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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랜디 서 (대중음악 해설가)
사진 출처. 빅히트 뮤직

길은 위치를 이동할 때 거치는 통로다. 좌표가 움직였다면 그 움직인 흔적은 길이 된다. 출발점과 도착점뿐만 아니라 그 사이의 길 위에서도 많은 일이 일어난다. 예술 작품에서 길은 여러 상징으로 등장한다. 길은 우리에게 친숙한 메타포이자, 여러 가지로 변주될 수 있는 소재이다. 제이홉의 새 싱글 ‘on the street (with J. Cole)’의 속 길 역시 여러 가지를 상징한다. 제이홉이 춤을 시작한 스트리트 댄스의 무대로서의 거리, 2023년까지의 방탄소년단 및 솔로 활동과 군 입대 사이 중간 연결(transition)로서의 길, 그의 팬 아미들과 함께 걷는 교감으로서의 길, 계속해서 걸어나갈 아티스트 인생 여로로서의 길 등 말이다.

 

잘 알려졌듯 제이홉은 춤으로 음악을 시작했다. ‘Chicken Noodle Soup (feat. Becky G)’ 가사처럼 그는 광주 충장로의 스트리트에서 춤추며 자랐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최연소로 광주의 댄스 크루 ‘뉴런’에 들어가 활동했고, 각종 댄스 경연 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 성인이 되기 훨씬 전에도 그는 그의 지역에서 이미 손꼽히는 춤꾼이었다. 방탄소년단 정규 1집 ‘DARK & WILD’의 수록 곡 ‘힙합성애자’에서 밝혔듯 그는 부갈루나 킹텃 등을 추던 시절부터 올드스쿨 힙합을 비롯한 20세기 음악을 들었다. 그냥 들었다는 말은 충분치 않다. 음악을 몸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비트부터 가사까지 음악을 더욱 속속들이 들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흡수한 음악은 그의 기억과 몸 구석구석에 인이 박혔다봐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가수 연습생이 되면서는 랩에도 입문했다. 그때 만난 아티스트가 제이 콜이라고 한다. ‘힙합성애자’에서는 아예 벌스의 두 줄 이상을 제이 콜에 헌사하며 각별한 애정을 밝혔다.

‘on the street (with J. Cole)’은 곧 입대하는 그가 팬 아미 곁에 두고 가는 선물이기도 하다. 제이홉은 지난 2월 입영 연기를 취소하고 곧 입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제이 콜이 2007년 데뷔 믹스테이프의 ‘Simba’ 뮤직비디오를 촬영한 뉴욕의 그 거리를 가볍게 걸으며 제이홉은 “가는 길이 희망이 되고자 하여”, “보답을 해 저 멀리서라도 나비가 되어”라고 노래한다.

 

나비의 메타포는 그가 그동안 즐겨써온 물고기(‘Daydream’, ‘MORE’)나 잠수함(‘Hope World’), 비행기(‘Airplane’) 등의 메타포를 연상시킨다. 3차원 공간 속의 어느 좌표로든 두둥실 떠서 유유히 이동해 물속에 혹은 하늘 속에 길을 낸다. 이런 비유는 무대 위의 제이홉과 퍽 잘 어울린다. 다년간의 연습으로 다듬어진 그의 움직임은 너무도 쉬워 보여서 때로는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춤은 3차원의 공간에 육체로서 존재하는 예술이다. 기술을 연마한 댄서일수록 공간 속에서 정확한 좌표를 인식하고 몸을 움직여 원하는 효과를 얻어낸다. 그의 믹스테이프나 앨범 제목이 유달리 공간들을 상정하는 것은 그가 우리가 사는 3차원 공간과 자신의 관계에 관심이 많은 아티스트라서는 아닐까 짐작해본다.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썼지만, 그런 모습이 되기까지 그는 공간과 자기 움직임을 정확히 이해하려 애썼을 것이다. 비록 ‘Jack In The Box’의 수록 곡 ‘Future’에서는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가 될 수 없단 걸”이라 하며 순리대로 사는 삶을 말하기도 하지만, 그의 인터뷰나 다큐멘터리 등을 볼 때 제이홉은 자기 예술만큼은 기꺼이 공들이고 애쓰는 사람임을 그래서 수행이 쉬워 보일 정도의 경지에 다다랐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가사는 곡의 초반부터 이 길이 아미들의 사랑과 믿음으로 만들어졌음을 분명히 한다. 제이홉은 그들의 희망으로서 함께 걷는 걸음을 이끎으로 보답하고자 한다. 휘파람을 불며 나비 같은 가벼운 걸음으로 앞장서는 그는 방탄소년단의 ‘Pied Piper’에 나오는 매혹적인 동화 속 인물이기도 하고, CB Mass의 ‘휘파람’ 속 음악으로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이이기도 하고,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길을 떠나며 “휘파람 불며 걷다가 너를 생각해”라고 문득 말하는, 어딘지 그리워질 것 같은 잔상을 남기는 사람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댄서로 출발한 제이홉이 어떻게 가사로 유명한 제이 콜을 좋아하게 됐을까 궁금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올드스쿨 기반의 프로듀싱과 성찰적 가사를 이어가고 있는 그를 보면 무리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제이 콜은 자기 음악에 있어 올라운더다. 본래 프로듀서 출신이었고, 자기 손으로 만든 비트 위에 라임과 시상, 영적인 성찰로 꽉 채운 가사를 올렸다. 그런 제이 콜을 동경했다는 제이홉 역시 현재 올라운더로 성장 중이다. 이미 그에게는 댄스라는 독보적 전문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MORE’의 가사처럼 “11년 째(올해로는 12년 째) 독학”으로 그 위에 랩, 작곡, 프로듀싱 등을 쌓아가고 있다. 2021년 ‘GQ’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음악을 만들 때부터 무대에서의 모습을 상상하고 써내려간다고 밝혔다. 광주의 댄서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그 경험을 기반으로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내는 다재다능함을 보여준다.

