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의 첫 솔로 앨범 ‘Absolute Zero’는 ‘절대영점’의 온도를 의미한다. 그러나 백호에게 ‘절대영점’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상태가 아니다. 백호에게 ‘절대영점’은 극단적으로 뜨거운 감정과 극단적으로 차가운 감정이 끊임없이 부딪치는 과정이다.  

데뷔 10년 만에 솔로 앨범을 만들었어요. 팀이 아닌 솔로 아티스트로 작업할 때 차이가 있던가요?

백호: 음악을 만드는 마음가짐은 생각보다 비슷했던 것 같은데, 혼자서 앨범을 채워야 해서 제 생각이 확고해지지 않는 느낌을 받았어요. 팀으로 곡을 만들 때는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이런 모습일 것 같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혼자 채우는 앨범이란 부담감이 들어선지 뭘 해야 할지 너무 막막했어요.
 

막막한 상황에서 어떻게 앨범의 방향을 잡아 나갔나요?

백호: 제 취향에 더 집중했어요.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더 집중하면서 막막한 게 조금씩 풀려나간 것 같고, 그 와중에 팬 미팅을 했어요. 우리 ‘dOnO(백호의 팬덤명)’들의 함성을 못 들은 지 너무 오래 돼서 그 기분이 어떤 것이었는지 잘 생각이 안 났는데, 팬 미팅 하면서 내가 어떤 걸 해야 하는지 조금씩 명확해진 것 같아요. 무대에 서서 함성도 듣고, 팬들과 소통도 하니까 막막한 게 사라지고 하고 싶은 게 늘어났어요. 제가 무언가 만들어내는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자극이 있어야 하더라고요.


특히 어떤 부분을 알게 된 걸까요?

백호: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무엇이 편하고 어떤 걸 기피하려고 하는지 더 잘 알게 된 것 같아요. 생각해보니까 저는 좀 과하다 싶은 건 몸에서 거부 반응이 있더라고요.(웃음) 퍼포먼스를 할 때도 그렇고 노래를 할 때도 그렇고, 제 감정을 어떻게 담백하게 표현할지, 깔끔하게 표현하는 방법이 뭘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목소리 녹음도 과하지 않게 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건가요? ‘변했다고 느끼는 내가 변한 건지 (Feat. Sik-K)’는 팬 미팅에서 라이브로 부를 때 격정적인 곡이었는데, 앨범에서는 오토튠으로 오히려 음을 낮추거나 목소리를 누르고 퍼지게 하면서 좀 더 멀리서부터 애절하게 소리 지르는 느낌이 더해졌어요. 

백호: 퍼포먼스가 메인인 음악을 할 때는 퍼포먼스가 더 잘 보이게 하려고 악기 소리도 더 공격적으로 넣고 목소리도 더 공격적으로 들리게 하는데, 이번 앨범은 최대한 순하게,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들을 수 있게 믹싱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곡 작업 단계부터 원래 주로 내는 고음의 음역대를 최대한 피하면서 만들어보려고 했고요. 고음을 피하면서도 내가 힘을 넣어 부를 수 있는 방법들이 어떤 게 있을지 작업 단계부터 그런 부분들을 많이 설계했어요. 

백호 씨의 목소리는 고음이나 격렬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강점이 있기도 한데, 그것들을 내려놓는 게 걱정되진 않았나요?

백호: 걱정은 하지 않았어요. 이번 앨범에서 좀 바랐던 바이기도 한데, 제 목소리를 알고 있는 분들은 제가 이번 앨범에서 어떤 부분이 바뀌었다는 걸 확실히 느끼시면 좀 재밌게 들으실 수 있을 것 같고, 제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분들이 들었을 때도 매력적인 목소리여야 하니까 그런 부분들을 어떻게 합쳐야 할지 고민했어요. 그래서 보컬 녹음을 정말 여러 번 하기도 했고요. 한 곡을 하루에 끝낸 곡이 단 한 곡이었어요. 녹음을 했는데 마음에 안 들어서 혼자 작업실에 가서 다시 녹음했던 적도 있고요.  

 

‘LOVE BURN’이 그래서 나왔나 싶네요. 전체적으로 듣기 좋고 차분한 감정까지도 주는데, 후렴구 멜로디는 굉장히 격정적인 데가 있어서 계속 기억에 남더라고요. 

