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틴은 지난 6월 발표한 앨범 ‘Your Choice’의 타이틀 곡 ‘Ready to love’의 퍼포먼스에서 쉼 없이 달린다. 제각기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때론 어긋나기도 하던 멤버들은 ‘우리 사이’, ‘처음 느낀 심장의 속도’ 등 스스로의 감정을 자각하는 순간만큼은 한 지점을 향해 달려간다. 심장이 세차게 박동하듯 묵직한 비트가 떨어지고 ‘I’m ready to love’라고 선언할 때, 이들은 정면을 응시하며 힘 있는 군무를 보여준다. 세븐틴은 곡에서 노래하는 감정의 대상을 특정하고 ‘너’를 마주 보며, 관객을 무대 위 서사에 개입시킨다. ‘Ready to love’ 퍼포먼스는 ‘너’를 위해 멈추지 않고 달려온 아티스트, 그들이 계속해서 달릴 수 있는 이유이자 도착지인 관객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Ready to love’ 엔딩에서 앞서 ‘널 위해 달릴게’라 노래한 에스쿱스는 무대 밖으로 달려 나가고, ‘Anyone’ 말미 무대 앞으로 곧게 걸어 들어온다. “‘Power of love’의 시작은 리더여야만 했어요. 멤버들과 안무팀 모두 에스쿱스가 곡의 마무리를 장식해야 한다는 데에 이견이 없었죠.” 윤혜림 플레디스 퍼포먼스디렉팅팀장의 말처럼, 노랫말에서 ‘사랑’이라는 단어 자체를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일조차 드물었던 세븐틴이 타이틀 곡 제목에서 ‘love’를 내세웠을 때 그리고 총괄리더인 에스쿱스가 ‘너’를 향해 달려올 때, 비로소 오롯한 퍼포먼스가 성립된다. 이러한 점에서 세븐틴의 무대는 ‘스토리쇼잉(Story-showing)’에 가깝다. 많은 이들이 세븐틴의 퍼포먼스에서 극과 공연을 결합한 뮤지컬을 떠올리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이들은 곡을 통해 말하고(tell), 퍼포먼스로 보여준다(show).
세븐틴이 만들어가는 무대는 이들이 데뷔 전부터 추구했던 창작 방식인 ‘자체 제작’과 무관하지 않다. 멤버들이 직접 프로듀싱, 작곡, 작사, 안무 등 과정 전반에 참여하는 세븐틴에게 퍼포먼스는 스스로를 기록하는 창작물이자 소통 방식이다. 데뷔 전 호시가 안무 전반을 창작하고 우지가 작곡, 우지, 에스쿱스, 버논이 작사에 참여한 ‘Shining Diamond’ 무대는 이러한 특징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무대의 네모난 틀 안에서 벗어나 넓은 시야의 새로운 그림을 보여주고 싶었어요.”라는 호시의 말처럼, 무대 위 퍼포머, 무대 아래 조력자, 관객, 심사자 등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흩어졌던 멤버들은 세븐틴의 퍼포먼스가 펼쳐지는 장을 무대 위로 국한하지 않는다. ‘Let me show you how, It’s supposed to be done right now’라 말하는 순간 한 팀으로 단합하고, ‘충분한 시간과 압력’을 발판 삼아 높이 도약하며 화려하게 빛나는, 그러면서도 단단한 다이아몬드가 된다. 호시는 이에 대해 “연습생 시절 팀을 나눠 무대를 창작하고 심사 받는 평가회 공연을 하면서 많이 성장했어요. 저는 진짜 기계치인데도 디노랑 상의하면서 어떻게든 노래를 편집했고, 다른 팀이었던 민규가 타이밍에 맞게 조명을 껐다 켜면서 효과를 도와줬어요.”라고 설명했다. 그들 스스로가 세븐틴이자 세븐틴을 위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창작자이기에, 누구보다 세븐틴에 대해 잘 알고 표현할 수 있는 퍼포먼스를 구현한다.

