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보 제1호에서 무대하는 그룹이 있다?” 9월 26일 방탄소년단의 ‘2021 글로벌 시티즌 라이브’ 무대를 알리기 위해 방탄소년단 트위터 계정에 업로드된 문구다. 곧이어 방탄소년단의 팬덤 아미들이 운영하는 여러 ‘번역 계정’이 영어를 비롯한 다양한 언어로 문구를 번역해 게재했다. 157만 팔로워를 보유한 ‘BTS Translations / Bangtansubs(이하 ‘BTS Translations’)’에서는 영문 번역과 함께 국보 제1호가 ‘숭례문’을 의미한다는 원문에 없던 정보를 짧게 덧붙이기도 했다. 한국인 아미들에게 숭례문의 ‘국보 제1호’라는 별칭은 익숙하지만, 해외 아미들에게 낯선 표현이기 때문이다. 최근 방탄소년단과 콜드플레이의 협업 곡 ‘My Universe’의 한국어 가사를 번역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BTS Translations’는 가사 중 ‘수놓다’라는 표현을 맥락에 맞춰 ‘fill up’으로 번역했으나, 해당 단어에는 ‘자수를 놓다(embroider)’는 의미가 있음을 짚어주는 설명을 추가했다.
“아미는 방탄소년단이 ‘실제로’ 어떤 말을 쓰는지 가장 궁금해하며, 그 말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싶어 한다.”는 하이브에듀 최영남 사업대표의 말은 번역 계정이 아미들에게 중요한 이유를 설명한다. 전 세계 아미는 방탄소년단의 노래부터 ‘달려라 방탄’에 등장하는 농담, 위버스와 트위터에서 신조어나 말버릇까지 그 온전한 의미나 뉘앙스를 파악하고 싶어 한다. ‘BTS Translations’는 지민의 ‘Christmas Love’에 나오는 ‘소복소복’을 그 예로 들었다. 눈이 쌓이는 걸 묘사하는 이 단어가 영어에는 없다 보니, 그 의미가 전달될 수 있도록 ‘softly, gently’를 택하여 번역했다. 또한 ‘고마워용’처럼 어미에 귀여움이 담겨 있다면 ‘Thank youuu’로 표시한다거나, 제이홉이 자주 사용하는 ‘~얌’은 주석을 통해 귀여운 말투로 작성됐다고 부연하기도 한다. 단순히 문장을 한국어에서 영어로 변환하는 것을 넘어, 그 속에 숨겨진 맥락과 멤버들의 말버릇을 설명하려는 노력의 결과다. 번역 계정들은 한국 팬 커뮤니티의 신조어와 유행을 섭렵하고, 그 뉘앙스까지 영어 사용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섬세한 규칙을 만들며, 끊임없이 고민하고 공부한다.

한 팬이 올린 ‘조선 붕당의 이해’ 패러디 글에 RM이 ‘실학 한표요’라는 댓글을 달며 번역 계정들이 고민에 빠진 일화는 유명하다. RM의 댓글 다섯 글자를 해외 팬들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붕당정치’라는 조선 역사에 대한 지식과 이 도표를 한국 커뮤니티에서 다양하게 패러디해왔다는 정보를 모두 전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BTS Translations’의 경우 Agust D의 ‘대취타’가 큰 난관이었다. 제목부터 가사 곳곳, 뮤직비디오에 조선 시대의 역사적 배경이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BTS Translations’의 경우 관련된 자료를 조사하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서로 논의를 거듭했다. 번역가들의 노력은 전 세계 아미가 방탄소년단의 콘텐츠를 중심으로 생활과 문화에 훨씬 밀착된 한국어에 자연스럽게 접근하도록 만든다. 베트남 호찌민시의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박유찬 교원은 “관심사를 통해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한국어가 딱딱한 공부가 아닌 즐거운 놀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드라마나 음악을 자주 접한 학생들은 배우지 않은 문장과 단어뿐 아니라 ‘헐’, ‘대박’, ‘진짜요?’ 같은 리액션을 하기도 한다.”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어 실력이 향상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BTS Translations’의 팀 코디네이터 멜리사(Melissa)는 “방탄소년단의 콘텐츠에는 자연스럽게 사회적 이슈, 한국의 전통악기, 음식과 유행어 같은 한국 문화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아미 캐릭터 ‘보라’가 한국을 여행하는 콘셉트의 ‘Bon BORAge’나, 방탄소년단이 만들었던 요리의 레시피를 소개하는 ‘The BTS RECIPE in Korean’ 같은 교육 콘텐츠 역시 이런 맥락에서 등장할 수 있었다. 