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틴의 퍼포먼스 팀 리더 호시가 발표한 솔로 믹스테이프 ‘Spider’의 무대는 K-팝 퍼포먼스의 중요한 분기점이다. 그는 ‘Spider’에서 K-팝 퍼포먼스가 활용하던 공간의 범위와 의미를 새롭게 해석한다. 호시가 철봉에 매달린 채 시작하는 ‘Spider’의 퍼포먼스는 무대에 앞뒤와 좌우뿐만 아니라 위아래의 개념을 더한다. 1절에서 앞뒤, 2절에서 좌우로 늘어선 철봉들은 마치 눈금처럼 무대의 가로와 세로축을 세분화시킨다. 공간의 재정의는 K-팝 퍼포먼스 영상을 보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준다. ‘Spider’의 안무 영상은 카메라가 공중에 매달린 호시를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구도를 선보인다. 2절에서는 맨 왼쪽 철봉에 있던 호시가 노래의 진행과 함께 오른쪽으로 한 칸씩 이동하며 춤을 춘다. 호시가 가로, 세로에 높이가 더해진 무대의 모든 좌표를 찍으며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Spider’의 퍼포먼스 영상을 보는 사람들은 시선을 끊임없이 무대 곳곳으로 이동시켜야 한다. 2절에서 오른쪽 끝에 도달한 호시는 무대 앞으로 나와 춤을 추다, ‘So emergency’에서 갑자기 다시 뒤로 끌려 나간다. 그가 위치한 곳은 춤을 추던 무대 앞과 철봉 사이의 지점이다.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K-팝의 퍼포먼스가 ‘센터’로 불리는 무대 한가운데를 중심에 두고 앞뒤, 좌우의 끝으로 이동한다면, ‘Spider’의 퍼포먼스는 무대 오른쪽에서 맨 뒤와 가운데 사이의 어느 곳처럼 카메라의 시선이 가지 않던 위치 곳곳을 활용한다.

‘Spider’는 미니멀한 비트로 시작하는 도입부와 ‘난 느낄 수 있어’ 이후의 1절 첫 파트, ‘물방울이 맺히기만 해도’부터 ‘So emergency’까지의 파트에서 각각 다른 분위기로 변한다. 특히 ‘물방울이 맺히기만 해도’부터 후렴구 전까지는 호시의 목소리가 점차 울리고, 음산한 코러스가 더해지며, 전체적인 사운드는 점점 흐릿해지며 노래 속 공간을 채운다. 거미줄에 걸린 먹잇감에 거미가 다가오는 것처럼 불길한 긴장감이 천천히 다가온다. ‘Spider’의 퍼포먼스가 무대 위 공간을 확장하는 동시에 세밀하게 나눠 쓰는 이유일 것이다. 곡은 일반적인 댄스곡에 비해 느릿한 반면, 각각의 파트는 짧고 다양하게 변한다. 빠르고, 크고, 역동적인 동작을 하기는 어렵다. 폭발적인 에너지 대신 곡 마지막까지 긴장감이 유지돼야 한다. 호시는 철봉을 기준으로 천천히 무대의 좌표 사이를 이동하고, 좌표마다 다른 스타일의 퍼포먼스로 ‘Spider’의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완성한다. ‘Spider’의 도입부에서 호시는 앞에서 세 번째 철봉에 매달려 있다. 본격적으로 노래가 시작되면 맨 앞으로 나오고, 곡의 리듬이 변하는 ‘물방울이 맺히기만 해도’부터 두 번째 철봉이 있는 곳으로 물러난다. 그리고 후렴구는 한 칸 더 뒤로 물러나 춤을 춘다. 그사이 첫 번째 철봉에서는 철봉을 이용한 동작이, 두 번째 철봉에서는 얼굴을 가린 두 명의 댄서들이 호시를 몸으로 덮어버리듯 가리는 등 현대무용을 연상시키는 안무가 등장한다. 불과 철봉 한 칸의 거리를 천천히 움직이지만, 그사이 어떤 동작이 이어질지 알 수 없다.
2절에서 호시가 맨 왼쪽 철봉에서 오른쪽 끝 철봉으로 옮길 때도, 그는 첫 번째 칸에서 무대 정면을 바라보다 옆으로 움직이며 댄서와 춤을 추고, 두 번째 칸에서는 다른 댄서와 가라앉듯 누우며, 세 번째 칸에서는 다시 좌에서 우로 움직이려는 호시를 댄서들이 잡다가, 이를 벗어난 호시가 갑자기 넘어지듯 빠르게 움직이며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는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수평과 수직 운동이 있고, 움직임이 느려졌다 빨라진다. 마치 거미가 천천히 그러나 어디든 자유롭게 오가는 것처럼 호시는 스스로 확장시킨 무대 곳곳을 예측하기 어려운 동작과 리듬으로 돌아다닌다. 후렴구에서도 그는 팔을 굽혀 원처럼 그리거나, 스텝 또한 거미를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걷는다. 또한 그 동작들 사이에 박자를 잘게 쪼갠 제자리 스텝을 쓰며 곡의 흐름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댄스 곡을 소화하는 솔로 아티스트가 후렴구에서 가운데에 서서 춤을 추고, 댄서들이 뒤에서 같은 동작을 추는 것은 장르의 법칙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피해 갈 수 없는 구성이다. 하지만 호시는 가장 장르의 전형을 따라야 하는 부분에서도 곡의 콘셉트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동작들로 춤을 춘다. 호시는 ‘Spider’의 무대를 거대한 거미집처럼 설정하고, 그 자신은 거미가 되어 거미가 거미집을 기어다니는 이미지를 재해석한다.

