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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명석, 이예진, 최봄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대혼돈의 SeventeenVerse

강명석: 세계관이 너무 많아 세계관이 ‘인커전(마블의 멀티버스 설정에서 각자의 우주가 서로 충돌하는 현상)’ 할 것 같은 K-팝 유니버스에서 세븐틴은 충돌할 일 없을 것 같은 그들만의 세계관을 가졌다. 세븐틴의 세계관은 그들 자신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13명의 멤버, 힙합-보컬-퍼포먼스로 이뤄진 세 개의 유닛이 하나의 팀을 만드는 구조는 음악, 퍼포먼스, 예능, 심지어 잡지까지 직접 만드는 자체 제작 역사와 맞물려 앨범의 다양한 아이템이 되었다. 타이틀 곡 ‘박수’ 뮤직비디오에서 ‘세븐틴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온 프로덕션’을 콘셉트로 삼은 정규 2집 앨범 ‘TEEN, AGE’가 대표적이다.

 

정규 4집 앨범 ‘Face the Sun’은 이 세븐틴의 세계를 지금까지 그들이 가지 않았던 세계와 ‘인커전’시킨다. ‘Face the Sun’의 타이틀 곡 ‘HOT’의 뮤직비디오에서 그들은 매 순간마다 가상의 비주얼 콘셉트들을 소화한다. 뮤직비디오 속에서 그들은 영화 ‘매드맥스’를 연상시키는 폭주족이자 카우보이다. 세븐틴의 팬덤 캐럿에게 ‘천사’로 통하는 정한이 기계로 만들어진 날개 한쪽을 땅에 끌고 다니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HOT’의 뮤직비디오는 세븐틴 멤버들의 실제 이미지를 극단적인 비주얼 콘셉트로 해석한다. ‘Face the Sun’의 개인 티저 영상 ‘13 Inner Shadows’가 멤버들을 초현실적인 상황에 넣은 사이, 멤버들이 티저 영상 ‘I’m NOT SEVENTEEN anymore’에서 세븐틴의 분열 또는 해체에 대한 암시를 한 것과 마찬가지다. ‘Face the Sun’은 현실 속의 세븐틴을 태양과 그림자라는 상징을 중심으로 초현실적이거나 극단적인 방식으로 풀어낸다.

 

‘Face the Sun’의 수록 곡들이 다양한 장르를 뒤섞거나, 장르를 극단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는 건 우연처럼 들리지 않는다. ‘Domino’는 달콤한 팝으로 시작해 후렴구에서 EDM으로 급격하게 변한다. ‘Shadow’는 드럼 앤 베이스로 시작해 갈수록 록이 된다. 팝 발라드 ‘IF you leave me’처럼 피아노 연주 하나만 놓고 멤버들의 화음으로 곡 전체를 끌고 가는 경우도 있다. 그 다음 곡 ‘Ash’는 멤버 전원의 목소리에 이펙트를 걸어놓는다. 그러나 라틴 리듬과 힙합을 섞어놓으며 요즘의 팝 트렌드를 반영하는 ‘HOT’처럼, ‘Face the Sun’의 대부분의 곡들은 동시대 전 세계 음악 트렌드를 다양하게 결합하는 K-팝의 작법을 활용한 것이기도 하다. ‘HOT’의 뮤직비디오에서 현실에서 안경을 쓰던 원우가 안경을 밟아 부수는 것처럼, 세븐틴은 K-팝의 콘셉트와 작법을 그들의 세계를 넓히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DON QUIXOTE’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은 결국 ‘세븐틴 특유의’라는 표현을 써도 무방할 청량한 팝 멜로디고, ‘Domino’의 변화는 오히려 후렴구가 가진 산뜻한 팝 멜로디의 매력을 강화시킨다. ‘Shadow’가 록으로 변하는 1절의 후렴구에서 들리는 민규의 격정적인 보컬처럼, 세븐틴은 ‘아낀다’를 부르던 그때 이상으로 뒤돌아보지 않는 감정을 던질 줄 안다. 세븐틴은 여전히 ‘청량’하다. 다만 이번에는 청량한 ‘팝’을 하고 있다. 

