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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일권(리드머, 음악평론가)
사진 출처. QC 뮤직

데프 잼(Def Jam), 토미 보이(Tommy Boy), 데스 로(Death Row), 애프터매스(Aftermath), 배드 보이(Bad Boy), 캐시 머니(Cash Money), 노 리미트(No Limit), 라우드(Loud), 로커펠라(Roc-A-Fella), 톱 독(Top Dawg)… 힙합의 발전 뒤에는 언제나 유력 레이블의 발자취가 선명하게 찍혀 있다. 애틀랜타에 기반을 둔 퀄리티 컨트롤 뮤직(이하 ‘QC’)은 이 리스트에서 2010년대 이후 가장 중요한 레이블 중 하나다. 이른바 오늘날 남부 힙합의 성지라 할 만하다. 
 

QC는 영 지지(Young Jeezy)와 구찌 메인(Gucci Mane)을 매니지먼트했던 케빈 “코치 K” 리(Kevin “Coach K” Lee)와 노 리미트 레코즈의 수장 마스터 피(Master P)를 우상으로 삼아 성장한 피에르 “P” 토마스(Pierre “P” Thomas)가 함께 설립했다. 최초 12개월과 100만 달러를 들여서 본사를 짓고 라디오 및 프로모션 직원을 고용하여 디지털 시대의 하이브리드 회사를 구상했다. 그들은 잠재력 있는 신예를 발 빠르게 찾는 동시에 적극 영입했으며, 소셜 네트워크와 스트리밍 플랫폼을 주기적으로 살피고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그 결과, 현지의 영향력 있는 프로듀서 제이토벤(Zaytoven)이 말했듯이 “애틀랜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티스트를 모두 보유한” 레이블이 되었다.
 

레이블의 성장을 견인한 그룹 미고스(Migos)를 비롯하여 릴 베이비(Lil Baby), 시티 걸스(City Girls), 릴 야티(Lil Yachty)처럼 현재의 힙합 트렌드를 이끄는 스타 군단부터 라키야(Lakeyah)와 듀크 듀스(Duke Deuce)를 위시한 마를로(Marlo), 24 헤비(24 Heavy), 뱅크롤 프레디(Bankroll Freddie), 제이비 폭스(Javy Fox), 조던 할리우드(Jordan Hollywood), 콜리전(Kollision), 메트로 마스(Metro Marrs), 퀘이 글로벌(Quay Global), 웨이비 네이비 푸(Wavy Navy Pooh), 레이튼 그린(Layton Greene)처럼 개성과 실력을 겸비한 신예가 즐비하다. 
 

지난 2015년 코치 K와 P는 ‘빌보드(Billboard)’와의 인터뷰에서 “세계적인 레이블”이 되길 원한다는 포부를 밝혔었다. 그리고 5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세계적인’ 레이블을 넘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레이블이 되었다. 그 비결이 무엇인지는 회사와 동행 중인 아티스트의 면면과 그들이 발표한 결과물의 성과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 QC의 저력을 체감할 수 있게 하는 주요 아티스트 7인을 소개한다.

Migos

QC의 간판 아티스트는 역시 미고스다. 독특하게도 두 명의 삼촌(Quavo, Offset)과 조카(Takeoff)가 뭉친 그들은 랩 스타를 넘어 힙합 아이콘으로 대우받는다. 원래 정했던 그룹명은 폴로 클럽(Polo Club). 하지만 너무 일반적이라고 생각하여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친구라는 뜻의 스페인어 아미고스(Amigos)에서 유래했다. 세간에는 1986년 코미디 영화 ‘쓰리 아미고(Three Amigos)’에서 따왔다고도 알려졌으나 2013년 그룹이 ‘Hot 97’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그것은 우연의 일치였다.”.
 

2008년에 결성된 미고스가 처음으로 두각을 드러낸 건 2013년. 세 번째 믹스테이프 ‘Y.R.N. (Young Rich Niggas)’를 발표하고 나서다. 당대의 트렌드로 떠오른 트랩 뮤직을 한껏 품은 작품이었다. 특히 싱글 ‘Versace’가 안긴 충격이 상당했다. 일명 트리플렛 플로(Triplet Flow)라는 랩 스타일이 있다. 첫 음절에 강세를 주며 끊어치듯 뱉는 래핑을 일컫는다. 2010년대 이후 트랩 뮤직을 추구하는 래퍼 대부분이 구사한다. 한국 래퍼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를테면 오늘날 유명 식당의 시그니처 메뉴 같은 랩 스타일이다. 이 트리플렛 플로를 유행의 최전선으로 끌어올린 것이 바로 ‘Versace’다. 그래서 한편으론 베르사체 플로라고도 불린다. 
 

