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BOY, YOU

이예진 :
‘혼돈의 장: FREEZE’ 속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이야기는 이전 앨범들의 서사가 쌓인 결과물이다. ‘꿈의 장’ 시리즈를 지나면서 친구와의 만남, 모험, 갈등의 과정을 겪으며 필연적인 성장통을 앓던 소년들은, 그사이 팬데믹까지 닥친 낯선 상황 속에 놓여진 자신의 모습을 ‘minisode1 : Blue Hour’에 담았다. 그 이후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지만 이들을 둘러싼 환경은 여전히 그대로다. 달라진 것은 소년들이 이 세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곧 다가올 변화를 직감하면서도 함께하는 마법 같은 순간을 지키기를 원했던(‘5시 53분의 하늘에서 발견한 너와 나’)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이제 자신이 ‘꿈꿨던 행복은 착해빠진 클리셰’였다며 ‘다 망해’버리자는 모두의 불행을 빌고(‘소악행’), 어느 방향이든 개의치 않고 그저 직진하며 주어진 자유를 만끽하던 때(‘동물원을 빠져나온 퓨마’)를 지나 갈림길 앞에서 마주한 선택에 대한 진지한 고뇌를(‘밸런스 게임’) 하기도 한다. 무엇 하나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혼돈 속에서 이들 내면에 자리 잡은 공허함은 세상에 대한 냉소적 태도로 이어지고, 그간 축적된 혼란과 불안은 보다 노골적인 감정과 욕망으로 표출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타이틀 곡 ‘0X1=LOVESONG (I Know I Love You) feat. Seori’은 마음이 꽉 얼어붙은 소년들이 ‘너’라는 돌파구를 찾으며 변화하는 과정 속 그들의 감정선을 그대로 따라가게끔 만든다. 낮게 깔린 시니컬한 랩으로 표현된 과거의 어두웠던 나날 뒤로 등장한 극적인 멜로디는 ‘어느 날 내게 나타난 천사’로 인한 마음의 동요를 나타낸다. 동시에 빨라지는 비트와 함께 점차 소리가 크게 울리면서 고조되는 사운드가 폭발하는 찰나, 온몸을 뒤로 젖히며 슬로모션을 연출하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안무는 뒤이어 ‘너’를 향한 절규에 가까운 감정의 고백이 터지는 순간을 드라마틱하게 극대화한다. 일말의 사랑도 남아 있지 않을 것 같은 소년들의 비관적인 모습을 뚫고 곡의 전반에 반복적으로 울려 퍼지는 ‘I know I love you’라는 진심. 콘셉트 포토 ‘WORLD’ 버전에서 비현실적으로 과장된 멤버들의 얼굴 표현과 착장, 차가운 판타지 속 배경이 오히려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듯, 성장기의 한복판에서 만난 혹독한 이 세계(WORLD)가 만들어낸 자신(BOY)의 형상을 깰 수 있는 힘이 그들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이다. 언제나 독특한 사물에 빗대어 자신이 느끼는 감각을 표현하고, 통통 튀는 비유와 언어로 두루뭉술하게 속마음을 드러내곤 했던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분명하게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게 된 그사이, 그들이 내일의 시간을 위해 함께하길 소망하는 ‘너(YOU)’라는 대상이 바뀌었다. 친구와의 우정이 세상의 전부였던 ‘꿈의 장’을 지나며 새로운 세계를 마주한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시작한 사랑이다.
