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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일권(리드머, 음악평론가)
사진 출처. VISLA Magazine

“끼리끼리 논다.”라는 말이 있다. 부정적 뉘앙스가 잔뜩 깔린 표현이지만, 힙합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우린 그런 이들을 가리켜 ‘크루’라 부른다. 바밍타이거(Balming Tiger)는 현재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기발하고 활력 넘치게 ‘끼리끼리 노는’ 이들이다. 

처음 그들에게 비친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는 병언(Byung Un aka 장석훈)이 있었다. 그는 유튜브에 통기타로 연주한 몇몇 커버 곡을 올렸고, 키스 에이프(Keith Ape)의 ‘잊지마(It G Ma)’를 커버한 영상이 제대로 터졌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트랩 넘버가 병언을 통해 어쿠스틱 랩 송으로 탈바꿈됐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편곡이었다. 혼자만의 심각한 세계에 사는 복학생 선배가 떠오르는 스타일을 한 채 만화 캐릭터처럼 노래하는 모습은 우스꽝스러웠지만, 음악과 랩 퍼포먼스만큼은 결코 웃기지 않았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았다.  

  • ©️ Balming Tiger

단숨에 슈퍼 루키로 떠오른 병언을 향한 관심은 자연스레 그가 합류한 크루 바밍타이거까지 이어졌다. 리더이자 총괄 프로듀서 산얀(Sanyawn)을 중심으로 래퍼, 싱어송라이터, DJ, 비트메이커, 프로듀서, 필르머, 그래픽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로 구성된 집단이다. 시작은 여섯이었다. 산얀과 병언을 포함하여 노 아이덴티티(No Identity/프로듀서), 어비스(Abyss/DJ), 잔퀴(jan’qui/필르머), 으니(euni/그래픽 디자이너)가 의기투합하여 2018년 첫 믹스테이프 ‘Balming Tiger vol.1 : 虎媄304’를 발표했다. 제목에서의 ‘호미’는 홍대 앞 호미화방 건물을 가리킨다. 노 아이덴티티의 작업실이 있던 이곳 304호에서 모든 곡이 나왔다. 크루에게 뜻깊은 장소인 셈이다. 또한 함께 뭉쳐 다니는 친구 ‘Homie’를 의미하기도 한다. ‘Balming Tiger vol.1 : 虎媄304’는 크루가 지향하는 음악 스타일과 세계관을 각인하는 첫 번째 결과물로서 더할 나위 없었다(현재까지 유일한 크루 앨범이기도 하다). 

바밍타이거 음악은 어느 한 장르로 규정할 수가 없다. 그들의 말과 같이 ‘얼터너티브 K-팝’이다. 랩은 중심에 있으나 힙합은 크루가 세운 전위적인 음악 세계의 일부일 뿐이다. 사이키델릭, 익스페리멘탈 일렉트로닉, 얼터너티브 R&B, IDM, 앱스트랙 힙합 등 기존의 틀을 깨며 생성된 장르가 혼재되었고, 여백과 노이즈, 소리의 조합과 멜로디가 끊임없이 충돌하고 화합한다. 여기에 정형화를 거부하는 플로우의 랩은 곡을 주도하기보다 비선형적으로 짜인 프로덕션과 한 몸처럼 나아간다. 가사도 그렇다. 종종 메시지와 스토리텔링이 부각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어감이 재미있는 단어나 의식의 흐름에 따른 문장이 조합되어 프로덕션과 함께 엉뚱하고 기괴한 무드를 조성한다. 로파이(lo-fi)하고 건조한 질감의 리듬 파트가 소울풀한 사운드로 둘러싸인 ‘CHEF LEE’ 폐쇄적인 구성의 벌스와 멜로딕한 후렴이 기가막히게 교차하는 ‘못 UNDERSTAND’ 등은 이 모든 특징이 집약된 대표 곡이다. 그들은 확실히 한국 힙합 씬을 넘어 대중음악계 전체에서 독보적인 집단이 되었다. 

다만 초반엔 병언의 존재감이 너무 컸다. 2018년 6월 딩고 프리스타일(dingo freestyle) 채널에서 공개된 ‘I’m Sick [DF Live]’ 클립에는 바밍타이거가 ‘유병언크루’로 소개됐을 정도다. 이렇듯 다소 ‘병언집약적’ 크루와도 같았던 바밍타이거는 그해 큰 변화를 겪는다. 병언이 솔로 활동을 위해 탈퇴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첫 믹스테이프의 전곡을 프로듀싱한 노 아이덴티티마저 개인 사정으로 팀을 나가면서 메인 퍼포머와 프로듀서가 동시에 사라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아마도 보통의 크루였다면, 흩어지는 절차를 밟았을 것이다. 그러나 바밍타이거에는 또 다른 외계적 재능의 아티스트 오메가 사피엔(Omega Sapien)과 소금(sogumm)이 있었다. 오메가 사피엔은 보다 힙합 정체성을 내포했지만, 역시 한 장르 안에 가두기엔 너무나도 자유분방한 래퍼이며, 소금은 순식간에 현혹될 만큼 독창적인 음색을 지닌 싱어송라이터다. 두 아티스트의 존재는 단지 병언의 공백을 메운 것이 아니라 바밍타이거의 커리어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했다. 

