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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리은, 강명석, 송후령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절대영점’의 목소리


김리은: 뉴이스트 활동 시절, 백호의 파워풀한 고음은 팀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였다. ‘여왕의 기사’, ‘LOVE PAINT(every afternoon)’, 그리고 ‘BET BET’ 등의 곡에서 백호의 힘찬 목소리와 높은 음역대는 후렴구 파트에 드라마틱한 감정을 부여했다. 뉴이스트 정규 2집 ‘Romanticize’의 솔로 곡 ‘NEED IT’에서 백호가 팔세토 창법으로 부르는 부분의 음역대는 D#5(3옥타브 레#)에 이른다. 그런데 백호의 첫 솔로 앨범 ‘Absolute Zero’에는 좀처럼 고음이 등장하지 않는다. 앨범 수록 곡 ‘LOVE BURN’은 사랑을 화상에 비유할 만큼 강렬한 감정을 담고 있지만, 백호는 일부 고음을 쓰는 부분에서도 보컬을 가성으로 처리하며 목소리가 마치 트랙의 일부인 것처럼 흘러가듯 노래하고, ‘BAD 4 U’에서는 곡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Bad 4 u Bad 4 me”에서 오히려 음을 조금 낮추며 힘을 빼고 부른다.

 

‘Absolute Zero’의 마지막 곡 ‘변했다고 느끼는 내가 변한 건지 (feat. Sik-K)’에서 곡의 도입부이자 훅 역할을 하는 “I wanna go back / 내가 전부 미안해 / 무슨 말이 더 필요해 / 그냥 내 맘대로 할래 / 우리 그때로 Turning back”에서 백호는 트랙 전반에 깔린 록 기타에 어울리게 목을 긁으며 힘차고 터프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의도적으로 조금씩 퍼지게 믹싱돼 있거나, 고음으로 올라갈 때 오히려 약간은 소리를 눌러서 감정을 삼키는 것처럼 처리돼 있다. 그만큼 백호는 절절하게 노래하지만, 동시에 그는 이미 변해버려 되돌릴 수 없는 관계를 아프게 회상하는 것 같은 순간을 전달한다. ‘Absolute Zero’에서 백호는 보컬리스트로서 자신의 장점을 절제한다. 대신 목소리를 곡마다 전체적인 사운드의 일부로 활용하고, 노래 한 곡 안에서도 목소리의 톤, 리듬, 믹싱 등에 디테일한 변화를 주며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할 방법을 찾는다.

 

이 변화는 솔로 아티스트로 나서는 백호가 무엇을 성취했는지 보여준다. 타이틀 곡 ‘No Rules’에서 그는 앨범 중 가장 다채로운 보컬 테크닉을 발휘한다. 도입부에서는 얇은 가성으로 곡의 감정선을 전달하는 데에 집중하고, “모두 숨을 죽인 채 우리 바다는 Lights on”으로 시작되는 파트에서는 랩에 가까울 정도로 리듬감을 강조한다. 그 뒤 프리코러스에서 점차 성량을 높인 다음 코러스 파트의 “Woo Baby”에서는 특유의 힘찬 성량을 들려주지만, 가장 고음에 다다라서는 오히려 가벼운 가성을 쓴다. ‘No Rules’는 현재의 사랑에 집중하자는 뜨거운 가사를 담았다. 그러나 파트마다 감정의 디테일을 예민하게 조절하는 백호의 보컬은 열정적인 사랑을 쿨한 분위기로 소화한다. 그 결과 ‘No Rules’는 청자의 선택에 따라 가사에 몰입하며 듣는 뜨거운 사랑 노래가 될 수도, 곡의 흥겨운 리듬에 몸을 맡길 수 있는 쿨한 이지리스닝 팝이 될 수도 있다. 요컨대 ‘Absolute Zero’는 분자의 에너지 흐름이 ‘0(zero)’가 돼 어떤 저항도 없는 상태를 나타내는 앨범 제목 그대로, 보컬리스트 백호가 자신의 장점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면서 만들어낸 새로운 출발선이다. ‘0’으로 돌아갔기에 무한한 가능성을 시작할 수 있는 ‘절대영점’의 순간이다.


New Pop Star! 

강명석: 백호는 솔로 첫 앨범 ‘Absolute Zero’에 사랑의 과정을 담았다. 첫 곡 ‘Festival in my car’에서 서로에게 “불꽃”이 튀던 두 사람은 “끓는점”에 이르고(‘LOVE BURN’), 타이틀 곡 ‘No Rules’에서 “너의 체온 속에 Dive into you”하며 하나의 사랑을 탄생시킨다. 그러나 “온도의 차이 좁히지 못할 것만 같았어”(‘We don’t care no more’)라며 서로의 차이를 깨닫는 순간이 찾아 왔고, 결국 “얼어붙은” 순간(‘BAD 4 U’)을 맞이한다. 마지막 곡 ‘변했다고 느끼는 내가 변한 건지 (feat. Sik-K)’에서 “이제 와서 후회”하며 “미안해”라고 외치지만, 그 목소리는 홀로 소리 지르는 메아리처럼 퍼질 뿐이다. ‘Festival in my car’가 축제가 열려도 이상하지 않을 넓은 공간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시작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Absolute Zero’는 온도를 테마로 두 사람의 사랑을 소리로 만든 배경 속에 담은 드라마나 영화에 가까워 보인다. 