허공에의 질주

강명석 :
데뷔 앨범 ‘꿈의 장 : STAR’부터 새 앨범 ‘혼돈의 장: FREEZE’까지,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뮤직비디오 속에서 불타는 숲속의 사슴이었다. ‘별의 낮잠’에서 머리에 뿔이 난 것을 알고 집에서 나와 숲속을 헤매이던 청춘들은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너를 기다려 (Run Away)’에서 학교에서 도망쳐 그들만의 세계로 가려 했다. 그러나 ‘꿈의 장 : ETERNITY’ 콘셉트 트레일러와 타이틀 곡 ‘세계가 불타버린 밤, 우린…(Can't You See Me?)’이 보여주듯 그들만이 모인 공간에도 불안과 외로움은 계속된다. 그사이 그들이 모이는 장소는 숲에서 학교, 어른들이 보이지 않는 집 그리고 ‘minisode1 : Blue Hour’ 앨범에 수록된 ‘날씨를 잃어버렸어’ 뮤직비디오의 작은 방이나 창고처럼 점점 좁아진다. ‘혼돈의 장: FREEZE’의 콘셉트 트레일러에서 멤버들은 오락실의 게임기 하나에 모여 있지만, 그마저 주변이 얼어붙으면서 게임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0X1=LOVESONG (I Know I Love You) feat. Seori’ 뮤직비디오에서 연준은 싸우는 부모를 뒤로한 채 게임을 하다 집에서 도망친다. 얼어붙는 결말일지라도 함께 모일 수 있던 판타지의 세계는 끝났다. 남은 것은 바로 뒤에서 부모가 싸우는 사이 게임만 할 수밖에 없는 현실뿐이다. 판타지와 달리 이 현실은 벗어날 수 없다. 연준이 다른 멤버들과 차를 몰고 아무리 달려도 그들이 몸 하나 둘 곳이 없다. 잠시나마 함께 머문 수영장은 알고 보니 그들이 임시로 작게 마련한 물놀이장일 뿐이다. 이전 앨범들의 뮤직비디오가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어딘가로 도피한 기록이라면, ‘0X1=LOVESONG (I Know I Love You) feat. Seori’의 그들은 어디론가부터 탈주하는 과정이다.

현실에는 도망칠 숲도, 마법진을 그릴 수 있는 학교도, 먹을 것을 쌓아둘 수 있는 작은 아지트도 없다. 현실과 가상현실의 어느 사이쯤, 탁 트인 세계에서 뛰놀던 ‘5시 53분’의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꿈의 장’이 아닌 ‘혼돈의 장’은 투모로우바이투게더를 현실로 데려다놓은 뒤, 그들이 겪은 10대의 불안과, 우정에 대한 의문과, 팬데믹 시대의 학교생활과 같은 모든 청춘의 고민을 다룬다. 도망치는 것도 부모의 차를 몰래 훔쳐야 하는 청춘이 가족에게 의지할 수 없을 때, 그들은 어디에서 잠들 수 있나. 그들은 함께 도망친 내 옆의 사람에 의지하지만, 막막한 미래만큼이나 끝없이 이어지는 탈주의 길은 불안을 가져온다. 세상은 그들 빼고 그대로고, 도망친다 해도 짜릿한 모험이나 극적인 사건은 없다. 평범해 보이는 세상, 평범한 것 같은 학교생활, 평범해야만 하는 가족관계에서 마음속으로만 비명을 지르던 익명의 청춘. 그의 목소리가 1990년대 그런지 록을 연상시키는 사운드 속에서 거친 비명으로 터져나온다. 동시에 지금 전 세계 청춘에게 생활의 일부라고도 할 수 있는 힙합의 비트와 랩이 ‘언제나 단 한 판 이길 수 없던 체스’처럼 그들이 현실을 느끼는 감각을 묘사하는 수단이 된다. 태어나기 전에 이미 수많은 장르가 나왔고, 그 모든 것들을 전 세계 모든 도시에서 하나의 플레이리스트로 즐길 수 있는 세대. 그러나 자기 세대만의 이름이 붙은 무엇을 갖기는 역설적으로 어렵고, 만들어낸다 해도 세상이 좀처럼 주목하지 않는 세대. 평화롭게 숨이 막힌 것 같은 이 세대의 정서가 하이브리드란 말 자체가 촌스럽게 느껴질 만큼 장르의 결합이 당연해진 시대의 스타일과 함께 청춘의 혼돈과 사랑을 전한다. K-팝이 영 어덜트 팝의 세계로 간 순간. 그리고 TOMORROW X TOGETHER의 ‘함께, 내일’은 데뷔 때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됐다.
