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쿠라와 대화를 나누면서 ‘Blue Flame’의 가사가 떠올랐다. “불꽃보다 뜨거운 blue”. 차분하고 조리 있는 언어들로 가려지지 않는 열정의 온도. 12년째 타오르고 있는 그 불꽃. 

르세라핌으로 세 번째 데뷔를 하게 됐어요.

사쿠라: 확실히 느낌이 달라요. 열세 살 때 일본에서 처음 데뷔했는데 그때는 너무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런데 르세라핌은 아마도 저에게 마지막 데뷔, 마지막 팀이 될 거라 정말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이미 적지 않은 성공을 했어요. 그런데도 다시 한 번 타지에서 데뷔를 결정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사쿠라: 일단 아이돌을 계속 하고 싶었어요. 10년 넘게 아이돌로 활동하면서 팬들과의 관계에서 큰 기쁨을 느꼈고, 팬들 앞에서 무대를 최대한 많이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아직 스스로의 퍼포먼스에 만족하지 못해서 좀 더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어요. 어떤 길을 선택해도 힘들 거라고 생각했고, 이 길을 선택하면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도 생각보다 많이 힘들긴 했어요.(웃음) 사실 저한테는 연습생 기간이 없어서, 데뷔 전에 긴 시간 동안 본격적으로 연습하는 게 처음이었어요. 그 시간이 저한테는 너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처음으로 한국어 수업도 받았고, 보컬 레슨이나 안무 연습도 기본부터 배워서 정말 좋았어요.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소중하고 중요한 시간이었어요.

 

어떤 부분이 힘들었던 걸까요?

사쿠라: 항상 힘든 일이 있으면 ‘이번이 인생 중에 제일 힘들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편인데 이번이 진짜 제일 힘들었어요.(웃음) 아이돌 생활을 하면서 항상 팬들에게 보여주는 무대에만 익숙했는데, 연습생으로서 월말 평가를 받는 건 세상에 나오지 않잖아요. 팬분들은 제 무대에 대해서 정말 이런 것까지 봐주시는구나 싶을 정도로 ‘이번엔 여기를 잘했다.’ 이런 피드백을 세세하게 챙겨주셨어요. 그런 격려가 없으니까 스스로 잘하고 있는 건지, 성장하고 있는 건 맞는지 불안했어요. 팬들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됐고, 팬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지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회사를 옮기고, 한국어 공부를 하고, 연습생을 새로 경험하는 이 모든 힘든 과정을 거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나요?

사쿠라: 일단 지금까지 보여주지 못했던 모습을 선보이고 싶다는 게 저와 채원이한테는 가장 큰 과제였어요. 이번 데뷔 곡 ‘FEARLESS’의 가사를 보면 정말 저희 이야기거든요. 그 가사를 보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저의 새로운 모습을 보면 당황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욕심을 숨기라는 네 말들은 이상해” 이런 가사는 저도 연예인으로서 10년 넘게 활동하면서 느꼈던 부분이기도 하고요. 

  • 사쿠라가 입은 팬츠는 슬로슬로우리(sloslowlee), 슈즈는 닥터마틴(dr.martens).

한편으로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대한 걱정도 있었을 것 같아요.

사쿠라: 걱정이 없지는 않았어요. 이전의 저를 좋아해주시던 분들은 ‘내가 좋아했던 꾸라는 어디 갔지?’ 이런 생각이 드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사람이 계속 같은 것만 할 수는 없고, 나이에 따라서 표현력이나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달라지니까요. 저는 계속 도전하는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무대 위에서의 모습이 달라져도 미야와키 사쿠라라는 사람은 사실 똑같아요. 게임을 너무 좋아하는 사쿠라는 달라지지 않고 무대 위에서만 바뀌는 거니까, 존재하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FEARLESS’에서 사쿠라 씨가 자신만만하고 차가운 표정을 연기하거나, 후렴구에서 감정을 고조시키지 않고 낮게 읊조리는 것처럼 노래하는 건 이전에는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이에요.

사쿠라: 처음에 노래를 들었을 때 너무 좋아서 소리를 질렀어요.(웃음) 그런데 노래도, 안무도 처음 해보는 스타일이다 보니 잘 소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있기는 했어요. 원래는 노래를 예쁘게 부르려고 하는 편이었는데, 13 PD님께서 진짜 감정을 느껴야 사람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고 말씀해주셔서 가사의 의미나 우리가 이 노래를 왜 부르게 되었는지를 생각하면서 녹음했어요. 노래 자체가 저희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이니까 춤을 출 때도 자연스럽게 표현이나 동작에서 느낌이 나왔어요. 꾸미지 않고 진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무대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Blue Flame’의 후렴구에서는 가성으로 고음을 소화하는데, 사쿠라 씨에게서는 처음 듣는 느낌의 보컬이었어요.

