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과 나의 거리가 좁혀진 것 같았다.” 유튜버 하개월은 방탄소년단 ‘Permission to Dance’의 안무에 등장하는 국제 수화가 그에게 갖는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농인의 정체성을 지닌 자신의 삶 그리고 청각장애와 관련된 콘텐츠를 동명의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 중인 하개월은 지난 7월 ‘Permission to Dance’ 뮤직비디오에 대한 리액션 영상을 올렸다. 널리 알려진 대로 ‘Permission to Dance’에는 ‘즐겁다’, ‘춤추다’, ‘평화’를 의미하는 세 가지 국제 수화가 결합된 안무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빅히트뮤직 퍼포먼스디렉팅팀 손성득 팀장에 의하면 안무의 국제 수화는 “모두가 어렵지 않게 따라할 수 있는 퍼포먼스라는 기획 의도에서, ‘모두’의 범위를 최대한 넓히기 위해 고심한 결과”였다.

 

하개월은 국제 수화로 인해 거리가 좁혀질 수 있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풀어냈다. “수어 사용자 입장에서 수어는 제1언어다. 한국어는 외국어인 셈”이라 낯선 땅에서 같은 언어 사용자를 만나면 드는 반가움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하개월이 말한 것처럼 수어는 농인에게 ‘제1언어’다. 2016년 제정된 ‘한국수화언어법’에 따르면 한국 수어는 한국어와 동등한, 공용 언어다. 두 언어는 서로 다른 고유의 문법 체계를 지니고 있으며 어순도 다르다. 또한 ‘국제 수화’는 서로 다른 수어를 사용하는 각국의 농인들이 소통하기 위한 수단으로, 한국 수어나 미국 수어처럼 정립된 체계가 존재하지 않아 지역과 사용자에 따라 유동적일 수 있고, 그 정의에 대한 논의가 현재진행형이다. 이 지점에서 손성득 팀장 역시 “국제 수화가 공식적으로는 정해져 있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다만 “농인 분들에게 의미가 정확히 전달이 되는지 초점을 두고 검수 과정을 진행했다.”고 전했다.

 

누구나 언어를 통해 사유하고 정체성을 확립하듯, 듣는 ‘청인’과 달리 ‘보는’ 농인에게 시각언어인 ‘수어’는 뗄 수 없는 관계다. 한국농아인협회 정희찬 상임이사는 “서로 의미가 통하는 사인(sign)을 통해 국제 수화가 만들어진다.”며 사용 주체 사이에서 발생하는 ‘소통’이 국제 수화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농문화는 고유의 정체성과 생각을 지닌다.”고 말했는데, 이는 “‘한국 수어’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고민에 답을 얻게 했다.”는 하개월의 이야기와 맞닿는다. 한국 수어는 한국어의 대체가 아닌 고유한 언어라는 점에서, 하개월은 ‘Permission to Dance’의 국제 수화가 추임새(‘Da na na na~’)에 접목된 것이 긍정적이라고 짚었다. “음악에는 소리와 박자가 중요하지만, 이는 나에게 필요 없는 것”이기에 오히려 음악에 얽매이지 않고 내용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음악에 따라 구성된 가사를 그대로 수어로 바꾸거나 따라 하면, 수어의 본래 의미와 달라지거나 수어가 훼손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Permission to Dance’에 등장한 국제 수화에 대해 정희찬 상임이사는 “수어에 대한 관심이 생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개월 역시 “국제 수화에 대한 관심은 반갑고 기분 좋은 소식”이라 전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그 관심이 “농인의 삶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어떻게 농인을 비롯한 장애인이 접근성의 장벽 없이 콘서트와 팬 미팅, 실시간 라이브 등의 콘텐츠를 즐길 것인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개월은 이 장벽의 대표적인 예시로 농인이 공연에 가는 과정을 들었다. 예매를 완료하면 “관계처에 수어 통역이나 문자 통역 또는 속기를 받을 수 있는지 ‘전화’를 해야 하는데, 청각장애인이 전화를 하려면 통신중계 서비스 등을 이용”해야 된다. 연결되어도 그 즉시 통역사 배치가 어렵다는 답변을 주는 등 무례한 응대를 경험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단체를 통해 공문을 보내며 정당한 권리를 위해 싸우기도 한다. 하개월은 “진이 빠지지만, 좋아하는 사람을 보기 위한 마음으로 포기하지 않는” 농인도 많다고 덧붙였다. 

