짜 이때로 하루만 돌아가고 싶다.”라고 말했던 승관의 소망이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브이라이브에서 음악에 대한 진심을 담아 춤추고 노래하는 승관의 모습은 그 시절을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의 추억을 불러일으켰고, 누군가는 그가 되새긴 추억의 힘으로 다시 현재를 살아가기도 한다. ‘위버스 매거진’과의 인터뷰 동안 “추억이 주는 힘”이라는 말을 몇 차례 하던 승관은 인터뷰가 끝나갈 때쯤 이렇게 말했다. “청춘의 사전적 의미는 젊은 날이겠지만 저는 젊은 시절만 청춘이라고 정하고 싶지 않아요. 지금을 나중에 바라보면 또 청춘이라고 할 수도 있고 또 그 나이보다 더 많은 나이가 됐을 때 그때를 청춘이었다고 할 수도 있잖아요. 그냥, 계속 이렇게 살아가면서 쭉 추억하고 싶어요.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그걸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언젠가 시간이 흐르면 지금 ‘부 교수님’이 만든 이 라라랜드, ‘We Remember K-pop’ 또한 추억이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도 누군가는 지금의 승관처럼 말하며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준 것들을 떠올리지 않을까. “추억의 힘을 믿어요. 힘들었던 순간들도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하잖아요.”

글. 김리은
디자인. 전유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