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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연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YG 엔터테인먼트

“일단 블랙핑크가 인기가 많다 보니 화장이나 패션이나 다양한 부분에서 그들을 많이 따라 하는 것 같아요. ‘Pink Venom’이 발표됐을 때도 틱톡에 거의 다 ‘Pink Venom’ 커버 메이크업이나 커버 댄스처럼 관련 동영상 콘텐츠가 정말 많았어요.” 한국 문화, 트렌드, 뷰티 등 한국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는 인도네시아 유튜브 크리에이터인 데보라(Debora)는 블랙핑크가 K-팝과 K-메이크업에 갖는 영향력에 대해 말했다. 그의 말처럼 블랙핑크의 새 앨범 ‘BORN PINK’의 선공개 곡 ‘Pink Venom’은 타이틀 포스터, 콘셉트 티저 등이 공개될 때마다 SNS에서 멤버들의 메이크업으로 연일 화제가 되었다. 일례로 뷰티 크리에이터 쥬시카(Jooshica)가 제작한 타이틀 포스터 메이크업 커버 영상은 조회 수 148만 회(9월 22일 기준)를 기록했다. 틱톡에서는 ‘blackpink pink venom makeup filter’라는 이름의 뷰티 필터까지 등장했다. 더 나아가 ‘Pink Venom’ 커버 메이크업을 다루는 ‘Pink Venom 메이크업 챌린지(#pink venom makeup challenge)’가 있었을 정도다. #blackpink pink venom, #blackpink filter, #blackpink outfits in pink venom, #maquillaje(makeup의 스페인어) pink venom, #pink venom makeup 등 ‘Pink Venom’은 물론 블랙핑크의 메이크업과 비주얼을 다룬 관련 틱톡 영상들의 합산 조회 수는 1억 3,270만 회(9월 22일 기준)에 달한다.

지난 8월 31일, 블랙핑크의 멤버 로제는 뷰티 브랜드 설화수의 글로벌 앰배서더로 발탁됐다. 설화수 측에서는 로제가 출연하는 앰배서더 필름에 K-팝에 주로 등장하는 ‘세계관’의 개념을 넣었고, K-팝 뮤직비디오 해석 전문 유튜버와 협업해 영상에 대한 해석을 유튜브에 올리는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설화수의 글로벌 앰배서더 운영을 담당하는 BA팀 배유리 담당자는 영상의 기획 배경에 대해 “‘눈 속에서 피어난 꽃’의 뜻을 가진 브랜드명이자 브랜드의 정신을 담은 문구에 착안하여 흙, 눈, 꽃 세 가지 요소로 브랜드의 시작과 여정을 영화처럼 아름답게 그려내고 싶었습니다.”라며 “타깃 고객들이 관심을 가지고 모여 있을 만한 영역(Music / Trendy / Hip Place / Art&Culture)을 다루는 채널 및 플랫폼을 통해 영상이 발신되고 바이럴되면서 대세감을 형성하고 싶었어요.”라고 설명했다. 그의 바람처럼 매니페스토 필름의 조회 수는 289만 회(9월 22일 기준), 글로벌 브랜드 앰배서더 필름은 107만 회(9월 22일 기준)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SNS로 확산 중이다. 로제를 통해 “브랜드 고유의 코어는 지키되, 좀 더 모던하고 세련된 브랜드의 이미지가 구축”되길 바랐다는 배유리 담당자의 말처럼, 블랙핑크와 같은 K-팝 스타는 SNS와 만나 뷰티 브랜드의 핵심적인 이미지는 유지하면서 전 세계에 브랜드를 알릴 수 있다. 오픈서베이의 ‘뷰티 트렌드 리포트 2022’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의 42.9%가 K-뷰티를 알고 있거나 제품을 구매해본 경험이 있고, K-뷰티를 인지한 주요 정보 접촉 채널로는 SNS가 1위로 40.4%를 차지했다. 이 중 유튜브가 57.3%, 인스타그램이 56.5%, 틱톡이 41.5%다. 그리고 블랙핑크는 K-팝 아티스트 관련 SNS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다. 블랙핑크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8,200만 명(10월 4일 기준)으로 전 세계 아티스트 중 1위다. 인스타그램에서는 리사가 8,272만(10월 4일 기준) 팔로워를 돌파하며 K-팝 아티스트 및 국내 연예인 기준 전체 1위다. 블랙핑크는 틱톡에서도 3,430만(10월 4일 기준) 팔로워로 국내 팔로워 순위 기준 3위다. 

