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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일권(음악평론가)
사진 출처. 애플 뮤직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의 결승전 ‘슈퍼볼(Super Bowl)’은 아마도 가장 많은 음악 팬이 고대하는 스포츠 이벤트일 것이다. 하프타임 쇼 때문이다. 매년 전설의 반열에 올랐거나 상징적인 행보를 보인 슈퍼스타가 초빙된다. 그리고 그들의 휘황찬란한 무대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올해 ‘제58회 애플뮤직 슈퍼볼 LVIII 하프타임 쇼’의 헤드라이너는 어셔(Usher)다. 트레일러도 공개됐다. 어셔와 수많은 팬을 비롯해 르브론 제임스(LeBron James), 제이 발빈(J Balvin), 정국과 같은 유명인의 모습이 담겼으며, 30여 년에 이르는 커리어가 1분 안에 압축되었다.

유행과 취향이 급변하는 대중음악계에서 어셔만큼 시대의 흐름에 영향받지 않는 아티스트도 드물다. 물론 한때의 인기에 도취하지 않고 왕성한 활동을 통해 슈퍼스타란 칭호를 유지해온 이는 적잖다. 그런데 어셔는 좀 더 특별하다. 그의 전성기를 함께한 중장년 팬이 모인 추억의 디너쇼와 현재의 음악을 즐기는 청년 팬 가득한 클럽 공연 어디에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러니까 크렁크(Crunk) 사운드에 맞춰 강렬한 춤과 노래를 선보이던 ‘Yeah!’ 시절의 어셔와 최근 방탄소년단 정국과 합을 맞춘 ‘Standing Next to You’의 어셔 사이에서 시간의 간극을 느끼기란 어렵다. 더구나 ‘Yeah!’가 발표된 때만 해도 이미 데뷔 10주년이 넘은 시점이었다. 그는 확실히 시간의 영향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아티스트다.

 

어셔는 일찍이 스타덤에 올랐다. 프로듀서 제이토벤(Zaytoven)과의 합작 앨범 ‘“A”(2018)’와 올해 2월에 발표할 새 앨범 ‘Coming Home’ 사이의 공백기가 비교적 길었다는 것 외에는 주류 음악계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그래서 어셔를 각인하게 된 시기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Nice & Slow’, ‘You Make Me Wanna...’처럼 끈적한 슬로우잼과 힙합 소울을 부르던 1990년대 라페이스(Laface) 시절을, 누군가는 크렁크앤비(Crunk&B) 트랙 ‘Yeah!’로 인기가 절정에 달했던 2000년대 ‘Confessions’ 시절을, 이른바 MZ세대라면 정국과의 컬래버레이션을 선보인 현재를 꼽을 것이다. 

 

그런 만큼 하프타임 쇼에서 보길 원하는 퍼포먼스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의 대표 곡을 전부 들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주어진 시간은 13분 남짓. 어셔처럼 멀티 플래티넘과 히트 싱글을 많이 보유했다면(‘빌보드 핫 100’ 1위만 9개다!), 제일 중요한 곡으로만 구성하기에도 빠듯한 러닝타임이다. 그럼 ‘제일 중요한’에는 어떤 곡이 포함될까? 현지의 여러 매체가 그랬듯이 세트리스트를 예측해보는 건 이 역사적인 무대를 기다리며 만끽할 수 있는 커다란 즐거움 중 하나다.

일단 ‘Yeah!’가 있으리라는 건 자명하다. 애틀랜타 출신의 프로듀서이자 래퍼 릴 존(Lil Jon)이 만든 이 곡은 활기차고 위협적인 남부의 크렁크와 세련된 메인스트림 R&B가 혼합한 첫 결과물이었다. 즉 크렁크앤비(crunk&B)란 장르의 시작이었다. 철저하게 클럽 지향적이며, 힙합과 결합했으나 기존의 힙합 소울과 전혀 다른 방향성을 지닌, 어셔의 시그니처 넘버다. 뿐만 아니라 2000년대 R&B를 대표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쇼를 여는 곡이 될 수도, 대미를 장식하는 곡이 될 수도 있다.