사쿠라: 일단 영어 가사가 많아서 힘들었어요.(웃음) 영어는 아무래도 지금 공부하는 중이다 보니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발음을 신경 썼어요. 윤진이가 영어를 너무 잘해서 윤진이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이전에는 주로 가요 위주로 연습했는데, 지금 회사에서 처음으로 팝송 연습을 해보면서 발성법도 달라지고 노래에 대해서 새로운 경험을 했어요. 원래 노래에 부담감이 있어서 녹음실에 들어가면 많이 긴장했는데, 지금은 라이브 연습을 하면서도 ‘너무 재미있다. 좀 더 잘하고 싶다.’ 이런 긍정적인 생각이 많아졌어요.


퍼포먼스는 어땠나요? ‘Blue Flame’은 기본기를 응용한 동작들이 끊임없이 나오는데, 그 와중에 멤버들과 디테일을 맞춰야 해서 많은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았어요.

사쿠라: ‘FEARLESS’를 연습할 때는 서로 처음이라 그런지 맞추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그런데 그 곡을 많이 맞추고 나니까 ‘Blue Flame’은 연습 기간도 짧고 수업도 거의 받지 않았는데도 디테일이 척척 맞았어요. 저희끼리 “우리 진짜 팀이 되고 있나 봐!” 이런 이야기도 하고요.(웃음) 제가 엄청 큰 아이패드를 가지고 있거든요. 그걸로 맨날 저희끼리 영상을 찍어서 진짜 1초 단위로 끊어서 천천히 보고 안 맞는 걸 찾아서 맞추는데, 그러다 보니 제 아이패드에 정말 많은 영상이… 진짜 많아요.(웃음) 그중에 옛날 영상들을 같이 보면서 “우리 진짜 많이 좋아졌다.”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자는 시간 빼고는 거의 연습실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그만큼 보람이 느껴져서 멤버들이 너무 자랑스러워요. 

새로운 팀에서 연습하면서 채원 씨와 무슨 이야기를 나눴나요? 이전에도 함께 아이즈원으로 활동했지만 환경이 달라지면서 서로 새롭게 보이는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사쿠라: 채원이가 정말 달라졌어요. 이전에 같이 활동할 때는 언니들도 많았고, 리더도 있었으니까 연습에 대해서 채원이가 말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르세라핌에서는 저희 둘이 제일 언니니까 동생들을 이끌어줘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여기가 안 맞으니까 연습해보자.” 이런 말이 채원이한테 나오는 걸 보고 많이 놀랐고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데뷔 준비를 하는 동안 채원이랑은 서로 많은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눈만 마주쳐도 서로를 저절로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진짜 채원이가 없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라는 이야기를 했고, 채원이도 같은 마음이라는 말을 해줘서 고마웠어요. 원래 저도 채원이도 힘든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많이 표현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멤버들 앞에서도 점점 힘든 부분이나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정말 많이 편해졌어요. 

 

힘든 부분을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그만큼 멤버들과 유대감이 쌓여서 가능한 부분이겠어요.

사쿠라: 오랫동안 함께 연습한 편은 아닌데도 정말 친하고 잘 맞아서 신기해요.(웃음) 데뷔조가 확정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어요. 데뷔는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연습은 매일매일 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멤버들도 한두 번씩 힘든 순간들을 겪었어요.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이 6명이 모이기 위해서 그 힘든 시간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한 명이라도 각자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못 모였을 거예요. 저도 일본에서 활동할 수도 있었고, 채원이도 다른 길을 선택할 수도 있었고, 윤진이는 미국에서 대학을 갈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운명 같아요. 원래 저는 개인주의적인 면도 있고, 차갑다는 오해도 많이 받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저보다 멤버들을 더 챙기고 싶고, 제가 힘든 것보다 멤버들이 힘들어 하는 걸 보는 게 더 힘들어요. 맏언니로서, 조금은 경험이 더 있는 사람으로서 멤버들을 잘 챙겨주고 싶어요.

 

사쿠라 씨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이야기를 멤버들에게 해줄 수 있을까요?

사쿠라: 데뷔를 하면 제가 이전에 겪었던 힘든 과정이나 고민이 비슷하게 올 거라고 생각해서, 그럴 때 어떻게 하면 이겨낼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 싶어요. 주목을 받다 보면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기 마련이잖아요. 처음에는 저를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많은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 힘들었어요. 그런데 2:6:2의 법칙이 있더라고요. 20%의 사람들은 뭘 해도 좋아해주고, 60%의 사람들은 결과물을 보고 나서 평가하고, 20%의 사람들은 뭘 해도 싫어하고. 그래서 뭘 해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말고 나를 평가하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미 일어난 일을 바꿀 수는 없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 사람들의 시선이 응원으로 바뀔 수 있으니까, 그런 미래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랜 기간 활동한 만큼 많은 생각이 들었나 봐요. 아이돌로서의 경험을 살린 소설을 쓰고 싶다고 언급할 정도로 독서나 영화 시청을 즐기는 편으로 알려져 있는데, 책이나 영화가 위로가 되는 부분도 있을까요?

