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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명석
사진 출처.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부석순은 세븐틴의 멤버 승관, 도겸, 호시가 결성한 스페셜 유닛이다. 그러나 그들은 활동 기간 동안 세븐틴을 “선배님”으로 대한다. 지난 6일 발표한 새 앨범 ‘SECOND WIND’의 타이틀 곡 ‘파이팅 해야지 (Feat. 이영지)’를 세븐틴 멤버들과 챌린지한 영상에는 ‘버논 선배님의 응원을 받아💪 #파이팅해야지 #부석순 with #버논 #BSS_Fighting #shorts’, ‘디에잇 선배님의 에너지를 본받아🤸‍♂️#파이팅해야지 #부석순 with #디에잇 #BSS_Fighting #shorts’ 같은 제목이 붙었고, 버논과의 챌린지 영상 뒤쪽에는 역시 같은 팀 멤버 준이 보낸 커피 차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써 있다. “어, 그래. 부석순. 컴백이 처음이라고? 모르는 거 있으면 세븐틴 선배님한테 물어보고 ^^.” 부석순은 2015년 데뷔한 세븐틴의 스페셜 유닛이 아니라 2018년 데뷔한 4세대 보이그룹이라는 설정으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부석순은 KBS ‘뮤직뱅크’ 인터뷰에서 “4세대는 우리가 접수한다. 보고 있나? 뉴진스, 르세라핌, 엔하이픈, 투바투! 많이 사랑합니다.”라고 외쳤고, 유튜브 콘텐츠 ‘잇츠라이브(It’s live)’에서 공연을 하던 중 목소리에 과장되게 힘을 넣으며 세븐틴에 대한 언급 없이 “5년만의 컴백”을 강조한다. 그러나 공연이 끝나자마자 그들은 스태프들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세븐틴 멤버로 돌아간다. 부석순은 실존하는 세븐틴 스페셜 유닛 부석순인 동시에 세븐틴의 세 멤버가 연기하는 가상의 4세대 보이그룹인 셈이다. 

컴백을 앞두고 공개한 두 편의 영상, ‘고잉 부석순 : 컴백해야지’에서 세븐틴의 멤버들은 현실과는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막내 디노는 모든 안무에 차차차를 활용하는 안무가 ‘미스터 차’다. ‘파이팅 해야지 (Feat. 이영지)’의 작곡가는 우주인 헬멧을 쓰고 작업하고, 곡비로 “10만원”이면 거액이라고 생각하는 “우지 선배님”이다. ‘SECOND WIND’의 수록 곡 ‘LUNCH’의 가사, “같은 타임라인 속에 우리 평행하게 있다면”은 지금 부석순이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들은 지금 ‘뮤직뱅크’와 ‘잇츠라이브’를 시청하는 사람들과 같은 타임라인에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재계약 조건으로 “탈색된 모발이 자랄 수 있는 약”, “촬영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준비”, “모든 회사 직원분들께서 저를 보면  ‘도겸아 사랑해’ 한마디씩만 해주시면” 등을 요구할 수 있는 ‘고잉 부석순 : 컴백해야지’ 속 부석순인 채로 활동한다. ‘부석순버스’라고 할만한, 그들의 평행우주이자 세계관의 탄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당연하게도 이 모든 것은 재밌는 농담이다. 세븐틴의 멤버 민규와 함께한 챌린지 영상 제목 ‘와줘서 고마워 뀨😎 #부석순 with #민규 #파이팅해야지 #BSS_Fighting #shorts’처럼 멤버들은 ‘세븐틴의 후배’ 같은 설정을 진지하게 유지하지는 않는다. ‘잇츠라이브’에서 ‘파이팅 해야지 (Feat. 이영지)’에 대해 “그냥 파이팅 하는 곡입니다.”라고 말한 것처럼, 부석순의 설정들은 ‘파이팅 해야지 (Feat. 이영지)’에 더욱 몰입할 수 있는 장치 중 하나다. 부석순은 그들의 세계에서 데뷔 5년 차의 ‘4세대’ 팀으로 아직 ‘선배’들의 눈치를 봐야 할 입장이고, ‘고잉 부석순 : 컴백해야지’에서 묘사하듯 좋은 곡을 받으려면 인기 작곡가에게 부탁을 해야 한다. ‘파이팅 해야지 (Feat. 이영지)’에서 직장인들이 “다 이어폰 꽂은 Zombie”처럼 매일의 아침이 힘들어 “텐션 Up pumpin’’이 필요한 것처럼, 이 멀티버스 속 부석순도 직장에서 쉬운 일이 하나 없다. 신곡을 발표하려면 콘셉트부터 안무 연습까지 직장 동료들과 의견을 모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갈등을 빚다 회식하며 풀기도 한다. 부석순의 ‘파이팅’은 단지 아이돌이 직장인에게 하는 응원이 아니다. 그들 또한 다사다난한 일들을 겪으며 “파이팅 해야지”를 외치는 직장인이다.

