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도, RM도 그들에 대한 증명을 마쳤다. 그리고 RM은 ‘Proof’의 다음을 꿈꾸고 있다.
‘Proof’는 ‘Yet To Come’으로 시작해요. 무엇이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했나요?
RM: 처음 ‘Yet To Come’을 만들면서 생각한 건 ‘High Hopes’ 같은 거였어요. 하나의 바람 같은 거죠. ‘그래 맞아,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전성기가 있겠지.’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보편성이 있겠다고 생각해서 만들기 시작했는데, 앨범이 나온 다음에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 사이에서 떠다니면서 자신만의 색깔을 얻게 됐으면 좋겠어요.
RM 씨 개인도 그런 바람이 있나요? ‘Proof’에 ‘Intro : Persona’가 실렸는데, 그 곡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잖아요.
RM: 지금은 모르겠어요. 스스로에게 한 발짝 떨어져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무슨 의미이고, 나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알 것 같아요. 지금은 ‘내가 혹시 주어진 것만 열심히 하는 것 아닐까? 내가 뭔가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란 고민을 해요.
왜 그런 생각이 들까요?
RM: 이런 느낌으로 살아가려고 했던 건 아닌데,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살기를 바라는데 팬데믹을 이유로 ‘내가 너무 수동적으로 살게 된 건가?’란 생각이 드니까 견디기 힘들더라고요. 그래미에서 느낀 것도 그렇고, 제가 일종의 벽에 부딪힌 것 같아요.
그래미 어워드에서 무엇을 느낀 건가요?
RM: 레이디 가가나 H.E.R.처럼 음악에 삶을 내던지는 아티스트들을 보면서 느꼈죠. ‘우리도 지금 우리의 색깔을 확실히 주장할 수 있는 메시지가 필요하다.’ 저희가 그래미 어워드에서 보여준 ‘Butter’의 무대는 놀라움을 줬다고 생각해요. 독특하고요. 그 놀라움을 넘어서 지금 우리가 낼 수 있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새롭게 고민해야 할 때인 것 같아요. 라스베이거스 공연을 하면서 호텔에 있는 동안 생각할 시간을 가졌어요. 뭘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그래서 집중을 하고, 지금 내가 잡고 있는 실마리를 잡아서 끌어내야 할 것 같아요.
다른 의미로 ‘Yet To Come’이네요. 지금의 방탄소년단이 더 나아가야 한다는 거니까.
RM: 현상 유지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해요. 현상 유지로 1등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여기서 뭔가 잘해야 하고, 무엇인지에 대해 아직은 갈피를 못 잡는 느낌이에요. 우리는 팀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을 때 티핑 포인트라고 해야 할까요? 그때 해야 할 것을 잡아냈던 사람들인데, 지금은 모르겠더라고요.
‘나는 누구인가?’와 ‘방탄소년단은 무엇인가?’를 찾아야 할 때가 온 거군요.
RM: 저한테는 이게 지금 너무 중요한 이슈예요. 이 팀이 옛날에는 어떤 건지 분명히 내 손에 잡혔는데, 지금은 팀도 나도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시기에 온 것 같아요. 그래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받는 영감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세상에 존재하는 영감과 영향을 받아야겠다는 절실한 내면의 요구가 있어요. ‘앞으로 방탄소년단이 이 세상에 어떤 말을 하면 좋을까? 방탄소년단이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어떤 위치로 기억돼야 할까? 나아가서 어떤 식으로 우리가 기능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어보고 싶어요.
팬데믹을 지나면서 방탄소년단의 위상이 더 커지기도 했으니까요. 미국 공연의 경우 최근에 아미가 된 분들도 꽤 보이는 것 같았어요.
RM: 공연을 하면서 어떤 기준을 넘겼단 생각은 들었어요. 사람들이 폭넓게 우리를 알고 우리를 좋아할 준비가 돼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건 다르니까요. 뭔가 방탄소년단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커졌다고 해야 할까요? 체감이 많이 됐어요. ‘Dynamite’와 ‘Butter’로 해외에서 더 많은 분들이 알게 됐단 생각도 들고요.
방탄소년단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과정에서는 콜드플레이의 크리스 마틴과 한국에서 ‘My Universe’를 작업한 것도 있었어요. 두 팀이 갖는 위상을 생각하면 대형 프로젝트였는데, 어떤 경험이었나요?