‘on the street (with J. Cole)’ 뮤직비디오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제이 콜이 뱉어내는 32마디 랩과 거기에 맞춰 춤추는 제이홉의 모습이다. 제이홉은 제이 콜이 들어오는 박자를 정확히 짚어 몸으로 표현해내고, 제이 콜은 자기 방식대로 비트에 최선을 다해 지금의 자신을 기록한다. 가사는 제이홉이 어린 시절 동경했을 그의 커리어 초기 모습이 많이 묻어난다. 음악으로 경쟁하며 큰 돈을 번 과거의 나날들, 이제는 음악을 보내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물음 그러나 이상하게도 아직까지 죽지 않은 아티스트로서의 야심. 특히 우주, 화산, 새 그리고 인간 몸속의 신경으로 시점을 이동하며 기독교적 세계관을 그려내는 솜씨나, 자식과도 같은 음악을 떠나보내는 일을 결혼하는 딸의 손을 놓아주는 것에 빗댄 라인은 감정을 뒤흔드는 제이 콜의 문학적 감각이 여전함을 보여준다.

 

제이 콜은 2018년부터 라이터스 블록(Writer’s block, 작가가 더 이상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창작을 할 수 없는 막힌 상태)을 고백하며 꾸준히 은퇴를 시사해왔다. 2018년에 발매한 ‘1985’에는 ‘The Fall Off’의 인트로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마지막 앨범의 제목이 ‘The Fall Off’가 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on the street (with J. Cole)’과 같은 날 발매된 영화 ‘크리드 3’의 사운드트랙 중 닥터 드레의 곡을 샘플링한 ‘Adonis Interlude (the Montage)’에서도 제이 콜은 ‘The Fall Off’를 언급하며 이것이 챕터의 마지막이 될 것인지 궁금하냐며, 올해가 곧 제이 콜의 군림을 완성하는 해가 될 거라 장담했다. 마치 ‘on the street (with J. Cole)’ 속 벌스의 그림자 혹은 사악한 반쪽 같다.

제이홉은 래퍼로 데뷔했으나 데뷔 전 공식적으로 래퍼로 활동한 경우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그런 점이 그에게 선명한 야망을 제공하고, 그러면서도 자유로운 음악을 할 수 있게 한다. 2018년 ‘시사IN’의 칼럼에서 밝혔듯, 그는 한국 힙합 씬에서 출발하지 않았기에 그 씬에 진 빚이 거의 없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 있게 자기 음악의 뿌리는 어린 시절 춤추며 들었던 1980년대와 1990년대 힙합이라 말한다. ‘Jack In The Box’와 ‘on the street (with J. Cole)’은 이를 뒷받침할 충분한 근거가 된다. 제이홉은 ‘Jack In The Box’의 선공개 곡 ‘MORE’에서는 더 성취하고 싶은 갈증을, 마지막 곡 ‘Arson’에서는 야망의 위험함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도전하길 원하는 딜레마를 담았다. 덤덤하게 회고하는 제이 콜이 그럼에도 끝내는 래퍼로서 ‘이상한 허기’를 느낀다 말하는 부분은 ‘Jack In The Box’를 명함으로 해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음악을 하는지 알게 하겠다던 제이홉의 음악적 야심과 묘하게 중첩된다. 지하에서 춤추던 제이홉이 지상으로 올라와 옥상의 제이 콜과 마침내 조우할 때, ‘on the street (with J. Cole)’ 작업을 통해 두 사람이 공감대를 이룬 부분이 드러난다. 결국은 더 훌륭한 음악을 보여주고 싶다는, 음악에 향한 집착적이기까지 한 사랑 말이다.

제이홉은 다큐멘터리 ‘j-hope IN THE BOX’에서 ‘Jack In The Box’의 프로모션 그러니까 ‘아이유의 팔레트’, ‘리스닝 파티’, ‘롤라팔루자’ 출연 등을 아이스크림 스쿱을 하나씩 쌓는 모습에 빗댔다. 과정을 순서대로 하나씩 밟아가는 모습 그리고 연습과 리허설 등의 과정 그 자체도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은 제이홉이라는 아티스트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길은 단지 하나의 좌표에서 다음 좌표로 지나가는 통로일 뿐만 아니다. 길 위에도 시간은 흐르고 사람은 성장한다. 제이홉의 길은 아직도 멀리까지 놓여 있는, 여전히 하고 싶은 것이 많고 자라고 싶은 구석이 많은 길이다. 돌아온 그가 다시 그 길 위에 설 때가 몹시도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