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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명석, 윤해인,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빅히트 뮤직

다른 청춘

강명석: “얌마 니 꿈은 뭐니”. 2013년 방탄소년단의 데뷔 곡 ‘No More Dream’의 첫 소절이다. 10년 뒤,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새 앨범 ‘이름의 장: TEMPTATION’의 ‘Tinnitus (돌멩이가 되고 싶어)’에서 노래한다. “반짝이던 dream은 깎여 나간 지 오래”. 방탄소년단은 꿈이 무엇인지 모르고 시작했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은 동세대의 누군가를 ‘얌마’라 부르며 꿈이 무엇인지 알아 나갔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꿈을 부여받고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꿈이 깎여 나갔다고 자조한다. 같은 곡에서 스스로를  “Rockstar에 별 빼 Just a rock”이라고까지 정의할 정도다. ‘dream’은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등장을 알린 첫 번째 챕터명이고, 데뷔 앨범명은 이 챕터에 ‘STAR’를 붙인 ‘꿈의 장: STAR’다. 이 앨범으로부터 ‘이름의 장: TEMPTATION’까지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역사는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거부하는 역설이 됐다. 그 시간 사이에는 시대의 변화가 있다. 방탄소년단은 ‘뱁새’에서 “노력”을 강요하는 사회를 비판했다. 하지만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데뷔한 이후의 세상은 “노오력”이라는 말조차 더 이상 유행하지 않는다. 대신 가난했던 주인공이 재벌가의 손자로 다시 태어나는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흥행한다. 앨범의 첫 곡 ‘Devil by the Window’에서 악마의 속삭임은 차라리 유혹을 가장한 현실에 대한 비판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He’s whispering ‘Give up, don’t you put up a fight!’” 포기하면 편하다. ‘Happy Fools (feat. Coi Leray)’의 가사처럼 기성세대는 “언제나 지금보다 미래가 중요하대”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세대에서는 지금 잘사는 애들이 미래도 잘산다. 그러니 고민은 “내일의 나에게 맡겨” 버리고 “다신 안 올 지금”, “기분 좋은 게으름의 맛”을 느끼자. 이 유혹을 거부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어차피 현실은 조금만 관점을 달리하면 네버랜드다. 노력을 하든 말든, 원하는 만큼 성장할 수 없는.

 

‘이름의 장: TEMPTATION’의 유혹은 그래서 역설적으로 강력한 반항이 된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나태하기를 원한다. 스스로를 록스타가 아닌 “Just a rock”, 돌멩이라 명명한다. 이것은 스스로 존재의 증거, 이름을 지우는 행위처럼 보인다. 그러나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꿈의 장: MAGIC’의 타이틀 곡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너를 기다려 (Run Away)’에서 ‘도망갈까?’라고 물었다.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유일한 선택이던 그들에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되고 싶지도 않다는 것은 오히려 강력한 선언이자 정체성에 대한 정의다. 그리고 그들은 앨범 타이틀 곡 ‘Sugar Rush Ride’의 가사처럼 “이리 와서 더 같이 놀자 더”라며 다른 사람들을 그들의 네버랜드로 끌어들이려 한다. 그곳은 어쩌면 ‘꿈의 장: MAGIC’의 또 다른 곡, ‘Magic Island’에 등장한 “비밀이 시작된 작은 섬”일지도 모른다.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너를 기다려 (Run Away)’에서 현실로부터 도망치던 그들은 피터팬이 되어 그 작은 섬을 네버랜드로 만들고 또래들을 유혹한다. ‘이름의 장: TEMPTATION’ 발표에 앞서 공개된 네 종류의 콘셉트 사진처럼 피터팬 같은 신비로운 존재가 되어, ‘Devil by the Window’처럼 나른하고 섹시하게 속삭이면서. 유혹에 넘어가 쾌락을 “Gimme gimme more”하는 ‘Sugar Rush Ride’는 앨범에서 가장 밝고 경쾌한 분위기를 담았다. 반대로 ‘Happy Fools (feat. Coi Leray)’는 보사노바, ‘Tinnitus (돌멩이가 되고 싶어)’는 라틴 리듬의 경쾌함을 살리면서도 멤버들의 목소리는 묘한 애수를 띠고, ‘네버랜드를 떠나며’는 기타의 가벼운 리듬으로 시작해 어느 순간 격렬한 사운드가 들린다. 그때 등장하는 가사는 “Neverland, my love 이젠 안녕 And I’m free falling 별들아 모두 편히 자렴”이다. 그들은 네버랜드의 시절이 언젠가 끝나고, 좋든 싫든 현실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K-팝에서 많이 등장하는 ‘열창’의 구간을 없애고, 휘파람이나 갑자기 숨을 내쉬는 것으로 클라이맥스를 만들었다. 앨범 내내 경쾌한 사운드 속에서 나른한 목소리를 담았지만, 동시에 어둡고 불안한 정서가 평행선처럼 앨범 내내 함께한다. 그리고 이 음악이 해맑은 동시에 관능적인, 미스터리의 영역에 도달한 멤버들의 비주얼과 결합하면서 하나의 미학을 만들어낸다. 방탄소년단 이후에 등장한 새로운 세대의 미학.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포기하는 것이 반항이 돼 버린 청춘의 페르소나다. ‘돌멩이’가 되기를 자처한 청춘이 모여 그들만의 섬을 만들었다. 이 돌멩이들이 모여 다시 네버랜드를 떠나 세상으로 왔을 때, 세상은 그들에게 어떤 이름을 붙이게 될까?

