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9일 방탄소년단의 ‘Permission to Dance’가 공개되었다. ‘Dynamite’와 ‘Butter’에 이은 세 번째 영어 싱글이다. 세 곡 모두 가볍고 신나는 댄스 곡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Dynamite’와 ‘Butter’ 사이에 자리한 한국어 앨범 ‘Be’와 그 타이틀 곡 ‘Life Goes On’까지 두고 보면 결과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시기를 함께 잘 지내보자는 메시지가 전달됐다는 공통점도 보인다.

바로 전작이었던 ‘Butter'가 청량음료처럼 톡 쏘는 질감이었다면 ‘Permission to Dance’에는 자극이라고는 없다. 노래의 처음부터 끝까지 부드럽고 심적으로 건강한(wholesome) 느낌을 담았다. 그동안 방탄소년단은 ‘학교 3부작’으로 통하는 초기작이나 ‘화양연화’ 3부작처럼 하나의 주제 아래 세 개의 활동곡을 묶어 한 활동 시기(era)처럼 다루어왔다. 이런 역사에 비춰봤을 때, ‘Permission to Dance’는 가볍고 신나는 음악으로 일상을 이겨내자는 새 주제를 열었던 첫 주자 ‘Dynamite’와 그 에너지를 구체화시킨 2번 주자 ‘Butter’에 이어, 이 시기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마지막 주자, 곧 엔딩 곡이다. 역사상 손꼽힐 규모의 월드 투어가 팬데믹으로 좌절된 후 그래도 웃을 수 있는 음악을 선보이고자 시작한 3부작 서사에 이보다 더 좋은 마무리가 있을까 싶다.

‘Permission to Dance’의 미덕은 뭐니 뭐니 해도 즐거움 중에 느껴지는 편안함이다. ‘Butter’가 강한 베이스로 에너지를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었다면 ‘Permission to Dance’는 원한다면 누구나 함께 추자는 부드러운 청유다. 쫄깃한 핑거 베이스가 어서 춤추자며 부르는 와중에 부드러운 현악 편곡이 멜로디를 감싸며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다. 따라 추기 쉬운 안무도 심리적인 진입 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물론 방탄소년단은 이보다 복잡하고 난이도 높은 안무도 소화할 수 있겠지만, 노래의 메시지를 생각하면 이 편이 훨씬 자연스럽다.
주 작곡가가 에드 시런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특히 편안하고 진솔한 느낌의 멜로디를 잘 쓰기로 정평이 나 있다. 이제는 ‘Shape of You’나 최근 발매한 ‘Bad Habits’ 같은 트렌디 팝 아티스트로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의 시작은 영국의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던 포크 싱어송라이터였다. 그의 어쿠스틱 팝 히트곡 ‘Photograph’나 저스틴 비버에게 제공한 ‘Love Yourself’ 등을 떠올려보면 편안한 음역대의 E메이저(마장조)에 장3도(도와 미) 중심의 멜로디를 즐겨 씀을 알 수 있다. 도와 미 중심 멜로디는 어디선가 들어본 듯, 익숙하면서도 꾸밈없는 느낌을 준다. 우리가 어릴 때 듣고 자란 대부분의 동요가 도와 미 중심의 메이저 멜로디이다. ‘Permission to Dance’ 역시 이 스타일이다. 높은 팔세토로 시작했던 ‘Dynamite’나 임팩트 있는 고음으로 시작했던 ‘Butter’와는 달리, ‘Permission to Dance’는 가온 도보다도 아래 옥타브인 E2를 루트로 두고 시작한다. 테너 성종의 정국이 말하듯 부를 수 있는 음역대다. 그래서 더 나긋하고 편안하게 들린다.

여기에 도, 시, 라, 솔, 파, 미 하며 한 칸씩 내려가는 캐논 코드 진행 역시 귀에 익숙하고 편하다. 우리가 잘 아는 도레미 음계를 거꾸로 걸어 내려가는 형태라 처음 듣는 사람도 다음과 다음을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친숙하면서, 동시에 감성적인 느낌도 준다. 국내 아이돌 팝 중에는 지오디의 ‘어머님께’나 ‘촛불 하나’가 캐논 코드를 있는 그대로 쓰거나 조금 변주한 대표적인 노래다. 김현철 등의 싱어송라이터들이 모여 만든 프로젝트 그룹 주식회사의 ‘좋을 거야’ 같은 노래도 ‘Permission to Dance’처럼 지친 일상에 보내는 부드럽고 편안한 위로를 담은 미디엄 템포 곡이다.