겉으로 드러난 성과는 미미해 보였으나(빌보드 핫 100 99위) 실질적인 반응은 대단했다. 미국에서만 50만 이상의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골드(Gold)를 획득했고, 드레이크(Drake)가 리믹스에 동참하는 등, 그해 가장 화제를 모은 곡이 되었다. 빌보드는 ‘(장르 불문) 2010년대를 정의한 100곡’ 중 하나로 선정했을 정도다. ‘Versace’를 필두로 하여 미고스의 히트는 계속됐다. ‘Handsome And Wealthy’, ‘Look At My Dab’, ‘Bad and Boujee (Feat. Lil Uzi Vert)’, ‘T-Shirt’, ‘MotorSport’, ‘Stir Fry’, ‘Walk It Talk It (Feat. Drake)’, ‘Pure Water’, ‘Need It (Feat. YoungBoy Never Broke Again)’ 등은 ‘미고스식 트랩 뮤직’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대표 곡이다. 
 

이 중 2015년에 발표한 ‘Look At My Dab’은 댑 댄스가 대중화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댑 댄스는 비스듬하고 위쪽으로 각진 팔의 구부러진 부분에 머리를 떨어뜨리고 반대쪽 팔을 평행 방향으로 들어 올리는 제스처의 춤이다. 2010년대에 젊은 층 사이에서 유행하며 인터넷 밈이 되어 문화로 정착했다. 댑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지만, 많은 대중이 그 기원을 미고스라고 여길 만큼 ‘Look At My Dab’의 영향이 매우 컸다.
 

미고스의 트랩 뮤직은 그들이 애틀랜타에서 자라며 목격한 것을 기반으로 완성됐다. 신예와 베테랑 할 것 없이 많은 래퍼가 따라 하게 만든 트리플렛 플로, 세 멤버의 조합이 만들어낸 중독적인 후렴구,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다채로운 애드리브, 음악뿐만 아니라 춤, 패션, 뮤직비디오를 통해 끼치는 문화적 영향력까지, 미고스의 위상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팽창했다. 그룹이 2017년을 기점으로 연이어 발표한 ‘Culture’ 트릴로지는 제목부터 이 같은 미고스의 독보적인 위치를 대변했다.
 

하지만 2022년 미고스는 내부적으로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 오프셋이 팀을 떠나며 퀘이보와 테이크오프 듀오 체제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또한 오래가지 못했다. 2022년 11월 1일 휴스턴 볼링장에서 퀘이보 및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던 테이크오프가 총에 맞아 사망했기 때문이다. 게임 도중 다른 일행들과 시비가 붙은 탓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비극 앞에서 퀘이보는 오열했고, 수많은 힙합 팬과 매체가 충격 속에 애도를 표했다. 그렇기에 향후의 계획을 논하기엔 적절치 않은 시기이지만, 미고스가 남긴 유산과 존재감이 지닌 아우라는 여전히 유효하다.
 

Takeoff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며…. 

R.I.P. Takeoff, 1994.06.18 - 2022.11.01  

Lil Baby

어린 시절부터 불우한 배경 탓에 녹록하지 않은 삶에 던져진 래퍼들은 자기 자식을 포함한 아이들이 본인처럼 살지 않길 바란다. 좀 더 나은 환경 속에서 합법적인 일을 하면서 말이다. 릴 베이비도 마찬가지다. 그는 일찍이 거리에서 불법 생활을 이어 나간 터라 재정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다. QC 설립자인 케빈 “코치 K” 리가 릴 베이비 특유의 스웨그와 랩 재능을 알아보고 래퍼가 되어보라며 권유했지만,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결심이 바뀐 건 교도소를 다녀오고 나서다. 불법적인 일을 저지른 후 2년간의 투옥 생활을 마친 그는 계속된 “코치 K”리의 회유에 결국, 음악에 열정을 쏟기로 한다. 2017년 믹스테이프 ‘Perfect Timing’이 시작이었다. 이후 무서운 속도로 싱글과 (믹스테이프 포함) 앨범을 녹음하고 발매했다. 창작에 대한 베이비의 헌신은 곧 놀라운 결과를 낳는다. 작업물을 거듭하며 개성과 랩 실력이 더욱 빛을 발했고,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 좋은 반응이 이어졌다.
 

재치 있는 언어로 구사하는 워드플레이, 거리 생활에 대한 미화 없이도 몰입하게 하는 스토리텔링, 중독적인 후렴 메이킹, 때때로 타이트하게 몰아치는 래핑, 이 모든 것이 조합된 릴 베이비의 거리 찬가에 수많은 이가 열광했다. 데뷔 싱글인 ‘My Dawg’부터 플래티넘을 기록한 디스코그래피에는 ‘Freestyle’, ‘Yes Indeed’, ‘Drip Too Hard’, ‘Close Friends’ ‘Woah’, ‘Sum 2 Prove’, ‘On Me’ 등 연속된 대성공의 흔적이 뚜렷하다.
 