 

‘Face the Sun’은 태양을 마주한 세븐틴의 혼돈이나 분열 그리고 그것을 딛는 과정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븐틴이 실제로 얻는 결과는 태양까지 확장한 세븐틴의 세계다. 세븐틴과 세븐틴 외의 K-팝의 세계가 만나며 세븐틴의 영역이 확장되고, 그 과정에서 나오는 에너지야말로 ‘Face the Sun’의 진정한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세 곡이 사실상 하나의 타이틀 곡이라 해도 좋을 ‘HOT’-‘DON QUIXOTE’-‘March’는 “태양을 향해 불붙여라”는 도전(‘HOT’), “겁먹지 않아”라는 의지(‘DON QUIXOTE’)를 지나 세븐틴의 역사상 가장 힘차고, 가장 선동적인 “힘차게 달리자 이 노래는 행진가”의 순간이 기다리는 ‘March’에 이른다. ‘Face the Sun’은 단지 정규 앨범을 위한 콘셉트가 아니라 세븐틴의 지금의 태도다. 세븐틴은 그들이 많이 하지 않았던 그들 세계 바깥의 요소들을 끌어들이면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준비를 했다. 그건 아마도 더 많은 ‘TEAM SVT’를 만들 수 있는 세계일 것이다.

세븐틴이 펼칠 이야기

이예진: “어느새 우린 높이 올라가서 태양이 되어버릴 거야”(‘HOT’), “세상에서 제일 가는 우리가 될 거야 / 갖고 싶은 걸 모두 가지고 말거야”(‘March’). 이 투명하다 못해 순수하게까지 느껴지는 일차원적 야망의 표현은 패기에 찬 여느 신인이 아닌, 이미 아이돌로서 충분한 성공을 거둔 8년 차 보이 그룹이 외치는 소리다. 오히려 세븐틴이 이처럼 하나의 팀으로서 두려움 없이 전진하겠다는 노골적인 선언을 한 것은 처음이다. 소년기에 표출되는 무정형의 에너지, 새로운 감정을 마주하는 성장통, 청춘을 향한 공감과 응원, 성숙된 사랑 등 팀의 연차와 성장에 수반되는 단계적 변화를 모두가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모양으로 노래해온 세븐틴은 정규 4집 ‘Face the Sun’에 들어 지극히 팀 중심적인 메시지를 한가운데에 내세운다. 트랙 전체가 유닛 곡 없이 13명 멤버들의 단체 곡으로 구성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타이틀 곡 ‘HOT’에서 팔을 힘차게 휘두르며 “태양을 향해 불붙여라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세븐틴은 마치 성대한 의식을 치르는 현장을 방불케 하는 에너지를 내뿜고, ‘March’ 속 결의 가득한 멜로디를 감싸는 웅장한 분위기의 사운드는 그 자체로 활로를 개척하는 카우보이들의 행진가가 된다. 그들의 과장된 애티튜드를 세븐틴 역시 인지하듯 “사람들이 손가락질해도 상관없다고, 내가 미쳐도 좋다”며(‘DON QUIXOTE’) 명예로운 모험을 찾아나서지만 별난 미치광이로 취급받았던 돈키호테를 자처한다. 앨범 전반에 걸쳐 기교 없이 직선적으로 표현되는 이토록 묵직한 각오와 진지한 마음이 바로 자체 제작 아이돌 세븐틴이 전달하고자 하는 세븐틴의 현재다. 

 

그러나 최근 대세 뉴미디어 웹 예능 ‘문명특급’과 컬래버레이션이 가능할 정도로 예능적 이미지가 부각된 팀에게 웃음기를 뺀 채 내면의 이야기를 노래로 전하는 진심이 그대로 통하는 것은, 다른 어떠한 이유도 아닌 그들이 세븐틴이기 때문일 것이다. 세븐틴의 음악은 언제나 그랬다. 멤버 각각의 확고한 캐릭터와 그들 사이 끈끈한 관계성으로 뒤섞인 케미스트리에서 근원되는 열정과 에너지는 한 시기의 세븐틴을 그리는 음악에 그대로 반영되고, 그 에너지는 다시 세븐틴의 음악을 통해 새롭게 발산된다. ‘Face the Sun’ 발매 전 공개된 트레일러 영상 ‘13 Inner Shadows’를 비롯해 유기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이어진 오피셜 포토 등 프로모션 콘텐츠가 타이틀 곡 ‘HOT’이라는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배경으로 설명될 수 있지만, 그 안의 메타포나 스토리의 짜임새보다도 세븐틴의 이야기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건 세븐틴과 캐럿만이 쌓아온 서사와 시간인 것처럼. 세상 무엇도 두렵지 않은 듯 굳센 자기 확신과 의지 뒤로 자신의 가장 유약하고도 부드러운 모습을 드러냈다가도(‘Domino’, ‘Shadow’, ‘노래해’, ‘IF you leave me’) 이를 안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길을 나서겠다는 다짐으로 마무리(‘Ash’)하는 ‘Face the Sun’은, 노래 속 세븐틴의 아킬레스건이자 존재의 이유로 표현되는 캐럿을 세븐틴의 바운더리로 끌어당겨 ‘TEAM SVT’로서 새로운 시작을 위한 선포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새로운 여정 속에서 펼쳐질 세븐틴의 이야기는 늘 그래왔듯, 오직 세븐틴 스스로가 전개할 것이다.

