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의 멤버 진은 생일을 맞아 지난해 12월 4일 발표한 솔로 곡 ‘Abyss’에서 그가 지난해 겪었던 정신적인 문제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는 방탄소년단의 블로그에 ‘Abyss’를 올리며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를 하고 많은 분들께 축하 인사를 받았는데 내가 이런 걸 받아도 될까. 사실 나보다 음악을 더 많이 사랑하고 더 잘하는 분들도 많은데 내가 이런 기쁨과 축하를 받아도 괜찮을까. 더 깊이 들어가다 보니 마음이 힘들어 다 내려놓고 싶었던 것 같아요.”라며 자신에게 “크게 번아웃”이 왔었다고 밝혔다. ‘Abyss’의 첫 가사는 당시 그의 마음에 대한 은유일 것이다. ‘숨을 참고서 나의 바다로 들어간다 / 아름답고도 슬피 우는 나를 마주한다 / 저 어둠 속의 날.’ 진이 위버스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그게 (아티스트로서의 활동이) 거의 몇 년 동안 저희 삶의 일부였는데, 그냥 삶의 일부가 다 똑 떨어진 기분”이라고 말한 것처럼, 그가 겪는 내면의 문제는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과 연관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의 내면은 불안과 슬픔을 마주하고 있었고, 해결의 실마리로 음악을 만들어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을 선택했다. ‘Abyss’는 팬데믹이 방탄소년단과 같은 슈퍼스타에게도 미치는 정신적인 영향과 창작을 통해 조금 더 밝은 빛으로 나아가려는 아티스트의 의지와 이를 공유하며 창작자는 물론 음악을 들은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위안과 치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Abyss’는 방탄소년단의 앨범 ‘BE’를 새롭게 바라보는 열쇠이기도 하다. 진이 ‘Abyss’에서 창작을 통해 자신의 정신적인 문제를 고백하고, 수많은 사람들과 교감한 것처럼 멤버들이 정신적인 문제를 치유하는 과정을 창작의 형태로 내보인 것이 ‘BE’ 앨범이다. ‘BE’에 수록된 ‘Blue & Grey’는 ‘Cuz I am blue & grey’, ‘웃음에 감춰진 나의 색깔 blue & grey’, ‘파란색 물음표’, ‘다가오는 회색 코뿔소’ 등 색깔을 통해 우울감과 불안감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이 곡을 만든 뷔는 위버스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곡을) 다 만들고 나니 성취감이 들었고, 그걸로 ‘Blue & Grey’를 조금 떠나보내게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라며 음악에서 자신의 감정에 색채를 부여하고 이를 예술의 거름으로 쓰면서 자신의 감정을 조절했음을 드러냈다. 오진승 DF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유튜브 채널 ‘닥터프렌즈’ 운영)는 이런 창작 방식에 대해 “사람마다 어떤 갈등이나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여러 가지 방어기제들이 있다. 그중 성숙한 방어기제인 ‘승화’는 나의 갈등이나 힘듦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것인데 방탄소년단의 경우 작사, 작곡 등 음악으로 표출하고 조절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걸 통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면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하면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 대부분 원인도 모르고 지금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는데 객관화해서 자신을 보면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다.”라고 말했는데, 뷔는 우울과 불안에 ‘Blue & Grey’라는 이름을 붙이며 자신의 문제를 객관화했다고 할 수 있다. 방탄소년단이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고 해결하는 과정은 많은 사람들에게 정신 건강 문제를 다루는 한 가지 예를 보여준 셈이다.
팬데믹으로 인한 ‘코로나 블루’가 문제시 될 만큼, 정신 건강 문제는 더 이상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Blue & Grey’에서 다루는 우울의 경우, 10명 중 1명이 우울감을 경험할 정도다.(출처: 보건복지부, ‘국민건강영양조사’, 2019) 그러나 김현수 서울시 자살예방센터 센터장(치유학교 ‘별’ 교장 겸직)은 “힘든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고 살고 이런 사람들이 마치 없는 것처럼 살다 보니 아무도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다 믿으며 위선적으로 외면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Blue & Grey’는 이런 감정의 원인에 대해서는 제시하지 않는데, 오진승 전문의는 “(우울증이) 생각보다 이유 없이 오는 경우도 많다. 괜히 우울하고 이유 없이 눈물이 난다고 많이 이야기하더라. 우울증도 감기나 뼈가 부러졌을 때처럼 이유가 있든 없든 치료를 받는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며 정신 건강이 다른 질병들과 달리 단순한 의지나 마음의 문제라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울관광재단의 유튜브 채널 비지트서울TV는 ‘BE’의 수록곡 ‘병’을 정신 건강의 관점에서 본 해설을 하며 “한국 사회는 결코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해 수용하거나 오픈된 분위기가 아니다.”라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오진승 전문의는 “옛날에는 우울증이 병이라고 생각 안 했고 그냥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이제는 필요하면 도움을 받아야 된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바뀐 것 같다.”며 사회적인 인식의 변화를 짚으면서도 “병원에 오는 것 자체도 용기가 많이 필요한 일인데 그렇게 용기 내서 오신 분들도 계속 다니는 게 힘들다. 많은 분들은 아직까지도 의지로 이겨낼 수 있다거나 나가서 사람들 만나고 의욕적으로 지내면 좋아진다고 여긴다.”며 여전히 사회적인 편견이 있음을 언급한다.