“우지가 춤을 워낙 잘 추니까 댄스 곡을 기가 막히게 만들어요. 춤추는 사람은 ‘여기서 터져야 하는데.’ 이런 걸 알거든요. 제가 무대에서 어떻게 할지를 상상하고 설명하면 우지는 그걸 캐치해서 디테일한 음악을 만들어내요.” 호시의 말처럼, 세븐틴이 공유하는 곡과 안무에 대한 높은 이해도는 무대의 완성도로 이어지고, 축적된 무대 경험은 창작의 성과로 돌아온다. ‘2018 MAMA’에서 선공개한 ‘숨이 차’ 퍼포먼스가 대표적인 예다. 우지는 “다음 앨범 타이틀 곡이 ‘Home’으로 정해진 상황에서, 세븐틴의 강점인 퍼포먼스가 주가 되는 무대를 보여주는 게 좋겠다고 의견을 모아 시작된 곡”이라고 설명했다. 콘셉트가 정해지자 호시는 무대에서 구현하고 싶은 느낌을 담은 댄스 대회 영상을 보여줬고, 우지와 계범주 프로듀서가 이에 영감을 받아 호시가 기존에 써둔 트랙을 재구성했다. “세븐틴의 창작이죠.” 호시가 말했다. 그는 “꼭 진지하게가 아니더라도 장난을 치면서 나오는 아이디어들이 많아요. 제약 없이 이것저것 던져보다가 이게 너무 가볍지도 않고 괜찮다, 센스 있다, 이러면서 무대에서 할 것들을 정리해요.”라고 부연했다. 이어 우지가 말했다. “사실 저희한테는 자체 제작이 하나도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어요. 지금 보면 어린 애들끼리 귀엽게 장난치는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어떤 결과물이 나온다는 건 그만큼 그 어린 나이에도 뭔가 조금 프로답게 항상 생활처럼 창작에 임하고 있었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데뷔 앨범 ‘17 CARAT’ 프로듀싱과 함께 ‘아낀다’의 작곡, 작사, 편곡에 참여한 우지는 “당시 다소 세고 어두운 분위기의 음악들이 인기 있던 때였지만 우리 세븐틴이라는 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라며 “13명의 멤버들은 혹독한 연습생 생활을 버틴 만큼 강한 친구들이었지만 동시에 웃음이 가득한, 굉장히 밝은 아이들이었어요. 우리 팀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은 이것이라고 생각하며 ‘아낀다’를 만들어갔죠.”라고 회상했다. 그렇기에 ‘아낀다’의 퍼포먼스는 풋풋한 소년이 조심스럽고 소중한 마음을 표현하는 곡의 메시지에 더해, ‘아낀다’를 전하는 세븐틴이 누구인가를 보여주는 무대이기도 하다. 한 소년이 속삭이며 시선을 끌어모으는 것으로 세븐틴에게 호기심을 갖게 하고 나면, 에스쿱스가 랩 파트 후 기절하듯 눕자 심폐소생술을 하는 호시, 준의 어깨동무를 민망한 듯 밀어내는 원우, 조슈아를 번쩍 들어올린 디노 등 관객의 시선을 정확히 의도한 방향으로 이끌며 소개를 이어간다. 멤버들만으로도 화려한 무대를 연출할 수 있는 다인원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뿐 아니라, 무대 위 멤버들에게 입체적인 캐릭터를 부여해 짧은 순간만으로도 개성과 관계성을 각인시킨다. 호시는 이에 대해 “당시 영준이 형(최영준 안무가)을 만나면서 대중성 있으면서도 바닥에 누워버리는 것처럼 허를 찌르는, 차별성 있는 무대를 만들 수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윤혜림 팀장은 최영준 안무가와의 협업에 대해 “데뷔 전부터 ‘무대 위에서 하고 싶은 것’이 분명했던 세븐틴과 최영준 안무가의 케미가 처음부터 워낙 잘 맞았어요. 최영준 안무가가 새로운 도전 100개를 던지면 멤버들은 100개 그 이상을 소화해내면서 계속해서 욕심이 생기게끔 한 거죠.”라고 설명했다.
