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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예진
사진 출처. SBS 플러스, 티빙

“전에는 매칭을 원하는 상대의 모습을 드라마 속 주인공으로 예시를 들곤 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나는 솔로’에 나오는 영숙이 같은 스타일로 소개시켜달라고 하기도 해요.” 결혼 정보 회사 듀오의 박수경 대표의 말은 요즘 미혼의 성인 시청자들에게 TV 연애 프로그램의 인기를 실감케 한다. 연애 프로그램은 2022년의 멜로 드라마였다. 2021년 12월 18일 공개해 2022년 초반 화제로 떠오른 넷플릭스의 ‘솔로지옥’을 시작으로, 2022년 7월 15일에 첫 공개된 티빙 ‘환승연애2’는 ‘문명특급’에서 최종화 단체 관람을 기획할 만큼 화제를 모았으며,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집계하는 ‘비드라마 TV 화제성 TOP 10’ 지표에서 꾸준히 상위권에 오르는 ‘나는 솔로’는 박수경 대표의 언급처럼 결혼 정보 업체 가입자들에게 일종의 모델이 될 정도다. 그리고 웨이브(Wavve) ‘좋아하면 울리는 짝!짝!짝!’과 ‘솔로지옥 시즌2’, tvN ‘스킵’ 등 2022년 12월에만 세 개의 연애 프로그램이 공개됐다. 

  • ©️ Each program’s respective distributor.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인의 혼인 건수는 19만 3,000건으로 2020년 대비 2만 1,000건, 9.8% 감소했다. 1970년대에 통계를 작성한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이 중 30대 초반 남자, 20대 후반 여자의 혼인 건수가 가장 많이 감소했다. 정확한 통계를 내기는 어려운 부분이지만, 연애를 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연애 프로그램의 인기에 ‘대리만족’이라는 단어가 직관적으로 떠오를 수 있는 이유다. ‘솔로지옥’은 화려한 외모의 출연자들과 한겨울에 따뜻한 휴양지의 풍경을 통해 눈을 사로잡고, ‘좋아하면 울리는 짝!짝!짝!’은 인기 웹툰 ‘좋아하면 울리는’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반경 10m 이내에 들어오면 알람을 울리는 앱 ‘좋알람’과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연애 프로그램 ‘짝! 짝! 짝!’의 설정을 가져와 마치 웹툰 속 캐릭터들의 연애담을 현실로 옮겨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환승연애2’는 아예 매 회 오프닝에서 출연자들의 이름과 얼굴을 크게 소개하면서 음악을 덧붙이며 마치 드라마 오프닝 같은 연출을 한다. 연애와 결혼이 쉽지 않은 시대에 연애 프로그램을 통해 판타지에 가까운 타인의 연애 과정을 보는 것으로 대리만족을 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연애와 결혼이 그러하듯, 연애 프로그램의 시대가 찾아온 실제 이유에는 복잡한 현실의 맥락이 함께한다. 결혼 정보 회사 가연이 운영하는 데이팅 앱 ‘매치코리아’는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20년 1월에 비해 6개월 사이 가입자 수가 두 배 이상 증가했다.(‘한국경제’)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코로나 발생 첫해인 2020년 미혼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코로나 시대의 만남’에 관한 설문 조사에서는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이성과의 만남 성사가 어려워졌다.’는 답변이 전체 응답자의 53%였고, ‘코로나19 이후 이성과의 만남을 모색한 경험’이 있는 이들의(29.8%) 만남 경로는 ‘주변 사람의 소개팅 주선’, ‘동호회, 모임 활동’, ‘결혼 정보 회사, 소개팅 앱 이용’ 등이었다. 결혼과 연애의 숫자 자체는 줄어들었지만 의향이 있는 사람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누군가를 소개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이용한다. 박수경 대표에 따르면 이로 인해 결혼 정보 업체는 요즘 호황을 맞이하고 있다고 한다. “과거 결혼 건수가 30만이라고 가정했을 때 결혼 정보 업체를 이용하는 비율이 10%였다면, 결혼 건수가 20만으로 감소한 지금 오히려 결혼 정보 업체 이용률이 20%로 상승된 것과 같은 추세”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연애가 이른바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의 비중이 이전보다 줄고, ‘인만추(인위적인 만남 추구)’가 늘어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결혼과 연애가 줄어든 시대에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그만큼 신중해지고, 팬데믹은 사람을 만나는 방법을 바꾸었다.

