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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백설희(작가, 칼럼니스트)
사진 출처. 하이브 레이블즈 재팬

지난 2022년 12월, 하이브 재팬이 새롭게 설립한 글로벌 레이블 네이코(NAECO)가 첫 번째 아티스트로 히라테 유리나(平手 友梨奈)를 영입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히라테 유리나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괴물 신인’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2016년에 데뷔했을 때부터 활동한 지 만 7년이 된 지금까지 언제나 일본 연예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니 말이다. 그런 그가 이번엔 네이코에 들어간다는 뜻밖의 행보를 보여주니 또 한 번 크게 동요가 일 수밖에 없었다.

 

히라테 유리나가 소속되어 있던 케야키자카46(欅坂46)는 2015년에 결성되어 2020년까지 활동했던 걸그룹이었다. 일본 걸그룹답지 않게 저음 보컬이 돋보이는 멜로디와 사회를 향한 강렬한 메시지를 담은 가사 그리고 연극처럼 가사를 그대로 표현하는 퍼포먼스성 댄스 등을 강조했다. 이 전략이 예상외로 대중에게 호응을 얻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데뷔 싱글이었던 ‘사일런트 메이저리티(サイレントマジョリティー)’는 일 매출 19만 1,203장이라는 쾌거를 올렸으며, 추후 일본레코드협회로부터 더블 플래티넘 인증(50만)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2017년에 발매했던 ‘불협화음(不協和音)’과 ‘바람에 휘날려도(風に吹かれても)’는 트리플 플래티넘(75만)을, 2018년과 2019년에 발매한 ‘유리를 깨어라!(ガラスを割れ!)’와 ‘앰비벌런트(アンビバレント)’, ‘검은 양(黒い羊)’은 종전 기록을 넘어선 밀리언(100만)을 달성하는 등의 성과를 보이며 인기 걸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성공의 중심에는 히라테 유리나가 있었다. 만 15세에 데뷔한 그는 2020년에 탈퇴할 때까지 늘 센터 포지션에 서서 케야키자카46의 얼굴로 활동했다. 댄스 실력이 뛰어나기도 했지만, 어둡게까지 느껴지는 무표정 속에서 형형하게 빛나는 특유의 눈빛과 그만의 신비로운 분위기는 데뷔하자마자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재일교포 작가인 유미리는 히라테 유리나를 가리켜 전설적인 아이돌이었던 ‘야마구치 모모에의 환생’이라 극찬했고, “지난 30년간 가장 임팩트 있는 여자아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는 트윗을 올렸다. 일본의 유명 가요 프로그램인 ‘뮤직 스테이션’에 처음 출연했을 때에는 일본의 트위터 트렌드에 ‘센터의 그 애(センターの子)’라는 단어가 오르기도 했으니, 그야말로 명실상부 센터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만큼 히라테 유리나의 스타성은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꼭 좋지만은 않았다. 부동의 센터라고 불리는 만큼 케야키자카46의 이미지는 그에게 지나치게 기댄 부분이 많았다. 그 때문에 히라테 유리나는 음반 활동과 동시에 라디오를 진행하고 드라마를 촬영하는 등 무리한 스케줄을 혼자서 소화해야 했다. 결국 전국 투어 첫날부터 무대에서 쓰러지는가 하면 연말의 가요 프로그램 ‘홍백가합전’에서 쓰러지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는 일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이후 2020년 1월에 히라테 유리나는 탈퇴를 발표했다.

케야키자카46을 탈퇴하고 1년여가 지난 뒤, 히라테 유리나는 갑작스럽게 솔로 아티스트로 데뷔함을 알린다. 그동안 그는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히라테 유리나는 첫 솔로 곡인 ‘댄스의 이유(ダンスの理由)’에서 “몇 번이고 춤출 거야 쓰러진다 해도 상관없어 누군가의 슬픔을 위로해주는 그 한순간을 위해서 꿈 같은 턴을 약속해”라고 노래했다. 2021년 9월 발표한 두 번째 싱글 ‘둘도 없는 세계(かけがえのない世界)’에서는 “누가 무슨 말을 해도 So what? So what? 그러니까 뭐?라고 말하고 싶어져 I Don’t mind(I Don’t mind, I Don’t mind)”라고 ‘웃으며’ 특유의 선 굵은 춤선이 돋보이는 춤을 춘다. 그룹이라는 단단한 껍질 안에 갇힌 채 무대 위에서 어두운 얼굴로 서 있던 히라테 유리나에게, 솔로 활동은 드디어 자신만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해방구 같아 보였다. 

연기자로서의 히라테 유리나 또한 꽤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이미 케야키자카46의 단독 드라마 ‘도쿠야마 다이고로를 누가 죽였나?(徳山大五郎を誰が殺したか?)’와 ‘잔혹한 관객들(残酷な観客達)’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은 그는 그룹을 나온 후 더욱 다양한 드라마에 등장하며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2022년 한국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일본 리메이크작인 ‘롯폰기 클라쓰’에 출연하여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한국판에선 김다미가 연기했던 ‘조이서(일본판에서의 이름은 ‘아사미야 아오이’)’로 분한 히라테 유리나는 준수한 연기력을 선보이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롯폰기 클라쓰’는 최고 시청률 10.7%를 달성했고 평균 시청률 또한 9.3%를 찍었으며, 연간 드라마 시청률 순위에서는 8위를 차지했다(2022年ドラマ視聴率ランキング | ドラマ投票所 (tvkansou.info)).

 

4년 동안 그룹 활동을 하던 히라테 유리나는 다수를 대표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솔로 아티스트로서, 원 오브 뎀(One of Them)이 아닌 원 오브 원(One of One)으로서,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 바로 서겠다는 결심을 안고 막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네이코가 가장 처음으로 영입하는 아티스트로 히라테 유리나를 택한 것이 아닐까. 어린 나이에 데뷔하여 그야말로 산전수전을 다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꺾이지 않았다. 조금 더 나은 길을 택하여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그리고 그에 따른 결과물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하이브는 이미 나나와 황민현 등 아이돌 출신 연기자를 여럿 키워내 해당 분야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경험이 있다. 이런 둘의 만남이 과연 어떤 시너지를 만들어낼 것인가. 히라테 유리나의 네이코에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