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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랜디 서(대중음악 해설가)
사진 출처. 찰리 푸스 유튜브

방탄소년단 정국이 찰리 푸스와 컬래버레이션 작을 내놓았다. 지난 6월 24일 발매된 ‘Left and Right’에서는 노래에 적절하게 맞아들어간 정국의 다재다능함을 들을 수 있다. 스테레오 왼쪽과 오른쪽 패닝을 조절해서 요쪽, 저쪽, 하도록 만든 가벼우면서 기믹스러운 곡으로, 2절에 등장하는 정국은 찰리 푸스가 1절에 제시한 곡의 분위기를 이어받아 아주 조금 더 다이내믹하게 발전시킨다. 조금 더 밝은 소리 톤을 쓰면서, 찰리 푸스가 쓴 포스트 말론 스타일의 오토튠 비브라토 대신 본인이 컨트롤하는 보컬 프라이(일명 성대를 ‘가는’ 창법)나 끝음 처리로 벌스를 장식해 스타일리시하면서도 장난스러운 이미지를 더한다. 3분 미만의 짧은 곡이지만 정국의 존재감은 확연하다. 만 스물넷, 그는 이미 자기만의 스타일로 어느 정도 일가를 이룬 10년 차 가수다.

방탄소년단이 데뷔하던 2013년을 떠올려보면, 정국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스타일의 아이돌 메인 보컬이었다. 2000년대 한국의 2세대 아이돌 메인 보컬 포지션은 대체로 높은 음역대를 쩌렁쩌렁하게 소화할 수 있는 ‘파워 보컬’들이 맡았다. 당시 아이돌 씬은 이미 힙합/R&B와 EDM 영향의 팝이 주류를 이루고는 있었지만, 아직까지 대중 사이에는 고음을 내지를 수 있는 보컬 스타일만이 ‘실력’ 있는 가수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래서 ‘실력파’ 아이돌로 인정받으려면 이런 벨팅 창법은 필수였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 빅뱅의 태양이나 2PM의 리드 보컬로 데뷔했었던 박재범 등이 보다 동시대 미국 R&B 씬과 비슷한 느낌의 보컬을 선보이며 새로운 선호층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시기 언더그라운드에서도 많은 R&B 가수들이 태동하고 있었다. 2010년대에 들면서는 한국에서 힙합의 인기가 커지며 여기에 본격적으로 가속이 붙었다. 인기 힙합 래퍼나 프로듀서의 피처링으로 많은 얼터너티브 R&B 보컬리스트들이 재발굴되거나 새로이 주목받았다. 이 시기 젊은 청자들을 중심으로 정기고, 자이언티, 크러쉬 등 우렁차고 과잉된 감정보다는 자신만의 독특한 무드를 리드미컬하게 전달할 줄 아는 보컬들이 새롭고, 쿨하고, 힙하다는 인식이 퍼졌다. 그리고 2013년 힙합 아이돌로 데뷔한 방탄소년단은, 벨팅이 가능한 전통적인 보컬 기능인이 아닌, 타고난 박자감과 에어리한 톤을 가진 열다섯 살의 정국을 메인 보컬로 내세웠다. 이런 정국 보컬의 특성 때문에 방탄소년단의 음악은 기존 한국 가요의 구성진 페이소스 느낌, 일명 ‘뽕끼’에서 벗어나 보다 산뜻하고 칠(chill)한 인상을 줄 수 있었다. 데뷔 EP에 실린 ‘좋아요’ 등의 트랙에서 이 당시 방탄소년단과 빅히트의 지향점을 느낄 수 있다.

정국 보컬의 특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리듬감은 특히 천부적인 수준이다. 춤을 잘 추는 것에서도 알 수 있지만, 그는 곡의 박자를 몸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이해하고, 그 위에 자신을 살포시 얹듯이 표현해낸다. ‘LOVE YOURSELF 轉 ‘Tear’’ 앨범 수록곡 ‘Airplane pt.2’의 도입부가 그 좋은 예다. 이 곡은 전주부터 흐르는 살사 음악의 손 클라베 리듬이 특징으로, 4분의 4박자지만 정박에서 비껴나 녹진하면서 흥겨운 특유의 분위기를 전달한다. 정국은 첫 소절에서 “이상한 꼬마(하)” 하면서 들고 있던 호흡을 탁 놓는다. 정확히 이 부분에 손 클라베 리듬 첫 마디의 세 번째 강세가 있다. 흔한 4분의 4박자대로라면 강약중강약에서 약에 해당될 부분이니 그냥 지나가기 십상이지만, 정국은 노래의 베이스가 되는 리듬 위에 정확히 올라탄다. 이렇게 노래의 조종 키를 확실하게 잡아주니 듣는 이는 손 클라베 리듬을 잘 모르더라도 그의 보컬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며 이 곡의 살사 무드를 흠뻑 느낄 수 있다.