포화 상태에 다다른 지 오래인 트랩 뮤직과 싱잉 랩의 시대에 그는 같지만 레벨이 다른 무기를 장착한 채 승부수를 두었다. 또한 큰 성공을 여러 번 맛보았음에도 안주하지 않고 창작욕을 더욱 폭발시켰다. 그 결과, QC의 공동 창립자 피에르 “P” 토마스의 표현처럼 “현 힙합계에서 가장 빛나는 별 중 하나”가 되었다.

City Girls

영 마이애미(Yung Miami)와 JT가 결성한 시티 걸스는 힙합 씬에서 보기 드문 여성 랩 듀오다. 그리고 팀 구성만큼이나 흔치 않은 음악 스타일을 구사하여 주목받았다. 전반적으로 그들 역시 트랩 뮤직에 기반을 두었지만, 듀오의 이름을 세계 팬들에게 각인한 ‘Twerk’에서는 지난 장르를 탐구했다. 바로 뉴올리언스 바운스(New Orleans Bounce)와 마이애미 베이스(Miami Bass)다.
 

전자는 뉴올리언스의 재즈와 두 번째 행렬 문화를 근원으로 삼은 트월킹에 특화된 역동적인 힙합이며, 후자는 1980년대에 유행한 일렉트로 펑크(Electro Funk)와 랩의 결합이 낳은 파티 최적화 힙합이다. 그러니까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으면서 트렌드의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간 셈이다. 비단 프로덕션뿐만 아니라 시티 걸스는 출신지인 마이애미와 그곳에서 겪은 일을 거침없이 랩으로 풀어낸다.
 

2018년에 발표한 데뷔 믹스테이프 ‘Period’를 만들 때부터 그들은 끈질기게 노력했고, 두려움 없는 태도를 견지했다. 자기 검열 따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 과정에서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독립적인 여성에게 찬사를 보내고 마이애미 힙합의 선구자와 역사에 경의를 표하는 모습이 많은 이를 사로잡았다. 카디 B(Cardi B)가 조력한 ‘Twerk’ 외에도 ‘Act Up’, ‘Pussy Talk (Feat. Doja Cat)’, ‘Twerkulator’ 등의 히트 싱글을 연이어 내놓으며 레이블의 대표 아티스트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Lil Yachty

2010년대 들어 힙합계의 풍경은 급격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도드라진 부분을 꼽는다면, 전혀 새로운 유형의 신예 래퍼가 등장한 것이다. 온라인 음악 배포 플랫폼 사운드클라우드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며 스타로 발돋움하는 이들과 힙합이 아닌 록, 혹은 팝 음악을 자양분으로 삼는 래퍼가 생겨났다. 그 과정에서 중얼거리거나 불분명한 전달이 이루어지는 일명 ‘멈블 랩(Mumble Rap)’ 스타일이 크게 유행했다.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파격 앞에서 자연스레 논란도 뒤따랐다. 
 

릴 야티는 이 모든 상황에 들어맞는 랩 스타다. 그는 힙합, R&B보다 팝을 즐겨 들었고, 음악이 아닌 패션으로 데뷔 전부터 SNS에서 많은 팔로어를 구축했으며, 애니메이션과 게임 사운드를 종종 샘플링했다. 특히 그는 ‘롤링 스톤(Rolling Stone)’과의 인터뷰에서 본인의 음악을 가리켜 ‘버블껌 트랩(bubblegum trap/*주: 주로 10대를 겨냥하여 쉽게 들을 수 있는 경쾌하고 대중적인 팝 음악을 일컫는 ‘버블껌 팝’에 빗댄 표현이다. 때때로 장르를 비하하는 의미로도 쓰인다.)’이라 정의했다. 그만큼 야티는 ‘진지함’이란 키워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우스꽝스럽고 듣기 거북하게 만드는, 때론 너무 아마추어적이어서 당황스러운 곡을 쏟아냈다. 이 때문에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결과적으로 우후죽순 등장한 신인 래퍼들 사이에서 야티를 돋보이게 하는 개성으로 작용했다. 데뷔 공식 믹스테이프 ‘Lil Boat’의 싱글 ‘One Night’과 ‘Minnesota’를 비롯하여 드램(DRAM)과 함께한 ‘Broccoli, 미고스가 피처링한 ‘Peek A Boo’, ‘Ice Tray’, ‘Who Want The Smoke?’ 등이 히트하며 오늘날 젊은 층에서 가장 인기 있는 래퍼 중 한 명이 되었다. 한편, 올해 1월에 발표한 새 정규작 ‘Let's Start Here.’에서는 랩/힙합이 아닌 ‘사이키델릭 얼터너티브’ 음악을 선보였다. 전과 다른 진중한 무드와 완성도가 다른 의미에서 당황스럽게 할 정도다. 이쯤 되니 야티는 애초부터 탁월한 전략가가 아니었을까 싶다. 

