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에게 음악은 스스로를 다독이며 위로하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르세라핌의 멤버들과 피어나에게 마음과 고마움을 전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방법이다.

오늘 화보 촬영 의상은 마음에 드나요? 멤버들이 윤진 씨가 마음에 드는 의상을 발견하면 특유의 리액션이 바로 나온다고 하더라고요.(웃음) 

허윤진: 어우 당연하죠.(웃음) 아까 사진 찍은 것 보여드릴게요. 이번 화보에서 제 의상 콘셉트가 뭔가 2000년대 느낌이었는데 대기실에서 저희 헤어, 메이크업 선생님들이랑 이렇게 그 시대 감성으로 포즈 취하면서 놀았어요.(웃음) 그리고 제가 야외 촬영을 좋아하는 편인데 오늘 화보가 딱 제가 좋아하는 느낌을 잘 담을 수 있었던 것 같아서 너무 좋았어요.

 

패션에 대한 관심도 커지셨다고요. 패션쇼 모티브의 앨범 트레일러 ‘The Hydra’ 촬영도 더 재밌었을 것 같아요.

허윤진: 트레일러 촬영 날 눈이 잘 안 떠질 정도로 바람이 진짜 많이 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바람 덕분에 사진이랑 영상이 더 느낌 있게 잘 나온 것 같기도 한데, 그런 상황에서도 ‘ANTIFRAGILE’하게 더 당당하고 단단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내레이션도 ‘FEARLESS’ 때보다 더 내려놓고 진짜 말하듯이 툭 던지면서 했는데, 그렇게 하니까 오히려 더 멋있게 나온 것 같아요.(웃음) 그리고 ‘The Hydra’가 9월 26일에 공개됐는데, 공개되기 며칠 전 PD님들께서 “윤진 씨가 티저 영상에 들어갈 ‘I’m a mess mess mess’ 이 부분을 이번 앨범 메시지랑 잘 이어지게 내레이션을 써줬으면 좋겠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부분 가사를 쓰고 영상 나가기 전날에 바로 녹음하고 영상이 나가게 된 건데, 멋있게 잘 담아주셔서 신기하고 뿌듯했어요!(웃음)

 

보통 윤진 씨가 작업하는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허윤진: 곡마다 조금씩 다른데, 진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가사부터 나오는 것 같아요. 항상 ‘메시지가 뭘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뭘까?’를 먼저 고민하고요. 그걸 정한 다음에 가사나 기본적인 아이디어 같은 게 떠오르고, 진짜 신기하게 그렇게 시작이 될 때 자연스럽게 마음에 드는 멜로디가 나오더라고요.

 

작업 과정에서 중점을 두는 부분도 있을까요?

허윤진: 어떤 감정이나 메시지를 전하는 데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게 ‘솔직함’이라고 생각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어요. 그 메시지나 마음을 제대로 전하기 위해서는 투명해져야 된다고 생각하고요. 저희 자체 콘텐츠에도 드러나는 부분인데 제가 거짓말을 진짜 못하거든요.(웃음) 거짓말을 너무 못해서 티도 많이 나고, 제 성격상 그런 게 잘 안 되기도 하고요.

그 솔직함이 ‘Impurities’의 가사에도 잘 녹아 있는 것 같아요. 이 곡에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었나요?

허윤진: ‘Blue Flame’ 때도 그렇고 ‘Impurities’도 저희의 오리지널 스토리 ‘크림슨 하트’의 테마곡인데요. 제가 스토리텔링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크림슨 하트’의 내용이나 전개를 상상하면서 어릴 적으로 다시 돌아갔다고 생각하고 작업했어요. 제가 어릴 때 캐릭터를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세계관도 만들고 어릴 적 윤진이가 그러면서 놀았는데(웃음) 그때랑 비슷하게 ‘내가 이 캐릭터면 어떻게 할까?’ 이런 생각과 상상을 하면서 가사를 썼어요.

 

이번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을 물어보는 팬분의 질문에도 ‘Impurities’를 꼽으셨죠.