 

음감 역시 상당히 좋다. 반주 없이 아카펠라로 불러야 하는 자리에서 정국은 거의 항상 제 음을 곧바로 짚어낸다. 보통 절대음감은 전체 인구의 1만 분의 1 정도라고 한다. 간혹 타고난 절대음감이 아니더라도 부단한 연습 끝에 특정 음악의 음 높이를 정확히 기억해내는 사람들도 있다. 정국에게는 전자인지 후자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어느 쪽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재능과 연습량이 있어서다. 이런 보컬 음감은 그의 송라이팅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작곡한 ‘Still With You’는 먼저 받아온 비트 없이 메트로놈의 bpm만 맞춘 상태에서 멜로디 완곡을 부르는 순서로 작업했다고 하는데, 음의 도약이나 낙폭이 상당히 큰, 반주와 곁들여도 부르기가 쉽지 않은 재즈 스케일의 곡이다. 건반 타건 악기처럼 정확하게 음을 상상하고 짚어내며 실제로 불러낼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가능한 작업 방식이었을 것이다. 들은 보컬을 재연해내는 능력 또한 발군인 것을 생각하면, 음감뿐 아니라 듣는 귀 자체가 굉장히 예민한 편인 것 같다. 2021년 7월 ‘위버스 매거진’ 인터뷰를 보면 본인 역시 그런 능력을 인지하고 있어서, 전엔 ‘이게 들리는 게 어디야.’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이렇게 (따라만) 하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도 갖고 있다고 한다. 결국 자신만의 스타일로 만들어내는 공부 과정의 일부일 것이다.

보컬 테크닉 역시 수준급인데, 기술 위주로 설명하기보다는 그의 스타일을 풀어 해석하며 기술도 곁들여 설명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2021년 초 올라온 ‘BTS (방탄소년단) Jung Kook’s BE-hind ‘Full Story’ 인터뷰에서 제이홉은 정국 보컬의 가장 큰 장점으로 ‘편안함’을 꼽았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에는 그의 톤, 창법, 선곡, 후술할 곡 해석력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성대의 밸런스를 찾아 접촉을 최소화하는 기술적 면모가 있을 것이다. 이러면 성대 건강에도 유리하고, 소리를 낼 때 무리하게 푸시하지 않기 때문에 무슨 노래를 불러도 쉽고 편안하게 들린다(물론 성대 접촉을 크게 하거나 흉성을 끌어올려 부르는 스타일에도 그 나름의 처절한 미학이 있고, 예술적 의도로 행해지기도 한다. 표현법과 스타일의 차이이지 그릇된 것은 아니다.). 정국의 보컬 톤에는 언제나 산들바람 같은 적당한 숨소리가 섞여 있는데, 흉성에서 두성으로 혹은 그 반대로 성구를 전환할 때 소리가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바뀌는 데에 큰 몫을 한다. 또 이런 톤이 가까이서 속삭이는 것처럼 청자에게는 감정적으로 가까운 느낌을 주기도 한다. 발음의 조형에서도 긴 시간 관찰하고 연습한 것이 느껴진다. 한국의 보컬 코치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정국 보컬의 특징은 전통적인 한국 가수보다 (영미권의) 팝 가수에 가까운 느낌이 난다는 점이다. 한국어와 영어가 소리를 만드는 방식이 상당히 다른 것을 생각할 때, 2010년대 한국의 얼터너티브 R&B 싱어들이 영어 가창을 끊임없이 듣고 연습하며 한국어에 어울리게끔 현지화했듯이 정국 역시 이런 과정을 거쳤을 것으로 보인다. 박자감과 음감이 정확하고, 상당한 연구와 노력을 거친 탄탄한 테크닉을 바탕으로 언제나 기복이 적은 무대를 들려주기 때문에,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마음 놓고 편히 들을 수 있는 것이 정국의 특징이다. 데뷔 이후 9년의 시간 동안 이 특징들은 수없는 연습과 무대로 단련되어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앞서 설명한 이 모든 능력치들은 실은 하나의 포인트로 수렴된다. 결국 음악성, 뮤지컬리티다. 요즘은 댄스 경연 프로그램 등이 인기를 끌며 뮤지컬리티라는 단어 자체가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하다. 짧게 말하자면 ‘음악을 표현해내는 능력’이다. 댄스를 예로 들면, 단순히 기술만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잘 알고 그 음악에 올라탄 것처럼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몸과 음악이 하나가 된 것처럼 움직이고 멈추는 모든 것이 뮤지컬리티의 순간이다. 노래도 마찬가지다. 악보 위에 적힌 곡은 누구에게든 똑같은 인쇄물이지만, 이 곡을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해 청자들에게 전달할지는 퍼포머의 역량이다. 위에 소개한 BE-hind ‘Full’ Story 영상에서 제이홉이 그의 장점을 편안함으로 꼽자 정국은 이렇게 대답한다. “(곡에 내 색깔을) 때려박으면 곡이 무너질 것 아니에요. 근데 저는 곡이 있으면 여기에 그냥 색칠하듯이 내 감정이나 그런 걸 그냥 묻히는 느낌이 강해요.” 실제로도 들어보면 그렇다. 정국은 주어진 곡의 뼈대와 형태를 적극적으로 존중하는 해석을 한다. 그렇다고 음악에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곡의 진행에 따라 감정을 섬세하게 변주한다.