 

‘No Rules’의 퍼포먼스에서 백호는 “지금부터 넌 Woo baby 영원한 Fantasy is you”를 부를 때 무대 오른편에서 의자에 앉아 댄서들을 바라보며 노래한다. 이 장면은 ‘Absolute Zero’에서 백호의 역할이기도 하다. 그는 곡의 배경이 되는 공간을 강조하는 녹음을 통해 ‘Absolute Zero’를 곡마다 노래 속 인물의 상황과 배경을 섬세하게 변화시키는 이야기로 연출하고, 자신은 그 세계를 만든 감독이자 이야기를 전달하는 보컬리스트의 자리에 놓는다. 자신이 직접 퍼포먼스를 하는 ‘No Rules’를 제외하면 그의 목소리는 마치 노래 속 등장인물의 배경음처럼 공간을 감싼다. 그 결과 ‘Absolute Zero’의 곡들은 백호의 목소리나 감정 표현보다 전반적으로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가사의 이야기를 각자의 입장에서 받아들이도록 유도한다. ‘LOVE BURN’의 후렴구 “우린 마치 LOVE BURN 서로를 그을려 화음이 터져”에서 백호는 가사처럼 사랑이 이뤄지는 순간의 격렬한 감정을 다이내믹한 보컬로 담아낸다. 하지만 동시에 퍼지는 사운드로 편안하게 반복적으로 들을 수 있도록 한다. 가상의 공간을 담은 곡 안에서 퍼져 나가는 백호의 목소리가 앨범 전체적으로 언제 들어도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면, 다이내믹한 멜로디와 창법을 담은 후렴구는 임팩트 있는 순간을 마련한다. 

 

‘Absolute Zero’가 전반적으로 서구의 R&B 트렌드를 반영한 비트와 녹음 스타일로 전반적인 분위기를 잡으면서도 감정을 끌어올리는 순간 드라마틱한 록 기타 연주를 적절하게 배치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차분하게 이야기를 전달하면서도, 어느 순간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감정의 에너지가 담겨 있다. 세련된 R&B와 뜨거운 록 기타 사이에서 또는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사운드와 격정적인 멜로디의 장점을 동시에 결합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래서 ‘Absolute Zero’는 유니크한 스타일을 가진 솔로 아티스트의 데뷔를 알린다. 아이돌로서 무대 중심에서 퍼포먼스를 할 수 있고, 보컬리스트로서 열창을 할 수 있으며, 프로듀서로서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한 장의 팝 앨범을 만들 수 있는 아티스트. 다시 말하면, 아이돌의 매력과 팝 뮤지션의 접근성을 가진 팝 스타의 탄생이다.

스스로를 다시 세워가는 법

송후령: 지난 2021년 뉴이스트의 앨범 ‘Romanticize’의 솔로 곡 ‘NEED IT’에서 백호는 다음과 같은 가사를 썼다. “고통의 끝은 결국 나일 뿐”이니 또다시 “만들고 다시 부숴 세우고 무너뜨”리고 싶다고. 그리고 당시 ‘위버스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는 “어떤 일이든 무언가를 만들고,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는 과정은 너무나 흔하잖아요. 요즘에는 그런 과정도 좋아요.”라고 말했다.

 

백호의 첫 번째 솔로 앨범 ‘Absolute Zero’의 타이틀 곡 ‘No Rules’는 뉴이스트로부터 출발한 그가 솔로 아티스트로서 자신을 어떻게 다시 세워가는지를 보여준다. ‘No Rules’의 안무는 의자를 소품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자연히 뉴이스트의 데뷔 곡 ‘FACE’의 의자 돌리기 안무를 연상시킨다. 백호는 여기에 의자와 동선과 댄서들을 다채롭게 활용해 ‘No Rules’에 기승전결을 부여한다. 백호가 “끝이 없는 밤”이라는 시간을 알리며 노래를 시작할 때 10명의 댄서들은 반원의 형태로 놓인 의자에 앉아 있는데, 바닥에 앉아 있는 백호보다 높은 위치에서 백호를 둘러싼다. 반면 마지막에는 20초가량의 댄스 브레이크를 지나 백호가 무대 한가운데에서 의자를 잡은 채 무대 뒤로 가서 의자를 던진다. ‘No Rules’는 무대 중앙의 바닥에 앉아 있던 백호가 무대 곳곳을 누비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결국 무대 중앙에 서서 자신이 곡을 마무리하는 과정이다. ‘No Rules’의 퍼포먼스는 솔로로서의 백호가 노래와 퍼포먼스 그리고 댄서들의 움직임까지 모두 주관하며 계속 곡을 이끌어야 하는 존재임을 웅변한다. 그러나 ‘No Rules’는 백호가 중심에서 시선을 모으는 가운데 여성과 남성 댄서들이 번갈아가며 그의 주변에서 격렬한 안무를 추며 시선을 모으기도 하고, 백호가 아예 의자에 걸터앉은 채 댄서들의 춤을 보는 등 댄서들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곡이기도 하다. 그는 무대 중심에서 곡을 이끌어 가면서 함께 무대를 장식하는 댄서들에게 관객의 시선이 모이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는 “I want you”, “I need you”라는 고백을 전하는 ‘나’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퍼포먼스 흐름의 중심에 존재하지만, 그의 움직임만으로 ‘No Rules’의 이야기 전부를 설명할 수는 없다는 걸 안다. ‘No Rules’의 퍼포먼스는 그룹 시절과 마찬가지로 화려하고 다채롭지만, 백호는 퍼포먼스를 통해 솔로로서 필요한 일들을 하고, 그래서 무대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한데 모여 “끝이 없는 밤”과 “우리 바다”를 만들어내며 너와 내가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공간을 구성한다. 백호는 혼자 시작하는 야심마저 함께하는 현명함의 결과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