즉, 연애 프로그램은 방송 콘텐츠라는 점을 제외하면 연애 또는 결혼을 원하는 다수의 출연자들이 모인 ‘인만추’ 행사다. ‘나는 솔로’의 연출자 남규홍 PD는 ‘나는 솔로’의 연출 방식에 대해 “결국 그 한정된 공간에서 짧은 시간에 일어나는 일을 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연애라는 가장 사적인 영역을 포착해 전달하는 형식은 그 자체로 지금의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논쟁적인 성격을 갖는다. 연애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은 각본대로 움직이는 드라마 출연자들이 아니며, 출연자들은 단기간에 누군가를 선택하거나 선택받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갈등을 겪고, 강한 압박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이에 대해 남규홍 PD는 “사람들이 관계를 맺으며 다양한 측면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다반사를 왜곡하지 않고 반영하려고 해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어떤 면에선 더 위험하다고 생각해요.”라며 “이 또한 사랑을 통해서 보여지는 감정과 행동들이기 때문에 애정을 목적으로 한 프로그램 안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남규홍 PD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나는 솔로’의 출연자들은 “애정을 목적으로” 무엇이든 거리낌 없는 태도를 보여준다. 출연자들은 합숙 둘째 날에 진행되는 직업, 연봉, 사는 지역, 반려동물 유무 등 자신의 생활환경에 대한 정보들을 단숨에 공개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현재 재테크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집이 자가인지 전세인지에 대해서도 말한다. 남규홍 PD는 출연자 선정 기준에 대해 “매력. 캐릭터 그리고 확실한 신분. 불투명하면 안 되죠.”라고 말했다. 제작진의 검증을 통해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일정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시간을 함께하며 연애 가능성을 탐색한다. 박수경 대표는 최근의 20~30대 회원들이 결혼 정보 회사를 이용하는 이유에 대해 “요즘 청년 세대는 어릴 때부터 전문가들한테 도움을 받은 경험이 많다 보니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결혼도 컨설팅을 받는다는 생각으로, 비용 대비 얻는 게 많다는 가성비 측면에서 결혼 정보 회사를 이용하겠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면서 “아무래도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 좋으면 하는 선택의 시대라서 그런지 아무하고나 하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는 것 같아요. 내가 원하는 게 다 갖춰진 사람이라야 결혼할 마음이 생긴다, 이렇게 얘기를 하니까요.”라고 최근 자사 회원들의 결혼관에 대해 말했다. 결혼은 물론 연애도 상대방에 대해 검토해야 할 것이 많고, 그만큼 오랜 과정이 걸린다. 연애 프로그램은 이 과정을 매우 압축해서 보여주는 ‘인만추’의 현장이다. 시청자들은 연애 프로그램을 통해 점점 하기 어려워지는 연애와 결혼에 대한 판타지를 만족시키는 동시에 온갖 조건과 감정을 확인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도 쉽게 이뤄지지 않는 현실을 보게 된다. ‘나는 솔로’에서 좋은 직장이나 높은 소득을 올리는 출연자도 인기를 끌지 못해 데이트를 하지 못하기도 하고, 사귀고 싶은 사람을 찾지 못해 “선택은 하지 않겠습니다.”를 말하는 경우도 많다. 

‘환승연애2’는 ‘나는 솔로’와 정반대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환승연애2’의 출연자들은 대형 주택에서 자신의 전 연인, ‘X’와 긴 시간 동안 일상을 함께한다. 그사이 역시 과거의 연인과 함께 나온 다른 출연자들 중 누군가에게 호감을 보낼 수도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출연자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눈길을 끌 수 있는 외모까지 갖췄다. ‘환승연애’의 연출자 이진주 PD는 폴인에서 프로그램 기획 배경에 대해 “이전의 연애”를 통해 사람들을 알아가며 나와 맞는 연애 상대를 찾을 수 있도록 구축한 “가상의 세계”라고 말했다. 그만큼 ‘환승연애’는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설정을 통해 출연자들이 서로의 감정에만 집중할 수 있게 만든다. 그러나 ‘환승연애2’ 첫 회에서 출연자들이 서로를 만나자마자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것은 MBTI다. 그리고 회가 거듭될수록 출연자들의 직업과 나이 등 ‘환승연애2’가 만든 “가상의 세계” 바깥의 조건들이 하나 둘씩 공개된다. 나이가 공개된 뒤 호칭을 바꾸거나 반말을 하는 것처럼, 이 조건들은 출연자들의 감정과 행동에 변화를 일으킨다. 출연자들이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을 원하는 ‘나는 솔로’가 믿을 수 있는 조건부터 공개하고 서로의 감정을 확인해 나간다면, 전 연인과의 감정을 안고 들어와 새로운 사람에 대한 감정까지 생기곤 하는 ‘환승연애2’는 초반에는 상대방의 외모, 스타일, 언행 등을 통해 감정을 교류한 뒤 현실적인 조건들 또한 공개하게 만든다. 그런데 외모, 스타일, MBTI, 나이, 직업, 게다가 성품까지 마음에 들어도 ‘환승연애2’의 출연자들은 좀처럼 커플이 되기 어렵다. ‘X’라 불리는 전 연인의 존재 때문이다. ‘X’의 정체를 서로 감춘 상황에서 출연자는 누군가에게 감정을 주다가도 상대방이 ‘X’를 계속 마음에 두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 반대로 자신 또한 새로운 사람에게 마음이 가면서도 ‘X’에게 흔들리기도 한다. 모든 것이 다 만족스러워도 상대방의, 심지어 나의 마음도 알 수 없다.