피터팬이라는 유혹

윤해인: 피터팬은 소설 속에서 시간이 흘러도 어른이 되지 않는 영원한 소년으로 그려진다. 그가 있는 ‘네버랜드’는 모험이 펼쳐지는 환상의 공간이자 오직 아이들만이 머물며, 어른들은 올 수 없는 ‘꿈의 섬’이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새 앨범 ‘이름의 장: TEMPTATION’은 그런 피터팬의 속성을 빌려오되, 그 동화적인 감각을 비틀어 버린다. 마치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어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지금에 안주한다는 의미가 된다. 예컨대 새 앨범의 첫 트랙 ‘Devil by the Window’에 등장하는 악마는 화자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포기해, 맞서 싸울 필요 없어(Give up, don’t you put up a fight)”, “꿈에서 깨지 마, 잘 자!(Dream on, dream on, good night!)” 꿈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보다는 그저 달콤한 몽상에 취하는 게 낫다고. 이곳을 벗어나면 어른이 될 거고 네버랜드에는 돌아올 수 없으니, “절대 늙지도 않고 걱정할 일도 없는” 곳에서 영원한 모험을 즐기자는 피터팬처럼 말이다.

 

‘이름의 장: TEMPTATION’은 피터팬과 같은 영원한 소년의 노래는 아니다. “끝이 없는 기말고사”와 ‘하굣길’에 “돌아보면 텅 빈 학교”를 노래하는 10대 시절은 지났고, 그 성장만큼이나 품게 되는 고민의 결도 자연스레 변화해 왔다. 그래서 지금의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그들의 현실처럼 소년과 어른 사이에 놓인, 영 어덜트의 복합적인 감정을 섬세하게 그린다. 성인은 되었지만 아직 어른은 아닌, 그 경계선을 벗어나는 건 대가가 따르는 일이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세상이 건네는 무력감과 싸우고 내면의 갈림길에서 매번 선택을 해야 한다. 반면 주저앉는 건 아주 간단하다. “Rockstar”가 아니라 “Just a rock(그냥 돌멩이)”이 될 거라고, 꿈은 어차피 이룰 수 없는 것이었으며 지금 이대로도 나쁘지 않다고 자조적으로 말하는 ‘Tinnitus (돌멩이가 되고 싶어)’는 자기 인정과 자기 합리화 사이를 줄타기한다. 동시에 물질적 풍요를 유일한 정답으로 제시하고, 어차피 도달하지 못할 거라면 포기해도 된다는 얄팍한 선택지를 강요하는 세상에서 요즘 세대가 겪는 막막함의 감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할 일도 고민도 많지만, 그건 “내일의 나에게 맡겨”, “다신 안 올 지금”을 만끽하는 ‘Happy Fools (feat. Coi Leray)’가 되고자 하고, ‘Sugar Rush Ride’처럼 “나쁜 건 나”라며 도리어 상대를 유혹하는 존재로 거듭나 보기도 한다. 동세대가 겪는 조용한 고군분투를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Z세대’나 ‘청춘’이라는 피상적 단어로 축약하는 대신, 구체적인 언어로 세밀화처럼 서술한다. 때문에 앨범을 관통하는 주제이자 제목인 ‘Temptation(유혹)’은 단지 로맨스의 정서나 금기에 대한 도전을 칭하는 관습적 표현에 머물지 않는다. 피터팬으로 상징되는 소년의 세계가 더 이상 어른으로 변화하지 않게 가로막거나, “No, I can’t tell what is fake in my reality(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어)” 눈을 가리는 것으로, ‘유혹’의 범주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만의 방식으로 확장된다.