 

“주로 틱톡 알고리즘을 통해서 K-팝이나 K-팝 커버 메이크업을 접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한류 때문에 화장도 K-팝 메이크업 커버 콘텐츠도 많이 있고요.” 데보라의 설명처럼 SNS에서 블랙핑크와 같은 K-팝 아티스트의 메이크업은 빠르게 전 세계 메이크업의 트렌드에 영향을 미친다.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의 ‘2020 코스메틱 트렌드 리포트 - 인도네시아’에 따르면 한국 드라마와 K-팝으로 인해 인도네시아 내 한류의 인기가 급증함에 따라 ‘한국 스타일’의 메이크업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데보라는 “원래 인도네시아 로컬 코스메틱 브랜드들이 아이섀도도 회색 같은 색을 사용했었다면, K-팝 커버 메이크업 영상 같은 것들을 보고 한국 메이크업을 따라 하기 위해서 주로 구매하는 화장품이나 색상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쇼피(동남아시아 최대 이커머스 플랫폼)에도 한국 코스메틱 브랜드가 많이 입점되어 있고요.”라고 말했다. K-팝 아티스트의 영향력은 음악과 뮤직비디오뿐만 아니라 K-팝 팬들의 메이크업까지 바꾸고, 팬들의 메이크업은 해당 국가에서 새로운 유행을 불러일으키며 해당 국가의 메이크업 트렌드를 바꾸기도 한다. 