허윤진: 제가 R&B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렇게 빨리 R&B를 할 수 있게 될 줄 몰랐어요.(웃음) 그래서 ‘Impurities’를 듣자마자 ‘와 이거다! 이거 내 최애다!’ 하고 딱 뽑았거든요. 뽑고 나서 흔들린 적이 없습니다.(웃음) ‘Impurities’가 노래 자체는 몽환적이고 나른한 느낌인데, 가사를 보면 굉장히 강렬한 매력을 가지고 있어요. 불렀을 때 되게 부드럽고 예쁜데 가사를 보면 반전 매력이 있는 곡이에요.

 

타이틀 곡 ‘ANTIFRAGILE’ 가사도 인상적이었어요. “줄 달린 인형은 no thanks 내 미랠 쓸 나의 노래”라는 윤진 씨 파트는 선언처럼 들리기도 하고요.

허윤진: 그냥 들었을 때는 모를 수도 있는데 노래 가사를 보면서 들으면, 파트별로 부르는 사람의 가사가 정말 선언같이 느껴져요. 즈하나 언니들 파트도 그렇고, 은채나 제 파트도 그렇고요. 그래서 이번 ‘ANTIFRAGILE’은 특히 가사에 집중해서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가사가 정말 저희의 이야기고,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되게 확고하거든요. ‘세상이 우리에게 어떠한 어려움을 던지더라도 우리는 우리만의 길로 극복해낼 거다. 그러니까 던져봐라.’ 이런 메시지가 담겨 있는데, 곡 속에 담긴 저희의 포부를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안무에서도 그런 포부가 잘 느껴지더라고요. 파워풀한 안무와 더불어 팔을 겹치거나 서로의 어깨에 팔을 얹고 동선을 이동하는 등 멤버들 간의 합이 돋보이는 안무도 많던데 연습 과정은 어땠어요?

허윤진: 저희가 하루에 6~7시간 정도 안무를 굉장히 디테일하게 맞추면서 연습하고 있어요. 연습하는 과정을 슬로모션으로 촬영해서, 박자랑 각도 다 맞추고 있고요. 그리고 저는 멤버들끼리 합이 잘 맞으려면 우선 마음이 맞아야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저희끼리 마음이 맞고,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도우려고 하는 마음이 진심이기 때문에 합이 잘 맞춰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정말 자신 있게 “우리는 정말 합이 좋다. 팀워크가 좋다.”라고 말할 수 있거든요. 저희 자체 콘텐츠에 나오는 케미스트리가 진짜 저희의 케미스트리예요.(웃음)

  • 허윤진이 착용한 이어링과 오른쪽 브레이슬릿은 베루툼(VERUTUM).

멤버들 사이의 케미스트리가 ‘No Celestial’의 퍼포먼스에서도 돋보였어요.

허윤진: ‘No Celestial’은 엄청 시원시원한 곡이면서도 저희가 하고 싶은 얘기가 다 담긴 곡이에요. 안무를 맞추는 것도 어려운데, 안무를 하면서 마이크도 뺐다가 다시 꼈다가 하는 동작이 많아서 연습이 많이 필요했어요. 안무 연습을 하면서 올리비아 로드리고나 다른 아티스트들이 무대 위에서 신나게 노는 영상도 많이 보며 “우리 이렇게 놀아야 돼요.” 이러면서 참고하기도 했고요. 감사한 마음을 전하면서도 저희의 정체성을 확실히 알려주는 곡이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고, 있는 그대로의 저희 모습이나 케미스트리도 잘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른 곡들보다 퍼포먼스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느낌이 나더라고요. 연습 과정에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도 있을까요?

허윤진: 원래도 표정 연습을 많이 하는데 이번에는 특히나 저희 다섯 명 모두 표정 연습을 엄청 했어요. 퍼포먼스 디렉터님께서도 같이 연구해주시고 피드백도 주셨고요. 무대 위에서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여유로우면서도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FEARLESS’ 때도 윤진 씨의 다채로운 표정이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 이번 앨범에서 사람들이 윤진 씨를 보며 ‘이런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것도 있을까요?