찬란한 혼돈

임현경 :
‘GAME OVER.’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혼돈의 장: FREEZE’ 콘셉트 트레일러에서 멤버들은 오락기에 동전을 넣어 게임을 이어가려 하지만 가로막힌다. ‘이 게임에 우리 숨어버릴래 난 영원히 소년으로 살고픈 걸(‘그냥 괴물을 살려두면 안 되는 걸까’)’이라는 가사처럼, 동전을 넣는 한 영원히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았던, 현실로부터 도망쳐온 꿈의 세계가 끝이 났다. 이어지는 것은 ‘추락’이다. 멤버들은 사방으로 날아드는 얼음 공격을 피해 달리며 점차 낮은 곳으로 향한다. 태현은 에스컬레이터를 미끄럼틀 삼아 내려오고, 연준은 높은 구름다리 위에서 뛰어내린다. 궁지에 몰린 멤버들은 맞서 싸워보지만, 징벌처럼 쏟아지는 얼음들은 끝내 그들을 얼어붙게 만든다. 이러한 서사는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을 연상케 한다. 눈과 심장에 악마의 거울 조각이 박혀 순수함을 잃어버린 소년 카이는 얼음과 눈으로 뒤덮인 세상의 끝에 갇힌다. ‘꿈의 장’과 ‘minisode1 : Blue Hour’를 지나온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영원의 세계에서 벗어나 추락하는 일련의 과정은 ‘동심을 잃어가는 성장’의 은유와 같다. ‘세상 모든 게 선악과(‘New Rules’)’라고 노래했던 그들은 ‘세계가 불타버린 밤, 우린… (Can’t You See Me?)’의 뮤직비디오에서 붉은 열매를 먹은 뒤 불타버린 세계를 목격하고, ‘영원을 나는 피터팬(‘거울 속 미로’)’을 꿈꿨던 소년은 ‘영원의 꿈’을 ‘제발 멈춰’달라(‘Eternally’) 호소한다. 꿈 밖 현실을 알게 된 순간 그들이 알던 낙원이 무너진 것이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눈의 여왕’의 말미에서, 카이는 게르다의 도움을 받아 눈의 여왕이 낸 수수께끼의 답인 ‘영원(ETERNITY)’을 완성하고 마침내 여름을 맞이하며 이 같은 성경 구절을 떠올린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소년의 꿈을 키워낸 이 오래된 동화의 끝에서 되받아 묻는다. 그렇다면 영원히 어린아이로 남을 수 없는, 성장하는 소년들은 천국 밖 세계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트레일러에서 연준은 높이 뛰어올라 정면에서 날아오는 얼음을 부순 뒤, 공중에서 위태롭게 추락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연준이 날려버린 얼음의 파편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샹들리에를 흔들어놓고, 이를 바라본 연준은 이내 입가에 미소를 띠며 착지한다. 끝내 온몸이 얼어붙어 꼼짝할 수 없게 됐을 때에도 연준은 밝은 빛과 함께 누군가의 존재를 떠올린다. 그러자 그를 영원한 겨울에 가둔 얼음이 빠르게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면 네버랜드에서 쫓겨나듯, 이러한 변화는 자칫 ‘타락’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낙원 밖 삶에서의 성장을 기꺼이 겪어내면서 소년이 내내 순수하게 머물러 있어야만 하는 성스러운 존재가 아니라 변화하고 성장하는 인격체라는 점을 역설한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멤버 전원이 성인(한국 나이 기준 20세)이 됐다는 사실과 함께, 새 앨범 ‘혼돈의 장: FREEZE’의 타이틀 곡이 ‘0X1=LOVESONG (I Know I Love You) feat. Seori’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0과 1을 아무리 곱해도 0이 그대로인 이상 결과 값은 무한히 0으로 도출될 수밖에 없다. 소년이 0으로 남아 있는 한 그들의 사랑 노래는 무한한 공허 속 외침일 뿐이다. 요컨대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영(0)원(one, 1)한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그들이 꿈꿨던 영원이 공허 또한 멈추지 않게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영원한 방학’이 ‘악몽’과 같다는 것(‘날씨를 잃어버렸어’)을 이미 깨달았기 때문이다. ‘혼돈의 장: FREEZE’에 이르러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살아가고 또 사랑하기를 택한다. 트레일러의 끝에 나타난 ‘TXT’ 로고가 차가운 얼음조각처럼 보이지만, 그 가운데에 힘찬 박동 소리를 내는 심장을 품고 있는 이유다. 꿈의 세계가 종말을 맞았고, 꿈에서 깨어난 소년들에게 혼돈이 찾아왔다. 그러나 혼돈(CHAOS)은 곧 공허 속에서 우주(COSMOS)가 태어날 것이라는 암시이기도 하다. 혼돈의 끝에서, 소년(adolescent)이 성년(adult)으로 거듭날 것임을 예고하는 순간이다.
글. 이예진, 강명석, 임현경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빅히트 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