RM: 직접 한국에 오겠다고 해서 놀랐고, 만나보니까 정말 진정성이 느껴졌어요. 저희 이름을 다 알거나 하는 건 물론이고 투모로우바이투게더나 ENHYPEN에 대해서도 다 알고 왔더라고요. 대충 넘겨짚듯이 아는 정도가 아니었어요. 저희 회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더니 “저 친구들이 ENHYPEN이냐?”고 물어보고 해서 ‘아니 어디까지 공부한 거지?’ 했어요.(웃음) 그리고 작업하면서 연락을 주고받는데 거의 항상 먼저 문자를 보내고요. 정말 놀랐어요.
방탄소년단 전체가 다른 아티스트의 피처링에 참여한 건데, 기존 작업들과 다른 점이 있었을까요?
RM: 한글과 영어 가사를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가 중요했어요. 한글하고 영어를 1, 2절로 나눠서 부르는 것도 생각했었거든요. 크리스 마틴이 한글 가사 일부를 불러보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도 있었고. 그런데 결과적으로 한글과 영어를 병치하는 쪽으로 결정했어요. 그러면서 한글하고 영어가 흐름이 연결되도록 하는 게 중요했죠.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방탄소년단은 콜드플레이와 협업을 하고, 그게 세계 음악 산업의 이슈가 되고, 그 곡으로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공연을 하기도 해요. RM 씨가 추구하는 것과 방탄소년단의 방향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RM: 제가 어떤 사조를 바꾼다거나 하는 것까지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어쨌든 원 앤 온리가 되고 싶은 욕구는 여전히 있는 것 같아요. 아티스트라면 무조건이에요. 원 앤 온리여야 하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원 앤 온리를 하기에 좋은 위치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난 방탄소년단의 멤버니까.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도 독보적일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내고자 하는 것 같아요.
위버스에 “‘해리포터’ 시리즈나 마블 작품들을 추천받아도 딴 거 하느라 정작 못 본다.”는 글을 남겼는데, 인스타그램에는 로스코 채플을 비롯해서 여러 전시회 사진을 남겼어요. 그 두 가지의 결합 같기도 하네요.
RM: 제가 추구하는 미감은 결국 제 음악에 반영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는 게 가장 멋있는 것 같아요. 그걸 요즘에 그 사람한테 ‘착붙’이라고 하더라고요.(웃음) 되게 자연스러운 것, 꾸몄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위적이지 않은 것. 그런데 K-팝은 산업이고, 가장 다이내믹하고, 판타지를 보여주기도 하는 일이에요. 그래서 팬들에게 콘셉트를 제시하기도 해야 하고요. K-팝을 통해 누군가를 ‘덕질’한다고 하면 당연한 거거든요.
그 두 가지의 결합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RM: 그러니까 저는 자연스러움을 좋아하는 동시에 톡톡 튀고, 계속 변하고, 늘 새롭고 짜릿한 산업의 기반 위에 있다 보니까, 그 두 가지를 어떻게 조화하느냐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요. 그게 역설적으로 제 메리트라고 생각하고요. 저도 여전히 그런 강한 콘셉트에 끌리고, 여전히 XXX텐타시온의 음악을 들으니까요.
메리트라고 하셨는데, 그 두 가지가 가능한 인생을 사는 기분은 어때요? 방탄소년단의 멤버로 살면서 엄청난 인기를 얻고, 그래서 많은 걸 보고 배우기도 했어요. 그런데 몸은 젊고, 세상의 유행에 대한 관심도 많고요. 뭔가 일찍 도착해버린 사람 같아요.
RM: 요즘 음악을 들었을 때 들으면 되게 좋고 ‘와 진짜 곡을 잘 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되게 옛날의 작품들을 봤을 때 오는 감동이 훨씬 센 것 같아요. 뭔가 원초적인 레벨에서 훨씬 크게 느껴지는 거죠. 근데 이제 한참 현역이라고 하기보다 거의 새싹인 놈이(웃음) 그 호흡을 흉내내려고 하니 그게 안다고 하면 또 거짓말인 거죠. 그런 게 제가 고민하는 것들의 중요한 부분 같아요. 다른 아티스트들하고 작업을 하면 ‘그 사람이 작업을 하는, 그 삶 자체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사는구나.’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저와는 다른 삶, 어쩌면 내가 살았을지도 모를 삶에 대해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인간은 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욕망이 있으니까요.
전 세계 음악 산업의 한가운데에 있는 위치에서 다른 삶을 보는 건데.
RM: 우리는 스트리밍 시대에 활동하고, 점점 곡의 길이도 짧아지는 시대에 사람들의 정서가 거기에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도 순간순간에 일어나는 일들과 정서에 집중해서 무언가 해야 하는 건가 하는 고민이 있어요. 쉽게 얘기해서 앞을 못 내다보게 되는 거죠. 그런 게 최선이고 진리일까라는 고민이 있어요.
