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앤오프의 팬덤인 퓨즈 친구가 리트윗을 하고, 더보이즈의 팬덤인 더비 친구가 멘션을 달아서 알게 됐다.” 모 아이돌 그룹의 팬덤인 호연 씨가 ‘부 교수님’이라 불리는 세븐틴의 멤버 승관의 브이라이브 ‘We Remember K-pop’을 알게 된 과정이다. ‘We Remember K-pop’은 지난해 5월, 승관이 세븐틴의 팬덤 캐럿들에게 평소 좋아하던 노래들을 부르며 들려주던 브이라이브 ‘노래 듣고픈 캐럿들 모여랍’ 도중 탄생했다. 발라드 위주로 노래를 부르던 승관은 어느 순간부터 들려주고 싶은 노래들도 함께 틀어주기 시작했고, 이 곡들은 그가 학창 시절을 보냈던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의 K-팝이었다. 승관이 선곡한 노래들을 따라 부르다 감상 포인트를 이야기하며 추억에 잠기고, 좋아하는 노래들을 공유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모습은 SNS의 타임라인을 타고 어느덧 다른 팬덤들에게도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K-팝 팬들이 모여들어 자신들이 좋아했던 노래와 아이돌들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됐다. 승관은 이후 9월부터 본격적으로 ‘We Remember K-pop’을 통해 10여 년 전의 K-팝을 선곡하며 K-팝에 대한 사랑을 전했고, 그 시절의 노래들에 대한 추억과 정보들을 빼곡히 다루는 열정적인 모습에 아이돌 팬들은 그를 ‘부 교수님’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다양한 K-팝 영상을 공유하는 트위터 계정 ‘케이팝 고인물픽’은 ‘부 교수님’의 ‘시험 족보 계정’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승관이 브이라이브에서 언급했던 곡들이 ‘케이팝 고인물픽’에서 올린 곡들과 겹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2010년 전후로 학창 시절을 보내, 그때의 곡을 들으면 특정한 기억이 떠오른다. 학창 시절 친구들을 만났을 때도 그 시절의 음악 얘기를 꼭 하게 된다.”는 ‘케이팝 고인물픽’ 운영자의 말처럼, 그와 승관이 모두 10여 년 전 학창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승관이 ‘위버스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아이돌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학원에서 만나면, 이번 주 음악 방송 1위는 어떤 팀일 것 같다.”고 말한 것처럼, 그 시절 K-팝은 10대들이 만나면 서로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대화 주제였다. 스마트폰을 통한 콘텐츠 소비가 막 시작되던 2010년대 초반에는 TV의 영향력이 여전히 컸었고, SBS ‘강심장’ 같은 TV 토크쇼에서는 매주 인기 아이돌들이 출연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원더걸스의 ‘Tell me’처럼 걸 그룹의 춤과 ‘훅’을 세대를 가리지 않고 따라 하며 인터넷에 올려 ‘UCC(User Created Contents)’라는 단어가 새로운 미디어 환경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기도 했었다. ‘케이팝 고인물픽’ 운영자가 “2008년 이후를 일종의 K-팝 황금기”로 기억하는 이유다. 그때 학창 시절을 보낸 현재의 20대들에게 K-팝은 함께 듣고, 서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승관은 브이라이브에서 학창 시절을 이렇게 기억했다. “장기 자랑 때 여덟 반은 ‘Gee’를, 한 반은 ‘힘 내! (Way To Go)’를 그리고 한 반은 ‘8282’를 불렀다.”

어느 세대든 어른이 되면 자신의 학창 시절과 함께한 노래들을 소중하게 여기기 마련이다. 2010년 MBC ‘놀러와’는 1970~80년대 포크 음악을 다시금 주목하게 만든 ‘쎄시봉 열풍’을 일으켰고, MBC ‘무한도전’은 2014~15년에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로 1990년대에 활동한 1세대 아이돌을 소환했다. 이후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에 인기를 끌었으나, 오랜 활동을 지속하지 않아 근황이 불분명했던 가수들을 찾는 JTBC ‘슈가맨’이 2019년 시즌 3까지 이어지며 화제가 됐다.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을 통해 2018년 말부터 업로드된 ‘숨어서 듣는 명곡(이하 ‘숨듣명’)’과 최근 ‘다시 컴백해도 눈 감아줄 명곡(이하 ‘컴눈명’)’은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발표 당시 아주 큰 인기는 모으지 못했던 곡들을 재발굴하는 ‘문명특급’의 두 기획이 K-팝을 다루는 방식은 앞선 TV 프로그램들과는 또 다르다. ‘문명특급’을 비롯해 ‘We Remember K-pop’, ‘케이팝 고인물픽’ 등 1990년대생들이 K-팝을 추억하는 콘텐츠들은 유튜브, 브이라이브, SNS 등 TV 바깥의 미디어에서 탄생했다. 2020년대의 미디어 환경이 유튜브를 비롯한 인터넷 미디어가 주류라 해도 좋을 만큼 성장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1990년대생들이 바로 이 미디어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문명특급’의 홍민지 PD는 “‘컴눈명’ 역시, 구독자의 제안 메일에서 시작된 기획”이라며 ‘문명특급’의 기획들을 “이게 우리 문화인데 몰랐어요?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한 거예요.”라는 자세로 풀어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팀원들이 1990년대생인 당사자들이자 프로그램의 주인이었기 때문에, 우리 세대를 전지적인 시점에서 마치 제3자가 바라보듯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면서, 1990년대생이 뉴미디어 콘텐츠의 제작자이자 소재의 결정권자라는 것 역시 ‘문명특급’의 기획에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강조했다.

