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와 ARMY, 어둠을 밝히는 우리의 소우주
코로나19 이후 BTS와 ARMY의 이야기
2020.09.21
2020년 5월 25일(KST). BTS(이하 방탄소년단)의 멤버 진은 작은 방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그들의 유튜브 채널 ‘BANGTANTV’를 통해 생중계했다. 이 영상은 9월 15일(KST) 현재 543만 뷰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 중이다. 진이 방송 중 “왕초보”라 밝히며 피아노 연주를 공개하는 것이 걱정된다고 말했던 이유다. “부끄러운 실력을 어떻게 보여주나 싶어서 사실 걱정이 컸어요. ‘가수가 피아노도 잘 못 친다'고 할까 봐 조심스러웠거든요. 그런데 예상보다 다들 즐겁게 봐주셔서 놀랐어요.” 진이 피아노를 치던 그날, 방탄소년단은 미국 뉴저지의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에서 ‘BTS MAP OF THE SOUL TOUR’ 공연을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모든 공연은 취소되었다. 코로나19 이후 방탄소년단은 팬을 직접 만나지 못하고 있다. 대신 그들은 카메라를 켜고 유튜브를 통해 아직은 미숙한 피아노 연주를, 또는 새 앨범을 만들기 위해 회의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공개했다. 진은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뭐라도 하고 싶었어요. 팬들을 위해서.”
코로나19는 전 세계 모든 사람의 삶을 바꾸었다. 이 병은 찰나의 순간에도 사람들을 감염시킬 수 있고, 환자는 후유증에 시달리거나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위험한 것, 또는 피해야 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2020년의 일상은 작년과는 단절됐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달라졌다. 방탄소년단 멤버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여전히 노래를 부르고, 퍼포먼스를 하고, 유튜브나 TV에서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팬, 아미를 직접 만날 수는 없다. 지난 2월 24일(EST), 방탄소년단은 미국 NBC TV ‘더 투나잇 쇼 스타링 지미 팰런(The Tonight Show Starring Jimmy Fallon)’에 출연해 앨범 ‘MAP OF THE SOUL : 7’의 타이틀곡 ‘ON’ 무대를 최초로 공개했다. 뉴욕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전체를 빌려 진행해야 할 만큼 대규모 퍼포먼스였다. 하지만 그 후 ‘ON’이 콘서트 무대에 오르는 날은 아직 오지 않고 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퍼포먼스디렉팅팀 손성득 팀장은 “‘ON’은 댄서들과의 조화가 중요한 퍼포먼스인데, 팬데믹 상황에서 다국적 댄서들이 다인원으로 모이기가 쉽지 않아요. 특히 ‘ON’은 멤버들이 정말 아끼는 퍼포먼스이기 때문에 준비했던 완성도 그대로를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라면서 “멤버들도 실제 공연장에서 ‘ON’을 보여주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많이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연말 시상식까지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죠.”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은 방탄소년단 멤버들에게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지난 3월 10일(KST), RM은 브이라이브에서 “활동 내내 사실 굉장히 무력했죠. 되게 무력했고 땀이 나도 땀이 땀 같지 않은 그런 이유였어요.”라면서 “방송이 일찍 끝나니까 집에 있다가 가끔 막 미친 사람처럼 막 울화통이 막 여기까지 올라와요.”라고 속상한 심정을 토로했다. 손성득 팀장 역시 이런 상황에 대해 “코로나19로 인한 가장 큰 우려는 멤버들의 사기였어요. 이전부터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관객들과 현장에서 교감하는 경험이 본인들의 무대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해왔습니다."라고 말했다. 방탄소년단이 스타디움이 아닌 작은 방에서 유튜브를 통해 팬들을 만난다는 것은, 그들에게 단순한 변화가 아닌 상실이었다. RM은 이 상실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화가한테 붓을 뺏으면 아무것도 못하고 산 채로 죽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제가 그렇게까지 고결한 예술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코로나19로 활동에 제약이 생기면서 제가 일 외에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생각보다 많이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치료제나 백신이 완전히 개발되기 전까지, 코로나19에 대한 최선의 방역은 ‘사회적 거리 두기'뿐이다. 최대한 사람 간의 접촉을 피하고, 외출 시에는 마스크를 챙기고 틈나는 대로 손을 씻어야 한다. 일상이 늘 긴장 상태에 놓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함께하거나 서로를 만나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상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 됐고, 경제적 붕괴, 인종차별, 코로나 블루, 가정내 아동 학대처럼 사회적 문제들도 연이어 일어난다.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에서, 일상의 유지는 그 자체로 모든 사람에게 거대한 숙제다. 방탄소년단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이 2020년에 하고 있는 일은 결국 그들과 아미 사이에 유지되던 일상을 이 시대에도 지속하며 버텨 나가는 것이다. 그들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팬들에게 근황을 전하고, 믹스테이프를 발표하고, 자체 예능 콘텐츠인 ‘RUN! BTS’나 JTBC에서 방영 중인 예능 프로그램 ‘인더숲’도 촬영했다. 매해 방탄소년단의 데뷔일인 6월 13일을 기념하는 행사인 ‘BTS FESTA'도 그대로 진행됐다. 6월 14일(KST)에는 드디어 실시간 공연 ‘방방콘 The Live’도 개최됐다.