‘Proof’에 ‘Young Forever (RM Demo Ver.)’가 실렸어요. 멜로디가 최종 버전과 다르게 RM 씨의 믹스테이프 ‘mono.’의 정서가 느껴지더라고요. 내면으로 침잠하는 느낌이었는데, 그로부터 6년 동안 쌓인 생각들이라고 해야 할까요?
RM: 이젠 침잠이 아니라 분명히 해야 할 말들이 있는 것 같아요. 뭔가 분명히 해야 할 말들이 있는데 그걸 계속 못하는 느낌이 너무 커요. 이 팀으로 인해 내가 받은 모든 것들은 나 혼자라면 얻을 수 없는 것들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혼자 감당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나로서 사는 것, 방탄소년단으로서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거죠. 방탄소년단은 저에게 가족이거든요. 위기가 오면 누구보다 서로의 편이어야 하는 거고, 기쁜 일도 함께해야 하고 슬픈 일도 함께해야만 해요 그 일들 사이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거죠.
미술에 대해 꾸준히 공부한 결론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요?
RM: 맞아요. 제가 찾아낸 게 그거예요. 결국에는 시간이 지났을 때, 빛이 나야 하는 것 같아요. 무언가 ‘타임리스(Timeless)’에 근접해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직 어리고 너무 한 게 없어서 그게 욕망한다고 획득할 수 있는 부분이냐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염두에는 둬야 하는 것 같아요. 이걸 의식하지 않고 작업하면, 분명히 그때 그때의 것들에 휩쓸려 지금처럼 알고리즘에 의해 모든 게 휙휙 바뀌는 세상에서 뒤돌아보면 촌스러울 확률이 높겠다, 그 정도예요. 세상이 정말 빠르게 변하다 보니까 몇 년만 지나도 버려지는 느낌이 많고, 그래서 영속성을 갖고 싶단 생각이 들거든요. 음악이 누군가에게 뭔가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지만, 무언가를 이뤄낸 아티스트들이나 작가들을 보면 결국에는 시류와는 관계없는 무언가를 고독하게 혹은 아니면 그 사회 속에서 무언가를 지켜낸 사람들이더라고요.
새로운 건 언어로 규정할 수 없는 경계 사이에서 나오곤 하니까요.
RM: 제가 그냥, 꾸준히 제 길을 가야 하는 것 같아요. 그거 하나밖에 모르겠어요. 내가 지금 그리고 있는 게 코끼리인지 아닌지 알려면 계속 그려봐야 하는 것 같아요. 그것만 알겠고 나머지는 하나도 모르겠어요.(웃음) 허물 없이 나를 최대한 보여준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싶은데, 그래도 계속 하다 보면 진심이 통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고요. 미련과 아쉬움을 남기지 않으려면 결국 해보는 거고, 하지 않으면 죽어도 모른다가 결론인 것 같아요. 결국에는 자기 걸 해봐야 하고, 그게 실질적으로 구현이 좀 돼야 하는 것 같아요. 믹스테이프로 예를 들면 2015년에 보여주고 싶었던 래퍼로서의 모습과 2018년에 제 우상들을 다시 빌려와서 제가 보여주고 싶었던 저의 어둡거나 우울한 면을 보여줬어요. 그런데 ‘2022년에는 내가 정말 순수하게 무언가를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도 충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해요.
인스타그램에 올린 작업실 주변 사진들이 생각나요. 작업실 안부터 주변까지 미술 작품들을 배치해놓고, 그 주변을 걸어 다닐 때의 감상을 남긴 것처럼 전시했는데,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진의 연결이 RM 씨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RM: 제 추상적인 생각들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은데, 어려워요. 가끔은 저도 제가 마음에 안 들어요.(웃음)
지금까지 보고 읽은 것들에 대해 음악으로 표현해야 하는 거니까, 해보면 결국 뭘 하려고 한 건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RM: 와, 그거 되게 위로가 되는 말씀인데 그런 식으로는 생각을 안 해봤어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해봐야 알 것 같기는 해요. 제가 뭐든 해보고 반응이 나오면 알 것 같아요. ‘아! 이건가?’ 싶은.
‘Proof’로 한 번 했고, 무슨 작업이든 앞으로 두세 번 해보면 알게 되지 않을까요?
RM: 네. 여러 작업들을 하고 있으니까요. 무슨 얘긴지 알 것 같아요. 두세 번 해보면 알 거라는 게 되게 좋네요.(웃음)
너무 일찍 와버린 거라니까요. 방탄소년단의 멤버로 살았으니까요.
RM: 아, 모르겠어요. 진짜.(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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