백호: ‘LOVE BURN’은 그래서 과하게 녹음해놓은 버전도 있어요. 그 음역대 자체가 제가 속삭이려면 속삭일 수도 있고, 지르는 느낌으로 부르고 싶으면 지를 수도 있는 음역대거든요.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도 좀 많이 고민됐는데, 결국 가운데 접점을 찾아서 마스터링이 잘됐어요.

 

장르적인 특성보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먼저 들어오는 것도 접점을 찾는 시도였을까요? R&B와 록이 장르적인 경계 없이 섞였던데요. 보컬도 어느 쪽 스타일에 의도적으로 집중하거나 하지 않고요.

백호: 맞아요. 저는 음악을 하면서도 요즘 노래를 들으며 무슨 장르라고 말하기 어려워졌어요. 그런 걸 내가 만들어볼 수 있을까란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록을 만들자.”, “R&B를 만들자.”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그 부분의 감정에 따라 같이 작업한 분들에게 거기에 어울리는 사운드에 대해 설명을 했어요.
 

타이틀 곡 ‘No Rules’는 특히 앨범에서 표현하는 여러 가지의 균형을 잡았다는 느낌이 들어요. 퍼포먼스로 보여주고 싶은 모습과 음악적으로 들려주고 싶은 것들, 백호 씨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각각 어필할 부분이 같이 있는 느낌이었어요. 

백호: 그 균형을 정말 잘 찾고 싶었어요. ‘No Rules’를 쓸 때부터 무대에서 가장 크게 가지고 있는 무기가 뭘지, 어떤 걸 보여드리면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갈지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걸 적절히 섞은 노래라고 생각하는데, 혼자만 에너지를 크게 쓰기보다 보는 분들에게 무대 전체로 에너지가 크게 다가가길 바랐어요. 

퍼포먼스도 예전과는 다른 방향이었던 것 같아요. 백호 씨가 곡의 모든 순간을 이끌기보다는 전체적인 무대의 그림을 안내하는 느낌이었어요. 

백호: 맞아요. 퍼포먼스를 만들 때 제가 더 여유롭게 들어갈 수 있는 틈을 만드는 걸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아무래도 첫 솔로다 보니까 퍼포먼스가 가득 들어 있는 것도 고려했는데, 그런 동작들을 좀 들어냈어요. 대신 저는 가만히 있고 댄서들이 움직이면서 그림 같은 멋진 장면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기도 했고요. 

 

아이돌의 퍼포먼스와 팝 보컬의 편안함을 동시에 구현한 것 같았어요. 퍼포먼스도 할 수 있지만 드라마나 영화처럼 감상할 수 있는 음악 같기도 했고요. 

백호: 노렸어요.(웃음)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음악에서도 무언가 보이지 않으면 겁나요. 가진 걸 내려놓는 건 전혀 겁나지 않는데, 내가 그린 장면들이 보이지 않는 건 좀 겁이 났거든요. 그래서 듣는 음악이지만 보였으면 했어요. 앨범을 만들 때 한 장 전체를 들었을 때 쭉 이어지는 스토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한 곡씩 따로 들어도 좋은 노래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No Rules’는 처음부터 ‘타이틀 곡을 만들어야겠다!’ 하고 만들었어요. 이번 앨범이 사랑의 감정을 온도에 빗대서 표현해야겠단 생각이 들어서,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의 감정이 최고에 달했을 때의 감정을 타이틀 곡으로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순서도 앨범 한가운데고요. 


앨범의 모든 부분에 의도를 반영하고 조율하려면 생각을 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백호: 저는 가수니까 음악을 듣다가도 ‘이런 건 나에게도 잘 어울리지 않을까? 이런 걸 한 번 하면 잘 어울리지 않을까?’ 하면서 듣게 돼요. 그런 식으로 몇 년 전부터 쌓인 거죠. 앨범 작업을 다 마쳤을 때 앨범 순서대로 차에서 들어봤는데 약간 울컥하더라고요. 사실 걱정이 너무 많았어요. 그동안 하던 음악과 너무 다르기도 했고, ‘의도한 바가 잘 들릴까?’ 하고 걱정했는데 다 들어보니까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앨범이 된 것 같고, 이 정도 앨범이면 됐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번 앨범 자체가 차에서 듣기 좋은 음악 같단 생각도 들어요. 