방탄소년단에서 시작된 한국어 공부는 자연스레 음식과 같은 생활 문화에 대한 관심과 결합되고, 문화에 대한 이해는 다시 언어 실력의 향상을 가져온다. 박유찬 교원은 세종학당에서 한국의 명절 문화와 음식을 체험하는 행사를 통해 “수업하기도 전에 학생들이 음식 이름을 다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전하면서, “문화에 노출되는 만큼 한국어 공부에도 효과가 좋아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유찬 교원은 학생들에게 “‘주말에 뭐 했어요?’라는 질문을 하면, 드라마를 봤다는 학생 대부분이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봤다고 말한다. 심지어 ‘‘D.P.’ 봤어요? ‘오징어 게임’ 봤어요?’라며, 한국인인 나보다 빠르게 한국 콘텐츠 소식을 전해주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2019년 한글날, 전 세계 아미가 #방탄때문에_한글배웠다라는 해시태그 이벤트를 할 만큼 많은 아미들이 한국어를 배우게 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최영남 사업대표는 “공부를 하면서 감사와 행복이 깔려 있는 반응은 처음 봤다. 하이브에듀의 콘텐츠가 100을 제공한다면, 아미 분들은 120을 사용하는 듯하다.”며, 한국어에 대한 아미의 열정에 감사와 경의를 전했다.
‘방탄 아카데미(Bangtan Academy)’는 2020년 8월부터 음성 채팅 앱 디스코드를 활용해 일종의 온라인 학교를 운영 중인데, 현재 2400여 명의 학생들이 40여 개 단계별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의 한국어 강의와 교재를 활용해 심도 있는 한국어 공부를 지원하고, 아미인 선생님과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서로를 도우며 학습하고, 다양한 관심사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방탄 아카데미’의 관리자 중 조니(Joni), 케리안(Kerian), 루나(Luna), 마리아(Maria)는 각각 자막에 의지하고 싶지 않아서, 가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또 말의 의미뿐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느낌을 이해하고, 번역기 없이 내 말을 전달하고 싶어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방탄 아카데미’의 관리자 벡스(Bex)는 “냉장고 속의 한식과 김치가 자연스러워졌고, 일상적으로 김밥과 떡볶이, 다양한 ‘전’을 만들기도 하며, 매운 음식도 전보다 잘 먹게 되었다.”고 말할 만큼 한국어는 물론 한국 문화 전반을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한다.

한국어를 배우는 아미를 비롯해, K-팝과 한국 드라마, 영화 등을 계기로 한국어를 배우는 학습자들은 꾸준히 증가 중이다. 최영남 사업대표는 “최근 몇 년간 한국어 학습 수요가 급증했다는 말을 여러 경로로 들었고, 실제 지표로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언어 학습 앱 ‘듀오링고’에서 발행한 2020년 리포트에 따르면, 자사내에서 한국어는 “전 세계 기준 두 번째로 학습자가 급성장한 언어”이며, 인기 있는 언어 7위에 올랐다. 작년 출시한 하이브에듀의 한국어 교재 ‘Learn! KOREAN with BTS’는 적어도 70~80개 국가에서 구매 중이며, 해외 7개국 9개 대학에서는 정식 교재로 채택되어 실제 수업에 사용 중이기도 하다. 최영남 사업대표는 “통계 조사 결과 전 세계 1800여 개 초·중·고등학교 20만여 명의 학생이 한국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것으로 집계되며, 이 수치는 급증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박유찬 교원 역시, “최근 베트남에서 제1외국어로 한국어가 채택됐고, 올해 하노이 한 대학의 한국학과는 입시에 필요한 점수가 가장 높았다.”고 현황을 전했다. 그리고 듀오링고는 한국어 교육 수요 상승의 원인을 “K-팝과 드라마, 영화 같은 한국 문화와 미디어”로 분석한다.
