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청자들에게 올해 그래미 어워드의 재미 중 하나는 통역을 담당한 안현모의 중계였다. 시상식 출연자들의 멘트는 물론, 언어로 전달되지 않는 시상식의 분위기와 배경 지식까지 유려하게 전달한 그의 역량은 한국 시청자들에게 마치 시상식 스페셜 코멘터리를 듣는 듯한 재미까지 주었다. 그래서 안현모에게 물었다. 시상식을 어떻게 준비하는지 그리고 시상식을 진행하며 무엇을 느끼는지. 아래의 글은 안현모가 보내온 답이다. /편집자 주
여러분은 ‘시상식’ 하면 뭐부터 떠오르세요? 저 같은 방송인이라면 화려한 무대와 레드 카펫, 반짝이는 드레스와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떠오르겠지요. 그런데 저는 ‘시상식’ 하면 까만색 두툼한 노트부터 생각난답니다. 예전에 기자 생활을 할 때 회사에서 나눠준 까만 표지의 튼튼한 노트가 집에 여러 권 있거든요. 회사를 다닐 때는 오히려 쓰지 않다 어쩌다 보니 퇴사 후 매번 각종 시상식이 있을 때마다 중계를 위해 필요한 내용들을 그 노트에 정리하게 되었어요.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때부터 우연히 적기 시작한 그 노트는 글씨가 하도 개발새발이라 남들 앞에 자랑스럽게 공개하긴 민망하지만 그래도 어느덧 그 안에 차곡차곡 담긴 기록 중에는 나만 보기 아까운 대목이 많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본 원고의 청탁에도 응하게 되었어요. 노트엔 한 줄 한 줄마다 다가오는 시상식에 대한 저만의 긴장감과 부담도 묻어 있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채워가던 과정은 믿기지 않을 만큼 즐거웠거든요. (게다가 위버스의 의뢰였고요!)   

중요한 해외 시상식의 일정이 잡히고, 생중계 섭외 확정 전화가 오고 나면, 저는 책장에서 그 노트부터 꺼내요. 시상식을 앞두고 몸매 관리에 돌입하듯, 공부를 시작하지요. (몸매 관리의 정반대 활동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마치 단골 드레스 숍을 찾아가듯 제가 가장 먼저 찾아가는 곳은? 바로 위키피디아! 예전에 한 방송에서도 밝힌 적이 있지만, 저에게 첫 단추는 무조건 위키피디아예요. 거기서 한 명 한 명 후보들을 검색해 그의 본명부터 성장 배경, 주요 업적, 수상 경력 등을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읽어본답니다. 저는 음악학도가 아니기에 다분히 인문학도적인 접근 방식을 택하는 셈이지요. 구글이나 네이버 같은 검색 플랫폼은 그다음 순서예요. 마치 책 한 권을 앞표지부터 뒤표지까지 완독하듯, 영화 한 편을 타이틀부터 엔딩까지 완주하듯 저는 우선 위키피디아부터 정독해야 직성이 풀리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추가로 확인하거나 찾아보고 싶은 것들을 취사 선택해서 검색해볼 때 비로소 그런 검색 툴을 사용해요. 어찌 보면 굉장히 오래 걸리고 비효율적인 방법이지요. 그냥 대표곡, 히트곡 몇 곡 정도만 알아도 충분한데, 깨알 같은 정보들을 전부 읽고 있으니까요. 물론 매일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만 할 수는 없으니 이동하면서, 운동하면서, 밥 먹으면서, 씻으면서도 유튜브로 방송 클립이나 공연, 인터뷰 등도 계속 틀어놓지요.