다음으로 유력한 건 ‘Love in This Club (Feat. Young Jeezy)’이다. 프로듀서 폴로 다 돈(Polow da Don)이 라스베이거스에서 머무르는 동안 영감을 받아 만든 곡으로 무드와 가사 전부 사막 위에 지어진 호화로운 도시의 느낌을 간직했다. 특히 은은하게 퍼져 나가는 신시사이저가 핵심이다. 큰 규모의 공연에서 듣는다면, 정말 환상적일 것이다. 신스 위로 차분하게 내려앉으며 전개하는 보컬은 또 얼마나 훌륭한가?! 마치 ‘하프타임 쇼’를 위해 만들어 놓은 노래 같다. 

‘OMG’도 빼놓을 수 없다. 블랙 아이드 피스(Black Eyed Peas)의 윌아이엠(will.i.am)이 만들고 피처링했으며, 댄스팝, 일렉트로팝, R&B가 뒤섞인 미드템포 곡이다. 무엇보다 2010년대 들어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을 적극적으로 끌어오기 시작한 어셔의 음악 전환기를 대표하는 넘버다. 앨리샤 키스(Alicia Keys)와 함께한 ‘My Boo’도 강력한 후보다. 두 번째 앨범 ‘My Way(1997)’에서 처음 호흡을 맞췄던 저메인 듀프리(Jermaine Dupri) 특유의 끈적하고 느린 그루브가 빛을 발한 곡이다. 멜로디는 매혹적이고, 듀오의 보컬은 감미롭다. 프로덕션적으로 ‘Confessions’의 ‘Yeah!’와 정반대 지점에 있는 곡이라 더욱 흥미롭다. 만약 세트리스트에 포함되었다면, 앨리샤 키스의 깜짝 등장도 이루어질 수 있다.

한편으론 초기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무대도 기대한다. 커리어가 방대한 다른 헤드라이너들이 그랬듯이 말이다. ‘You Make Me Wanna...’, ‘Think of You’, ‘U Got It Bad’, ‘U Remind Me’ 등의 곡이 메들리로 이어진다면, 쇼는 더욱 감동적일 것이다. 끝으로 ‘하프타임 쇼’ 며칠 전에 발매될 새 앨범 ‘Coming Home’의 신곡이 있다. 서머 워커(Summer Walker)와 투웬티원 새비지(21 Savage)가 피처링한 ‘Good Good (Explicit)’, 영화 ‘컬러 퍼플(2023)’ 사운드트랙에도 수록된 ‘Risk It All’ 그리고 정국과 함께한 ‘Standing Next to You (USHER Remix)’ 등등 선공개된 곡 중 일부가 포함되었을 거로 예상한다. 
 

어셔는 보도 자료를 통해 ‘하프타임 쇼’에 오르게 된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저의 버킷 리스트에서 슈퍼볼 공연을 마침내 달성하게 되어 일생일대의 영광입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저에게서 본 적 없는 공연을 빨리 보여주고 싶습니다. 팬들과 이러한 기회를 만들어준 모든 분에게 감사합니다.”
 

그의 오랜 기다림과 감격스러워하는 심경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더불어 ‘그동안 본 적 없는 공연’에 관해선 트레일러를 통해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영상에 삽입된 ‘Yeah!’는 역동적인 마칭 밴드와 현악 연주 조합으로 새롭게 편곡되었다. 다른 곡 역시 라이브 편곡을 가미할 수 있다. 무대 구성과 함께 이번 쇼에서 제일 기대하는 부분이다. 음악적 유산이 확실한 거장을 위해 마련된 자리,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무대 중 하나, 그곳에 R&B계의 거인이 선다. 30년으로 완성한 한 번의 퍼포먼스를 위하여(One performance, 30 years in the making/*주: 트레일러 영상 말미에 뜨는 표어다.).

 

“It’s an honor of a lifetime to finally check a Super Bowl performance off my bucket list. I can’t wait to bring the world a show unlike anything else they’ve seen from me before. Thank you to the fans and everyone who made this opportunity happen. I’ll see you real soon.”