다만, 올해 방탄소년단의 일상은 과거와 달라졌다. ‘방방콘 The Live’는 온라인 비대면 형식으로 진행됐다. 또한 방탄소년단은 지난 4월 17일(KST)부터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콘텐츠인 ‘Log ( ON )’을 시작했다. 첫 실시간 중계를 통해 RM이 설명한 것처럼, ‘Log ( ON )’은 “일상을 공유하자는 취지"로 포문을 열었다. 이 채널에서 슈가는 그림을 그렸고, 제이홉은 연습실에서 춤을 추며 땀을 흘렸으며, 뷔는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 팬들과 긴 대화를 나눴다. 그 사이에 RM과 지민은 브이라이브를 통해 당시 유행하던 달고나 커피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줬고, 슈가는 ‘꿀FM’을 여러 차례 진행하며 팬들과 소통했다. 빅히트 쓰리식스티 아티스트콘텐츠스튜디오의 김수린 LP는 "코로나19로 인해 활동에 공백이 생기면서 팬덤과 아티스트 모두 무력감에 빠지기 쉬운 시기가 됐어요. 그래서 브이라이브에서 달고나 커피처럼 당시에 유행하는 아이템을 시도하는 모습을 통해 아티스트도 팬들과 비슷한 일상을 보내고 있음을 보여주려 했습니다."고 말했다. 또한 방탄소년단의 모습들을 담은 콘텐츠들에 대해서는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평소 모습이나 행동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각종 콘텐츠를 제작하는 과정에서도 본인들의 실제 모습이 드러나는 편이고, 저희도 이를 그대로 콘텐츠에 반영할 수 있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방탄소년단은 2020년 현재의 일상을 아미와 공유하면서, 코로나19 이후의 삶을 만들어 나갔다. 진의 말처럼, 그들은 뭐라도 하고 있었다.
“공연 때 제일 힘이 되는 건 함성이거든요, 함성. 그 함성 때문에 내가 조금, 공연 중에 막 경련이 오고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빡세게 춤을 출 수 있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거예요.” 정국은 공연에서 팬이 갖는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 팬들을 만날 수 없을 때, 방탄소년단은 무엇으로 버틸 수 있을까. 정국이 6월 5일(KST) ‘BTS FESTA’ 7주년을 기념하며 공개한 곡 ‘Still With You’는 그에 대한 답처럼 느껴진다. "비가 코로나라면, 비가 오더라도 그 상태 그대로 팬들에게 가겠다는 의미예요.” 정국이 ‘나 홀로 춤을 춰도 비가 내리잖아 / 이 안개가 걷힐 때쯤 젖은 발로 달려갈게’라는 가사에 대해 설명한 의미다. 현재는 과거와 같지 않고, 기다리는 과거로 돌아갈 미래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달라진 세상일지라도 ‘그 상태 그대로’ 일상을 살아가는 방법도 있다. ‘방방콘 The Live’는 지금 현재의 방탄소년단과 아미가 함께 만들어낸 일상이었다. 이전과 달리 그들은 공연장에서 직접 만날 수 없었다. 하지만 멤버들은 온라인으로 공연을 보고 있을 팬들에게 계속 말을 걸었고, 실시간으로 달리는 댓글을 읽으며 대화했다. 그리고 방탄소년단 뒤로 2천여 개의 아미밤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빅히트 쓰리식스티 콘서트제작팀 하정재 팀장은 “관객이 없어서 관객을 표현하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방탄소년단 공연에서 언제나 멤버들과 함께 아미밤이 가득 차 있는 순간을 떠올리고 무대 뒤에 아미밤을 설치했어요. 이걸 보면서 관객인 아미 분들이 뿌듯함을 느끼시길 바랐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 상태 그대로 삶의 순간들을 공유하는 방법이 있다. 직접 만나지는 못할지라도.