호시에 따르면, ‘Spider’는 뮤직비디오 촬영 뒤 다시 녹음을 했다고 한다. 먼저 부른 버전이 특별한 문제가 있어서는 아니다. 호시는 “안무 영상을 보면서” 노래를 부르기 위해 재녹음을 했다. ‘Spider’에서 호시는 도입부에 가성을 쓰고, ‘마른 침을 삼켜’ 같은 부분에서는 보다 진한 음색을 낸다. 후렴구에서는 ‘숨이 막힌다고 네가 날 볼 때면’에서는 평소의 목소리를, ‘몸이 떨린다고 네 손이 닿으면’에서는 가성을, ‘거미같이 넌 날 가둬놓고 말지’ 이후에는 힘을 주며 목을 약간 긁듯이 부른다. 또한 각각 다른 창법으로 나뉜 멜로디를 따라 곡의 박자와 편곡도 계속 변한다. 이런 복잡한 변화의 이유는 ‘Spider’의 퍼포먼스를 통해 보다 명확하게 전달되고, 호시는 퍼포먼스를 통해 곡에 대한 감각을 몸으로 익힌 뒤 더 정확한 박자로, 자신의 의도에 가까운 노래를 녹음할 수 있었다.

이는 호시가 ‘Spider’를 통해 제시하는 K-팝 퍼포먼스의 비전이다. ‘Spider’의 가사가 거부할 수 없는 누군가를 묘사한다면, ‘Spider’의 퍼포먼스는 호시가 그렇게 다가오는 존재를 표현하면서, 댄서들에 의해 거미줄에 걸린 것처럼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동작 등을 통해 위협받는 대상의 모습을 함께 보여준다. ‘Spider’의 퍼포먼스는 노래와 달리 한 명의 아티스트가 두 명의 역할을 나눠 하고 있고, 이를 통해 곡에 묘사되지 않았던 둘 사이의 구체적인 스토리를 시각화한다. 곡과 퍼포먼스가 결합한 종합적인 결과물로서의 ‘Spider’는 퍼포먼스가 곡의 이미지를 시각화했다기보다 곡을 퍼포먼스가 표현하려는 종합적인 이미지를 위한 요소 중 하나로 활용한 것에 가깝다. 그 점에서 ‘Spider’의 퍼포먼스는 K-팝을 위한 퍼포먼스인 동시에, 반대로 K-팝을 이용해 만든 짧은 무용극이기도 하다. 퍼포먼스를 봐야만, ‘Spider’는 완전한 감상이 가능하다.
‘Spider’의 퍼포먼스는 가로로 늘어진 철봉에서 호시가 무대 정면을 보고 춤을 추다 마지막에 철봉 방향으로 몸을 돌려 무릎을 꿇는 것으로 끝난다. 이 부분을 ‘스튜디오 춤’은 카메라를 90도 돌려서 보여주는 대신 편집을 통해 화면이 달라지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관객이 없는 영상을 위한 콘텐츠라는 전제 하에 가능한 연출로, 이는 팬데믹 이후 K-팝 퍼포먼스의 한 가지 흐름이기도 하다. 공연에 관객을 모을 수 없는 상황은 K-팝 산업에 심각한 위기가 됐지만, 동시에 관객이 없기에 사전 녹화를 활용한 편집을 활용한 퍼포먼스가 더욱 적극적으로 시도됐다. 이 과정에서 K-팝 퍼포먼스는 관객이 아닌 영상 촬영을 위한 다양한 시도가 가능해졌다. 즉, K-팝의 퍼포먼스가 공연이 있어야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 영상으로 남기는 하나의 온전한 작품이 될 가능성이 생겼다. 그 과정에서 몇몇 아티스트들은 K-팝의 영역을 뛰어넘는 결과물들을 내놓기도 했다. 호시는 이 경향 속에서 K-팝 퍼포먼스의 새로운 개념과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는 ‘Spider’를 통해 K-팝이 음악이 아닌 퍼포먼스의 한 장르도 될 수 있고, 그때 아티스트가 무엇까지 할 수 있는지 증명했다. 그리고 그것은 K-팝 퍼포먼스에 대한 상상력을 확장시킨다. 팬데믹의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진실. 무대는 무한하다. 그리고 어떤 아티스트는 무대에서 자신만의 우주를 만든다.
글. 강명석
사진 출처.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