 

앨범 발매 전 공개된 ‘The Name Chapter Concept Trailer’ 영상은 휴닝카이가 허공 속 무너지는 집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으로 끝났다. 그가 추락했을지 혹은 피터팬처럼 날아 올랐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마지막 트랙 ‘네버랜드를 떠나며’는 그 선택의 결과를 암시한다. 여러 유혹의 갈림길을 지나온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낙원 같던 네버랜드는 결코 ‘집’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피터팬에게 작별 인사를 건넨다. 소설 속 피터팬은 웬디에게 기분 좋은 일을 생각하면 자신처럼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장난치며, 팅커벨의 마법을 빌려 네버랜드로 향했다. 그런 네버랜드를 떠나는 건 마법과 같은 달콤한 날갯짓과는 반대로, “땅을 향해 전속력”으로 추락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달콤하지 않은 진실을 택한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피터팬과 달리 어른이 될 것이고, 그들만의 여정을 시작할 것이다. 자신의 두 발로 땅을 딛고.

노력하며 애쓰는 이를 구원할 수 있답니다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계약합시다. 어떤 인간도 아직 보지 못한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이다.” 괴테의 ‘파우스트’ 중, 세상의 모든 이치를 연구하였으나 지독한 권태에 빠진 박사에게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달콤한 유혹을 건넨다. 신비한 마법, 짜릿한 혼돈을 권하는 목소리에 마음을 빼앗긴 파우스트는 자신의 영혼을 걸고 위험한 내기에 응한다. “내가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라 말하면, 자네는 나를 마음대로 할 수 있네.” 황홀한 순간에 흠뻑 취해 머무르기를 선언하는 순간, 이 위대한 대학자는 이름을 잃고 영원한 지옥의 종이 된다.

 

가야 할 길이 많은 아이라는 숙명을 깨닫고 잠자리에 든 투모로우바이투게더에도 악마가 찾아왔다. 이 악마는 ‘어느날 머리에서 뿔이 자랐다 (CROWN)’처럼 성장의 대혼란을 비유하는 개념도 아니고, ‘Angel or Devil’에서 풋풋한 초급 마법사들의 연애 문법으로 쓰이던 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다. 자정의 창가에서 만난 악마의 목소리는 설탕처럼 달고, 나른한 백일몽은 깨고 싶지 않은 꿈으로 출발해 가상현실을 넘어 대체 현실로 각인된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한 장면처럼 몇 번이나 환상 속으로 점프하며 이성을 놓을 때쯤, 다섯 소년은 잠시 숨을 고르고 화려한 만화경을 벗고 자신을 잠시 돌아보기로 한다. 큰일이다. 하늘 꼭대기에 지어진 그들의 집에서 소년들은 자꾸만 꿈만 꾸며 잠이 든 자세 그대로 침대 위에서 굳어가고 있다. 설상가상이다. 집은 무너지고 있다. 이대로는 돌멩이가 되고 만다. “너 정말 아름답구나!”를 마지막으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하 하 하’ 웃음소리도 건조한 자막으로만 내보내야 하는 돌멩이. “목요일의 아이”들은 비로소 그들의 운명을 곱씹어본다. 그리고 쓸쓸히 다짐한다. 이 멋진 비행은 나의 삶이 될 수 없으며, 붕괴 일보 직전의 집에서 뛰어내려 지상으로 추락해 두 발을 딛고서야 한다고.