사쿠라: 한 달에 한 번씩 부모님이 일본에서 인기 있는 소설을 보내주시는데, 시간이 생겨서 가끔 읽을 때마다 얻는 게 정말 많았어요. 가끔 ‘아이돌이라는 길을 선택해서 내가 힘든가? 이렇게 안 살았으면 행복한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제가 경험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누구든 사람이 힘들 때는 힘들고 행복할 때는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책이나 영화 보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전에 일본에서 영화에 대한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죠. 영화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에 대해 쓴 글에서 “동성애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어요.

사쿠라: 사실 그때 아이돌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저는 말해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돌은 무대를 하고 노래만 부르는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한테는 롤 모델이 될 수도 있고 또 누군가한테는 인생을 같이 살아가는 사람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고, 또 아이돌이 그런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어요. 저희도 언젠가 사랑에 대한 노래를 부를 수 있는데 누구에게나 맞는 사랑을 노래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누가 나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든 상관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게 ‘FEARLESS’의 메시지이기도 한데, 사쿠라 씨가 생각하기에 두려워하지 않는 상태란 어떤 걸까요?

사쿠라: 약한 모습을 인정하는 게 두려움이 없는 상태인 것 같아요. 저에게도 약한 부분이 있거든요. 힘들기도 하고, 울게 되는 순간도 있고, 우울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때 ‘왜 내가 이러지?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오늘은 그런 날이구나. 그래도 이렇게 열심히 하면 되겠다.’ 하고 스스로를 인정해주는 게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어요.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요.

 

올해로 활동한 지 12년 차가 되었는데, 직업적으로 좋은 부분만큼이나 힘든 부분도 많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여전히 사쿠라 씨가 두려움을 이기고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쿠라: 제일 큰 건 팬들의 존재예요. 진짜로. 데뷔를 준비하면서 팬들과 소통하지 못할 때 진짜, 진짜 많이 힘들었어요. 제일 친한 친구가 사라진 느낌이었어요. 팬들과의 관계는 정말 신기해요. 정말 마지막 한 명의 팬만 있더라도 그 사람을 위해 무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거든요. 그리고 무대만큼은 제 편이고, 무대에서는 아무도 저를 막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대 위에서는 그 사람이 다 보여요. 얼마나 연습했는지, 얼마나 이 무대에 대해 진심이었는지. 그 모습들을 팬분들이 좋아해주니까 무대를 사랑할 수밖에 없어요.

 

이전에 영화 ‘패션 오브 어거스틴’에 대해 쓴 글에서 “아이돌이 된 것도 스릴을 원해서일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조금 더 힘든 쪽, 약간 더 위험한 쪽에 발을 들일 용기를 갖고 싶다.”라고 말씀하신 게 생각나네요.

사쿠라: 편한 길을 선택하면 정말 후회할 거예요. 지금보다 예전이 더 빛나고 있었다고 느끼고 싶지 않아요.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르니까 과거의 제가 더 빛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생각할 때 지금의 내가 인생에서 가장 성장했다는 걸 느끼고 싶어서 힘든 길을 선택하고 도전하게 돼요.

 

그럼 사쿠라 씨의 지금은 빛나고 있나요?

사쿠라: 아! 네.(웃음)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좋은 환경에 있고, 좋은 멤버들과 스태프분들이 있어서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가 뭐라 해도 그 행복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아요. 그리고 제 인생 중에서도 제일 많은 노력을 한 만큼 성장한 모습을 빨리 보여주고 싶어요. 스스로의 모습에 아직 만족하진 않지만, 빛나고 있어요.

Credit
글. 김리은
인터뷰. 김리은
비주얼 디렉터. 전유림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윤해인, 이지연
비주얼 크리에이티브팀. 김성현, 김유주, 가브리엘, 조윤경(쏘스뮤직)
사진. 강혜원 / Assist. 오희현, 신용욱, 양지원, 이동찬
헤어. 장여진, 하민(BIT&BOOT)
메이크업. 김민지(BIT&BOOT)
스타일리스트. 이우민 / Assist. 최시영, 오지연
플라워 스타일링. 이윤주(플라워플리즈)
아티스트 의전팀. 김아리, 손나연, 이정익, 이은주(쏘스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