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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예진, 임수연(‘씨네21’ 기자), 김겨울(작가),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디즈니+

‘주토피아+’ (디즈니+)

이예진: 다양한 동물이 공존하는 세상 주토피아를 배경으로 편견과 차별에 맞선 이야기를 풀어낸 애니메이션 영화 ‘주토피아’. 영화의 조연 캐릭터들이 각각의 주인공이 되어 여섯 편의 에피소드를 구성한 단편 드라마 시리즈 ‘주토피아+’는 기존 영화의 팬들에게 주어진 깜짝 선물과 같다. 자랑스러운 최초의 토끼 경찰 주디 홉스가 주토피아로 향하는 기차에 탑승한 이후의 이야기를 그린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홉스 부부가 기차에 올라탄 막내 몰리를 구출하는 다이내믹한 과정(Ep 1. ‘기차를 잡아라’)을 보다 보면 활기차고 낙관적인 주디의 도전 정신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있다. 볼품없는 작은 땃쥐에서 툰드라 타운의 조직 두목이 되기까지 미스터 빅이 주토피아에서 자신의 터전을 잡아온 역사(Ep 4. ‘대부의 신부’)를 알고 나면 그가 자신의 할머니에게 스컹크 똥꼬 털 카펫을 선물한 닉을 새삼 얼마나 너그럽게 대했던 것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영화 속 신스틸러였던 나무늘보 플래시와 프리실라의 실제 관계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플래시가 과속 운전을 하여 주디와 닉에게 붙잡혔던 배경(Ep. 6 ‘느림보 손님’) 또한 밝혀져 생각지 못한 희열을 주기도 한다. 이외에도 주토피아의 인기 스타 가젤의 열렬한 팬이었던 경찰서 얼굴 마담 벤자민 클로하우저와 보고 서장(Ep. 5  ‘춤을 잘 추시나요’), 미스터 빅의 딸 프루프루(Ep. 2 ‘작은 설치목의 진짜 설치류들’), 주디와 추격전을 벌였던 도둑 듀크 위즐튼(Ep. 3 ‘듀크의 뮤지컬’)을 중심으로 드라마는 기존 영화 스토리 장면과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각 캐릭터에 서사를 부여하고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단순히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로 읽기보다는 최근 디즈니가 디즈니 플러스를 이용해 힘 쓰고 있는 탄탄한 콘텐츠 세계관의 구축과 확장의 결과, 그 가치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매 에피소드는 5~6분 남짓의 짧은 러닝타임을 이루고 있지만 그 안에서 추격 영화, 뮤지컬, 시트콤, 오디션 프로그램 등 다채로운 장르를 재치 있게 녹여내 보는 즐거움을 더하기도 한다. 한국 독자에게는 성우의 목소리와 캐릭터 해석이 매력적인 한국어 더빙 버전으로 시청을 추천한다.

‘아마겟돈 타임’

임수연(‘씨네21’ 기자): 1980년 뉴욕 퀸스의 공립학교에 다니는 폴과 조니는 각자의 이유로 교사의 눈 밖에 난다. 알고 보니 둘에겐 공통점이 많았다. 예술가가 되고 싶은 폴과 NASA에 가고 싶은 조니의 꿈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은 없지만, 두 사람은 자신의 공상을 나누고 불법적인 일탈 행위를 시도하며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아마겟돈 타임’은 이민 3세대, 유대인, 백인의 복합적인 위치에 서 있는 소년이 계급 딜레마를 깨우쳐 가는 자기반성적 드라마다. 폴은 반유대주의의 직간접적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지만 할머니의 생활 보조금을 받아 생활하는 흑인 조니보다는 훨씬 나은 사정에 있다. 로널드 레이건을 비판하는 폴의 부모는 민주당 지지자일 가능성이 높지만 아들과 조니가 범죄에 연루됐을 때는 철저하게 둘을 분리하는 이기적 면모를 보인다. 자신을 소외된 아웃사이더로만 인식해왔던 폴이 백인으로서 갖는 이익을 깨닫게 되는 과정은 소련을 악으로 규정하며 신냉전을 절정으로 닫게 했던 레이건 시대 국제 정세와 인종 차별로 대표되는 (포스트) 트럼프 시대의 징후와 맥락화된다. 실제 퀸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제임스 그레이 감독이 자전적인 이야기를 토대로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날카롭게 성찰한다.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 - 앙영희