그런데 의외로 프리코러스의 “When the nights get colder”나 “Just dream about that moment” 그리고 포스트코러스의 “We don't need to worry” 부분은 반음으로 차근차근 내려가지 않는다. 앞의 파트에서 계단식 이동에 익숙해진 귀가 마이너로 시작하는 이 파트 역시 그러리라 짐작하는데, 노래는 이모셔널함을 두 마디 넘게 이어가주지 않는다. ‘Worry(걱정)’에 미간을 찌푸리듯 C#m - C로 반음만 내려간 뒤, 얼른 그 걱정을 털어내듯 A코드가 나오며 “Cause when we fall we know how to land” 하고 밝은 분위기로 전환되는 식이다. 이처럼 곡은 잠시 낙담하다가도 금세 희망을 집어든다. 기대를 살짝 배반하는 탓에 뒤이은 ‘떨어져도 착륙하는 법을 안다.’는 메시지가 좀 더 인상 깊게 들린다.

브리지 뒤에 마지막으로 반복되는 코러스에는 아예 악기가 싹 빠지고 손 박수와 아카펠라 하모니로만 채웠다. 마치 가스펠 같다. 여러 사람이 한 목소리로 이루는 아름다움에 귀를 기울일 즈음, 뮤직비디오 속에서는 팬데믹의 최일선에서 고군분투한 서비스 노동자들, 교사, 노인 그리고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마스크를 벗고 활짝 웃는다. 모두가 “Da na na na…”를 따라 부르며 국제 수어의 ‘즐겁다’, ‘춤추다’, ‘평화’ 동작을 넣은 안무를 함께하는 장면은, 그날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모두가 고대하고 있는 팬데믹 종식 후의 벅찬 미래다.

가사는 일견으로는 마냥 밝고 무해한 가사다. 전작 영어 싱글들과 비슷하게 즐거움과 행복감에 주안점을 뒀지만, 작년의 히트곡 ‘Dynamite’가 워낙 히트한 덕에 그 가사인 “Da na na na…”나 “Well let me show ya / That we can keep the fire alive” 등 셀프 레퍼런스를 넣을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Dynamite’나 ‘Butter’와의 차이점을 들자면, ‘Permission to Dance’에는 중간중간 방탄소년단의 서사와 중첩되는 이미지가 있다. 방탄소년단은 K-팝 가수 중에도 특히 곡에 본인들의 서사를 녹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온 그룹이다. 외국어 곡을 제공받을 때에는 이런 노력에 제약이 있겠지만, 역으로 제공을 하는 영어권의 곡자들에게 방탄소년단을 더 깊이 이해해야 좋은 곡을 쓸 수 있다는 동기부여가 되었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We don’t need to worry / ‘Cause when we fall we know how to land” 같은 가사에서는 이들이 한국 가수로는 전례 없는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한 시점 2018년에 슈가가 말한 “(함께라면) 추락은 두려우나 착륙은 두렵지 않”다는 인터뷰 내용이 함께 읽힌다. 우연의 일치 같지는 않다.
결정적으로, 노래의 제목이자 핵심 주제인 “We don't need permission to dance(‘우리가 춤추는 데 허락은 필요치 않다’)”는 방탄소년단이 완벽한 안무를 구사하는 K-팝 아이돌로서 받아온 미묘한 시선을 떠올리게 한다. 서구권에서 K-팝을 다룰 때 늘 빠지지 않는 포인트가 ‘소름끼치도록 완벽한 군무와 동선 이동’이다. 이는 분명 감탄과 칭찬이다. 그러나 지나친 강조에서는 때로 ‘쎄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팬들이 음악과 어우러지는 완벽한 안무를 순수한 팝 음악적 즐거움으로 받아들일 때, 어떤 시선은 이를 두고 ‘공장식 트레이닝’이라 일컬었다. 여기에는 옐로 페릴(Yellow peril, 동북아시아인이 서구 문명을 위협하고 정복할 것이라는 공포로 인종 혐오의 한 종류)에서 비롯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SF계에서는 테크노 오리엔탈리즘(Techno-orientalism)이라는 말로도 알려져 있다. 아시아인은 (서구인인 자신들과 달리) 감정이 없고 기계적이라는 편견이다. 최근 사례로, 20세기 바이올린 거장으로 유명한 핀커스 주커만이 줄리어드 스쿨 마스터 클래스 강연 중 “한국인은 노래하듯 표현할 줄 모른다, 유전자에 그런 게 없다.”고 말한 것이 알려지며 공분을 사고 즉각 사과하는 일이 있었다. 아름다운 안무와 라이브를 만들기 위한 K-팝 아티스트들의 반복 연습과 헌신은 아시아인에 대한 편견에 의거하자면 기이한 일에 불과했다. 이방인의 굴레는 방탄소년단 음악의 메시지가 깊어지고 안무가 정교해질수록 도리어 강고해졌다. 누구의 허락도 없이 추고 싶은 춤을 추겠다는 외침은 그래서 편안하지만 뼈 있는 표현이다.