허윤진: ‘무대 진짜 잘한다.’ 그리고 잘하기도 하지만 ‘무대를 정말 사랑하는 게 보인다.’ 이런 반응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레전드 직캠도 하나 나왔으면 좋겠어요.(웃음)

 

무대를 정말 사랑하는 윤진 씨의 모습이 최근 무대인 대학교 축제에서도 보였어요. 관객분들 반응도 너무 좋았는데 그때 기분은 어떠셨어요?

허윤진: 너무너무 좋았어요. 짜릿했어요! 관객분들이 ‘FEARLESS’ 떼창도 해주셨고요. 사실 올라가기 전까지 멤버들끼리 “혹시 ‘FEARLESS’ 모르시면 어떡하지?” 걱정했거든요.(웃음) 그래서 관객분들이 혹시 모르시면 “그냥 우리끼리라도 열심히 재밌게 놀다 오자!” 이랬는데, “워어어어어~” 이 부분 떼창이 인이어를 뚫고 들리더라고요. 콘서트인 줄 알았어요.(웃음) 진짜 감동받아서 더 흥이 올랐던 것 같아요.

 

관객들의 환호성을 뚫고 나오는 윤진 씨의 엄청난 성량도 돋보였어요.(웃음) 학생 때 뮤지컬을 했던 경험이 성량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을까요?

허윤진: 저는 그냥 타고나게 목소리가 큰 것 같다는 생각으로 이제까지 살아왔는데, 생각해보면 저희 집에서 목소리 큰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제가 유일하게 목소리가 진짜 크고, 웃음소리가 진짜 커요. 그런데 왠지 그런 영향이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저희 엄마, 아빠도 굉장히 참하신 분들이시고(웃음) 여동생도 낯도 많이 가리고, 남동생도 꽤 얌전한 편이거든요. 웁스!

윤진 씨 특유의 여유롭고 시원시원한 모습도 인상적이었어요. 무대에 설 때 마음가짐이나 윤진 씨만의 다짐이 있을지도 궁금해요.

허윤진: 진심으로 무대를 너무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매 무대가 소중해요. 무대 위에서 정말 다 표현하면서 사람들이랑 좋은 추억을 만들고 내려와야 마음이 편하고요.(웃음) 그래서 매 무대마다 제 모든 걸 쏟아붓고 내려오려고 해요. 그리고 제가 4년 만에 데뷔하게 되었는데, 무대 위에서 팬분들의 환호성을 들을 때마다 4년 동안 제가 경험했던 일들에 대해 ‘보람 있었다. 포기하지 않길 잘했다.’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자체 콘텐츠에서도 그 에너지가 느껴져요. MBTI가 ‘INFJ’인 걸로 알고 있는데 자체 콘텐츠에서의 모습을 보면 정말 쾌활하고 활발한 성격 같으세요.

허윤진: 제가 MBTI에 관심이 좀 많은데, ‘INFJ’ 유형이 상황마다 바뀌는 카멜레온 같은 유형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진짜 맞는 것 같아요! 자체 콘텐츠나 다른 콘텐츠 촬영할 때는 정말 쾌활하고, 목소리는 늘 크지만 특히 자체 콘텐츠 촬영할 때는 한층 더 데시벨이 올라가고요.(웃음) 그러면서도 작업할 때는 엄청 진지해지는데 그것도 저의 진짜 모습이에요.

 

다큐멘터리 ‘The World Is My Oyster’를 보면 윤진 씨의 그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다큐멘터리에 담긴 과거 안무 연습 영상들을 보고 이 장면이 나와도 괜찮을지 걱정하며 매니저님과 새벽까지 연락하셨다고요.

허윤진: 제가 매니저님과 연락하면서 “안 될 것 같은데요.” 했는데, 매니저님께서 엄청 장문의 메시지로 “윤진아 괜찮다. 생각보다 반응 괜찮을 거다. 지금 잘하니까 괜찮다.”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그런데 저는 정말 ‘우와! 이걸 내보낸다고?’ 했거든요. 아주 충격적이었죠.(웃음) 그렇게 부족한 모습을 다 펼쳐놓고 보니까 제가 그간 굉장히 노력을 많이 했구나가 느껴지긴 하더라고요. 그래도 조금 부끄럽긴 했어요.(웃음) 이제 와서 돌아보면 어우, 감사하죠.