 

“자, 세븐틴을 위해서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정말 우리 앞으로 갈 일이 아직 많지 않습니까? 여러분 준비됐습니까? 다시 한번 준비됐습니까?” 세븐틴 멤버들이 함께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르는 유튜브 콘텐츠 ‘[이슬라이브2] 세븐틴(SEVENTEEN) - CHEERS, _WORLD, 돌고 돌아, 우리의 새벽은 낮보다 뜨겁다, 떠내려가, 아주 NICE(이하 ‘이슬라이브2’)’에서 다른 유니버스에서는 ‘차 선생님’으로 살아갈 디노의 건배사다. 이 영상이 공개된 2개월 뒤, 세븐틴은 일본 도쿄돔에 섰다. 그들의 데뷔 이후 앨범 판매량은 1,600만 장(서클 차트 기준) 이상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작은 술집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소주를 마시며 더 가보자고 서로를 격려한다. ‘이슬라이브2’에서 우지는 ‘돌고 돌아’를 “개인적으로 너무 멤버들한테 너무 깊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고, 원우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었고, 나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었고, 우리 모두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었고 그리고 캐럿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었고”라고 소개한다. 이 노래는 “나는 어디로 걸어가는지 무얼 찾아 이리 헤매이는지 한껏 울고플 때 하늘 가까이로 가곤 해”로 시작한다. 그 작은 연습실에서 도쿄돔에 서기까지 세븐틴 또한 기쁜 일만큼 힘든 일도 많았을 것이다. 평범한 직장인이든, 세계적인 스타든 희로애락을 친구나 동료와 술 한잔 마시며 해소하는 삶은 다르지 않다. 다만 우지의 말에 멤버들이 눈물을 흘릴 때, 승관은 눈물을 훔치면서도 후렴구에 이르자 소주병을 마이크 삼아 힘껏 노래한다. 아무리 슬퍼도 노래를 해야 할 때는 노래한다. 그것이 아이돌의 삶이다. 운동을 하다 호흡하기 어려울 만큼 힘든 시점을 지나 안정적인 상태로 접어드는 ‘SECOND WIND’가 앨범명인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부석순 또한  “파이팅”을 “해야지”라고 혼잣말하는 삶을 살지만,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까지 응원한다. 그들 자신의 의도와 별개로, 부석순의 세계관은 ‘SECOND WIND’를 기점으로 매우 넓고, 깊고, 복잡해졌다. 부석순은 언뜻 ‘4세대’나 ‘선배님’ 같은 한국 아이돌 특유의 문화를 패러디하는 것 같지만, 그 속에는 아이돌의, 더 나아가 쓰러질 만큼 힘든 하루를 술 마시고 푸는 한국인의 삶의 진실이 있다. 부석순은 근래 한국 아이돌 음악에서 보기 드물게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일상과 감정에 공명한다. 

부석순은 직장인이라는 콘셉트를 전달하기 위해 활동 내내 직장인처럼 슈트를 입고, ‘SECOND WIND’의 곡들을 미리 들려준 ‘부석순 (SEVENTEEN) 1st Single Album ‘SECOND WIND' Highlight Medley’는 각각 세 멤버가 아침, 점심, 저녁의 라디오 방송 DJ처럼 곡을 소개한다. ‘파이팅 해야지 (Feat. 이영지)’, ‘LUNCH’, ‘7시에 들어줘 (Feat. Peder Elias)’로 이어지는 ‘SECOND WIND’의 곡 순서와 분위기가 그대로 직장인의 출근길, 점심시간, 퇴근 후의 흐름에 맞춰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대 위에서는 박수를 한 번 치는 동작까지 정확하게 박자를 맞춰 하나의 안무로 소화해내고, 곡이 진행되는 내내 ‘칼 군무’와 댄서들의 복잡한 이동 그리고 모두가 모여 폭죽과 함께 대미를 장식하는 한국 아이돌 특유의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무대 바깥에서는 유튜브 콘텐츠 ‘워크맨’에서 초콜릿 공장을 체험하거나 유튜브 채널 ‘Pixid’의 ‘꼰대(?) 부장님 단톡방에 숨은 MZ 찾기 (feat. 승관)’에서 승관이 중년 직장인들과 대화를 하면서 직장인의 애환을 유쾌하게 표현한다. 모든 활동을 집요할 만큼 철저하게 앨범 활동 콘셉트와 일치시키는 것은 K-팝 특유의 프로덕션이자 프로모션이다. 그리고 이 집요함이 직장인의 삶을 묘사하자 이영지의 랩처럼 “모닝커피는 디카페인”으로 마시고 “굽은 등, 팔, 다리”를 편 뒤 “불행과 같이 살기에는 내 시간이 너무 아깝지”라며 의지를 다지는 직장인의 삶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됐다. “파이팅 해야지”를 외쳐도 “파이팅”에서는 힘을 강하게 주다 “해야지”에서는 왠지 모르게 조금 힘이 빠지고, 힘을 내 “힘내야지 뭐 어쩌겠어”를 부르지만 목소리가 뒤로 갈 수록 줄어드는 것 같은 직장인의 마음. ‘SECOND WIND’는 정석적인 K-팝의 제작 방식을 통해 K-팝 바깥에 있을 것만 같았던 어떤 삶의 구체적인 면을 전달한다. 데뷔 이후 8년 동안 직업인으로서 수많은 일들을 겪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이돌로서의 반짝거림과 즐거움을 전하려는 사람들이 도달한 새로운 우주다. 노래 제목 ‘파이팅 해야지’의 여섯 글자는 단순 명쾌하게 사람들을 응원한다. 그러나 ‘파이팅’과 ‘해야지’를 한 문장 안에 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삶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삶의 궤적을 가질 것이다. 그러니 부석순을 진짜 4세대 아이돌이라 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들이야말로 진짜 지금 가상과 현실, K-팝과 K-팝 바깥의 세계를 웃으면서 통합한 K-팝의 ‘혁신’이자 ‘메타’적인 우주의 창조자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