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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임수연(‘씨네21’ 기자), 김지은, 강일권(대중음악 평론가), 김겨울(작가)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넷플릭스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

임수연(‘씨네21’ 기자): 2019년 개봉했던 추리극 ‘나이브스 아웃’의 속편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공개됐다. 전편에 이어 다니엘 크레이그가 연기한 명탐정 캐릭터 브누아 블랑이 의문의 살인 사건을 파헤친다. 온라인 네트워크 기업 ‘알파’로 억만장자가 된 마일스 브론(에드워드 노튼)은 매년 자신을 ‘붕괴자’라 일컫는 지인들과의 모임을 주최한다. 코네티컷 주지사부터 패션 패션 디자이너와 인플루언서까지 다양한 사회 고위층으로 구성된 이들은 마일스의 자본과 긴밀히 엮여 있으면서 서로에게 적의를 숨기고 있다. 고립된 그리스 섬의 호화 저택, 갑작스런 살인 사건, 명탐정의 추리 그리고 초반부터 깔려 있던 복선과 서술 트릭의 회수 등으로 짜여진 구조는 고전 추리물의 법칙을 정직하게 따라간다. 더불어 포스트 트럼프 시대를 겨냥한 사회 풍자는 영화의 유머 스타일은 물론 사건의 내막과도 연결되며 이 장르의 동시대성을 담아낸다. 특히 마일스 브론 캐릭터를 둘러싼 디테일이 최근 트위터를 인수한 어느 기업가를 노골적으로 연상시킨다. 조셉 고든 레빗의 목소리 출연을 비롯한 다양한 카메오가 곳곳에 등장해 보다 가볍고 재밌게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된, 성공적으로 확장된 시리즈 영화.

‘겁도 없꾸라’ (유튜브)

김지은: 르세라핌의 멤버 사쿠라의 첫 단독 웹 예능 ‘겁도 없꾸라’에서 그는 프로그램 소개처럼 ‘겁도 없이 무엇이든 도전’한다. 김장 100kg를 하고, 강남 한복판에서 붕어빵을 팔고, ‘오징어 게임’ 스턴트 팀에게 액션을 배우더니 이번에는 주우재와 ‘누가 더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는지’를 가르는 토론에 도전한다. “사쿠라 씨 울어도 소용없어요.”라는 주우재에 맞서 사쿠라도 “이기려고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답하며 시작한 토론은 진행될수록 승패를 가리는 논쟁보다 ‘둘의 성격이 얼마나 비슷한가?’를 설명하는 것으로 흘러간다. 의견이 갈린 첫 논제를 제외하고는 대화를 할수록 서로를 ‘여자 주우재’와 ‘남자 사쿠라라고 표현할 정도로 주장이 겹치는데, 처음에는 토론 진행을 위해 억지로 반대 의견을 말하려고도 해보지만 ‘MBTI는 과학이다.’, ‘한 번 사는 인생 젊을 때 사고 싶은 것 다 사자.’에 이어 ‘귀신은 없다.’라는 의견까지 겹치자 결국 룰을 ‘같은 의견을 누가 더 설득력 있게 주장하는지’로 변경해 진행하기에 이른다. 귀신이 없는 이유에 대한 상대의 주장에 동의의 말을 얹어가며 심판 신아영 아나운서를 설득하는 둘의 모습은 대결 상대가 아니라 한 팀처럼 보인다. 마지막 논제에서 겨우 의견이 갈려 대결의 본래 의도를 지키며 마무리했지만, ‘겁도 없꾸라’의 이번 편을 다 보고 기억에 남는 것은 단연 서로의 주장에 격렬하게 끄덕이던 사쿠라와 주우재의 고개다. 

‘축 (Sag)’ - 유라 (youra) & 만동 (Mandong)

강일권(대중음악 평론가): 싱어송라이터 유라와 밴드 만동이 함께 만든 음악은 크로스오버 재즈의 외피를 입었지만, 실제로는 얼터너티브 음악이나 다름없다. 최소 두 가지 이상의 장르가 뒤섞이고, 실험적인 구성 혹은 사운드가 도드라지는 음악. 이젠 시도보다 트렌드에 가까워진 ‘탈장르’는 그들의 합작 EP ‘이런 분위기는 기회다 (The Vibe is a Chance)’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6개의 수록곡 중 가장 서정적인 무드가 지배적인 ‘축 (Sag)’만 들어봐도 그렇다. 마이너풍의 어쿠스틱 팝처럼 시작된 곡은 유라의 보컬이 얹히면서 재즈, 팝, 소울이 만나는 경계로 가 닿고, 첫 벌스 이후의 연주에선 익스페리멘털 재즈(Experimental Jazz)로 변한다. 뿐만 아니라 네오포크(Neofolk) 요소도 녹아들었다. 특히 보컬과 연주가 참으로 양가적이다. 평화로운 듯 애수가 느껴지는 기타 리프가 차오르고, 쌀쌀한 듯 포근한 보컬이 가슴을 짓누르다가 어루만지기를 반복한다. 생소한 단어를 쓰는 데 주저함이 없는 유라의 가사는 이 독창적인 곡의 완벽한 마지막 퍼즐이다. “사방이 난파”, “나의 수렁을 들쳐업고”, “증폭되는 물음 앞에” 같은 라인을 탁월한 메시지와 맥락 안에서 구사할 줄 아는 아티스트는 흔치 않다. ‘축 (Sag)’은 올해 가장 실험적이며 신선한 앨범을 대표하는 곡이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 은유

김겨울(작가): 한 해를 떠나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요즈음, 습관적으로 다짐하게 되는 것은 나의 안녕과 성공이다. 내 삶을 잘 갈무리하고 새로운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자 마음을 다잡는 사람이 많은 때지만, 딱 그만큼 이웃을 돌아보고 따뜻한 마음을 전하기 좋은 때이기도 하다. 이렇게 추워진 시기에 몸도 마음도 추울 사람들의 삶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사회적 약자를 향한 성실함으로 무장한 은유 작가의 글을 읽어보아도 좋겠다. 자신을 겸손한 목격자라고 말하는 저자가 이 책에서 전하는 이야기는 현장 실습생이라는 명목으로 산업 현장에 투입되었다가 사고를 당한, 학생도 노동자도 아니었던 특성화고 학생들의 이야기다. 외식업체, 자동차 공장, 콜센터, 생수 공장 등 우리 삶에 필수적인 노동 현장에서 고등학생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 알지 못하는 아이들의 죽음’에 귀 기울이는 것은 곧 우리 삶에, 우리 각자의 노동 현장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서로가 서로의 삶에 기꺼이 경청을 내어주는 연말과 연초를 보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