 

‘이름의 장: TEMPTATION’의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새로운 세계에 진입했다. 이곳은 기적과 상상의 세상 ‘마법의 장’보다 더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동시에 모든 것이 얼어붙었던 ‘혼돈의 장’보다 더욱 냉정하고 교묘한 장소다. 침대 밑 괴물처럼 은밀히 접근하는 다크 팝 ‘Devil by the Window’에서 악마는 “don’t you put up a fight”, “Dream on, dream on, good night!”를 속삭인다. 이에 응한 소년들 앞에는 애니메이션 '주먹왕 랄프' 속 세상처럼 아찔한 디스코 펑크 팝 ‘Sugar Rush Ride’가 펼쳐진다. ‘Anti-Romantic’의 서정성을 주조한 세일럼 일리스가 참여한 이 곡에서 멤버들은 ‘New Rules’와 ‘No Rules’를 잇는 업템포의 댄서블한 디스코 팝 비트 위를 질주하다 어두운 트랩 비트의 글리치를 목격한다. 이 모든 풍경이 가상현실일 수 있다는 경고다. 하지만 “거부할 수가 없”는 유혹에 빠진 소년들은 행복한 바보, ‘Happy Fools (feat. Coi Leray)’가 되어 업고 노는 데 정신이 없다. 구름 위처럼 산뜻한 피아노 코드 진행은 “달콤한 순간에 꽉 갇”힌 순간이며 “기분 좋은 게으름의 맛”과 “꿈만 같은 guilty pleasure”를 제대로 선사한다.

 

쾌감에 흠뻑 젖은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몽글몽글한 레게톤 리듬의 ‘Tinnitus (돌멩이가 되고 싶어)’에 몸을 맡기고 머릿속 이명에 정신을 놓으려 한다. ‘0X1=LOVESONG (I Know I Love You) feat. Seori’, ‘LO$ER=LO♡ER’, ‘Good Boy Gone Bad’로 쌓아 올린 로큰롤 경력을 포기하고, 그냥 돌(rock)이 되어 구르고 싶다는 포기 선언이다. 다행히도 악마는 순순히 청춘의 영혼을 빼앗아 갈 수 없다. 씁쓸한 집시 기타 연주로 잊고 있던 성장과 도전의 가치를 일깨우는 ‘네버랜드를 떠나며’가 나타난 덕이다. 모든 유혹을 떨치고 끝내 나아가야 하는, 그렇기에 구원받을 수 있는 소년의 운명을 상징하며 비장하게 앨범의 문을 닫는다.

 

‘이름의 장: TEMPTATION’은 신비의 무릉도원과 위태로운 현재를 유기적으로 엮어내며 유혹과 쾌락에 탐닉하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삶을 포기하고 마는 오늘날 청춘의 권태를 바라본다. 장르 선택부터 노랫말까지 작은 부분에도 의미를 담아 유기적인 음악과 탄탄한 서사를 완성한 작품이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환상을 만끽하며 방황하는 광경은 아름답고도 위태롭다. 이대로 게임오버가 되어도 전혀 아쉽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러나 쿵쿵 울리는 ‘네버랜드를 떠나며’에 접어들 때 우리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성장과 모험이 그리고 우리의 앞날이 여기서 머무를 수 없음을 깨닫는다. 영원한 소년은 없다. 타락하지 않은 순수한 아이는 역설적으로 그릇된 도덕관념과 잔혹함에 더욱 쉽게 물든다. ‘피터팬’ 원작 소설 속 네버랜드에 어른이 된 아이들을 살해하는 규칙이 있다는 사실은 철저히 숨겨졌다. 악마와 계약한 파우스트 박사는 욕망의 힘을 빌렸으나 열정과 자기실현을 잃지 않았기에 끝내 마지막 순간에 신으로부터 구원받았다. 노력하며 애쓰는 이에게 구원이 찾아온다. 굿바이, 네버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