‘숨듣명’과 ‘컴눈명’ 외에도, ‘문명특급’은 2000년대 초반 10대들을 휩쓴 이른바 ‘인소(인터넷 소설)’ 유명 작가인 귀여니를 직접 찾아가거나, 최근 몇 년간 온라인에서 한 번쯤은 접해봤을 ‘퇴사짤’의 성우를 찾아가기도 했다. ‘문명특급’은 TV와 같은 매스미디어 또는 레거시 미디어에서는 기억해주지 않는 1990년대생의 문화적 경험들을 찾아 현재의 시점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숨듣명’과 ‘컴눈명’ 또한 이런 시도 중 일부라 할 수 있다. 1990년대생이 그들의 시각으로 재정립하는 2010년대. 또는 1990년대생의 기억 찾기. 원더케이 오리지널 채널의 ‘우리가 사랑한 노래’는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의 K-팝 대표곡을 신인 아이돌이 커버하는 기획이다. 이 중 일부 기획에 참여한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노을 PD는 “원더케이 채널의 다른 영상에 비해 이 시리즈는 재생 국가와 댓글 반응 모두 국내 시청자와 18~24세 연령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말했다. ‘우리가 사랑한 노래’ 시리즈의 선곡과 의상 선정 역시 “1990년대생이기에 내가 경험했던 아이템들을 초반부에 넣고, 후반부에서는 그때를 경험한 인턴들의 의견을 많이 반영”한 결과다.
승관에게 학생 시절의 음악 감상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그 당시 매달 1일이 되면, ‘알’이나 ‘팅’으로 컬러링을 딱 한 곡 설정할 수 있어, 최애곡을 고르고 골라 지정하고는 했다.”고 회상했다. 지금 10대에게는 생소할 법한 ‘알’과 ‘팅’처럼, 1990년대생이 대중문화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은 급변했다. ‘우리가 사랑한 노래’ 시리즈에 등장하는 폴더폰이나 미키마우스 모양의 MP3 플레이어가 스마트폰으로 대체되는 데 걸린 시간은 10여 년에 불과했다. 텍스트 파일과 음원 물리 파일을 넣을 수 있던 전자사전 또는 영상 파일도 볼 수 있었던 PMP가 빠르게 등장했다 사라진 시기이기도 했다. 1940년대 상용화된 LP를 카세트테이프와 CD가, MP3 등의 물리 파일이 CD를 대체하기 시작한 주기와 비교하면 너무나도 급격한 변화였다. 음악만이 아니었다.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가는 사이 하두리가 싸이월드로, 다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으로 바뀌었다. 이 SNS들로 다른 이용자와 DM(Direct Message)을 주고받다 보면 버디버디와 네이트온은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앞선 세대들은 청년 시절 내내 같은 방식으로 콘텐츠를 즐기다 기성세대가 될 즈음 시대의 변화를 체감하며 학창 시절의 음악을 추억으로 소비했다. 반면 1990년대생들은 학창 시절 소중히 다루던 재생 기기도, 메신저도, 메신저 속에서 친구들과 나누던 대화도 제품 단종이나 서비스 종료로 사라져버렸다. 학창 시절 경험이 사회에 나올 즈음 이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이 됐고, 그들은 스스로 기성세대보다 좀 더 일찍 그들의 기억을 직접 찾아나섰다.