뭐하러 그렇게까지 시간을 들이냐고요? 일차적으로는 어쩔 수 없는 통역사로서의 정보 수집이에요. 가수들의 출신 지역이라든가 팬덤명, 심지어 애인이나 배우자, 자녀들의 이름까지 알아두면 통역이나 진행을 할 때 다 도움이 되거든요. 예컨대 이번에 그래미 어워드에서 신인상(Best New Artist) 포함 3관왕의 주인공이 된 메간 디 스탤리언(Megan Thee Stallion)의 경우, ‘Savage(remix)’로 베스트 랩 송 상을 수상해 곡에 피처링을 해준 비욘세(Beyonce)와 함께 나란히 시상대에 올랐는데, 두 사람 다 휴스턴이 고향이며, 메건의 소속사는 비욘세의 남편 제이지(Jay-Z)가 세운 레이블 록 네이션(Roc Nation)이란 사전 정보는 둘의 끈끈한 연결 고리를 풍성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됐어요. 또 2019년 아카데미 시상식 때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레디 머큐리 역을 연기한 라미 말렉(Rami Malek)이 여러모로 화제였는데,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이름이 호명되던 순간, 무대로 향하려다 말고 옆에 있던 여성에게 진한 키스를 퍼부었지요. 만약 그 여성이 누군지, 그의 여자 친구에 대해 미처 몰랐다면 진행자로서 잠시 당황스러울 수도 있었을 겁니다. ‘공부해서 남 주니’가 백 번 옳은 거죠.

그렇다면 단지 필요에 의해 이런 미련하고 시간 소모적인 작업에 몰두하는 것이냐? 이제부터가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얘기랍니다. 답은 물론 ‘NO’요. 어쩔 땐 솔직히 그만 봐도 되는데, 저도 모르게 빠져들어서 그들이 출연한 예능 프로까지 다 챙겨 보느라 시간이 후딱 지나가 있을 때가 있어요. 한마디로, 제가 재미있어서 보는 거예요. 그래미만 해도 시상 부문이 (클래식 분야 포함) 80개가 넘는데다, 각 카테고리마다 후보가 5~6명씩 되기 때문에 단순히 의무감에 한꺼번에 몰아서 벼락치기로 친해지기는 불가능할 거예요. 그렇다 보니 학창 시절부터 평소에 팝을 자주 듣고, 해외 방송을 즐겨 시청해온 게 저로서는 다행이지요. 여러 시상식을 꾸준히 중계하다 보니 해가 거듭할수록 저절로 겹치고 누적되는 부분이 있어서 그것도 이점이고요. 다시 말해, 제가 애초에 팝음악과 팝스타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아마 이 일 못할 거예요. 쏟아붓는 에너지에 비해 출연료도 놀랄 만큼 적거든요(저의 경우는요 ㅎㅎ). 혹자는 이제 여러 번 했으니 적당히 대충 해도 되지 않냐고, 특히 가까운 사람일수록(남편…?) 안쓰러워서 얘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저는 제가 즐거워서 해요. ‘덕질’이 곧 업무가 되는데, 이보다 행복할 수 있나요? #덕업일치

대체 뭐가 그리 즐거울까? 이번 기회에 저 스스로도 답을 한번 정리해보고 싶어요. ‘첫째, 둘째, 셋째...’ 논술 시험 답안지 작성하듯 글을 쓰고 싶진 않지만, 성격이 이러한 탓에 순서대로 꼽아보자면, 뭐니 뭐니 해도 첫 번째 이유는 ‘fascination’인 것 같아요. 쉽게 말하면, 그냥 너무 멋있는 거죠. 이 세상에 비판의 여지 없이 완벽한 시상식이란 있을 수 없지만, 어쨌든 3대 시상식처럼 권위와 전통이 있는 음악 시상식에 후보나 퍼포머로 지명됐다는 건, 그만큼 현시점에서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인정받는 뮤지션이란 점만은 분명하잖아요. 단순히 ‘빽’이나 마케팅으로 오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죠. 그렇다 보니 이들의 음악이나 춤, 퍼포먼스, 무대연출, 의상 등을 감상하는 것 자체가 눈 호강 귀 호강이고, 이런 어마어마한 재능과 실력의 향연을 화면으로나마 구경하는 게 황홀해서 입이 안 다물어질 때가 있어요. BGM처럼 음원으로만 접하던 노래들을 각종 라이브 무대나 다양한 버전으로 찾아 듣는 것도 색다르고 신기하기도 하고요. 요샌 인터넷에 다 있으니 돈도 안 들잖아요. 아마 이건 모든 음악을 사랑하는 음악 팬분들이 느끼시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짧게만 언급하고 넘어갈게요.