 

하개월의 설명처럼 한국 내에서 문화적 접근성의 문제는 여전히 수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장애인과 노약자의 접근성을 고려해 물리적, 제도적 ‘장벽을 없애자’는 뜻을 지닌 ‘배리어프리(Barrier Free)’ 개념이 적용되는 시도가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넷플릭스의 등장을 기점으로 여러 OTT 플랫폼에 제공되기 시작한 한국어 ‘폐쇄 자막’은 비장애인에게도 잘 알려진 대중문화의 배리어프리 사례이다. 폐쇄 자막에서는 등장인물의 대사를 비롯해 발화자의 정보와 음성 외 청각 정보가 함께 자막으로 제공된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시각 정보를 음성으로 전달하는 음성 해설 역시 존재한다. 영향력 높은 글로벌 기업이 이를 전 세계로 제공하면서, 최근 유사한 국내 플랫폼에서도 폐쇄 자막 및 음성 해설을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변화가 생기는 중이다. 다만 하개월은 여전히 모든 콘텐츠에 원활하게 한국어 자막이 제공되는 것은 아니며, “한국 콘텐츠에 영어 자막은 있는데, 한국어 자막이 없을 때는 당혹감이 든다.”고 말했다. 또한 방영 중인 콘텐츠의 경우 동시에 자막을 제공받기 어렵고, 일정 시간을 기다려야 업로드된다. 이는 정희찬 상임이사가 설명하듯 “원하는 콘텐츠가 아니라 만들어주는 대로” 봐야 하는 문제를 낳는 것으로, “자막과 관련한 당사자의 선택적 권리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희찬 상임이사는 “팬데믹 이후 긴급 재난 방송을 통해 수어 통역이 이전보다 가시화된 것은 맞지만, 여전히 방송의 약 7%밖에 안 되는 수어 통역 제공의 양과 통역의 질 개선에 대한 문제가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OTT와 같은 플랫폼의 경우 “요금 지불에 대한 부담”과 “자막 이해나 이용에 어려움이 있는 고령층의 접근성 문제” 등이 있어 완전한 해결책이 아니기도 하다. 

 

하개월 또한 최근의 배리어프리의 개념이 이슈가 된 것에 대해 “피부로 느껴지는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영화관의 경우 국내 영화에 한국어 자막이 제공되는 작품의 수와 회차는 매우 적다. 하개월은 이에 대해 “스마트 안경이나 영화 대본집 제공” 등의 기술적 대안도 존재하나 적용되지 않고, 선택지가 좁아 “정해진 틀에 나를 맞춰야” 한다는 점에서 변화가 체감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콘텐츠 바깥에서의 문제도 남아 있다. 영화의 배리어프리 자막 제작과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를 주최하는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김수정 대표는 영화관이 있는 공간에 들어가서 표를 구매하고, 해당하는 관에 입장해 관람하기까지 모든 과정에 산재하는 문제를 지적했다. 김수정 대표는 “최근에는 키오스크 사용의 문제도 있다. 또한 시각장애인은 비상시 대피 안내에서 화살표 방향을 인지하기 어렵다.”는 개선 사항도 짚었다. 


공연도 마찬가지다. 2019년 남산예술센터 시즌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배리어프리 공연 기획에 참여한 서울문화재단 김민정 PD는 당시 시각장애인 점자 안내판과 보도블록 정비, 휠체어 이동에는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등 “물리적인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공연장 시설을 보완하거나 개선하는” 과정이 필요했음을 설명했다. 전시장과 관광지, 공연장을 비롯해 결과적으로는 일상생활에서 드나드는 공간과 정보, 콘텐츠에 ‘누구나’, ‘접근 가능한가’라는 고민과 개선 과제는 여전히 모든 곳에 산재한다. 하개월은 긴 시간 동안 여러 출연자가 등장하는 공연에서는 최소한 2~3명의 수어통역사가 교대해야 되고, 농인의 전면에 배치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제는 “스탠딩 석에서는 수어 통역사가 어디에 배치될지, 여러 명의 농인이 요청하는 상황”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수어 통역을 제공하더라도 홍보가 미비하면, 결국 당사자들이 이용하지 못함을 덧붙였다. 이런 미진함에 대한 적절한 법률적 개선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같은 글에 대해서도 어떤 감수성을 지니고 해석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김수정 대표의 말처럼, 이 모든 개선의 과정에는 당사자와 소통을 하고자 하는 의지와 태도가 수반되어야 한다.

