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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지은(작가), 임수연(‘씨네21’ 기자), 김겨울(작가),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ENA, 넷플릭스)

최지은(작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천재’ 변호사, 우영우(박은빈)의 캐릭터 설정은 양날의 검과 같다. 장애가 있는 주인공을 통해 비장애인들의 차별적 인식을 허물어뜨릴 수도 있지만, 장애를 ‘극복’할 만큼 특별한 능력을 갖춘 사람만이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준다면 또 다른 차별을 강화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어려운 과제를 성실하게 돌파해 나가는 드라마다. 우영우는 중증 자폐인인 의뢰인 김정훈(문상훈)이 자신과 여러 면에서 다르다는 사실을 알지만, 비장애인들은 호의에서든 적의에서든 둘을 ‘같은’ 장애인으로 취급한다. 정훈의 어머니는 아들을 비롯한 다수의 자폐인과 달리 학업 성취도가 높고 사회생활이 가능한 우영우를 보며 복잡한 심경을 토로한다. 자폐인에 대한 대중의 무지와 적의를 접한 우영우는 말한다. “80년 전만 해도 자폐는 살 가치가 없는 병이었습니다. 지금도 수백 명의 사람이 ‘의대생이 죽고 자폐인이 살면 국가적 손실’이란 글에 ‘좋아요’를 누릅니다. 그게 우리가 짊어진 이 장애의 무게입니다.” 그 순간 시청자도 새로운 과제와 마주한다. 이 무게 앞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RRR’(넷플릭스)

임수연(‘씨네21’ 기자): 인도 영화에는 인도만이 만들 수 있는 호쾌한 박력이 있다. 호랑이를 맨손으로 제압한다는 영웅신화적 설정도 인도 영화 특유의 흥에 몸을 실다 보면 자연스럽게 설득된다. 현재 한국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는 ‘RRR’은 1920년대 영국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인도 제국을 배경으로 두 독립운동가의 우정에서 혁명으로 이어지는 여정을 활력 있게 담아낸 액션 뮤지컬이다. 실존 인물로부터 영감을 얻은 두 독립운동가 캐릭터 코마람 빔(라마 라오 주니어)와 남 라마 라주(람 차란)의 버디 액션과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가무에 오감을 뺏기다 보면 185분 러닝타임이 90분처럼 지나간다. 원래 힌디어가 아닌 텔루구어(인도 동남부에서 사용되는 언어)로 만들어진 작품이기 때문에 발리우드가 아닌 ‘톨리우드’라 일컫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며, 1930년대 톨리우드가 인도 독립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상기할 때 ‘RRR’의 성취는 즐거운 오락 영화 이상의 역사적 맥락을 갖는다.

‘노랜드’ - 천선란

김겨울(작가): 한국 SF가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많은 SF 작가가 주목받으며 탄탄한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는 착실하고 풍부한 스토리텔링과 정돈된 문체로 무장한 작가들의 내공 덕이다. 그 주역 중 하나인 천선란 작가가 두 번째 소설집 ‘노랜드’를 출간했다. 장편소설 ‘천 개의 파랑’, ‘나인’, 소설집 ‘어떤 물질의 사랑’ 등을 통해 희망찬 세계를 보여주었던 것과 달리 이번 책에서 천선란 작가는 인간이 처한 죽음이라는 운명적 부조리를 똑바로 응시한다. 호러, 미스터리, 좀비물, 순문학까지도 아우르는 작품들은 전쟁과 종교, 폭력과 같은 문제를 다루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힘센 주제들을 단단히 묶는 것은 작가의 차분한 묘사다. 작가는 아마도 죽음을 향해 떠나는 사람, 그 곁의 사람, 떠났다 돌아오는 사람, 떠나러 가는 사람에 대해 아주 많은 질문을 던졌던 것 같다. 오랜 질문이 축적되어 탄생한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긴 여운을 남긴다. 

‘싫증’ – 김새녘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 “가느다란 사랑 하자며 나를 쫓아 따라오지 말아요 / 나는 줄 수 있는 것이 없어요 / 같은 생각 나눌 수도 없어요”. 당장이라도 사라져버릴 것 같은 목소리는 그런 것치고는 제법 단호하게 노래한다. 그렇게 나를 보고 싶다면 다른 핑곗거리를 데려오라고, 왜인지 모를 슬픔을 마주한대도 아프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거라고.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반복되는 기타 리프는 그렇게 분명한 신호를 보내는 아픈 말들을 애써 감싸 안는다. 싫증 나버린 날들이, 싫증을 느끼는 네가 잘못된 게 아니라고. 그냥 그렇게 되어 버렸을 뿐이라고. 세상엔 그런 일들이 참 많다고.
 
첫 앨범 ‘새빛깔’로 데뷔한 싱어송라이터 김새녘은 마치 세상의 모든 비밀을 미리 알아버린 사람처럼 노래한다. 기타 팝과 드림 팝 어디쯤에서 꿈결처럼 울리는 밴드 연주는 그런 그의 노래들에 실린 이야기에 정성스레 살을 붙인다. 이미 한참 멀어진 마음을 따라 공기 중으로 흩어진, 서로에게 몰두했던 뜨거운 시절이 별안간 연결되며 어렴풋한 형체를 띤다. 애를 쓴다. 그래도 사라질 건 끝내 사라질 것이다. 모든 게 싫증 나던 시절마저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마음이 어려운 어느 날 밤, 이 노래가 문득 떠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