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적인 청춘 찬양은 바로 지금 청춘의 고단함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이들의 단골 비웃음거리다. 내가 가장 청춘이었을 때, 그때의 빛과 맛 그대로 그 시간을 추억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생의 가장 빛나는 시기’라는 허울 좋은 표현 아래, 청춘은 발화자의 욕망에 따라 껍데기만 남은 채 이리저리 나부낀다. 눈치만 보다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친 이에게 청춘은 자유다. ‘내가 열 살만 젊었어도’를 문장마다 붙이는 중년에게 청춘은 기회다. 고뇌와 고통이 청춘의 필요충분조건이라 굳게 믿는 이에게 청춘은 아프니까 청춘이다. 우스운 이야기다. ‘우리는 모두 청춘이었다.’는 명제는 틀리지 않지만, 그 청춘이 모두 같은 모양을 하고 있을 거라는 기대는 순진을 넘어선 무지에 가깝다.

 

도무지 결론을 내릴 수 없는 각양각색의 청춘을 아이돌 팝으로 소화하는 건 그래서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일차원적인 접근이라면 물론 이보다 쉬운 일은 없다. 피상적인 청춘의 단면은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반짝이는 시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제 막 새로운 세포 생성을 마치고 완전한 모습을 갖춘 젊은 육체가 내뿜는 에너지는 ‘꾸미지 않아도 빛이 난다.’는 말이 단순한 수사가 아님을 증명한다. ‘젊은 한때’가 무엇보다 중요한 아이돌 팝은 그런 의미에서 청춘과 합이 꽤 잘 맞는 파트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보여준 세계도 그랬다. 흔히 ‘청량’이라는 단어로 쉽게 갈음되는 이들이 그려낸 청춘의 에너지는 비교적 쉽고 명료하게 읽히는 것처럼 보였다. 청아한 팝 사운드 위로 수려한 멜로디와 소년의 목소리가 동시에 흐르는 순간은 아이돌 팝과 청춘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선명한 푸른빛 그 자체였다. 이 모두를 아우르는 ‘꿈’ 세계관 역시 청춘을 떠올리면 직관적으로 연상되는 대표적인 단어였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뭔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택한 건 사실, 굳이 돌아가는 길이었다. 쉬운 길을 외면한 대가는 적지 않았다. 이들은 청춘이라는 단어가 가진 원형에 최대한 가까운 청춘을 그리기 위해 애썼다. 즉, 이 사람 저 사람 손에 시달리며 본질을 잃어버린 닳고 닳은 청춘이 아닌, 지금 청춘의 한가운데를 온몸으로 관통하고 있는 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청춘의 원류가 목적이었다. 그 노력은 때로는 안간힘처럼 느껴졌다. 대표적으로 투모로우바이투게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길고 복잡한 노래 제목 이야기를 해보자. 2019년 데뷔작 ‘꿈의 장: STAR’의 타이틀 곡이 ‘어느날 머리에서 뿔이 자랐다 (CROWN)’이라는 걸 들었을 때만 해도 ‘이것이 새로운 세대의 감성인가?’ 싶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들의 암호 같은 제목에 대한 집착은 가장 최근 작품인 ‘혼돈의 장: FREEZE’의 ‘0X1=LOVESONG (I Know I Love You) feat. Seori’까지 지속해서 이어졌다.

 

전통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오기라고 해야 할지 좀처럼 갈피를 잡기 힘든 이 고집스럽도록 긴 제목들 앞에서 길을 잃은 건 비단 이제는 청춘과 한껏 거리가 멀어진 이들만은 아니었다. 콘셉트와 세계관 중독에 시달리는 K-팝 씬 내부에서도 너무 과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왕왕 오갔다. 다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이 괴이할 정도로 복잡했던 제목은 일종의 ‘결계’가 아니었나 싶다. 요컨대 어린 시절 책상 밑이나 다락방에 하나씩 가지고 있던 나만의 아지트 앞에 세워둔 ‘암호를 푸는 사람만 출입 가능’ 같은 팻말 역할이었던 셈이다.

 

수수께끼를 두려워하지 않고 모험을 택한 이들 앞에 놓인 청춘의 모양은, 예상대로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꿈과 혼돈’의 세계는 사랑보다는 불안이, 희열보다는 고민이 만연한 곳이었다. ‘뿔’로 대표되는 남과 다른 나에 대한 뾰족한 현실 인식 그리고 그것을 공유하는 동료에 대한 강한 열망은 자연스레 이들의 세계관에 잔잔하게 어린 어둠과 가벼운 우울로 이어졌다. 쉽게 ‘중2병’이라고 치부되는 이 정서는, 실제로 이들과 같은 타임라인을 걷고 있는 지금의 청춘과 묘한 랑데부를 이루며 재미있는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흔히 ‘디지털 네이티브’로 소개되곤 하는 Z세대가 실질적으로 가장 가깝게 느끼는 자신들 세대의 특징이 ‘집단 우울’이기 때문이다. 개인주의나 다양성 추구, 실용주의 등 부모 세대인 X세대의 특징을 그대로 이어받았지만 그런 특성을 원하는 만큼 양껏 발휘할 수 있는 토양까지는 미처 부여받지 못한 이들은, 지금도 현실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경미한 우울감에 시달리며 매일 살아간다. 지금이 너의 인생에서 가장 빛날 시기라거나 젊다는 게 밑천이라는 이야기에 코웃음을 칠 수밖에 없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현실이라는 추상적 이상과 습관성 우울이 만들어낸 미로에 갇히지 않고 무사히 자신들의 궤도를 돌고 있는 건, 무엇보다도 이들이 가진 고유한 섬세함 때문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깊은 암흑 속에서도, 이들은 섬광처럼 잠깐 빛나는 한순간을 기필코 찾아내고야 만다. 타오르는 태양과 끝없는 기말고사를 뒤로하고 너와 함께하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우윳빛 은하수와 금빛 계절(‘Our Summer’), 오렌지와 푸른빛이 교차하는 하늘의 경계에서 ‘개와 늑대의 시간’이 가진 정의마저 바꿔버리는 마법(‘5시 53분의 하늘에서 발견한 너와 나’), 마치 피터팬과 웬디처럼 서로 절대 잊지 말자는 약속을 애절하게 나누는 밤(‘Magic Island’).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노래 속 화자는 현실과 환상 사이의 묘한 경계를 오가며 오직 그 시기에만 발현되는 예민한 자아만이 알아챌 수 있는 섬세한 감정의 결을 기꺼이 발견하고, 용기 있게 어루만진다. 

 

이건 마치 별을 줍는 행위와도 같다. 사람들 말마따나 ‘현실은 시궁창’인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마지막까지 빛나는 별 조각 하나를 찾아 헤매겠다는 의지의 선언이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솟아나고, 믿을 사람 하나 없는 비극적 결말을 눈앞에 두고도,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청춘은 끝내 숨어 있는 별 하나를 꼭 찾아내고야 말 것이다. 가장 빛나는 순간 그 빛을 그대로 즐길 수 없다는 ‘청춘’에 걸린 인류 최대의 저주는 변함없지만, 적어도 그렇게 찾은 별 조각이 가득한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청춘 주머니는 제 몫의 빛으로 긴 시간 빛날 것이다. 소용없는 짓이라는 사람들의 손가락질에도 묵묵히 별을 줍는 아이들이 있다. 청춘이다. 

글.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 빅히트 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