아미라면 누구나 ‘BANGTANTV’에 접속하고, 늘 그랬듯 방탄소년단의 콘텐츠를 보고, 작년과 똑같이 댓글을 남기는 작은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 그들은 팬데믹 이후에도 방탄소년단을 구심점으로 공통의 일상 속에서,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사는 곳도, 상황도 모두 다르지만 오프라인의 접촉이 어려운 시대에 일상의 공유와 소통으로 쌓아올린 온라인의 ‘커넥트'다. 그리고 이 느슨한 연결은 때론 강력한 연대로 나아가기도 한다. 지난 5월 25일(EST),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비무장 상태의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했다. 이로 인해 미국 내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이하 BLM) 운동이 전 세계의 이슈로 떠올랐다. 그리고 6월 4일(KST), 방탄소년단은 인종차별에 대한 분명한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BLM 운동을 지지했다. 방탄소년단이 비영리 재단 블랙 라이브스 매터에 100만 달러를 기부하자, 아미들은 방탄소년단 팬들이 운영하는 기부 단체 OIAA(One In An Army)를 중심으로 6일(EST)부터 ‘매치어밀리언(#MatchAMillion)’ 해시태그 아래 모금 운동을 벌였다. 다음 날인 7일(EST), 기부금은 방탄소년단의 기부금과 같은 액수인 100만 달러를 돌파했다. OIAA 측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당시 BLM 사안의 긴급함을 고려해 월별 정기 캠페인보다 빠른 시점에 아미들이 BLM에 대해 지원할 수 있는 단체들의 목록을 정리한 위기 카르드(Crisis Carrd)를 공개했습니다. 방탄소년단의 BLM 지지 트윗 이전부터 카르드에 대한 아미들의 호응이 컸고, 트윗 이후 ‘매치어밀리언’ 캠페인이 조직되면서 아미들의 참여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아미들이 모든 캠페인의 리더였어요!”
코로나19는 사회에 잠재됐던 분열의 불씨를 키운다. 락다운이 장기화된 국가에서는 수많은 소상공인들의 삶이 무너지면서 빈부 격차가 더욱 커지고 있고, 코로나19의 발원지에 대한 의혹을 근거로 세계 곳곳에서 아시아인을 ‘코로나 전염’의 원인이라 선동하는 차별이 행해지기도 한다. 2월 24일(EST), 미국 시리우스XM 라디오 ‘하워드 스턴 쇼’의 진행자 하워드 스턴은 코로나19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해당 프로그램의 작가 살 고버네일(Sal Governale)이 같은 달 21일 시리우스XM에 방문한 방탄소년단에 대해 “(그들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없을 리 없다”라고 발언했다고 밝혔다. 이 방송에서 하워드 스턴은 그의 발언이 “인종차별적”이라 비판했고, 프로듀서 개리 델'아바테(Gary Dell’Abate) 역시 "아시아인뿐만 아니라, 사이러스XM의 문을 통과하는 모든 유명인들은 전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라고 말하며 하워드 스턴의 지적에 무게를 실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여전히, 방탄소년단조차도 인종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지금 전 세계 어딘가에서 함께 ‘RUN! BTS’를 보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또는 자신과 또 다른 정체성을 가진 누군가의 삶을 위해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코로나19 문제 해결을 위한 기부, 자연재해, 질병, 교육, 빈부 격차, 인권, 동물 보호, 사회적 기반 건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뒤덮은 뒤 아미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기부한 내역 중 일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