1990년대생이 K-팝을 기억하는 것은 그래서 사회에서는 사라진 그들의 경험을 공식적인 역사로 남기는 작업이 되기도 한다. 1990년대생이 주축이 되어 그 시절 K-팝을 기억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그것이 다시 그 세대에 의해 인터넷 곳곳으로 퍼져 나간다. ‘숨듣명’ 영상이 업로드되거나 부 교수님의 강의가 끝나면 유튜브나 음원 플랫폼에는 소개된 음악들을 플레이리스트 형태로 만들어 공유한다. 또한 부 교수님의 강의는 브이라이브 종료 이후 편집 영상으로 축약되어 재업로드되고, ‘문명특급’이나 ‘우리가 사랑한 노래’는 ‘짤’의 형태로 변환되어 SNS와 게시판에 바로 공유된다. 지난 10여 년 사이 본인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얼리어답터일 수밖에 없던 이 세대는 그 변화를 따라가는 동시에 그 시절 사랑했던 대중문화 콘텐츠들을 통해 그들만의 공감대를 상기시키고 공유하며 유대감을 갖는다.

10대 시절의 승관이 듣고 20대의 부 교수님이 강의하는, 또는 ‘문명특급’과 ‘우리가 사랑한 노래’의 제작진들이 만드는, 그리고 ‘케이팝 고인물픽’의 운영자나 아이돌 팬 호연 씨가 사랑하는 K-팝은 잃어버릴 수 없는 이 세대의 경험들을 연결하는 접점이다. MP3 플레이어를 쓰던 10대 시절부터 유튜브로 음악을 듣는 지금까지, 그 시절 K-팝은 여전히 그들 곁에 있다. 많은 대중문화 콘텐츠들이 등장하고 사라지는 사이에도 그 시절의 K-팝 명곡들은 유튜브에서 얼마든지 자료를 찾을 수 있고, 지금 그들이 듣는 새로운 K-팝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2세대 아이돌의 곡들을 3세대와 4세대 아이돌이 등장한 지금 듣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1990년대생들은 K-팝을 매개로 그들의 10대를 어른의 시각으로 되돌아본다. 홍민지 PD는 ‘숨듣명’ 기획 초기 단계를 떠올리며 “자료 화면을 찾던 중 그 당시 아이돌의 무대 영상을 봤는데, 자신이 카메라에 잡히지 않아도 열심히 하는 모습이 프로페셔널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이게 학생 때는 보이지 않았는데, 커서 제대로 보니 그 안에 있는 노력이 보였다.”고 말했다. 홍민지 PD가 ‘문명특급’이 아이돌을 다루는 원칙 중 하나로 “그들을 전문가로 대하는 태도”를 삼은 이유다. “그저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으로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K-팝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성장하는 사회 초년생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들이 직장인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에 진출하고 보니, 자신의 학창 시절을 즐겁게 해준 노래들은 그 시절 아이돌들이 무대 안팎에서 노력한 결과물들이었다. 10대 시절에는 학생이기에 제대로 알지 못했거나, 부모님이나 주변 어른들의 부정적인 시선이나 편견으로 인해 인지하지 못했던 가치가, 이제 사회생활을 경험하는 나이에 이른 1990년대생들에게 보인다. 그들에게 10여 년 전의 K-팝은 단지 그 시절을 기억하는 수단이 아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한 10대를 지나 20대가 된 그들은 K-팝을 통해 자신의 인생이 어린 시절로부터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나의 기억을 사라지지 않게 해주는 과거의 음악은 현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지금 막 사회에 나서야 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부 교수님의 수강생들은 때로 ‘K-팝 고인물’이라 불리기도 한다. 호연 씨는 이런 호칭에 대해 “어원이 유쾌한 느낌은 아니라 조심해서 사용하는 말이긴 하다. 그러나 멈춰 있는 물 중에는 고여서 썩는 물도 있겠지만, 동시에 정수를 거쳐서 마실 수 있는 이로운 물이 되기도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케이팝 고인물픽’ 계정 운영자와 호연 씨 모두 과거의 K-팝을 즐기는 동시에, 최근에 나온 K-팝도 누구보다 빠르고 폭넓게 감상하는 이들이었다. 이전의 음악을 들으며 학창 시절 친구들과의 추억을 떠올리거나, 운동을 하거나 업무를 할 때 관성처럼 ‘노동요’로 감상하는 즐거움도 존재한다. 마냥 행복했다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무언가를 앞뒤 없이 열성적으로 좋아할 수 있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사라지다시피한 자신들의 10대를 복원하는 과정은 그때의 음악을 노력의 결과물로 존중하고, 그들 세대의 언어로 긍정하면서 새로운 아름다움과 가치를 찾는 것이기도 하다. 그 결과 그 노래를 부른 사람들, 들었던 사람 모두의 삶을 긍정하는 것으로까지 나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1990년대에 태어난 이 ‘K-팝 고인물’들은 사실은 파도에 가까운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계속해서 다시 되돌아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물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모양과 높낮이를 변하며 적응했고, 언젠가는 드넓은 대양으로 향하길 바라는.
글. 윤해인
디자인. 남대현(south_big)
비주얼 디렉터. 전유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