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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임수연(‘씨네21’ 기자), 윤희성,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Marvel Studios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임수연(‘씨네21’ 기자): 슈퍼히어로 무비의 주인공 배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프랜차이즈는 어떻게 돌파구를 찾아갈 것인가. 전편의 매력적인 빌런 킬몽거(마이클 B. 조던)는 이미 사망했고 블랙 팬서인 티찰라를 연기했던 채드윅 보스만이 더 이상 마블과 함께할 수 없게 되자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프로젝트는 휴식기를 갖고 시나리오를 재정비했다. 채드윅 보스만을 CG로 되살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던 라이언 쿠글러는 ‘와칸다 정신’의 분명한 계승이 가장 진실 어린 애도라고 판단한 듯하다. 티찰라의 장례식으로 문을 연 영화는 와칸다 외에 비브라늄을 보유한 해저 왕국 탈로칸과 통치자 네이머(테노치 우에르타)를 등장시켜 블랙 팬서의 자리를 물려받을 슈리(티찰라의 여동생, 레티티아 라이트)에게 전편에서 제기됐던 정치적 질문을 다시금 던진다. 여러 설정에서 아스텍 제국과 식민지 역사를 연상시키는 탈로칸 왕국이 슈리에게 던지는 도발은 비브라늄 강국이 된 와칸다가 어떤 외교를 펼쳐야 할 것인가를 놓고 갈등했던 티찰라와 킬몽거의 대립을 상기시킨다. 전편이 그랬듯 마틴 루터 킹의 비폭력 저항을 따르는 갈등 봉합은 자칫 영웅의 무결함을 내세우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선대 영웅의 정신을 이어감으로써 시리즈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추모의 역할을 다한다는 점에서 이상적인 속편이다. 티찰라의 죽음 직후 와칸다를 통치한 라몬다 여왕(안젤라 바셋)과 와칸다 최고의 장군 오코예(다나이 구리라) 그리고 비브라늄 탐사 장치를 흥밋거리로 개발했다가 CIA의 표적이 된 MIT 학생 리리 윌리엄스(도미니크 손) 등 주요 캐릭터들이 여성, 특히 계승자의 위치에 청년 세대를 놓은 대목에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페이즈 4의 지향점을 엿볼 수 있다. 

‘영 로열스 2’ (넷플릭스)

윤희성: 우연히 만난 소년 둘이 사랑에 빠진다.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일을 극복하고 나면 둘은 세상에 정직해질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줄여서 쓰자면 ‘영 로열스’는 흔한 하이틴 러브스토리처럼 보인다. 여기에 소년 하나가 스웨덴의 왕자이며, 둘이 만난 곳은 유서 깊은 기숙학교인데, 다른 한 명은 서민 계층이라는 설명까지 더하면 만화든 드라마든 한 번쯤 봤음직한 의심이 강하게 들지도 모른다. 왕좌로 상징되는 기성의 관습 앞에서 의무와 자유, 도덕과 욕망을 계속 무게 달아야 하는 어린 학생들이 모여서 할 일이란 결국 서로에게 쉽게 상처를 주고 그만큼 절실하게 버팀목이 되어줄 누군가를 찾는 것뿐일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작품은 상투적인 것이 반드시 게으른 게 아니라는 증명을 시도한다. 소년들의 사랑은 끊임없이 정치의 영역 안에서 이해되거나 은폐되고, 이것은 ‘나답게 살기’가 영 제너레이션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되새기게 한다. 수업 시간, 학생들이 스웨덴의 레즈비언 문학가인 카린 보예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며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은 이번 시즌의 야심찬 연출이다. 무엇을 말해야 좋을지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소년들에게 빌려온 문장은 자신의 진심을 납득하고 감정을 배우게 하는 마중물이다. 그리고 이들은 시선을 통해 서로가 성장하고 있음을 함께 발견한다. 마침내 주인공인 빌헬름(에드빈 뤼딩)이 의무와 자유 사이에서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고뇌하게 만드는 관습 자체가 모욕이라는 것을 인정할 때 어쩌면 이들이 ‘뉴 로열스’에 대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마저 품게 된다. 질풍노도 왕자님의 첫사랑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새 시대의 새 리더에 대한 고민을 북돋우는 전개라니. 어느 쪽으로도 딱 지금 보기 좋은 드라마인 것이다. 

‘The Loneliest Time (Feat. Rufus Wainwright)’ - Carly Rae Jepsen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많은 사람에게 칼리 레이 젭슨은 아직도 틴팝 메가 히트 곡 ‘Call Me Maybe’ 속 소녀로 기억된다. 2012년 당시 25세였던 그는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경력의 끝을 상상했다고 한다. “팝 시장에서 제가 경력을 쌓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그 치열함으로 칼리는 원 히트 원더 아티스트에서 지난 10년 동안 아름다운 멜로디와 실험 정신 가득한 댄스 팝을 선보인 우리 시대 최고의 싱어송라이터 중 한 명으로 거듭났다. 지난 10월 21일 발표한 여섯 번째 정규 앨범 ‘The Loneliest Time’ 역시 훌륭하다. 다정다감하고 우아하며 섬세하다. 팬데믹 시기의 외로운 감정으로부터 사랑의 이면을 엿본, 앨범 제목과 동명의 마지막 곡에 이르면 눈물이 핑 돈다. 알프레드 히치콕과 조르주 멜리에스의 상상을 담고 1970년대 디스코의 클리셰를 블렌딩한 이 노래에서 칼리 레이 젭슨은 새천년 캐나다를 대표한 싱어송라이터 루퍼스 웨인라이트와 함께 진공의 시간을 극복하여 새로운 별나라 여행을 떠난다. 하필이면 테일러 스위프트의 ‘Midnights’와 같은 날 앨범을 내는 바람에…. 이마저도 ‘인디 달링’답다. 영원히 그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