블랙핑크의 ‘Pink Venom’ 타이틀 포스터는 핑크와 블랙을 주요 색상으로 설정한 두 가지 버전으로 공개됐다. 핑크를 중심에 놓은 첫 번째 버전에는 눈과 볼 주변의 핑크색 섀도, 블러셔를 사용해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극대화했고, 블랙을 활용한 두 번째 버전에는 멤버들이 강렬한 아이라인과 스모키 메이크업과 함께 입술 피어싱까지 했다. 이에 대해 블랙핑크의 메이크업을 담당하는 우선의 이명선 원장은 “‘블랙핑크는 사랑스러운 컬러를 써도 걸크러시일 수 있다.’ 이런 느낌이 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Pink Venom’의 메이크업은 타이틀 포스터와 뮤직비디오 등에서 강렬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담아낸다. 멤버들의 피어싱은 ‘Pink’이자 ‘Black’인 블랙핑크의 스타일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도구라 할 수 있다. 뮤직비디오에서 지수는 입술 한가운데 굵은 형태의 피어싱을, 제니는 얇은 링 형태의 피어싱을 착용했으며 로제는 입술 산을 따라 피어싱이 연상되는 비즈를 부착했다. 이후 공개된 ‘Shut Down’ 뮤직비디오에서는 리사가 입술 양쪽에 링 피어싱을 한 채 등장했다. 이명선 원장은 “입술 양쪽에 피어싱을 한 건 리사의 아이디어”라며 “리사가 직접 가져온 시안을 참고해서 잘 응용하면 멋있게 나올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멤버의 아이디어는 피어싱과 같은 독특한 액세서리의 활용으로 구현되었고, 이는 블랙핑크가 선보일 수 있는 스타일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배유리 담당자는 로제가 설화수의 글로벌 앰배서더가 된 것에 대해 “로제는 지금 블랙핑크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워가는 아티스트가 되었고, 현재 위치에 오기까지 어린 시절부터 꿈을 향해 정진하던 진취적이고 강인한 여성의 아이콘이어서 설화수가 추구하는 선구자적 정신과 맞닿아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블랙핑크는 K-팝의 슈퍼스타로서 많은 이들에게 선망의 존재이자, 음악과 퍼포먼스를 통해 강인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을 만큼 폭넓은 스타일을 수용할 수 있다. 그들은 무대 위에서 터프한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성공한 여성인 동시에, 일상에서 따라 할 수 있는 메이크업 트렌드를 제시할 수 있다. 블랙핑크가 전 세계에 미치는 광범위한 영향력은 여기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멤버들이 블랙핑크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각자 다양한 메이크업을 시도, 점점 더 할 수 있는 메이크업의 폭을 넓힌다는 점은 블랙핑크가 그들의 메이크업과 스타일링을 사랑하는 전 세계 팬들과의 접점을 만들어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블랙핑크 멤버들은 뉴트럴 메이크업과 투 아이라인 메이크업 등으로 많은 사람들의 메이크업에 영향을 미친 바 있다. 이명선 원장은 멤버들 각자의 메이크업에 대해 “최대한 멤버들의 비주얼과 각자의 개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다양한 메이크업을 시도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뮤직비디오나 음악 방송 무대에서의 메이크업과 패션 쇼를 비롯한 행사 참석 시의 메이크업, 예능 프로그램 출연에서의 메이크업 등 상황별 메이크업 또한 명확한 차이를 보여준다. 이명선 원장은 “행사나 예능 메이크업은 본연의 예쁨, 내추럴함을 표현하는 것”이고, “음악 방송이나 뮤직비디오 메이크업은 조명이나 배경도 너무 세고 화려해서 내추럴하게 메이크업을 하면 묻혀요. 너무 과하지는 않지만 또 조명에 날리지 않게 하는 게 포인트예요.”라며 각각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블랙핑크는 지난 8월 28일(현지 시간) 미국에서 열린 ‘2022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VMA)’ 레드 카펫에서 색조를 덜어낸 뉴트럴 메이크업을 선보였고, ‘Pink Venom’ 뮤직비디오에서는 핑크색, 연보라색, 때로는 카키색까지 사용한 과감한 스모키 메이크업을 내세웠다. 그만큼 메이크업을 할 때 블랙핑크를 보며 참고할 수 있는 옵션이 많아진다. 데보라는 “요즘 인도네시아에서는 내추럴한 메이크업이 인기인데, 지수가 그런 내추럴한 메이크업을 자주 해서 따라 해보고 싶었어요. 화장을 한 듯 안 한 듯한 자연스러운 느낌이 너무 예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블랙핑크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은 멤버들의 다양한 메이크업 중 하나를 선택하면서 그들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메이크업을 찾는 동시에, 선망하는 대상의 이미지를 반영할 수도 있다. 

 

‘Black’과 ‘Pink’가 동시에 가능한 블랙핑크의 이미지는 그들의 스타일에 일관성을 부여한다. 동시에 그들은 ‘Black’과 ‘Pink’라는 극단적인 범위 안에서 자연스러운 이미지를 강조한 뉴트럴 메이크업부터 강렬한 스모키 메이크업까지 무엇을 해도 어울리는 팀이 됐다. 그 점에서 블랙핑크의 메이크업은 그들이 무엇을 이루었는지에 대한 가장 시각적인 예일 것이다. “BLACKPINK IN YOUR AREA”라는 그들의 외침처럼 그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파고들었고, 그 영향력을 바탕으로 그들만의 ‘AREA’를 넓혀 나갔다. ‘Pink Venom’의 뮤직비디오처럼 한복과 가야금부터 올드스쿨 힙합 패션이 한 작품 안에 모두 들어가 있어도 어울리는 팀. 그러니까 ‘Black’과 ‘Pink’를 동시에 표현하는 팀이란, ‘Black’부터 ‘Pink’까지 모든 색깔을 표현하는 팀이라는 의미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더 과감한 색깔을 부여할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