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dit
글. 임수연(‘씨네21’ 기자), 최지은(작가), 나원영(대중음악 비평가)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Babylon Records

‘육사오(6/45)’

임수연(‘씨네21’ 기자): ‘포레스트 검프’의 깃털처럼 로또 한 장이 군사분계선 근처 부대에 날아온다. 제대까지 100일도 채 남지 않은 천우(고경표)는 우연히 주운 복권이 1등에 당첨됐다는 사실을 알고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웃음을 흘리고 다닌다. 하지만 이 종이 쪼가리가 찰나의 실수로 군사분계선을 넘어가버리면서 목숨을 건 협상이 시작된다. ‘공동경비구역’이 아닌 ‘공동급수구역’에 모여 남북한 병사들이 당첨금을 나눠 갖는 계획을 짜는 그림에서 알 수 있듯, ‘육사오(6/45)’는 ‘공동경비구역 JSA’에 바치는 노골적인 오마주다. 정확히는 코미디 버전의 ‘공동경비구역 JSA’가 되기를 갈망한다. 남북 정세에 진지한 코멘트를 하거나 신파 코드로 대중성을 확보해보겠다는 욕심 없이 오로지 관객을 웃겨주겠다는 한 가지 목표만을 향해 달려가는데, 이 소박한 태도가 꽤 적중한다. 고경표, 이이경, 음문석, 박세완, 이순원, 곽동연, 김민호 등이 쉴 새 없이 펼치는 코미디 구력은 ‘극한직업’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당첨금 수령을 보장받기 전까지 보험용으로 남북 병사를 한 명씩 맞교환하다 벌어지는 소동이나 ‘공동급수구역’이 브레이브 걸스의 ‘롤린’으로 하나 되는 풍경은 너무 유치하지 않느냐며 성급하게 거부하지 말 것. 예상했던 그림인데도 저항 없이 웃게 되는 것이 ‘육사오(6/45)’의 매력이다.

‘스트릿 맨 파이터’(Mnet) 

최지은(작가): “여자 댄서들의 서바이벌에는 질투, 욕심이 있었다면 남자 댄서들은 의리와 자존심이 자주 보였다.” 2021년 가장 화제성 높은 예능이었던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성공에 힘입어 제작된 ‘스트릿 맨 파이터’ 권영찬 CP는 말했다. 두 프로그램을 가장 가까이서 본 사람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비교다. 정작 ‘스트릿 맨 파이터’ 첫 회에서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한 장면이야말로 여덟 댄스 크루 간의 노골적인 견제와 폄하로 가득한 기싸움이기 때문이다. 경연 프로그램이니만큼 도발과 경쟁은 당연히 존재할 수밖에 없지만,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을 향한 ‘존중 없이(no respect)’ 욕설과 비속어만 난무하는 세계에서 ‘의리’와 ‘자존심’을 발견하기란 어렵다. 그나마 배틀이 시작되며 피어오른 열기가 식지 않게 하려면, 제작진도 댄서들도 존중이란 어떤 의미인지 카메라 안팎에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언제라도 (feat. 김범수) (Prod. 이효리)’ - 베이빌론

나원영(대중음악 비평가): ‘EGO 90’S’는 명민한 복원을 위해 면밀히 기획된 음반인 덕에 가창자들의 음색과 창법이 발생시키는 호소력부터 이를 철저히 지탱해주는 음악적 풍경까지 세밀하게 편집해, 욕심 가득 채운 만큼의 충실함을 뽑아냈다. 베이빌론이 서로의 시간대에 너르게 퍼져 계속되어온 동료들과 함께 마련한 대잔치의 마무리에, 당대를 건축해낸 작편곡가 강화성뿐만 아니라 작사·작곡에 이효리와 노래에 김범수가 참여했다는 점은 당장 비슷한 시기의 동일한 양식에 대한 향수 섞인 재현을 추구했던 ‘놀면 뭐하니’를 비롯한 예능 체계 속에서 두 음악인이 하나의 캐릭터로 쓰였던 경우를 떠올려보면 무척 의미심장하다. ‘언제라도’는 이들을 지금 시점의 텔레비전에서 써 먹기 좋은 소재로 삼기보다 그들이 이전의 가요에서 값지게 실현했던 가능성을 불러오며, 과거의 힘을 보존하면서도 현재에 구현하는 데에도 출중히 성공하니까. 뭉실한 신스 음과 감칠맛 나는 퍼커션, 정서적 여정을 화려하게 푸는 멜로디와 그 주역으로 모든 걸 완벽하게 연출하는 목소리까지. 그러한 가치는 과거의 헌정만큼이나 현재의 확언 또한 동시에 해낸다는 점에 있기도 한데, ‘EGO 90’S’에 모인 이름들과 그 유산은 베이빌론 본인부터가 그렇듯 동시기 곳곳에 자리하다가 이렇게 “언제라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You can call me anytime / 언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