 

“최근 2~3년 전부터 다양한 형태의 배리어프리 공연이 제작되고있다.”는 김민정 PD의 말은 곧 기존 관극의 관습이 지닌 문제가 이제서야 드러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매 공연마다 새로운 과제가 발생”했다는 김민정 PD는 예를 들어 여러 명의 출연자가 등장하는 연극 공연에서는 “수어 통역사의 위치를 어느 곳으로 정할지, 청각 및 시각 정보를 문자 통역과 음성 해설로 각각 어떻게 치환할 것인지” 연출자와 의견을 나눴다. 김수정 대표 역시 최근 OTT 플랫폼에 폐쇄 자막에 대한 필요성이 증대되며, 별개의 주체에서 같은 작품에 대한 자막이 중복 제작되는 문제 등이 “이제서야 드러나고 있는” 상황을 전했다. 공연에서도 수어 통역사가 배치된다는 사실 하나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 과제가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정희찬 상임이사는 ‘배리어프리’라는 단어에서 ‘장벽’은 곧 “농인들의 소통”을 의미한다고 풀어냈다. 이는 김민정 PD가 한 포럼에서의 발화를 빌려, 접근성은 “집단의 변화에 의해 촉발되는 값이 아닌, 사회 전반의 ‘태도’”라 한 것과 이어진다. 김민정 PD는 “최근 국내외 예술계에서는 장애인을 범주화하거나 특별한 존재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를 뚜렷한 개성을 지닌 개별 주체”로 여기는 관점에서 예술 제작과 관람이 논의되고 있다며, ‘접근성(Access, Accessibility)’의 개념을 설명했다. 공간적 접근성 문제로 시작된 배리어프리는 궁극적으로는 장애인만을 특정하여 시혜되는 것이 아니다.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투쟁의 결과로 설치된 지하철 역사의 엘리베이터는 비장애인 노약자들에게도 편리함을 제공하고 있다. 김수정 대표가 소개한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의 ‘치매친화 영화상영’에서는 설명이 충분한 배리어프리 영화를 제공하는 건 물론이고, 낯선 장소에서 당혹감을 느끼는 치매 환자들에게 시각적으로, 심리적으로 편안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이 과정에서 배리어프리는 비장애인에게도 주변의 일상과 조금 더 맞닿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하개월 역시 “OTT에서 ‘한국어 자막을 켜고 봐야 이해가 잘된다.’는 청인의 댓글을 봤다. 청인에게 좋은 것은 농인, 청각장애인에게도 편리성을 가져다준다.”고 지적했다. 

 

역설적으로 넷플릭스에 자막이 달리게 된 것은 2010년 미국에서 미국청각장애인협회가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논의에서 언제나 장애인에게 적법하게 제공되고 있지 않은 권리의 확보가 우선시되어야 함은 분명하다. 또한 사회 곳곳에서 조금씩이나마 시행되고 있는 배리어프리 관련 정책들은 앞서 예를 든 것처럼 장애인들이 오랜 역사에 걸친 다양한 움직임을 통해 이뤄낸 결과들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논의는 비장애인과 동떨어진 존재의 이야기로 타자화시킬 수 없으며, 나와 내 주변 그리고 사회 구성원 공동의 문제다. 


‘Permission to Dance’의 뮤직비디오에서 처음 등장하는 인물은 음식점의 여성 종업원이다. 또한 집배원이나 청소부, 아이들과 학생 등 등장인물들은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마주치지만 팬데믹 이후 겪는 다양한 어려움들이 충분히 가시화되지 않은 계층이기도 하다. 방탄소년단이 ‘Permission to Dance’에서 국제 수화를 사용하면서 뮤직비디오에 이들을 조명한 것이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방탄소년단은 2년 전 공연에서 수어 통역을 실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방탄소년단이 이런 시도를 했다는 그 자체보다 이를 통해 제기된 하나의 문제 제기가 당사자인 농인, 더 나아가 장애인에게 어떤 결과로 닿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다. 이에 대해 하개월은 “호기심이 아닌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며 한마디 덧붙였다. 

 

“당신 옆에 농인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글. 윤해인
사진 출처. YouTube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