세븐틴은 ‘아낀다’ 첫 방송 이후 볼링, 줄다리기, 음악회, 축구 등 매번 새로운 동작으로 퍼포먼스에 변주를 줬다. 8주 내내 머리를 맞대고 3~4시간씩 참신한 동작을 고민하던 멤버들은 시간이 흘러 ‘Left & Right’에서 멤버들이 서로를 지탱하거나 하이파이브를 했던 것처럼 즉각적으로 신선한 그림을 만들어낸다. 우지는 “‘아낀다’ 때엔 캐럿분들이 많이 좋아해주셨고 대중분들도 신기하게 받아들여주시니 다소 의무적으로 만들어냈던 부분이 있었어요.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갈수록 ‘어, 여기서 이렇게 한번 할래?’ 하면서 순간적으로 바꿔보는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세븐틴과 퍼포먼스가 함께 성장하듯, 세븐틴의 퍼포먼스는 세븐틴의 삶과 궤를 같이하며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는, ‘이제 이거 해야 돼.’의 느낌이에요.” 우지의 말처럼, 세븐틴은 “그때의 세븐틴이 느끼는 바”에 따라 어떤 무대를 해야 할지를 알고 있다. ‘울고 싶지 않아’에서 에스쿱스가 ‘이 길이 낯설다’라고 자문할 때, 멤버들은 가로등이 되어 그의 걸음걸음을 밝혀준다. “우지와 범주 형이 밤새서 곡 작업을 하고, 저는 그걸 받아서 영준이 형이랑 안무를 짜고 해가 뜰 때쯤 숙소로 돌아오면, 말은 안 해도 느껴져요. 우리 멤버들이 그걸 되게 존중하고 있다는 게.” 호시는 동이 틀 때까지 연습실에 있다가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차례로 꺼지던 가로등을 보며 해당 동작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우지는 이에 대해 “형언하기 어렵지만, ‘울고 싶지 않아’는 다른 결로서 완성도가 높은 무대예요. 호시도 저도, 영준이 형도 ‘울고 싶지 않아’를 공통적으로 꼽는 이유는 직접 뛰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그런 느낌을 공유하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이어 우지는 “멤버들, 특히 호시와는 오랜 시간 함께해온 만큼 음악적으로 잘 맞아요. 춤을 추는 퍼포머의 입장에 있기도 하다 보니 음악의 어떤 부분이 춤을 살릴 수 있는지에 대한 개념이 온몸에 박혀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윤혜림 팀장은 “퍼포먼스 후반 작업은 모든 멤버가 연습실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며 진행돼요. 특히 세븐틴은 워낙 연습이 끊이지 않고 연습실에서 자주 모이다 보니 특별한 자리를 만들지 않아도 그때그때 가볍게 회의하고 무대에 적용하는 일이 일상처럼 이뤄지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호시 역시 “안무를 구상할 당시에는 떠오르지 않았던 부분들이 멤버들과 함께하면서 더 좋은 구성으로 나오곤 해요. 다들 안무를 잘 소화하는 데에다 ‘여기서 이렇게 팔을 더 들어볼까?’라는 식으로 새로운 동작까지 구사하거든요. 오히려 멤버들이 좋은 그림을 만들어줄 때가 많아요.”라고 전했다.
‘2020 더팩트 뮤직 어워즈’와 ‘제35회 골든디스크어워즈’에서 한국어 버전 무대를 공개했던 ‘舞い落ちる花びら(이하 ‘Fallin' Flower’)’는 세븐틴의 퍼포먼스가 지향하는 바를 다시금 명확히 한다. 세븐틴은 ‘Fallin’ Flower’에서 스스로 ‘꽃’이 되기를 자처한다. 정한이 싹을 틔우는 것으로 시작해 뿌리를 내리고 줄기와 잎을 뻗던 이들은 ‘이런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줬음’을 노래할 때 꽃봉오리가 되고, 고조됐던 사운드가 잦아들어 준의 목소리만이 남은 순간 활짝 만개했다가 시들어버린다. 아주 찰나의 순간 피었다 진다 해도 ‘너’를 만났기에 꽃을 피우기 위한 인고의 시간들이 유의미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때문에 그들은 흩날리는 꽃잎을 소중히 한 손에 잡아 쥐면서, ‘falling’할 걸 알지만 ‘fall in’한다. “세븐틴의 모든 노래와 춤은 팬덤인 캐럿들을 위한 것”이라는 멤버들의 말을 떠올리면, 이 무대는 아티스트가 자신의 관중을 향해 띄우는 간절한 연서로 읽힐 수 있다. 무대 위 세븐틴은 언제나 팬들을 향해 있다. 호시가 2015년 ‘만세’ 첫 무대를 최고의 퍼포먼스 중 하나로 꼽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는 팔을 힘차게 뻗으며 달려 나가는 절정의 순간을 ‘캐럿들의 휘둥그레 놀란 눈과 커다란 환호성’으로 기억한다. 서툴게 마음을 전했던 소년들은 어느덧 슬픔의 감정을 직시하게 됐고, 단단해진 내면으로 ‘잠깐 쉬고 가도 돼’라며 지친 타인을 위로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들은 다시 만날 날을 위해, 다시 꽃피울 준비를 멈추지 않는다.
세븐틴은 데뷔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달려왔다. “열심히 하는 수밖에요. 이런 마음은 연습생 때부터 지금까지 놓은 적 없어요. 세븐틴의 자부심이거든요. 뼈가 부서지더라도 항상 무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우지가 이렇게 말하자 호시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나갔다. “정답이 없어요. 새로움을 위해 이걸 찾아가다가 저기서 새로운 게 나오고 그럴 때도 있으니까요. 연습하고 연구하는 거 말곤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그 연습 속에서 아이디어가 생겨나고, 아이디어에는 그들의 삶과 팬덤 캐럿과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 담긴다. 멤버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퍼포먼스에 담긴 아이돌로서의 성장, 관계 그리고 인생. K-팝 산업 안에서 세븐틴의 퍼포먼스가 가진 가치다.
글. 임현경
디자인. 점선면(@basicfigure03)
비주얼 디렉터. 전유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