2019년에 발표된 싱글 ‘Armadillo’는 크루의 프런트맨 자리가 병언에서 오메가 사피엔으로 넘어가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은 곡이었다. 음악은 물론, ‘CHEF LEE’보다는 얌전하지만, 여전히 개성 있는 색감과 연출이 돋보인 뮤직비디오에 많은 이가 열광했다. 특히 미국에 기반을 두고 아시아계 아티스트의 활동을 지원해온 미디어 회사 88라이징(88rising)까지 직접 댓글을 달고 공식 채널에 소개하여 더욱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 중심에서 오메가 사피엔은 병언의 낮고 묵직하게 깔린 랩과 상반되는 하이 톤과 미들 톤 사이에서 타이트하게 쏘는 래핑으로 확실하게 존재감을 부각했다. 뮤직비디오에서 드러난 패션 스타일과 퍼포먼스적으로도 남달랐다. 2020년에는 정규 데뷔작 ‘GARLIC’을 통해 커리어의 무게감을 더했다. 그런가 하면, 소금은 2019년 두 장의 놀라운 앨범을 연달아 내놓으며 등장했다. 프로듀서 드레스(dress)와의 합작 ‘Not my fault’와 솔로 앨범 ‘Sobrightttttttt’는 약 한 달 간격으로 발매됐고, 전부 뛰어난 완성도로 호평받았다. 그가 대중적으로 유명해진 건 AOMG가 주도한 힙합 오디션 예능 프로그램 ‘사인히어’에서 우승하고부터지만, 이미 장르 마니아들에게는 적잖은 충격을 준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보컬이 독보적이다. 발음을 뭉개고 흘리며 전개하는 보컬은 곡에 따라 감흥이 미묘하게 달라진다. 때론 천진난만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건조하며 때때로 주술과도 같다. 시작하는 동시에 매료되고, 들을수록 갈구하게 한다.  
 

이처럼 오메가 사피엔과 소금의 활약으로 다시 태어난 바밍타이거는 국내 페스티벌과 해외 투어를 병행하는 와중에도 새 멤버를 영입하여 결속을 강화했다. ‘Sobrightttttttt’의 프로덕션을 책임졌던 프로듀서 bj원진(bj wnjn), 오메가 사피엔과 작업해온 두 명의 프로듀서 언싱커블(Unsinkable)과 이수호, 영상감독 홍찬희, 프로모터이자 에디터 헨슨 그리고 또 한 명의 음악적 광기와 엉뚱함으로 무장한 신예 래퍼 머드 더 스튜던트(Mudd the student)가 크루에 합류했다.

방탄소년단의 RM이 피처링한 신곡 ‘섹시느낌’도 바로 이 새로운 피들이 주축을 이뤄 완성되었다. bj원진이 프로듀싱을 맡은 가운데, 언싱커블과 이수호가 편곡을 담당했고, 오메가 사피엔, 머드 더 스튜던트 그리고 RM이 랩을 얹었다. 친숙한 단어로 조합됐지만, 어딘가 낯설고 느낌 있는 제목부터 ‘아시안 섹시’, ‘아시안 쿨’을 보여주고자 한다는 콘셉트와 이를 특유의 색감이 빛을 발한 영상미와 유쾌하고 중독적인 연출로 담아낸 뮤직비디오까지, 그야말로 바밍타이거가 고유명사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고스란히 말해주는 곡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생각지도 못한 협업의 주인공 RM의 파트다. 평소보다 톤을 낮추고 묵직하게 뱉는 오메가 사피엔과 일부러 라임과 플로우를 뭉개는 것도 모자라 안드로메다 영역으로 보내버리는 머드 더 스튜던트의 래핑에 이어 두 래퍼의 것보다 정돈되었지만, 곡이 지닌 무드 속에 완벽히 녹아든 랩을 선보인다. 그만큼 자연스럽다.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팝 스타와 세계적인 개성으로 무장한 인디 크루가, 그러니까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아티스트들이 음악 세계를 공유하고 협력하여 인지도와 음악성을 동시에 획득하는 결과를 낳았다. 진정한 시너지 효과다.

  • ©️ Balming Tiger

괴짜, B급 영화, 국경 초월, 기묘한 에너지, 자유분방, 4차원, 외계인, 얼터너티브. 이상은 바밍타이거로부터 연상되는 단어, 혹은 관념들이다. 그들이 내어놓는 음악과 영상은 물론, 크루가 운영되고 나아가는 방식을 모두 포함한다. 아무 연고가 없음에도 예술에 대한 욕구와 애정 아래 가족을 꾸린 바밍타이거는 누구보다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지만, 가장 원초적인 즐거움에 충실한 이들이 아닐까 싶다.

 

‘운 좋게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면 함께하고 방향이 다르면 편하게 떠난다.’는 그들의 운영 철학(?)은 아티스트에게 신선함을 최우선으로 요구하는 것이 안일하게 여겨져야 하는 시대임에도 상찬의 근거로 들 수밖에 없는 음악을 낳았다. 긍정적인 레퍼런스와 독창적인 시도의 경계에서 바밍타이거의 음악은 그렇게 하나의 장르가 되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