‘Dynamite’는 이방인으로서의 어려움을 감수하던 중에 내놓은 번외작이었다. 이후 모두의 기대를 배반하며 코로나19가 장기화되었고, ‘Dynamite’와 비슷한 동기에서 ‘Butter’와 ‘Permission to Dance’가 연이어 탄생했다. 이렇게 세 작품을 하나의 새로운 카탈로그로 봐도 좋을 것이다. 과거의 방탄소년단답지 않다고 보는 시선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은 이미 일본 시장에 들어서며 ‘FOR YOU’, ‘Crystal Snow’, ‘Lights’, ‘Film Out’을 내놓아 일본 시장 한정 별도의 음악적 카탈로그를 만들어온 바 있다. 미국 시장의 영향력이 크게 보이다 보니 이것이 주(主)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을 뿐, 방탄소년단이 지난 8년 동안 한국어로 쌓아온 다양한 디스코그래피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에 유통되는 ‘트로이 목마’ 밈 방탄소년단 버전은 이런 이야기를 위트 있게 표현하고 있다. 방탄소년단과 아미가 미국 대중에게 신나는 영어 서머 송을 빌미로 문을 열게 만들어 복잡하고 깊이 있는 그들의 한국어 음악 세계를 침투시킨다는 내용이다. ‘Dynamite’ 3부작을 통해 방탄소년단은 분명 더 많은 보편 대중과 만날 수 있었다. 미국은 물론이고, 이제는 일본과 인도에서도 대다수의 대중이 즐겨 듣는 가수가 되었다. 유머러스하지만 통찰력 있는 농담이다.
팬데믹으로 공연업계가 모두 멈춘 이때, 방탄소년단은 도리어 세계적으로 더욱 큰 영향력을 끼치는 그룹이 되었다. 이 시기 방탄소년단은 #BlackLivesMatter와 #StopAAPIHate에 참여하기도 했고, MTV 언플러그드(Unplugged) 라이브에서 콜드플레이의 ‘Fix You’를 선곡하기도 했다. 작년 하반기에 내놓은 한국어 앨범 ‘Be’는 코로나19의 시대상을 받아들이며 ‘그 상황에서 어떡하면 음악이 듣는 이에게 위로가 될까.’를 연구한 곡들로 가득했다. 앞서 ‘Dynamite’와 'Butter’ 그리고 ‘Permission to Dance’가 별도의 카탈로그적 성격을 띤다고 언급했지만, 줌을 바깥으로 빼서 이들 커리어의 전반을 살피자면 사실 그들의 음악관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시대에 조응하는 음악으로 듣는 사람에게 위로를 전하고자 하는 점은 그대로다. 누군가는 음악에 정말 그런 힘이 있는지 물을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여정은 그런 질문에 음악으로 답해왔다.

2000년 개봉한 음악 영화 ‘올모스트 페이머스’에는 ‘Permission to Dance’의 가사처럼 주인공 일행이 엘튼 존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장면이 있다. 한 목소리로 ‘Tiny Dancer’를 부르는 이들에게선 우리는 때로 서로 갈등할지라도, 우리가 앞으로 각자의 사정으로 인생의 갈림길에서 흩어질지라도, 좋은 노래를 소리 높여 함께 부르는 지금만큼은 우리가 가장 행복하고 아름답다는 자신감이 흘러넘친다. 음악 영화사에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음악의 힘은 그런 잠시의 마법에 있을지 모른다. 방탄소년단이 오늘도 쉬지 않고 전진하는 이유는, 그런 마법 같은 음악의 위로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함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글. 랜디 서(대중음악 해설가)
사진 출처. 빅히트 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