많은 사람들은 전쟁, 자연재해, 대규모 참사 등을 겪거나 신체적, 성적, 정서적으로 학대를 겪으면 더 이상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이런 트라우마는 개인의 의지로 이겨낼 수 있기에 그 아픔을 딛고 일어나야만 한다고 강요하기도 한다. 방탄소년단의 멤버 제이홉이 만든 ‘병’에서 멤버들은 외상의 결과가 둘 중 하나일 것이라는 편견에 또 다른 선택지를 제시한다. ‘병’에서 방탄소년단은 코로나19라는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찾아온 ‘쉼’에 도리어 ‘불편함(Dis-ease)’을 느끼며 이를 ‘병’으로 인식한다. 이는 데뷔 이후 쉼 없이 달려온 방탄소년단의 멤버가 느끼는 불안과 공포인 동시에 지금의 재난 상황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무력감이기도 하다. 김현수 센터장은 이 노래를 “병이 났고 힘들었지만 자기 위로를 통해서 다시 일어서고 싶다는 소망을 잘 표현한, 위로와 외상 후 성장이 잘 담긴 가사”라고 평가했다. ‘외상 후 성장’은 상대적으로 익숙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와 달리 트라우마가 도리어 ‘성장’을 가져온다는 개념이다. 방탄소년단은 ‘외상 후 성장’을 다루되 모두가 성장할 수 있다고 단정짓지 않는다. 김현수 센터장은 “아주 힘든 일을 겪고 크는 사람이 있고 그냥 고꾸라지는 사람도 있다. 힘든 일을 겪고 나서 오히려 성장하는 사람들은 개인이 고통의 의미를 반추한 것”이라고 말한다. ‘병’에서 멤버들은 코로나19로 인해 관계가 단절되고 계획이 취소된 상황에서 ‘자신을 물어뜯’고 ‘성과에 목매’는 ‘불안전’한 자신의 모습을 ‘병’으로 인지한다. 자신의 ‘병’을 인정하는 것은 ‘겁’나지만 그 과정에서 ‘누군가를 바꿔보는 것 그것보다 빠른 것은 내가 변화하는 것’, ‘마음에도 방학이 필요해’, ‘영원한 밤은 없어 난 강해졌어’ 등 힘든 일이 준 교훈을 되새긴다. 그리고 ‘내가 알던 날 다시 믿’고 ‘차분하게 모두 치료해보자고’ 노래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지금까지 달려왔던 모든 일들을 멈춰야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병’은 막연한 희망을 내세우기보다 아픈 자신의 상태를 고백하고 자신을 위로하고 겁을 버리고 강해지자는 의지를 표명함으로써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노래의 초점은 ‘나’에게 맞춰져 있지만 모두 다 똑같은 사람이고 ‘특별하지 않은(ain’t so special)’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통해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통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방탄소년단은 코로나19와 같은 외상을 겪은 후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거나 이겨내야만 한다는 생각 중 어느 한쪽만 택하지 않는다. ‘다시 아침이야 오늘을 나야 해’라는 것은 그사이의 어딘가에서 그들이 내놓은 새로운 선택지, 모두가 이겨낼 순 없지만 그럼에도 이겨낼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설명같다. 내가 가진 ‘병’에 침수될까 겁나도 다시 아침이 왔기에 오늘을 나야 한다는 것. 그렇게 다시 하루를 나다 보면 ‘난 강해’질 것이라는 것.