백호: 맞아요. 제가 음악을 들을 때 노래를 언제나 집중해서 듣지는 않아요. 그냥 흘려 듣는 노래도 있으니까 그런 음악들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했어요. 

‘Festival in my car’가 그런 백호 씨의 일상을 반영한 느낌이었어요.  

백호: 이번 앨범에서 처음 만든 곡이에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은 사실 데모 상태의 곡이에요. 작업을 하고 나와서 정돈되지 않은 노래를 제 차에서 듣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혼자 앨범을 다 채워야 하니까 어떤 사람인지 좀 더 음악에서 나타나야 사람들이 좀 더 내 음악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도 있어서 진짜 제 취향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담은 노래이기도 해요. 


차에서 음악을 들으면 곡과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고 듣는 경우가 많을 것 같아요. 여러 생각도 정리하게 될 것 같고요.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백호 씨의 감정에 대해 거리를 둘 수 있게 됐다고 할 수 있을까요? 자기 객관화 같은.

백호: 자기 객관화라기보다는 안전한 쪽으로 변하는 게 아닐까란 생각도 들어요. 활동을 하다가 생긴 습관인지 모르겠는데, 지금하는 인터뷰도 기록에 남는 거잖아요. 기록으로 남는 일을 하다 보니까 한 번 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안전이란 부분에서 백호 씨가 차를 좋아하는 이유와도 통할 것 같아요.

백호: 차는 누구한테도 방해받지 않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제 차는 주로 혼자 타다 보니 선곡도 내 마음대로 하고 볼륨도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어서 가장 개인적일 수 있는 공간이란 인식이 커요. 자동차는 문을 잠그면 다 잠겨 있고, 창문으로는 바깥을 볼 수 있어서 안전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요.  

 

그럼 어떤 순간에 불안한 걸까요?

백호: 너무 행복해서 오는 불안감인 것 같아요. 지금의 제 삶을 놓치기 싫으니까. 객관적으로 봐도 제가 충분히 좋은 상태인데, 더 좋아지기 위한 과정일 뿐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 마음을 어떻게 바꿨나요?

백호: 좀 편해지려고 노력했어요. 평화로워야 한다는 생각도 많이 했던 것 같고. 전에는 좀 집착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많은 분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려면 내가 좋은 에너지를 갖고 있어야 된다.’ 이런 것에 대한 집착이 조금 있었어요. 그래서 ‘나는 편해, 지금 편해.’라고 스스로에게 생각을 강요했던 것 같고, ‘지금은 진짜 편한 게 뭘까?’ 질문을 해요. 

마음가짐을 바꾸니까 좀 달리 보이는 게 있던가요?

백호: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 잘 못 느끼겠어요. 지금도 노력하는 단계지, 완전하게 됐다는 생각이 잘 안 들어요. 살아가면서 마음속 한구석에 있는 불안감을 완전히 떨쳐낼 순 없는 거거든요. 예를 들면 ‘제가 분명히 즐거운 상태인데 나중에 더 즐겁기 위한 지금이다.’라고 생각하니까, 지금 즐거운 거라는 걸 깨닫지 못하고 있더라고요. 이런 마음에 대한 위기감을 좀 느꼈었어요. 


요즘은 즐거운가요? 

백호: 너무 즐거워요. 앨범을 만드는 과정도 너무 즐거웠고요. 스케줄을 소화하는 과정도 재밌고, 차로 이동하는 시간도 재밌어요. 예능 프로그램에 나갈 때도 새 앨범을 홍보해야 되는 것도 있겠지만 방송을 하면 그냥 좋아요. 같이 즐길 수 있는 느낌이 있어요. 요새는 즐거운 일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모든 것에 좀 더 차분하고 평온해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백호: 아니요. 최대한 차분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잘 안 돼요. 며칠 전에도 화가 나는 일이 있었거든요. 앨범을 준비하면서 생각하는 대로 일이 안 풀려서 그런 감정이 들었던 건데, 작업이 생각대로 안 풀리는 건 너무 당연한 거잖아요. 그런데 혼자 화가 나더라고요. 앨범을 내야 해서 그러는 건지 요새 좀 그랬어요. 다만 생각을 최대한 정리하려고 노력해요. 예를 들어 일하면서 누군가와 문제가 있다면 문제가 있던 사람과 대화를 계속 하려고 하고요. 그러면서 제가 원하는 방향을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그런 생각의 변화는 어떻게 가능했나요?

