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7일 ‘제15회 BET 힙합 어워즈’에서 가사를 제일 잘 쓴 래퍼를 뽑는 ‘올해의 리리시스트(Lyricist of the year)’ 부문에 랩소디(Rapsody)가 선정됐다. 지금까지 ‘리리시스트’ 부문에서 여성 아티스트가 수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남성 래퍼 중에서도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가 7회부터 13회까지 무려 7년을 받았다.

정말 역사적이고 의미 있는 순간이다. 랩/힙합에서 리리시스트가 지닌 의미는 남다르다. 가사만 잘 쓴다고 해서 부여하는 칭호가 아니다. 훌륭한 랩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랩을 잘하는 래퍼 중에서도 가사가 뛰어나야 한다. 래퍼에겐 최고의 칭찬인 셈이다. 혹자는 ‘정치, 사회적인 메시지, 혹은 심오한 주제의 가사를 쓰는 래퍼’로 인식하기도 한다. 하지만 리리시스트를 논하는 요건에 주제의 제한은 없다. 어떤 주제든 남들보다 도드라지는 작사력이 관건이다.

다만, 리리시스트라 불린 래퍼들의 가사에 사회, 정치적인 메시지가 자주 담긴 것만큼은 사실이다. ‘BET 힙합 어워즈’의 역대 수상자이기도 한 커먼, 켄드릭 라마, 제이 콜 등이 대표적이다. 랩소디 또한 그렇다. 2008년, 프로듀서 나인스 원더(9th Wonder)의 지원 아래 데뷔한 이후, 그는 탁월한 메타포와 허를 찌르는 펀치라인으로 무장한 가사를 통해 인종, 여성 문제는 물론, 사회의 여러 이슈를 꿰뚫으며 감탄을 자아냈다.

랩소디의 앨범 ‘Eve’(2019)는 그가 영향받은 흑인 여성에게 바치는 헌정사다. 앨범 제목부터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 세레나 윌리엄스(Serena Williams), 미셸 오바마(Michelle Obama)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 획을 그은 흑인 여성들을 내세운 수록곡의 제목까지 주제 의식이 뚜렷이 드러났다. 그중에서도 ‘Ibtihaj’는 여러모로 흥미롭다. 제목은 미국 펜싱 국가대표 선수인 이브티하즈 무하마드(Ibtihaj Muhammad)를 뜻한다. 이브티하즈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최초로 메달을 획득한 무슬림 미국 여성이자 히잡을 쓰고 경기를 치른 최초의 무슬림 미국 선수다. 랩소디는 우탱 클랜(Wu-Tang Clan)의 즈자(GZA)가 1995년에 발표한 명곡, ‘Liquid Swords’를 샘플링한 비트 위에서 이브티하즈에게 경의를 표하고, 자신감에 관해 설파한다.

랩소디는 수상 트로피를 받아든 다음 이렇게 밝혔다 
"이건 내가 처음으로 받은 상이야. 울진 않을래, 난 터프하니까. BET로부터 받는 상이라 너무 기뻐. 흑인 네트워크에서 비롯한 거라서 특별하거든. 그리고 '올해의 리리시스트' 부문을 여자가 항상 대표했던 건 아니니까. 신에게 감사해! 나 이전에 랩을 뱉어준 모든 여성 래퍼들에게도 말이야. 로린 힐(Lauryn Hill), 퀸 라티파(Queen Latifah), 릴 킴(Lil Kim), 엠씨 라이트(MC Lyte), 폭시 브라운(Foxy Brown), 미시 엘리엇(Missy Elliott), 진 그레이(Jean Grae) 등등. 우린 계속 나아갈 거야!"
TRIVIA

BET 힙합 어워즈 
아프리카계 미국인(African-American)을 주요 타깃으로 한 텔레비전 방송국 BET(Black Entertainment Television)가 개최하는 시상식. 시상식의 주체부터 참가자 대부분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보니 수상한 많은 힙합 아티스트들이 어떤 상보다 기뻐하고 상징적으로 여기곤 한다.
글. 강일권(리드머, 음악평론가)
디자인. 전유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