Duke Deuce

주류 힙합계를 이끄는 지금의 남부 힙합은 트랩(Trap)과 드릴(Drill)로 대표된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남부를 힙합 씬의 중심에 올려놓은 건 크렁크(Crunk)였다. 프로듀서이자 래퍼 릴 존(Lil Jon)이 창조한 크렁크는 단출한 808 드럼 사운드, 극도로 부각되고 반복되는 신시사이저, 묵직한 베이스, 외침이나 다름없는 래핑의 조합이 특징이다. 2000년대 초반 광풍에 가까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비록 전성기가 길진 못했지만, 트랩 뮤직의 시대로 가는 가교 역할 또한 톡톡히 했다.
 

멤피스 출신의 신예, 듀크 듀스(Duke Deuce)가 여느 신예들 사이에서 눈에 띈 건 바로 크렁크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는 고향이 낳은 서브 장르를 뿌리로 삼아 전혀 새로운 클럽 뱅어를 만들어냈다. QC 소속으로 모타운(Motown)의 막강한 홍보력까지 등에 업고 발표한 2021년 작 ‘Duke Nukem’은 그의 존재감을 각인하는 데에 결정적이었다. 크렁크의 양대 산맥인 릴 존의 흥겨운 사운드와 쓰리 식스 마피아(Three 6 Mafia)의 다크한 사운드의 중간 지대에서 독자적인 크렁크를 구축했다.  
 

듀크는 시종일관 흥을 잃지 않는 프로덕션 안에서 강력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래핑으로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특히 곡마다 삽입된 시그니처 외침(“What The Fu@k!!”)이 선사하는 쾌감도 상당하다. 크렁크의 부활을 선포한 ‘Crunk Ain't Dead’와 ‘Duke Nukem’의 싱글이었던 ‘SOLDIERS STEPPIN’ 등은 듀크 듀스가 지닌 캐릭터와 장점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곡들이다.

Lakeyah

밀워키 태생의 싱어이자 래퍼 라키야는 QC의 미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직 정규 앨범은 없지만, 믹스테이프와 EP를 통해 레이블에 영입된 이유를 증명했다. 그는 2019년에 바이럴한 시티 걸스의 ‘퍼스트 데이 아웃(First Day Out)’ 랩 챌린지에 참가하여 독특한 스타일과 재능으로 입소문을 탔다. 그리고 대망의 2020년, 포투 덕(42 Dugg)과 릴 베이비(Lil Baby)가 부른 ‘We Paid’ 비트 위에 랩을 얹은 곡이 좋은 반응을 얻었고, QC의 새 식구가 된다. 
 

라키야는 공격적이고 자기 과시적인 랩과 소울풀한 R&B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이처럼 축복받은 재능이 바탕이 되어 여러 매체로부터 ‘주목해야 할 신예’로 일컬어졌다. 그중에서도 2021년, ‘XXL’ 매거진의 ‘프레시맨 클래스(freshman class)’에 선정된 것이 결정적이다. 매년 발표되는 ‘프레시맨 클래스는 일종의 랩 스타로 가는 관문과도 같다. 소수의 신예만이 선택받는다.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트래비스 스콧(Travis Scott), 챈스 더 래퍼(Chance the Rapper), 메건 더 스탤리온(Megan thee Stallion) 등의 랩 스타가 신인 시절 이 리스트를 거쳐 갔다. 라키야는 14년 동안 이어진 ‘프레시맨 클래스에서 지명된 최초의 밀워키 래퍼였다.

Layton Greene

싱어송라이터 레이튼 그린은 QC의 첫 번째 R&B 아티스트다. 2017년 코닥 블랙(Kodak Black)의 Roll in Peace’를 리믹스하고 직접 만든 비디오를 소셜 미디어에 업로드한 후 입소문을 탔다. 이후 정식으로 녹음한 리믹스의 확장 버전이 사운드클라우드에서 350만 회 이상 재생되었으며, 빌보드 R&B 송 차트 15위 안에 진입하는 성공을 이룬다. 이때부터 레이블들이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린은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명제, 즉 피그말리온 효과의 산증인이다. 7세 때 처음으로 음악적 재능을 발견한 이래 그는 전문 싱어가 될 거라고 확신했다. 언젠가 유명해질 줄도 알았다. 그래서 10대 시절 ‘더 X 팩터(THe X Factor)’와 ‘아메리카 갓 탤런트(America's Got Talent)’ 오디션에서 떨어졌을 때에도 타격을 입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그린은 오로지 프로 싱어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집중했고, 결국 QC에 영입되어 가장 주목해야 할 R&B 신예 중 한 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