아미와 같은 팬덤에 속한 사람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경우가 늘면서, 한국어는 그들 사이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종의 공용어 역할을 부분적으로 수행하기까지 한다. 2020년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분쟁 당시, 해당 이슈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10대 여성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한국어로 작성된 피켓 사진과 해시태그를 SNS에 업로드했다. 그 이유는 한국어가 전 세계 곳곳에 분포된 K-팝 팬덤들이 영어 외에 공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이기에, 많은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이슈를 알리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여러 한국 언론은 해석했다. 이는 단순히 한국어 학습자와 사용자가 통계적으로 늘어난 것에 그치지 않고, 한국어가 특정한 집단 속에서 소통을 주도하며, 유대감을 갖게 하는 언어로 기능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BTS Translations’의 페이스(Faith)가 “‘보라해’, ‘꽃길만 걷자’, ‘아무행알/방무행알’ 같은 문구는 친밀한 팬들 그리고 방탄소년단과 자신을 연결하는 특별한 암호 같다.”고 설명했듯 말이다. ‘방탄 아카데미’ 관리자들 역시 “‘방탄 아카데미’의 아미가 되면서 소속감을 느끼고, 방탄소년단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과 연결되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면서, ‘방탄 아카데미’는 팬데믹 속의 좌절감으로부터 벗어나고, 일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생명줄”이 되어주었다고 말한다.

‘BTS Translations’의 번역가 린네(Rinne)는 한국어가 평생을 유럽에서 산 자신을 “포용력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고 말한다. 이런 개개인의 변화는 때론 그들 앞에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인생의 길을 안내하기도 한다. 싱가포르 출신의 페이스 역시 처음으로 본인 의지로 결정해 한국어를 배우게 되면서 “대학 공부를 위해 한국으로 향하거나 한국 드라마, 미디어 업계와 일하는 기회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건 타인에 대한 이해심과 포용력을 확장시키고, 한 사람의 세계를 열어주는 일”이라는 케리안의 말처럼, 새로운 언어는 개인에게 세계를 다른 시각에서 보고, 자신이 새로운 세계의 일원이 될 기회가 되기도 한다.
‘BTS Translations’의 번역가 아디띠(Aditi)는 한국어를 배우며 “친구나 사랑하는 이들에게 ‘수고했다’, ‘고생했다’ 같은 말을 건네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면서, “단지 어휘력이 는 걸 넘어, 이전에 정의할 방법이 없던 감정과 경험들을 명명할 수 있게 된” 변화를 설명했다. 세밀한 감정 표현이나 수식이 많은 한국어가 오히려 감정을 구체화하는 새로운 수단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는 언어의 힘이기도 하다. 예컨대 한국어의 ‘존댓말’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한국의 ‘예의’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이는 타 문화권의 사람에게 자신이 속한 집단과의 차이점과 유사성을 고찰하게 한다. 그 과정은 사고의 확장을 불러오고 아디띠처럼 소통 방식에 새로움을 부여하거나, 타인을 대하는 태도까지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한국어는 전 세계에서 사용자가 현저히 적고, 서로 유사한 문자와 구조를 지닌 서구권의 언어와는 달라 진입장벽이 높은 언어로 꼽힌다. 그럼에도 학습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게 주목해야 할 사실이다. 그 기반에는 방탄소년단과 같은 아티스트의 작품들이 가진 힘이 있다. 가사 한 줄을 함께 따라 부르기 위해, 그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그 속에 담긴 메시지까지 온전하게 알기 위해. 이 단순하고도 간절한 마음은 언어에 대한 깊은 관심과 이해를 가져온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래서 알고 싶다는 가장 순수한 동력. 이 공통된 동력을 지닌 아미들은 한국어를 통해 연결되고, 서로를 도우며 연대하고, 서로에게 활력을 불어넣는 공동체를 만들기도 한다. 루나는 “한국어를 배우는 건 나에게 ‘이해’를 의미한다.”고 전했다. 그의 말에서 ‘이해’를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타인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더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 사랑은 더 나아가 함께 살아가는 ‘서로’를 이해하는 소통 방식이자 연결 고리가 된다. 아미가 한글과 한국어를 통해 방탄소년단을, 더 나아가 다른 아미들을 이해하는 것처럼. 그리하여 서로의 언어가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 주는’.
글. 윤해인
디자인. 양승희 @seung.hee_yang
비주얼 디렉터. 전유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