두 번째 이유는 확실히 배움에 대한 기쁨인 것 같아요. 음악 전공자도 아닌데, 뭘 배우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음악을 통해 내가 속한 사회에 대해 상상 이상으로 알게 된답니다. 좁게는 동시대 트렌드에 대해 혹은 영미권 문화에 대해 알게 되는 측면도 있지만, 요즘은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알고 보면 모든 게 나의 삶과 연관이 있어요. 음악뿐 아니라 그 안에 녹아 있는 언어, 기술, 패션, 감성까지 그 어느 것도 나와 무관하지 않은 거죠. 예를 들어 도자 캣(Doja Cat)의 ‘Say So’처럼 틱톡으로 크게 화제가 된 어떤 노래가 있다 치면, 내가 꼭 틱톡 유저가 아니더라도 아마 카페에서, 식당에서 그 노래가 흘러나오는 걸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거예요. 주로 여성 아티스트들이 이끌고 있는 자신의 신체에 대해 자신감을 갖자는 ‘body positivity’ 운동도 마찬가지예요. 이게 미국인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걸까요? 아니, 꼭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슬로건일까요? 이렇듯 한 해를 결산하는 시상식에서 울려 퍼지는 수많은 내러티브가 결국엔 우리와도 맞닿아 있는 것이기에, 관심 갖고 귀 기울일수록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폭이 깊고 넓어지는 것 같아요. 전 그래서 ‘덕질’도 제대로만 하면 그 어떤 학교 수업 못지않게 소양을 쌓을 수 있다고 믿는답니다.

이는 바꿔 말하면, 자세히 알면 알수록 자신의 편견과 무지에서도 해방된다는 뜻이에요. 일례로 메간 디 스탤리언이 과감하게 온몸이 드러나는 옷을 입고 ‘Body’에 맞춰 트워킹을 하는 모습을 보면, 언뜻 선정성에 기댔다고 오해하기 쉽지요. 그러나 학창 시절에 ‘튼튼한 종마(stallion)’라는 별명을 얻었을 만큼 남달리 체구가 큰 그녀가 그렇게 당당히 신체를 드러냄으로써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가 뭔지, 어떤 의도로 노랫말을 썼는지를 알고 나면 저절로 응원의 박수를 보내게 돼요. 뿐만 아니라 그녀가 이미 스타덤에 오른 뒤에도 여전히 대학 수업을 병행하며 학업을 이어갔다는 것과, 지난해에는 ‘뉴욕타임스’에 흑인 여성의 인권을 옹호하는 사설까지 직접 기고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녀에 대해 조금이나마 함부로 가졌던 선입견이 부끄러워진답니다. 저는 이번에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에게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어요. 올해의 앨범상을 세 차례나 수상한 최초의 여성 아티스트로 등극한 그야말로 초특급 슈퍼스타인데, 지난해 예정에도 없이 깜짝 발매해 올해의 앨범상까지 타버린 ‘Folklore’를 거의 DIY식으로 제작하다시피 했더라고요. 코로나19로 ‘집콕'하며 격리 중일 때 각자 멀리 떨어져 있는 프로듀서들과 유선상으로 곡 작업을 하며 레이블도 모르게 집 안에서 녹음을 한 건 기본이고, 심지어 ‘Cardigan’의 뮤직비디오를 찍을 땐 방역을 위해 원격 조종 무인 카메라를 쓰고, 헤어, 메이크업과 의상까지도 본인이 직접 했대요. 스태프들이 우르르 둘러싸서 옆에서 수시로 찍어 발라주고 옷도 스타일리스트가 입혀줬을 것 같은 이 아름다운 아티스트에 대한 고정관념이 완전히 깨졌지요. (화장을 셀프로 했는데도 너무 예쁜 것도 깜놀)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조금 더 공들여 이야기하고 싶은 저만의 너무나도 특별한 이유인데요, 유명 시상식을 준비하면서 가장 저의 가슴을 뛰게 하는 요소는 바로 이 모든 게 ‘실화’라는 점이에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애와 무대 뒤 비하인드를 관심 갖고 들여다보면 웬만한 허구의 영화나 소설보다도 짜릿하고 재미있는 좌절과 실패, 도전과 역경, 승리와 성공으로 이루어져 있답니다. 위에서 말한 하나같이 멋지고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들이 언제나 현재와 같진 않았다는 거죠. 태어나면서부터 트로피를 입에 물고 태어난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물론, 부모님이 모두 음악가인 집안에서 음악적 재능을 물려받아 어릴 때부터 가족 밴드 활동을 한 사람들도 있고, 할리우드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나 출발선부터 남달랐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인생에 굴곡이 없는 건 결코 아닌데다, 전혀 그렇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스스로 길을 개척해 지금의 자리에 오른 케이스가 훨씬 많아요.