 

복면가왕’에 출연해 부른 ‘If You를 보자. 원곡은 빅뱅 멤버 5인이 나누어 부르기도 하고, 1절과 2절에 한 옥타브나 되는 음 높이 차이를 둬서 강렬한 대비감을 의도한 곡이다. 정국은 이 곡을 솔로 곡으로 편곡하며 감정의 강도를 극도로 섬세하게 올려가는 진행을 보여줬다. 마지막으로 반복되는 가장 격렬해야 할 코러스에, 그는 브리지의 투명감 있는 촉촉함을 잃지 않는 선에서 약간의 보컬 프라이, 더 많은 호흡압, 소리를 놓거나 던지는 테크닉으로 더없이 고급스럽게 곡을 마무리해낸다. 속삭이는 듯한 톤이라서 듣는 사람이 더욱 귀를 쫑긋 세우게 되는 것을 생각하면 더없이 적합한 해석이었다.

‘MAP OF THE SOUL : 7’ 앨범에 실린 그의 솔로 곡 ‘시차 (My Time)’는 그때까지 쌓아온 그의 모든 강점이 여과 없이 반영된 곡이었다. 울렁이는 신스와 기타 연주, 변칙적인 리듬의 트랩 비트가 교차하는 이 곡을 정국은 반복되는 음의 스타카토와 부드러운 레가토를 다 살려가며 너무나 쉽게 불러낸다. 듣기만 하는 사람은 이 곡이 어렵게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다. 정박을 깨야 하는 때, 노래를 감거나 놓아야 할 때, 혹은 던져야 할 때를 정확히 알고 있는 그의 예술적인 타이밍을 듣고 있자면 ‘시차 (My Time)’라는 노래의 제목과 중첩되며 좀 더 큰 전율이 느껴진다. 거친 기타에 맞서 목소리도 날카롭게 벼리는 점까지 그의 곡을 해석하는 감성 그리고 표현 능력의 탁월함을 보여준다.

 

요즘 정국의 관심사는 노래하는 목소리를 보다 본인의 말소리에 가깝게 바꾸는 것이라고 한다. ‘Proof’ 앨범을 발매하며 ‘위버스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생각을 좀 더 자세히 들어볼 수 있었다. 과거에는 예쁜 소리를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면, 최근에는 자신의 평소 말소리로도 좋은 소리가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연습하고 있다고 한다. 웹툰 ‘7FATES: CHAKHO’ 프로젝트의 OST로 발매된 슈가 작곡, 정국 가창의 ‘Stay Alive’에서도 이런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정국의 말로는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힘들게 여러 번 녹음했다고 하는데, 정작 녹음 트랙을 건네받은 슈가는 만족하며 한 번에 컨펌을 냈다고 한다. 

정국이 내놓는 결과물에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은 만족하지만 정국 본인은 더 나아지고 싶다며 아쉬워하는 모습은 방탄소년단의 다큐멘터리나 작업기에서 꽤 자주 보이는 내용이다. 데뷔한 지 10년이 되어가는데도 적극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하고자 열망하는 그를 보면 놀랍다. 열다섯 살 때도 이미 꽤나 수준급이었던 그였지만, 지금은 그때로부터 얼마나 달음박질쳤는지 헤아리기도 어려울 만큼 멀리 왔고, 단단하게 뿌리내려 성장했다. 방탄소년단이 팀으로 수많은 성취를 하는 동안 정국은 그룹의 최연소 멤버로 그 성취를 함께 일궜다. 최연소 아시아인 빌보드 핫 100 1위, 최연소 화관문화훈장, 최연소 UN총회에 참석한 대통령 특사 연예인 등 셀 수 없는 기록이 그의 이름 뒤에 따른다. 그러나 그는 그의 직업 본질인 노래와 음악에 여전히 너무나도 진심이다. 그의 향상심에서는 음악을 향한 사랑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어린 나이부터 음악 산업계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입장이면서 그는 음악을 두고는 조금의 염증도 드러내지 않는다. 음악을 사랑하는 팬으로서 이런 직업인을 보고 있노라면 고마운 마음과 함께 경외심을 느낀다.

 

10년 차의 열정이 이럴 수 있나 싶다가도, 또 스물넷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한창 그럴 때인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이지만, 왜인지 정국은 나이가 들어서도 지금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음악은 그때에도 음악일 테니까 말이다. 이토록 열정으로 타오르는 예술가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