찬란한 그림자로 밝히는 길

최봄:SEVENTEEN NEW RINGS CEREMONY : The Sun Rises’에서 ‘Darl+ing’, 트레일러 영상 13 Inner Shadows’, 그리고 정규 4집 ‘Face the Sun’으로 이어지는 세븐틴의 프로모션 과정은 고립을 넘어 태양을 향해 연대하겠다는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이다. 지금까지 세븐틴이 걸어온 길을 담은 ‘The Sun Rises’ 속 “이제 우리를 가뒀던 그림자에서 벗어나 태양을 향해 갈 거야.”는 이 이야기의 시작점이 되고, ‘Darl+ing’의 뮤직비디오에서 멤버들의 눈을 가리던 천을 벗거나 거울 속 자신을 마주하는 등 무언가를 대면할 때마다 그림자가 그 존재를 드러낸다. 그림자는 개인 트레일러 영상 ‘13 Inner Shadows’에서 멤버 각자의 고립과 좌절의 두려움이 되지만, 멤버 수와 동일한 13개의 점이 연결되는 그래픽은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로 이어진다는 것을 묘사한다. 그리고 모든 점이 이어지는 순간 완성되는 태양의 모습은 자연스레 ‘Face the Sun’, 태양을 마주하겠다는 메시지를 연상시킨다.  

 

앨범 곳곳에 스며 있는 그림자는 고립의 두려움이다. “I’m NOT SEVENTEEN anymore”라 말하며 소속감을 잃은 멤버들의 트레일러 영상 ‘13 Inner Shadows’에 이어, 콘셉트 포토 ‘ep.2 Shadow’는 멤버들의 모습을 긴 시간 어둠에 갇혀 있던 듯 창백하게 표현하고, 유일하게 단체 사진이 없는 콘셉트로서 각자의 고립된 상황을 표현한다. ‘IF you leave me’ 역시 혼자가 되는 두려움을 담고 있다. “어두운 그림자가 내린 밤”에, 대문자로 강조된 제목의 IF처럼 단지 가정일 뿐이라며 운을 떼는 조심스러운 마음은 “너 없는 내일은 싫어”, “잠시 떨어져 있었던 시간도 내 마음을 소란스럽게 만드는데”, “고장 났던 (마음이) 시간들이 (내 세상이) 다시 움직이게” 등의 가사를 통해 결코 혼자가 되고 싶지 않은 두려움을 고백한다.

 

하지만 세븐틴은 그림자를 이해하고, 함께 가자며 손을 내민다. ‘Shadow’에서 “서로의 똑같은 모습을 잠시 잊은 채로 / 부정하기 바뻤었던 어제”를 지나, 그림자를 또 하나의 나 자신으로 인정하자(“이제 난 알아 너 또한 나인걸”), 그림자는 “같은 발 맞춰 달려”줄 공존의 존재가 된다. 앨범 타이틀 곡 ‘HOT’에서도 “태양을 향해 등지고 있던 내 그림자는 다시 빛이 돼” 파트의 안무는 우지와 그의 행동을 따라하며 그림자를 표현하는 준이 손을 맞잡은 채 걸음을 내딛거나, 상대를 일으켜 세우는 등 나와 그림자가 함께 나아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 가사는 ‘Shadow’의 “나의 어두움 마저 밝게 빛나고 말테니까”와도 연결되며 ‘Shadow’가 마치 ‘HOT’의 프리퀄처럼 보이는 재미 또한 준다. 

 

태양의 이야기는 그림자로부터 시작되고, 내면의 두려움을 뒤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는 ‘Face the Sun’의 구성은 어둠에서 빛으로, 과거에서 미래로 향하는 순차적인 이야기로 완성된다. 그렇게 태양으로 향하는 길은 ‘나’와 ‘너’의 구분을 넘어 ‘우리’로 ‘탈바꿈(Metamorphosis)’하는 과정이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막힌 길이 될 뿐인 대립과 달리, 대면은 인정과 이해로 이어지면서 무한히 확장되는 길을 열어준다. 그리고 “끝나지 않을 이 길” 위에 선 세븐틴이 손을 내민다. 함께 노래하고(“Everybody 떼창”, ‘HOT’), 함께 행진하면서(“힘차게 달리자 이 노래는 행진가”, ‘March’) 태양을 향해 가자고. 그렇게 세븐틴의 분열과 두려움과 연대의 이야기는 2022년에 보편의 힘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