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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후령, 임수연(‘씨네21’ 기자), 나원영(대중음악 비평가)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왓챠

‘다음 빈칸을 채우시오’ (왓챠 오리지널)

송후령: ‘다음 빈칸을 채우시오’는 ‘고도로 물질화된 현대인의 삶은 어떤 경우라도 9개의 사물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가상의 심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다. 한 사람의 삶을 이루는 사물 9개에 담긴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4인의 K-팝 아이돌이 “당신의 삶을 사물로 설명할 수 있나요?”라는 물음에 따라 각자의 주변인이 보내준 ‘나’와 관련된 사물 중 8개를 선택하고 스스로 자신을 표현하는 마지막 1개의 상징물을 고르기까지의 과정을 비춘다. 우리에게 익숙한 무대 위의 모습이 아닌 ‘인간’ 오마이걸 효정, 더보이즈 큐, 에이티즈 우영, 르세라핌 김채원으로서의 일상을 담았다. 그 두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르세라핌의 김채원. 누군가는 김채원을 두고 모르는 게 있으면 술술 잘 풀어 정답을 찾아주는 ‘빗’과 같은 언니라고 말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김채원에게서 파도에 맞고 바람에 스치며 닳아가는 ‘돌’을 떠올린다. “어떤 모양이 될지는 누구도 모르는 돌처럼 채원이는 생각이 유연한 편이다. 남에 대한 건 유연한 반면 자기 자신에 대한 건 또렷해서 돌과 닮았다.”는 이유에서다. 주변인들이 그로부터 떠올린 빗과 돌 같은 사물들에 담긴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사람 김채원을 이룬다. 이 사물들에 얽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제 목표가 사라지는 날은 없을 것 같아요.”라 말하는 김채원이라는 사람에 대해 ‘아주 조금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정말 단 9개의 사물만으로 한 사람의 삶을 설명할 수 있을까. 사물에 이야기를 담아준 사람들, 그러니까 사물 뒤에서 나의 삶을 채워준 그 ‘누군가’를 통해서는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유령’

임수연(‘씨네21’ 기자): 1933년 경성, 항일 조직 ‘흑색단’이 총독부 고위 간부들을 노린 테러가 이어지면서 조직 내부에 잠입한 스파이 ‘유령’을 찾기 위한 수사가 시작된다. 신임 경호대장 카이토(박해수)가 판 함정에 빠져 외딴 호텔에 모이게 된 유력 용의자는 총 5명. 이들은 살아서 돌아가기 위해 다른 이를 유령으로 몰아세워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인다. ‘유령’의 목표는 시대의 비극과 항일 운동의 숭고함을 담는 데 있지 않다. 중반부까지 전개도 당초 예상했던 밀실 추리극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죽음을 불사하는 조직의 특성과 한국과 일본, 서양 건축이 혼재된 1930년대 경성의 비주얼에서 장르 영화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이해영 감독의 ‘독전’이 그랬던 것처럼 ‘유령’에서 중요한 것은 스토리보다 스타일이며, 단순한 동료애 이상의 화학작용을 뿜어내는 여성들의 연대가 때로는 로맨틱하게, 때로는 영웅적으로 묘사된다. 

‘Crown Jewel (Feat. Tachaya)’ - H1-KEY

나원영(대중음악 비평가): 피처링을 맡은 타차야 쁘라툼완(Tachaya Prathumwan)은 ‘더 보이스 타일랜드’의 시즌 1 준우승자이며 그 후 10년 넘게 보컬리스트로 활동해왔지만, 하이키의 트랙 그 어디에서도 목소리로 출연하지는 않는다. ‘Crown Jewel’은 퉁퉁 튕겨 올라간 빌드업을 드롭에서 뚝뚝 떨어지는 트랩 비트를 골조로 삼은 곡이다. 이런 양식에서 기대할 수 있는 사운드, 그러니까 빵빵한 금관악기나 쫀쫀한 현악기의 톤을 띤 신스 음을 박자에 맞춰 툭툭 끊어 배치하는 건 다름없지만, 샘플 팩을 뒤적거려 찾아낼 수 있는 유형 말고도 군데군데 다른 소리들이 있다는 것이 곡의 가장 큰 특징이다. 여기서 타차야를 다시 언급해야 할 텐데, 바로 태국의 전통악기인 라나트와 자케의 연주 소리로 그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각각 목금·찰현악기인 이 둘에 의미심장하게도 한국의 전통악기인 대금과 꽹과리 소리까지 함께 배치되며, ‘Crown Jewel’은 익숙한 구성에 사뭇 낯선 소리들을 내장해 청자들에게 소개한다. 표면상으로 보면 사운드에서 아이돌 팝에 국악기를 추가하는 건 물론 매년 한두 번쯤 보아온 광경이겠지만, 타국(이번에는 태국)의 것이 동반되는 국제적인 만남은 흔치 않다. 도입부부터 깔려 있는 양국의 고유한 악기 소리들은 프리코러스의 빌드업부터 후렴구의 드롭, 1절과 2절 사이의 브레이크, 2절 후렴 이후의 브리지 등에서 단순한 장식음 이상으로 사용되며, 일종의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처럼 트랙의 음색에 개성을 더한다. 그렇지만 징 소리 같은 여음으로 곡이 끝나갈 때쯤 문득 떠오르는 한 가지 묘한 딜레마가 있다면, 이런 반가운 조우를 가능케 해준 동시에 모든 부품과 재료를 한 덩어리로 합쳐버리고야 마는 아이돌 팝의 종합력을 뚫고 이 소리들이 각자의 고유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의 여부 같다. 이 소리들이 없다 치더라도 ‘Crown Jewel’은 무리 없이 작동할 테고, 전통악기로 이끌어내는 지역성이 국제적인 팝에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들은 보다 무궁무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