예시로 들 만한 게 너무 많아서 떠오르는 대로 꼽아보자면, 지난해 빌보드 뮤직 어워드(BBMA)에서 피아노 연주와 함께 자신의 갓 나온 신곡을 열창했던 데미 로바토(Demi Lovato)를 기억하시나요? 그녀는 꼬마 때부터 항상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를 우상시하며 그녀처럼 되고 싶어서, 콘서트를 보러 가면 크리스티나가 서 있는 무대 쪽을 바라보지 않고 일부러 등을 돌려 크리스티나의 시점에서 관중석을 바라보며 노래를 따라 부르곤 했대요. 그러던 소녀가 정말로 목표를 이루어서 마침내 자신의 롤 모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파워하우스 보컬리스트로 성장했고, 2018년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는 둘이 손을 맞잡고 마주 보며 파워풀한 합동 무대를 꾸미기도 했죠. 얼마나 감격스러웠겠어요. 게다가 이 둘은 어릴 적 따돌림을 심하게 당해서 학교 대신 집에서 홈스쿨링을 받으며 컸다는 공통점도 있어요. 그러니 그 시절 이들을 못살게 굴었던 옛 친구들을 생각하면 그 듀엣 무대는 더욱더 통쾌한 결말 아니었을까요? #★꿈은이루어진다!

보다 파란만장한 인생 역전의 아이콘으로는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표적인 카디비(Cardi B)를 꼽을 수 있을 텐데요. 그녀는 이민자 가정에서 불우한 10대를 겪으며 온갖 험한 아르바이트를 전전한 흑역사가 있지만 각고의 허슬링 끝에 하루아침에 삶이 180도 뒤바뀌었죠. 컴튼(Compton) 토박이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도 과거 정부의 저소득층 보조금으로 근근이 생활했지만, 고등학교 때는 올 A를 받으며 믹스테이프를 발매했고, 이제는 “Be Humble”을 당당히 외치며 퓰리처상을 수상한 최초의 힙합 아티스트가 되었죠.
지나치게 극적인 예 말고도, 희망을 주는 사연들은 차고 넘쳐요. 이번 그래미 어워드는 코로나19로 특이하게 공연장 종사자들이 시상자로 나선 바람에, 셀러브리티 시상자는 네 명밖에 없었는데, 그중 강렬한 빨간색 드레스를 입고 등장했던 즈네이 아이코(Jhene Aiko) 이야길 해볼까요? 그녀는 데뷔가 빨랐기 때문에 더 일찌감치 뜰 수도 있었지만, 뜻밖의 임신과 출산으로 어쩔 수 없이 쉬게 되고, 단짝이던 친오빠의 갑작스런 죽음까지 이어져 한동안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어요. 그렇지만 꾸준히 음악과 시, 그림 등 창작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하고 힘을 되찾아서 다시 음악에 복귀했답니다. 그러곤 곧바로 그래미 3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지요. 한국식으로 치면 경력 단절의 위기를 화려하게 극복한 거예요. 다만 여기서 끝이 아니어서 이후로도 결혼과 이혼, 유산의 아픔을 겪기도 했어요. 그러나 다시금 음악으로 승화시켜 올해도 역시 올해의 앨범을 포함한 3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고요, 본식 전에 열렸던 사전 행사의 호스트를 맡기도 했답니다. ‘NPR Tiny Desk Concert’에서도 볼 수 있듯 싱잉볼을 곁들이며 유독 음악이 가진 테라피적 효과에 집중하는 그녀의 행보에는 그러한 희로애락이 응축돼 있는 것이겠죠. 아, 최근 하이브에 합류하면서 더 친근해진(!)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도 캐나다의 열여덟 미성년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그러다 열두 살 어린 나이에 마을 노래 경연 대회에 참가해 Neyo의 ‘So Sick’을 모창했는데, 바로 그 어머니께서 영상을 찍어 업로드하면서 업계 관계자의 눈에 띄게 되었죠.