‘내 방을 여행하는 법’은 팬데믹 시대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힘을 키우기 위한 개인의 노력을 담는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개인은 무력해진다. 멤버들은 ‘답답해 미치겠’고 ‘올해를 다 뺏겼’다고 그 감정을 털어놓는다. 오진승 전문의는 “우울해지면 인지왜곡이 생긴다. 인지왜곡은 같은 상황이라도 부정적으로 보게 되고 이게 계속되면 습관처럼 인지가 굳어진다. 이 부정적인 인지를 교정하기 위해 약물 치료와 함께 같은 상황을 다르게 판단해보는 인지 행동 치료를 한다.”고 밝히며 ‘그럼 뭐 여길 내 세상으로 바꿔보지 뭐’나 ‘생각은 생각이 바꾸면 돼’와 같은 긍정적인 인식 변화의 중요성을 말했다. 또한 ‘침대 그 위로 착지 여기가 제일 안전해’라는 가사에 대해 “여기가 안전하다는 건 정신과에서 중요한 안전기지라고 하는데 심리적인 안전기지를 집으로 뒀을 때 내가 조금 편안해지고 부정적인 인지를 고치고 이겨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방탄소년단은 ‘BE’의 멤버별 콘셉트 포토로 자신의 취향을 담은 ‘방’을 꾸며놓았다. 꽃, 스피커, 보석이나 신발 등 자신이 안정감을 느낄 수 있고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한 방은 자신만의 안전기지라 할 수 있다. 멤버들은 방 밖으로 나갈 수 없기에 홈웨어 차림이지만, 오디오 가이드 형식을 통해 마치 자신의 방을 박물관의 한 공간처럼 설명하기도 하고 여행을 온 듯 방과 자신 그리고 모니터에서 자신을 마주보고 있을 사람들의 사진을 찍기도 한다. 이를 통해 ‘내 방을 여행하는 법’에서는 제목처럼 팬데믹 이전에는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내 방’과 ‘여행’이 하나가 된다. ‘여행’의 정의가 바뀔지도 모르는 시대에 내 방에서의 생활은 ‘나만 즐길 수 있는 여행(travel)’이다. 방탄소년단은 생각을 바꿈으로써 ‘TV 소리’를 ‘시내’의 북적임으로, ‘내방 toy들’을 ‘사람들’로, ‘배달음식’은 미슐랭처럼 별을 매기며 현재 상황에 대한 ‘주도성'을 가진다. 그리고 노래를 아우르는 ‘생각은 생각이 바꾸면 돼’라는 생각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상황을 다르게 인식하려는, 긍정적인 사고로의 전환을 위한 노력이다.

그러나 내면의 고통을 털어놓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련의 과정은 무조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김현수 센터장은 “창작자의 어려움은 감정을 생산해서 주는데 나는 준 만큼 비어 있는데 그걸 누가 채워주거나 스스로 채우지 못하면 어려움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창작을 통한 감정의 승화 과정의 끝에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 방탄소년단의 경우 특히 팬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김현수 센터장에 따르면 아티스트와 팬은 음악을 통해 한 명이 자신의 감정을 주기만 하고 다른 한쪽은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나누는(shared) 상태’다. 자신의 감정을 작사, 작곡을 통해 일종의 ‘감정 일기’를 쓰는 것도 감정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방탄소년단을 포함한 많은 아티스트들이 그러하듯, “음악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감정을 나누면서 팬들이 창작물을 듣고 표현하는 행복이나 기쁨은 아티스트들에게 그들이 주는 것 이상의 더 좋은 걸 되돌려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방탄소년단이 팬데믹 이후 팬을 만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말하고, 그들의 성과에 대해 언제나 팬에 대한 감사부터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울과 불안과 같은 감정은 개인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준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이런 감정들에 대해 솔직하게 밝힐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아티스트가 창작물로 표현하는 것처럼 고통을 승화하는 과정을 서로 나누게 되면 한 사람의 고통이 오히려 사회 전체에 전에 없던 치유의 방식에 대한 또 다른 선택지를 제시하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지금과 같은 세상에 음악이, 아티스트의 삶이 존재해야 할 이유 중 하나다.
‘BE’와 이후 나온 ‘Abyss’는 코로나19 이후의 시대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단지 시대상을 그리는 것을 넘어 그 속의 인간들이 겪고 있는 보다 근본적인 내면의 문제를 다룬다. 우울은 이유가 없을 수도 있으며, 이를 표현하여 감정에 잠식되는 게 아니라 조절할 수 있다는 것. 트라우마는 이겨내지 못하거나 무조건적으로 이겨내야만 하는 게 아니라 이겨낼 수‘도’ 있고, 긍정적인 생각은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그렇게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편견을 짚어내고 내면의 우울과 불안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팬들과 사회 전체를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오진승 전문의는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들으며 “팬들도 자신의 감정에 대해 탐구하고 살펴보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아티스트들을 통해 내 감정에 솔직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방탄소년단의 노래가 단순히 어두움으로만, 우울한 노래로 끝나는 게 아니다. 원초적인 감정만 던진 것이 아니라 메시지와 함께 건넸기 때문에 공감하는 게 아닐까?”라며 노래의 메시지가 팬들이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김현수 센터장은 “사실 우리가 위대한 예술의 결과만 향유하는데 그를 탄생시키기까지 아티스트들이 겪은 고통이나 아픔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면 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편견을 줄이는 데 큰 사회적 기여를 할 것이다.”라고 방탄소년단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 말했다. 데뷔하던 그 시절부터 방탄소년단은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한다는 것을 팀의 정체성으로 삼아왔고, 자신들의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드러내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BE’를 기점으로 그들은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개인의 정신 건강을 넘어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받아들인, 어떤 편견 내지 당연함의 이면(Behind The Scene)까지.
글. 오민지
디자인. 최수빈(그래픽 디자인), 전유림(타이포그래피 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