김겨울(작가): 양영희 감독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이 책을 집어든 독자도 있겠지만, 양영희 감독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이 책의 추천 글을 보고 흥미를 느껴 책을 읽게 된 독자도 있을 것이다.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 나였다. ‘디어 평양’, ‘굿바이, 평양’에 이어 ‘수프와 이데올로기’로 가족 다큐멘터리 3부작을 완성해낸 양영희 감독은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한 바 있지만 나는 한 번도 그의 영화를 본 적이 없었다. 영화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떤 내용일지 짐작도 하지 못한 채로 책을 펼쳤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뒤에는, 다른 무엇보다도 빨리 양영희 감독의 영화를 보고 싶어졌다.

 

양영희 감독의 가족 이야기는 평범한 한국 사람의 상상의 범위를 벗어난다. 부모는 일본에 사는 조선인, 국적 없는 조선인이자 조총련의 간부다. 양영희 감독의 세 오빠는 ‘귀국’이라는 이름으로 북한이라는 ‘조국의 품’으로 이주한다. 많은 조선인 청년을 북에 보내는 과정에서 감독의 아버지가 열렬히 앞장선 것은 물론이다. 일본에 남은 가족은 오빠들을 보러 평양에 주기적으로 방문한다. 오빠들은 점점 녹록지 않은 삶을 살게 되고, 감독은 일본과 미국의 문화를 받아들이며 부모와 부딪힌다.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가 걸린 거실과 영화 포스터가 붙은 감독의 방. 뉴욕에서 영화 공부를 하다가 9.11 테러 소식을 듣고 미국 재입국을 거절당할까 불안해하는 감독. 조카의 모습을 담아 부모에게 전하기 위해 캠코더를 들고 평양에 방문하는 감독. 

 

이런 이야기를 어디서 보고 들을 수 있을까? 이 가족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역사에 대한 증언이다. 제주 4.3 사건에 대한 증언, 재일조선인의 삶에 대한 증언, 북한의 삶에 대한 증언. 거대한 역사의 물결이 가족에 남긴 촘촘한 흔적이 쉴 틈 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한다. 

Ah, Life ! – Joe Layne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너무 많은 재능은 가끔 그 사람의 실력을 가린다. 무슨 말인가 하겠지만, 앨범 ‘Life O Life’를 듣고 나면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970년대 모타운 소울에서 달콤함만을 건져내 빚은 듯한 앨범의 첫 곡 ‘Ah, Life !’의 느긋한 기타 연주와 푸근한 코러스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도대체 이런 고수가 어디에 숨어있었단 말인가’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물론 어디에도 숨어있지 않았던 조레인(Joe Layne)은 2016년 가수 딘(DEAN)의 밴드 활동을 시작으로 씬에 처음 존재감을 알렸다. 이후 2019년 첫 앨범 ‘Yesterdays’ 이후 본작까지 정규 앨범만 다섯 장을 발표하기도 한 그는 여기에 더해 조레인이라는 이름으로 하는 음악 활동이 자신이 하는 일의 1/4밖에 되지 않는다는 무서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엄청난 효율의 음악가이기도 하다. ‘Life O Life’는 그렇게 방송과 광고용 라이브러리 작업에서 퍼포밍 아트 공연의 음악 감독까지 음악이 필요한 모든 곳을 종횡무진하는 조레인의 폭발하는 영감과 창작력이 넘실대는 작품이다. 조레인이 연주하는 기타와 느낌 충만한 보컬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밴드가 들려주는 안정적 호흡이 변칙적으로 등장하는 다채로운 감성과 비트를 유연하게 갈무리한다. 특별한 의도로 가득찬 복잡한 세상에서 그저 자신의 빛으로 빛나고 있는 한 움큼의 재능을 발견하는 기쁨이 남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