다른 멤버들에게 안무를 가르쳐주는 장면도 나왔는데, 그 장면을 보며 윤진 씨가 그간 얼마나 노력했을지 느껴지더라고요.

허윤진: 저는 항상 그랬던 것 같아요. ‘만족’이라는 게 제게는 아주 어려운 친구거든요. 특히 춤을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때 너무 못 추기도 했고, 너무 어려워했기 때문에 누군가 알려줘도 스스로 터득하지 못하면 발전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혼자서 고민하고 또 노력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때의 저를 생각하면 고맙고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혹독하게 했던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해요. 혼자 새벽까지 남아서 연습하고, 한 3시간 자고 학교 가고, 다시 연습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노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허윤진: 제 꿈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 진짜 신기한 게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도 ‘아무리 힘들어도 난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걸 스스로 계속 알고 있었고, 무의식적으로라도 그 끈을 절대 놓지 않으려고 했어요. 중간에 포기한 것도 사실 포기한 게 아니었어요. 연습생을 그만두겠다는 거였지, 나의 꿈을 내려놓겠다는 건 아니었거든요. ‘나는 어떻게 해서든 음악으로 무언가를 하겠다.’라고 늘 생각했고 길이 다를 수는 있어도 꿈을 향해서 나아가겠다는 마음은 똑같았어요.

 

‘음악으로 무언가를 하겠다.’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어떤 의미일까요?

허윤진: 이것도 살짝 ‘INFJ’의 기질인데요.(웃음) 저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어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제가 뭐라도 더 노력하고 싶은 생각이 있거든요. 어릴 때부터 항상 그런 마음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노력을 ‘음악으로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윤진 씨가 끊임없이 곡 작업을 하는 이유이기도 할까요?

허윤진: ‘Raise y_our glass’ 작업을 시작한 것도 스스로 달래고, 스스로에게 위로를 해주려고 시작한 거였어요. 그리고 이 길을 같이 걷기로 다 같이 결심하고 함께 노력해준 멤버들한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고요. 멤버들 한 명 한 명씩 다 고생한 것들이 있고, 각자의 우여곡절이 있다 보니까 ‘그동안 고생 많았고, 앞으로 더 의지하고 서로 기대기도 하면서 우리 더 행복해지자.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계속 사랑하고, 하고 싶은 것들 다 같이 계속하자.’ 이런 마음을 전하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늘 격려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피어나분들께도 진심을 담아 감사한 마음을 잘 전하고 싶었어요. 그냥 ‘감사하다.’고 이렇게 전하는 것보다 ‘이런 이유들로 감사하다.’ 이렇게 말하는 게 더 와닿잖아요. 그래서 ‘Raise y_our glass’ 작업도 더 솔직하게 할 수 있었어요.

 

앞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나오게 될 윤진 씨의 생각이 가득 담긴 솔직한 이야기를 팬분들이 어떻게 들어줬으면 좋겠나요?

허윤진: 팬분들께서 제 이야기를 듣고 조금이나마 세상이 달라 보였으면 좋겠어요. 팬분들의 생각을 바꾸기보다는 한 번 더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구나.’ 하고 좋은 영향이나 자극이 될 수 있다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너무너무 많은데, 앞으로 조금만 더 기다리면 곧 알게 되실 거예요!(웃음)

Credit
글. 이지연
인터뷰. 이지연
비주얼 디렉터. 전유림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이예진
비주얼 크리에이티브팀. 김성현, 가브리엘, 조윤경, 김유주, 백유빈, 문성웅 (쏘스뮤직)
사진. 목정욱 / Assist. 방규형, 장정우, 이중명
헤어. 하민, 오유미 (BIT&BOOT)
메이크업. 최수지, 김민지 (BIT&BOOT)
스타일리스트. 홍하리 / Assist. 조수빈, 박주경 (펑크스낫데드)
세트 디자인. 최서윤, 손예희, 김아영 (Da;rak)
아티스트 의전팀. 김아리, 손나연, 신광재, 이은주, 이효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