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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후령, 김겨울(작가),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SBS

‘악귀’ (SBS)

송후령: 김은희 작가의 신작으로 주목받은 드라마 ‘악귀’는 악귀에 씐 구산영(김태리)과 악귀를 볼 수 있는 민속학 교수 염해상(오정세)이 구산영에게 붙은 악귀의 기원을 찾는 과정을 그린다. 그러나 ‘악귀’는 귀신과 민속학을 활용한 오컬트 장르물 속에서 현실 사회의 일면들을 비춘다. 보증금을 올려 달라는 집주인의 압박에 시달리는 구산영, 보이스피싱을 당한 구산영의 어머니, 원귀가 되어 세상을 뜨지 못한 가정 폭력의 목격자, 반지하 방에 살아 몰래카메라 범죄에 쉽게 노출되는 공시생, 고리대금업자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고 자살귀가 된 고시원에 살던 청년들. 인간 사회가 원한을 품은 귀신을 만들고, 악귀는 인간의 가장 약한 점을 파고들어 욕망을 먹으며 커진다는 설정은 드라마 속 ‘악귀’가 인간의 욕망과 이를 통해 생겨나는 사회의 어두운 일면에 대한 은유처럼 보이게 한다. 구산영의 몸에 깃든 태자귀 역시 아이를 굶겨 귀신을 만드는 주술인 염매, 즉 과거 인간의 악습으로부터 탄생한 존재다. 악귀 들린 모습을 머리를 풀어 헤친 ‘그림자’로 표현하는 시각적 연출처럼, 구산영의 의식을 지배한 악귀가 일삼는 악행도 구산영이 가진 내면 기저의 욕구가 발현된 결과라는 점에서 작중 크고 작은 ‘악’은 모두 인간으로부터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구산영의 말은 ‘악귀’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함축한다. “귀신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이에요.”

‘당신은 사건 현장에 있습니다’ - 모데스토 가르시아(글), 하비 데 카스트로(그림)

김겨울(작가): 성큼 다가온 여름휴가, 어떤 책을 준비하면 좋을까? 휴가 기간을 맞아 독서를 다짐하는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휴식이 될 만한 책이 있다. 모데스토 가르시아와 하비 데 카스트로가 코로나19 시기에 그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내용을 모은 이 책이다. 글과 그림이라면 그림책인가? 그림으로 이루어진 책이지만, 제목이 시사하듯 단순한 그림책은 아니다. 책은 말 그대로 당신을 사건 현장으로 데려간다. 공항을 비롯해 호텔, 의문의 저택, 극장 분장실, 여객선의 수영장 등 세계 곳곳에서 당신은 살인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 책은 추리 게임의 형식을 지면으로 충실히 옮겨놓고 있다. 케이스의 첫 페이지에서는 살인 사건이 벌어진 공간을 전체적으로 보여주고, 그 다음 페이지부터는 그 공간의 구석구석을 조금 더 자세히 보여준다. 그림만 보고 범인을 맞춰야 하지만 어렵다면 약간의 힌트도 준비되어 있다. 사건을 해결했다면 사건의 진실 페이지에 자세히 기술된 내용과 자신의 추리를 맞춰보면 된다. 약간의 조언을 하자면 그림을 매우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고, 국가마다 다른 문화나 언어에 대한 지식도 조금 있어야 한다. 총 12개의 케이스가 준비되어 있으니 시간을 보내기에 충분한 분량. 최근에는 2권도 출간되었다. 어떤 전자기기도 없이 책만으로 추리 게임을 충실히 즐길 수 있는, 휴가철에 딱인 책.

‘우리’ – 해서웨이(hathaw9y)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음악을 듣다 보면 나이나 경력과 상관없이 자신의 음악적 본질을 동물적으로 짚고 있다는 느낌이 오는 이들이 있다. 세이수미, 보수동쿨러, 검은잎들 등과 함께 최근 부산을 대표하는 밴드로 활약하고 있는 해서웨이(hathaw9y)의 첫 정규작 ‘Essential’을 들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이들은 알고 있구나. 자신들의 음악을 이끌어가는 것이 너와 나, 우리 그리고 그 모두를 이어주고 있는 동그랗고 따뜻한 마음이라는 걸.’ 

2020년 1월 결성한 3인조 밴드로 이제 막 3년을 채운 이들의 ‘정수(Essential)’는 언제나 그래왔듯 온통 느긋하다. 자극적인 걸로 가득 찬 요즘 세상에 너무 여유로운 건 아닌가 안 해도 될 걱정마저 들 정도다. 다행인 건 지금까지 석 장의 EP와 한 장의 합작 앨범, 한 곡의 싱글을 발표해오며 다져온 해서웨이만의 따뜻한 안정감이 조용하지만 강하게, 여리지만 강단 있게의 전형이라는 점이다. 앨범에 담긴 아홉 곡은 하나 같이 문장 앞에 ‘실례합니다’나 ‘죄송하지만’을 붙이고 이야기의 빗장을 조심스레 열고선, 이내 휘몰아치는 기타 연주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온통 휘저어 놓는다. 앨범의 마지막 곡 ‘우리’도 그렇다. 마음이 무너져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은 순간 환청처럼 들려 오는 “내가 기억하고 찾아낼테니”라고 하는 다짐. 그럴 때마다 우리를 몇 번이고 일으켜 세우는 “우리가 우리였던 날들”이 주는 확신. 지켜주고 싶을 정도로 순하고 용감한, 요즘 보기 드문 마음을 들려주는 밴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