이번 그래미 어워드의 추모 메들리 중에 콜드플레이(Coldplay)의 반가운 얼굴 크리스 마틴(Christ Martin)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You’ll Never Walk Alone’을 부른 짧은 커트 머리 여성 브리타니 하워드(Brittany Howard)도 흥미로운 인생사라면 뒤지지 않죠. 장르가 록이다 보니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그다지 높지 않지만 그동안 밴드와 솔로 커리어를 합쳐 총 16회나 그래미 후보에 오른 진정한 실력파 아티스트예요. 그런데 그러한 성과가 곧바로 나타난 게 아니기 때문에, 밴드를 결성하고도 7~8년가량은 불안정한 세월을 거치며 투잡을 뛰어야 했지요. 그래서 하루 13시간씩 우체부로 일하며 우편물을 날랐어요. 밴드의 다른 멤버들도 낮에는 동물병원이나 발전소 등에서 생활비를 벌었고요. 올해 신인상 후보였던 래퍼 디 스모크(D Smoke) 역시 비슷해요. 넷플릭스의 자체 제작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인 ‘Rhythm & Flow’를 보신 분들이라면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거예요. 영어와 스페인어를 넘나드는 인상적인 래핑으로 첫 시즌 우승을 차지하고 본격적인 음악인의 길을 걷게 된 인물인데, 프로그램 출연 때까지만 해도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어요! 첫 EP의 제목인 ‘Inglewood High’가 바로 그가 몸담았던 캘리포니아의 고등학교 이름이죠. 영상마다 제자들이 어찌나 응원의 댓글을 다는지.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나 봐요.
그러고 보니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네요. 가까운 (심리적으로..) 방탄소년단 또한 통쾌한 역전의 역사를 썼으니까요. 데뷔 당시 소위 대형 기획사의 아이돌도 아니었고, 팝의 본고장인 미국의 그룹도 아니었지만, 보이지 않는 무시와 차별, 편견을 극복하고 보란 듯이 세계의 대중을 사로잡았으니까요. 방탄소년단이 몸소 증명해온 것과 같은 이러한 감동 실화 때문에 저는 음악 시상식을 준비하는 게 너무나도 설레요. 밤하늘을 수놓은 반짝이는 별들도 태양과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낮이라는 기간을 거쳤음을 깨닫게 되고, 우리의 시점에서는 다 똑같이 생긴 점으로 보이지만, 막상 가까이 들여다보면 모양도 생성 시기도, 성분도 빛의 밝기도 저마다 다른 고유의 스토리를 지니고 있음을 세세하게 관찰하게 되거든요. 음악을 사랑하는 여러분도 꼭 마음에 새기셨으면 좋겠어요. 음악에도 강박과 약박이 교차하고 고음과 저음이 조화를 이루듯, 삶에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혼재하고 넘어짐과 일어남이 거듭된다는 걸요. 언제 어떤 예상치 못한 조바꿈이 일어나고 어디에 갑자기 쉼표가 찍힐지까지 일일이 알고 통제할 수는 없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건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삶의 악보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며 언제나 그루브를 타는 거예요. 나만의 음역대에서, 나만의 템포에 맞게, 행복한 삶의 싱어송라이터가 되시길 바랄게요.
글. 안현모
기획/편집. 강명석
사진 출처. 방탄소년단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