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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곡을 재창조하거나 확장하는 작업, 리믹스(Remix)는 디제이에 의해 활성화되고 진화해왔다. 1970년대가 기점이다. 디스코 시대였던 당시, 디제이들은 파티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사람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리믹스를 이용했다. 한편으론, 재미있는 놀이 또는 실험이었다. 곡의 특정한 구간을 반복하기도 하고, 서로 다른 두 곡을 섞는, 이른바 매시업(mashup) 형식으로 구현하기도 했다. 그렇게 퍼지던 리믹스가 다른 차원으로 진입하게 된 건 프로듀서가 가세하면서부터다. 1980년대 들어 일렉트로닉 위주의 댄스 음악이 주류를 장악하면서 정식으로 레코딩된 리믹스 곡이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리믹스가 파티장을 위한 작업인 건 변함없었지만, 싱글 트랙리스트의 한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비로소 창작물의 영역에 진입한 것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막 상업화의 길로 들어선 힙합까지 부상하면서 리믹스의 범위 또한 더욱 넓어졌다.

형식은 여러 갈래로 나타났다. 원곡과 전혀 다른 장르, 혹은 무드의 프로덕션이 입혀지는가 하면, 원곡의 노선을 따르되 악기 소스가 새로 구성되거나 약간의 편곡이 가미되었다. 비단 프로덕션 측면뿐만 아니라 아예 벌스(Verse)가 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몇몇 리믹스 곡들은 ‘Remix’라는 표기가 없다면 서로 다른 곡이나 다름없을 정도다. 한편, 새로운 아티스트를 참여시키는 것도 주요한 방식 중 하나다. 음악적으론 오리지널 버전을 그대로 살린 채, 피처링한 아티스트의 벌스로 분위기를 환기하는 식이다.

최근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를 기록한 제이슨 데룰로(Jason Derulo), 조시 식스에잇파이브(Jawsh 685), 방탄소년단(BTS)이 함께한 ‘Savage Love(Laxed - Siren Beat)(BTS Remix)’가 바로 여기에 속한다. ‘Savage Love(Laxed - Siren Beat)’는 자메이카에서 발생한 댄스홀(Dancehall)과 이를 자양분 삼아 탄생한 레게통(Reggaeton/*필자 주: 댄스홀, 힙합, 알앤비, 라틴 음악, 캐리비언 음악 등이 혼합된 장르로 푸에르토리코에서 탄생했다)의 특징을 고스란히 품은 곡이다. 데뷔 때부터 알앤비와 팝에 기반을 두고 여러 장르를 혼합하여 완성한 음악을 들려준 데룰로는 직관적이지만, 안일하지 않게 흐르는 멜로디를 주조하는 감각이 탁월하다. 뉴질랜드 출신의 신인 프로듀서, 조시가 만들고 공개한 비트 위에서 이 같은 데룰로의 장기가 또 한 번 제대로 발휘됐다.

처음 대히트의 도화선에 불을 댕긴 건 틱톡(TikTok)에서의 성공이다. ‘Savage Love(Laxed - Siren Beat)’의 원형은 ‘Savage Love’가 떨어진 ‘Laxed - Siren Beat’였다. 조시가 만들어 온라인 플랫폼에 공개한 이 인스트루멘탈 트랙은 곧 수많은 이의 댄스 챌린지를 불러왔고, 순식간에 틱톡에서 성공한 바이럴 트랙이 되었다. 조시가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후 여러 아티스트의 리믹스 문의가 있었다고 한다. 그중 데룰로의 스피드가 모두를 압도했다. 그는 ‘Laxed - Siren Beat’를 샘플링하여 노래를 얹고, ‘Savage Love’란 제목을 붙인 신곡 일부를 SNS에 공개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러나 곧 반발이 뒤따른다. 데룰로가 조시의 이름을 크레딧에 올리지 않은 탓이다. 이에 조시는 데룰로에게 정식으로 크레딧에 올려줄 것을 요청했고, 관련 이슈로 떠들썩한 상황에서 다행히 문제는 빠르고 깔끔하게 해결됐다. 데룰로 측은 샘플 클리어런스를 완료한 동시에 곡의 제목을 ‘Savage Love(Laxed - Siren Beat)’로 명확히 했고, 조시를 정식 프로듀서로 올렸다. 민감한 문제가 일단락되자 아티스트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홍보했고, 반응 또한 점점 거세졌다.
그리고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그룹, 방탄소년단이 가세함으로써 대히트를 위한 마지막 퍼즐이 맞춰졌다. 정국은 데룰로가 도맡았던 후렴구를 양분하여 방탄소년단 또한 곡의 또 다른 주인임을 드러냈고, 슈가와 제이홉은 한국어 가사의 벌스로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제대로 각인시킨다. 최초 81위로 차트에 등장했던 ‘Savage Love(Laxed - Siren Beat)’는 이후 7주 만에 10위 안으로 진입했고, 방탄소년단이 참여한 버전이 공개되면서 결국, 1위를 차지했다. 보통 피처링을 통한 리믹스를 구상할 때 고려하는 두 가지, 곡과의 어우러짐과 참여 아티스트의 인지도를 전부 충족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는 세 아티스트 모두에게 각별한 의미로 다가갈 듯하다. 제이슨 데룰로는 지난 2009년, 데뷔 싱글이었던 ‘Whatcha Say’로 1위를 기록한 이래 무려 11년 만에 정상의 쾌감을 맛봤고, ‘Dynamite’로 한국 최초의 빌보드 1위 아티스트가 된 방탄소년단은 연이어 정상에 오르면서 1, 2위 자리에 이름을 남기는 진귀한 풍경을 연출했다. 하루아침에 무명 프로듀서를 벗어난 조시야말로 최대 수혜자다. 그는 첫 번째 공식 트랙으로 첫 빌보드 1위를 기록한 프로듀서가 됐다. 나아가 굴지의 레이블 컬럼비아 레코드(Columbia Records)와 계약도 체결했다.

한때 원곡의 아우라를 보조하거나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기 위한 작업이었던 리믹스는 오늘날 원곡 못지않게 위상이 커졌다. 물론, 이전에도 원곡의 감흥을 넘어선 리믹스 곡은 있었다. 그러나 상업적인 성공까지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된 건 근래 들어서다. ‘Savage Love(Laxed - Siren Beat)(BTS Remix)’의 1위 등극은 이 같은 리믹스의 달라진 위상을 대변한다.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글. 강일권(리드머, 음악평론가)
사진 출처. 방탄소년단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