 

남규홍 PD가 ‘나는 솔로’에 대해 “지금 이 시점에서 한국인의 사랑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라며 “어떻게 보면 한국인의 사랑 그리고 사랑을 통해서 본 한국인의 모습, 특히 남녀의 어떤 관계나 행동이나 감정들에 대해 보고 싶다면 ‘나는 솔로’를 통해 굉장히 정확하게 볼 수 있어요.”라고 말한 데는 이유가 있어 보인다. ‘나는 솔로’든 ‘환승연애2’든, 지금 한국의 연애 프로그램들은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하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보여준다. 그래서 그 과정을 압축하여 대신 보여주는 연애 프로그램들은 ‘대리만족’할 수 있는 판타지가 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만나고 좋아하는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 것인지 그래서 점차 ‘인만추’를 추구하며 가능성을 높이려는 현실을 볼 수 있다. ‘나는 솔로’가 결혼을 원하는 사람들을 통해 결혼이 상대방의 나이, 직장, 수입 등을 보지 않을 수 없고, 그 와중에 작은 식사 습관과 ‘장거리 연애’ 여부까지 파악해야 하는 숨차는 과정임을 미사여구 없이 보여준다면, ‘환승연애2’는 판타지적인 설정과 분위기 속에서 연애가 지금의 청춘에게 심리적으로도 얼마나 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인지 보여준다. 

 

‘환승연애2’의 제작진은 출연자들이 모인 후 각자 전 연인이 작성한 ‘나의 X 소개서’를 읽는 것으로 자기소개를 대체하게 하고, 나에게 관심 있다는 문자를 보낸 사람이 ‘X’인지 아닌지를 알려주면서 계속해서 마음을 흔든다. ‘환승연애2’에서 출연자들이 누구의 ‘X’였는지 밝혀질 때마다 ‘X’에게 호감을 느낀 이유, 연애 과정, 헤어진 이유에 대한 인터뷰가 나온다. 인터뷰 사이에는 두 사람의 행복했던 시간을 담은 기록들도 공개된다. 다른 연애 프로그램들이 처음 만난 사람들이 관계를 맺는 과정을 보여준다면, ‘환승연애2’는 새로운 만남의 과정을 담는 동시에 과거의 연애를 통해 쌓인 출연자들 간의 서사를 동시에 진행한다. 좋았고, 익숙하고, 어느 정도 검증됐지만 끝난 연애가 있다. 다른 한편에는 역시 좋고, 동시에 새롭고, 하지만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연애가 있다. ‘환승연애2’는 ‘X’의 존재를 통해 리얼리티 프로그램 안에서 드라마와 같은 극적인 사건들을 일으키면서, ‘X’가 누구인지 맞추는 추리, ‘X’가 밝혀진 뒤에는 그들의 마음이 어떻게 변화할지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게 만드는 심리 스릴러적인 요소를 동시에 갖췄다. ‘나는 솔로’가 2022년의 다큐멘터리라면, ‘환승연애2’는 논픽션으로 만든 2022년 최고의 픽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연애를 새로 시작하는 것이 단지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 아니라 자신이 과거로부터 안고 있었던 심리적인 무게 또는 문제의 극복이라는 사실이 있다. 연애 한 번 할 때마다 얼마나 많은 일들과 감정의 소모와 지난한 시간들이 이어질 줄 이미 알면서도 새로운 상대를 만나야 한다. 또는 그 시간들을 함께한 상대와 다시 시작할 마음을 먹거나, 마음과 달리 그 익숙함에 흔들리기도 한다. ‘환승연애2’에서 ‘X’든 새로운 사람이든 연애의 시작을 막는 사람은 누구보다 자기 자신의 마음이다. ‘인만추’를 통해 새로운 연애 상대를 찾고, 좋은 조건과 마음에 드는 성격을 가진 사람을 찾는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에는 돌고 돌아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연애가 아닌 연애 프로그램을 통해 연애에 대해 배우고 이야기하려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팬데믹 이후의 연애는 더 복잡하고, 더 어렵다. 그리고 연애를 하지 않아도 연애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연애 프로그램은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