백호: 제 이름으로 나오는 앨범이지만, 저 혼자 만드는 건 아니잖아요. 그분들과 같이 일을 하면서 서로 신뢰가 생겨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퍼포먼스를 만드는 분 입장에서 내가 가만히 서 있겠다고 하면 굉장히 불안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춤을 추지 않아도 무대의 에너지로 채울 수 있다는 믿음을 표현하기도 했고, 고맙게도 저를 믿어주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가능해진 것 같아요. 음악을 만드는 과정도 마찬가지였고요. 이번 앨범은 편곡할 때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한 게 중요했거든요. 같이 곡을 만드는 사람들을 다 옆에 두고 만약 감정이 고조된다 싶으면 록 음악에서 쓰는 기타 리프를 연주해달라고 하면 기타 연주하시는 분이 바로 연주를 해주고. 


‘절대영점’이 백호 씨의 현재 상태라기보다는 그렇게 돼 가는 과정이었나 봐요. 계속 뜨겁고 차가운데 거기서 균형을 찾는 과정. 

백호: 맞아요. 이번 앨범 녹음 끝나고 마스터링하고 발매를 기다리는 이 시간에도(이 인터뷰는 앨범 발매 전에 진행됐다.) 온도가 몇 번이나 바뀌는지 모르겠어요. 노력하는 거죠. 감정이 막 튀어나올 때가 있는데, 제 일은 많은 사람과 호흡을 맞춰야 하다 보니까 절제하려고 노력을 하게 되죠. 요새 그런 부분들을 조금 많이 느끼고 있어요.


데뷔 초와 비교했을 때 성격이 많이 변한 거라고 할 수 있을까요?

백호: 계속 변해가는 것 같아요. 살아가다 보면 많은 일들이 생기잖아요. 그런 일들에 대해 좋든 나쁘든 반응이 없을 수는 없거든요. 저도 그렇고요. 목 마르면 물을 마셔야 되는 것처럼 어떤 자극이 있으면 그 자극에 대한 반응이 제 변화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앞으로 본인의 인생이 어느 방향으로 변했으면 좋겠어요? 

백호: 솔직한 욕심으로는 이번 앨범이 대박이 났으면 좋겠고요.(웃음) 사실 제가 바라는 건 이번 앨범도 ‘내가 다음 앨범을 낼 수 있는 발돋움 정도만 됐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을 하려고 해요. 저는 이 일을 오래 하는 게 꿈이거든요. 오래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다음 활동을 할 수 있는 그 디딤 발. 저의 하루하루가 그냥 딱 그 정도였으면 좋겠어요.

 

오래 음악을 하면서 음악을 들어주는 사람에게는 무엇을 주고 싶나요?

백호: 특히 ‘dOnO’들이 제 음악을 들으며 건강한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데뷔 때에 비해 제가 앨범을 내면 기대해주시는 분들이 더 많아졌잖아요. 그분들이 내가 좋아하는 애가 앨범을 냈는데 음악이 좋아서 좋다거나, TV를 보다 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애가 나왔으니까 그 채널에 머물면서 보는, 그렇게 각자 일상을 살아가면서 좋은 에너지를 주고 건강한 행복을 주는 사이가 됐으면 좋겠어요. 

Credit
글. 강명석
인터뷰. 강명석
비주얼 디렉터. 전유림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송후령
사진. 장덕화 / Assist. 김은지, 윤민기, 김민정
헤어. 하루 (팀바이블룸)
메이크업. 지연주 / Assist. 백은진 (팀바이블룸)
스타일리스트. 김은주 / Assist. 손희승, 김한슬
아티스트 의전팀. 안소량, 신도윤, 김혜진, 김진영, 홍아현
아티스트 매니지먼트팀. 김낙현, 곽상환, 송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